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인터뷰②] “北, 여전히 적화통일 꿈꿔”
[인터뷰] 태영호 前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北 김정은 체제의 실상
김지영·송창섭 기자 정리=유경민인턴기자 ㅣ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8(화) 11:01:00 | 1506호
올 상반기 서점가의 가장 큰 화제작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쓴 《3층 서기실의 암호》다. 출간 세 달 만에 10쇄를 찍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책은 단편적인 북한 실상이 아닌 다양한 권력 심층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당 중앙위 3층에 있는 서기실은 북한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통치행위를 가리킨다.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내 금기어로 통하는 ‘서기실 비밀’을 과감하게 풀어헤쳤다.
북한에 태 전 공사는 눈엣가시다. 국회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진 태 전 공사를 향해 북한은 5월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해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강연에서 태 전 공사는 김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쇼맨십’에 불과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태 전 공사를 향한 북한의 비난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악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동원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시사저널은 7월24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본사 사무실에서 태 전 공사와 2시간 넘게 얘기를 나눴다. 주제는 비핵화 해법부터 북한의 대남전략, 태 전 공사의 사생활까지 다양했다. 인터뷰에서 태 전 공사는 “한·미 양국과의 대화 분위기 조성은 북한의 대남적화통일 전략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6·12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태 전 공사는 “11월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성과를 얻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조급증 때문에 미국 외교가 북한 전략에 말려들었다”면서 “지금이라도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라는 분명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2시간 넘게 이뤄진 태 전 공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①남북, 북·미 정상회담 평가, ②北 김정은 체제 실상, ③태영호의 남한 생활 등 크게 세 편으로 나눠 연재한다.
※앞선 ☞[태영호 인터뷰①] “北核 보유 인정하는 ‘트럼프 독트린’ 나올 것”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 태영호의 친정 北 외교라인
현재의 북한 외교라인에 허점이 있다면.
“판을 뒤집을 만한 허점은 없다. 북한 외교라인은 수십 년간 변하지 않았다. 1994년도 첫 제네바 협상 나온 사람들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외교관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군축의 역사를 다 알고 준비한다. 북한의 경우 협상의 모든 권한이 지도부에 있다. 지도자가 ‘핵무기는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하니 시간을 벌어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봐’라고 선만 그어주면 협상 실무자들이 모든 전략을 짠다. 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정치인들이 행정, 외교 관료 업무에 너무 많이 간섭한다.”
북한 외교라인과 군부 간 갈등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군부와 외무성이 어떤 사안에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핵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 차는 없다.”
리용호 외무상은 어떤 사람인가.
“외무상이 되기 전부터 북·미 협상의 모든 아이디어는 리용호에게서 나왔다. 두뇌가 명석할 뿐만 아니라 학구적이다. 아침부터 사무실에 앉아 책만 읽는다. 또 영어를 잘해 외국에서 책을 많이 들여온다. 더군다나 대단히 빨리 읽는다. 300~400페이지를 잠들기 전까지 다 본다. (1994년) 제네바 회담 때 핵 개발을 중지하는 대신 경수로를 지어 달라고 했는데 이는 리용호가 낸 전략이다.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때도 준전시상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 위기감을 고취시켜 미국이 대화에 나오도록 하자는 것이었는데 당시로선 기발한 전술이었다.”
ⓒ시사저널 이종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어떤가.
“최선희의 아버지는 김일성의 책임서기(청와대 비서실장)였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평범한 집 아이들은 볼 수 없는 자료들을 대단히 많이 봤다. 김일성에게 보고하는 자료들을 본 것이다. 아이 때부터 그런 것에 흥미가 있었다. 리용호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문건 통제가 강화돼 부모들이 문서들을 집으로 가져갈 수 없다. 그런데 1970~80년대만 해도 문건을 다 보지 못하면 집에 와서 쉬다 아침에 일어나 못 본 문건을 다 보고 그랬다.”
북·미 정상회담 전에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잠깐 등장했다.
“북한에서 외무성 제1부상 역할은 자리를 뜨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총지휘하는 것이다. 다만 김계관의 대외활동이 뜸한 건 건강이 좋지 않아서다. 무릎 질병으로 잘 걷지 못한다.”
