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및 퍼온 글

핀란드에서 본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 / 김해식

이윤진이카루스 2011. 4. 16. 15:46

[왜냐면] 핀란드에서 본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 / 김해식
‘어떻게 입학했지?’ 생각했던 친구가
몇년 뒤 유명 저널에 등장했습니다
잠시 뒤처졌다고 패배자로 몰면
미래의 훌륭한 과학자를 잃게 됩니다

한겨레
김해식 핀란드 오울루

핀란드에서 살고 있는 과학자입니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의 죽음을 접하며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몇자 적어 봅니다.

우선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미 지나치게 많은 경쟁 속에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몇개 안 되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경쟁하고, 평가받고, 줄 세우기에 상처를 받습니다. 경쟁에서 처지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모든 부담은 낙오한 자신이 짊어질 몫인 거지요. 그렇다면 경쟁에서 낙오한 학생은 자질이 없는 걸까요? 그냥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길을 가는 건 아닐까요?

영국에서 박사과정으로 공부할 당시 제 동기들은 정말 다양한 배경과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가 봐도 똑똑하고 유능한 학생으로 박사과정 1년차부터 좋은 논문을 내기 시작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성실하게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긴 하는데 연구 실적도 없고 한 논문을 며칠씩 읽어대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이런 학생이 입학할 수 있지? 박사과정은 제대로 마칠 수 있겠어?’ 하고 무시했는데, 그는 몇년 뒤 처음 발표한 논문이 유명 저널에 실리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친구는 천천히 가는 학생이었구나. 자기 나름의 길로 한발 한발 가는 그런 학생이었고 지도 교수도 그 학생이 자기 나름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곁에서 충분이 지켜봐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핀란드에도 역시 다양한 배경을 가진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문대를 나와서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하고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 연구소에 들어와서 연구하는 과학자도 있고, 반대로 수십년간 과학자로 연구하다가 경영학을 공부하고 회사를 창업해서 경영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죠.

저는 한국의 이른바 명문대학에서, 그리고 ㅅ전자에서 똑똑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일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참 똑똑하지요. 그런데 그 똑똑한 친구들이 다 비슷하게 똑똑합니다. 한국 학교나 회사에서 브레인스토밍이라는 것을 해보면 나오는 아이디어들이 다 비슷비슷합니다. 이는 다양한 경험과 사고를 갖지 못해서이기 때문이겠죠.





어린 나이에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간다고, 경쟁에서 잠시 뒤처졌다고 패배자로 낙인을 찍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는 건 미래의 훌륭한 과학자를 현재의 우리가 죽이는 것 아닐까요?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보듬어줄 열린 학교와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