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및 퍼온 글

질문이 사라진 교실

이윤진이카루스 2011. 4. 14. 12:44

사회
사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질문꺼리 별로 없어요"
[질문이 사라진 교실] <상> 일방통행식 수업, 교사도 학생도 지친다
학원 선행학습, 궁금증 촉발할 기회 빼앗아
즉답 원하는 교사는 '핑퐁식 수업'으로 일관
일방향적 강의식 수업 결국 상아탑까지 연장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1 2 3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1 2 3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교실 풍경(연합뉴스)

1 2 3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선생님 입만 쳐다보며 수업 내용에서 더 이상 궁금한 게 없다는 듯 멍한 눈을 한 채 앉아 있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오고 자괴감마저 느껴지곤 합니다."

경기도 모 중학교 국어교사 A씨가 묘사한 질문 없는 교실의 풍경은 그야말로 잿빛이다. 목석처럼 앉아서 기계적인 답을 내놓는 아이들,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칠판을 빼곡하게 채우는 교사. 그 사이에는 사제간의 정은 고사하고 효과적인 수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통의 모습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이 교실에서 질문이 사라지게 했을까.

아이들의 호기심을 죽이는 사교육

일선 교사와 교육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질문을 하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로 '과도한 사교육'을 꼽는다. 공교육 현장인 교실로 들어오기 전 아이들은 사교육 시장에서 선행학습을 통해 수업에서 배울 것들을 이미 충분히 익혔기 때문에 질문의 가장 근본적인 동력인 호기심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경기 안양시 대안중학교 정종호(과학) 교사는 "초등학교 때질문을 잘하던 아이들도 사교육에 길들여지게 되는 중학생이 되면 입을 닫고 만다"며 "학원들이 아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이해하기 쉽게 모두 정리해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시 부천북고교 김영자(국어) 교사는 "사교육은 아이들의 사고를 고정시킨다"며 "교실에서 질문이 사라진 것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을 세상과 연관지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핑퐁식 수업, 불충분한 동기부여

"교사의 설명이 주가 되는 수업은 폭력이나 마찬가지다." 경기 성남시 분당초등학교 안영기 교장은 지금까지의 교실 교육이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아이들 위주로 진행됨으로써 대다수 아이들에게 학습에 대한 동기 부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교사가 물으면 답하는 방식의 수업을 따라 가지만 그러지 못한 아이들은 수업에서 점점 소외되는 현상이 굳어지면서 질문이 나오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했다는 분석이다.

안 교장은 "학업 성과를 바로 내려는 교사가 급한 마음에 핑퐁식 수업(교사가 질문을 던지면 학생이 즉시 올바른 답을 내야 하는 수업형태)을 하다 보면 잘하는 학생만 챙기기 마련"이라며 "학생들이 별 볼일 없는 질문을 해도 다른 학생들 앞에서 망신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학습 동기를 촉발하는 발문법(질문을 끌어내는 교수법)을 확산시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수업진도와 행정업무에 쫓기는 교사

아이들의 질문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시점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다. 학습량이 많아짐에 따라 교사가 떠안야 할 수업 내용과 범위도 크게 늘어나면서 수업 도중 아이들이 충분히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들이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가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도 교실에서 '질문하는 여유'를 사라지게 만든 원인으로 꼽힌다. 대안중학교 정종호 교사는 "고학년이 되어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절대적인 학습량이 많아지면 활발한 질문은 저절로 봉쇄된다"고 말했다. 경기 의정부시 경기북과학고 오혜미(수학) 교사는 "수업 진도 부담때문에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질문만 하는 게 현실이고 학생들도 수업 따라가기에 급급해 질문이 떠올라도 입을 열지 않는다"고 밝혔다.

12년간 몸에 익은 수동적 자세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질문을 꺼리는 데에는 보수적인 교수사회 분위기, 그리고 당돌한 질문이 교수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까 지레 걱정하는 학생들의 의기소침한 자세, 웃어른에게 쉽게 질문하지 못하는 유교적 문화 전통도 일조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받아온 사교육으로 호기심을 잃은 아이들은 교사의 일방향적 강의식 수업에 길들였던 습관을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버리지 못한 채 입을 쉽게 열지 못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조벽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는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 대학생들이 평소 자기들끼리는 얘기를 잘하다가도 교수와 함께 있을 때에는 철저히 입을 닫는 모습"이라며 "어린 시절부터 질문을 하면 윽박지르는 어른들을 경험한 탓"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