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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십계명'을 되뇌자 아이들이 꽃처럼 보였습니다

이윤진이카루스 2011. 4. 9. 07:28

 

 

‘교사 십계명’ 되뇌자 아이들이 꽃처럼 보였습니다
전쟁 대신 연애를 하기로 했습니다
‘교사 십계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첫째, 몇 번이든 학생들과 인사하라
둘째,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으라
셋째,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라…
한겨레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40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40

천장이 낡아 떨어져 나간 사이로 건물의 빗장뼈가 허옇게 드러나 보이던 그 교실이 그래도 나는 좋았다 (…)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나는 그곳에 혼자 앉아 있곤 하였는데 비가 내리다 그친 유월이면 뻐꾹새는 건너편 숲에서 녹녹한 소리들만 골라 교실 앞에까지 던지고 가고 (…) 산 너머 흘러가는 구름 몇 장을 한참씩 바라보며 서 있는 날도 있었다

아이들도 내가 그곳에 혼자 있는 걸 아는지 간혹 생글거리며 찾아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 칠판 가득 열다섯 가슴에 찰랑거리는 소망을 적어 놓기도 했다 간혹 누구 글씨인지 알 것 같은 필체로 선생님 바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며 혼자 웃을 때도 있었다

날이 추워져도 손가방만한 스토브 그것도 고장이 나 잘 켜지지 않는 것 하나밖에는 의지할 데가 없는 싸늘한 교탁 옆에서 미사를 위한 아다지오를 듣거나 아직도 뜻을 버리지 않은 옛 친구들의 시집을 읽으며 가슴이 녹아내릴 때도 있고 시린 등 곱은 손을 다른 한 손으로 비벼가며 시를 쓰기도 했다 달포가 넘도록 운동장 가득 눈은 녹지 않는데 지나온 세월 속에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 아플 때도 있지만 나는 왜 찬바람 부는 오지의 교실을 혼자 지키고 있는가 묻지 않았다 그저 다시는 못 만날지 모르는 고적한 시간 시간이 좋았다





- 졸시 <빈 교실> 중에서

» 그림 이철수
제가 있는 학교, 제가 있는 교실이 최전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싸우기도 하고, 눈물 흘리기도 하고,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하면서 생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복직 직후는 아이들과 전쟁을 하다시피 했습니다. 교실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저도 흥분한 채로 교실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깨지고 있었습니다. 십년간 준비한 창의적인 수업방식이라는 실탄과 무기를 쌓아 놓고 있었지만 수업도 먹혀들지 않았고, 아이들과 만나는 방식도 겉돌고 있었습니다. 저는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한 학기가 끝나고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저는 이제 아이들과 전쟁을 하지 말고 연애를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일학년을 맡았고 새로 시작했습니다. 다시 아이들 편에 서자.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교사 십계명’을 책상 유리판 밑에 놓아두고 쉴 때나 일할 때나 아이들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할 때면 읽었습니다.

첫째, 하루에 몇 번이든 학생들과 인사하라. 둘째,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으라. 셋째,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라. 이름 부르는 소리는 누구에게나 가장 감미로운 음악이다. 넷째, 칭찬을 아끼지 말라. 다섯째, 친절하고 돕는 교사가 되라. 학생들과 우호적 관계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친절하라. 여섯째, 학생들을 성의껏 대하라. 일곱째, 항상 내 앞의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라. 여덟째,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라. 아홉째, 봉사를 머뭇거리지 말라. 교사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가치로운 것은 학생을 위해 사는 것이다. 열째, 깊고 넓은 실력과 멋있는 유머와 인내, 겸손을 더하라.

몰라서 교사 십계명을 보는 게 아니라 실패하고 있는 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아이들이 개나리꽃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 학기 시작한 지 아직 한 달이 안 됐는데 / 아이들과 정이 들어 / 와락 껴안아 주고 싶어진다 / 아침을 거르고 오기 일쑤인 / 개나리꽃 같은 아이들 / 바람 불어도 비가 와도 걸어서 집까지 가는 아이들 / 모래먼지 속에서도 장난치며 크는 아이들 // 돌담 옆에서도 철조망 안에서도 공장 가는 길에도 / 개나리꽃은 피어 세상을 환하게 바꾼다 / 메마른 땅에서도 그늘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 개나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 / 응달에서 커도 저마다 작은 꽃을 피우는 / 낭창낭창한 개나리꽃 우리 아이들”(졸시 <개나리꽃> 중에서)

방학을 하던 날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개학할 때까지 너희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니?” “전화해도 될까?” 그랬더니 이 녀석들이 책상을 치고 깔깔대고 웃습니다. “보고 싶기는 뭐가 보고 싶어요. 빨리 끝내 주세요. 딴 반은 다 가잖아요”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몰려나간 뒤 삐뚤어진 책상을 정리하며, 유리창을 닫으며, 신발장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보며 아이들이 보고 싶어집니다.

며칠을 못 넘기고 애들 집 여기저기 전화를 했더니 “왜 전화하셨어요? 엄마 바꿔 드릴까요.” 그럽니다. 소설을 읽고 만화로 그려오기 숙제를 도저히 못 하겠다고 엄살을 떠는 녀석도 있고 좋아하는 시로 달력 만들기를 하기 위해 시 12편을 다 골라 놓았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두레별로 자기 동네의 쓰레기를 줍고 분리수거하여 어떤 종류의 쓰레기가 많은지 알아보고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제와 농공단지 하천지역의 오염실태 조사, 두레별 환경신문 만들기 등을 과제로 주었습니다. 석탑, 미륵불 등을 답사하며 문화재가 잘 보존되지 않은 곳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 느낌을 써 보자는 과제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불러내 직접 필드워크를 다니다가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우물제사를 찾아내 학교 축제 때 재현하기도 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학교 밖에서 하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일 년에 34시간 실시하게 되어 있는 재량활동 시간을 5주 단위로 묶어 5주에 한 번씩 하루 종일 학교 밖에 나가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시간표를 짰습니다.

교사들이 사전에 수업할 장소를 답사해서 학습지도안을 짜고 과제를 만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차로 삼십분 정도 가면 농다리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입니다. 거기 가서 수업을 할 때면, 사회과에서는 다리가 놓여진 고려시대 진천의 역사와 우리나라 옛 다리의 종류에 대해 공부합니다. 국어과에서는 다리에 얽힌 전설과 다리를 놓은 인물에 대해 공부하고, 과학과에서는 다리가 어떤 암석으로 만들어졌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하고 관찰합니다. 교사들은 강의식 수업이 아닌 팀티칭으로 수업하고 학생들은 혼자 하는 공부가 아니라 협력학습으로 과제를 해결하며, 분과형 수업이 아닌 통합교과형 체험학습으로 공부를 합니다. 이 결과는 그대로 교과별 평가에 반영합니다.

고려의 재통일에 대해 배울 때는 <태조왕건> 촬영장을 찾아갔습니다. 점심시간에 배우들이 쉬고 있을 때 자료집과 질문지를 들고 다가가서 견훤과 궁예가 통일을 하지 못한 이유가 어디 있는지를 묻고 사진도 찍습니다. 티브이에서 보던 탤런트들과 사진을 찍은 걸 자랑하고 싶어서 고려의 통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들풀신문을 만들고 인근의 박물관을 찾아가 과제를 해결하는 수업을 했습니다.

삼 년 정도 이렇게 수업을 하면 두레별로 에이(A)4 용지 스물다섯 장에서 삼십 장 정도의 두툼한 보고서를 만들어 냅니다. 교실에서 교사 혼자 설명하고 과제를 내면 에이4 용지 반 장도 써내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인데 말입니다.

경주로 수학여행을 갈 때도 두레장 모임을 통해 사전에 가야 할 코스와 답사지에 대한 자료를 찾아 학생들이 직접 수학여행 자료집을 만들었습니다. 표지에다가 ‘경주도굴사건-경주의 문화재를 파헤친다’ ‘문화재습격사건’ 이런 이름들을 지어 붙인 자료집이 반마다 다르게 나왔습니다. 공통으로 가는 곳도 있고 반별로 다르게 답사를 가는 날도 있습니다. 1반은 ‘국가의 중심-신라의 궁궐’이란 주제를, 2반은 ‘불멸의 몸-탑과 불상’을, 3반은 ‘신라의 흥망과 남산’이란 주제를 택해 다른 코스를 잡아 답사를 다녔습니다.

문화재를 뒤에다 두고 단체사진이나 찍고 가는 여행, 맨손으로 다니며 뒤통수로 문화재를 보고 오는 수학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저녁 시간에는 탁본 실습과 문화재에 관한 슬라이드 감상을 하거나 부모님과 선생님께 드릴 도자기 만들기 실습을 했습니다. 수학여행지에서 사는 선물은 쓸모가 없는 게 대부분인데, 이 도자기는 오래 보관하게 되는 선물이었습니다. 잠은 여관이 아니라 도자기 교실에서 잤습니다.

그런 게 불만인 애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술, 담배를 포함한 일탈행동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사라지는 수학여행, 놀 시간이 줄어든 수학여행은 여행도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신문에 보도된 수학여행 관련 기사를 보고 교육청마다 실시해보려고 자료를 보내달라고 제게 연락이 오곤 했는데, 나중에 일탈의 즐거움이 없는 수학여행이라 실시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습니다. 실제로는 교사들부터 힘들어 했습니다. 교사인 제 친구들도 사전답사를 다니며 학습지도안을 짜고 과제를 만들고 한다는 말을 듣더니 “미쳤냐? 너나 해!”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진천 덕산중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매달 이렇게 학교 밖에서 하는 수업을 했고 그것들을 모아 교육부 교과교육연구활동에 응모하여 최우수연구팀으로 뽑혀 함께 참여한 교사 전체가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았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상이었습니다. 그동안은 경고 견책에서 해임에 이르기까지 각종 벌이란 벌을 다 받았는데 상벌란에 채울 게 한 줄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교육방송>(EBS)에서 주는 제1회 ‘신나는 학교상’을 받았고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티브이에 한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