■ 장마당 구축 北 경제 실상
북한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가 있나.
“아마 북한은 북한식을 찾을 것이다. 베트남이나 중국은 북한과 다르다. 무엇보다 북한은 한국을 옆에 두고 있다. 융통성을 발휘할 공간이 넓지 않다. 한국에 흡수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강하다.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주민들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걸 김정은도 잘 안다. 하지만 이럴 경우 북한 사람들은 상당수가 한국으로 갈 거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북한 장마당은 어떤 수준인가.
“장마당은 매우 단절된 형태의 자본주의다. 북한 사람들은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북한 당국도 장마당을 없애면 생존 고리가 끊어져 못 없앤다는 걸 잘 안다. 완전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됐다고 보면 된다.”
북유럽의 사민주의 모델을 채택할 가능성은.
“아직 그런 기미는 없다. 북한식 모델이란 ‘개성식 단절 모델형’을 북한 여러 곳에 만드는 거다. 개성공업지구를 만들면서 북한 정부는 개성을 다른 곳과 철저히 차단시켰다. 개성시 인구가 30만 명 정도 된다. 솔직히 공업지구가 들어서기 전까지 개성시는 문제가 많았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당의 조직 기능이 많이 와해됐다. 그런데 개성공업지구가 들어서면서 이게 회복된 거다. 당의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개성공업지구에 안 들여보내겠다고 하니까 어쩌겠는가. 당시 개성의 경우 한 명의 일자리가 생기면 4인 가족은 다 먹고살 수 있었다. 생존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한국 기업으로부터 받은 물자가 국가로 들어가면서 교사, 의사 등 국가가 운영하는 다른 계층까지 생계문제가 해결됐다.”
ⓒ시사저널 이종현
북한체제가 얼마나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하나.
“김정은 체제를 끝장내고 한반도에서의 평화통일을 이끌어내려면 한국 정부와 미국이 북한 전략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지금 김정은은 ‘핵 있는 평화체제’로 새롭게 판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가장 큰 문제가 종전선언이다. 북한은 지난 5년 동안 핵 기술을 고도화시켜 남이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핵보유국이 됐다. 종전선언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해 주는 첫걸음이다. 정치선언은 정치선언으로 대응해야 한다. 종전선언은 정치선언이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에 핵무기를 내려놓겠다는 정치선언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종전선언 다음에 북한이 요구하는 건 한국에서의 유엔군사령부 해체다. 현재 유엔군사령부 밑에 15개 나라가 있어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관련국들이 의회 승인 없이 참전할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가 있는 것 자체가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다음 북한 목표는 평화체제 구축일 것이다.”
종전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뜻인가.
“비핵화와 별개로 종전선언을 하는 건 틀렸다. 적어도 북한에 핵 개발 포기 선언을 요구하는 등 거래는 해야 한다. 시간표 없는 비핵화는 비핵화를 못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북한 내 적화통일 로드맵이 있나.
“종전선언을 하면 그다음은 평화협정이다. 그러면 북한과 미국 사이에 완전한 수교를 이룬다. 제재가 풀어지며 코너에 몰렸던 북한은 다시 살아나 경제를 건설하며 힘을 축적할 것이다. 그리고 2~3년가량 기다리면 한국 내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미군은 결국 떠날 것이다. 결국 한반도엔 한국과 북한만이 남는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북한에 비해 경제력이 40배 이상이고 현대화된 무기로 군사력도 높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전쟁은 경제력과 무기로 하는 게 아니다. 선제적으로 기습하되 전쟁기간 중 똘똘 뭉쳐야 이긴다.”
전시(戰時)에 북한 주민들이 똘똘 뭉칠 수 있다는 뜻인가.
“한국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상상도 못하는 점이 있다. 북한엔 모든 사무실에 전투배낭과 목총이 배치돼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비상벨이 울리면 옷을 벗고 전투배낭과 목총을 메고 행군한다. 2500만 명이 매달 전쟁 훈련을 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부 눈치를 보나.
“불안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군부 책임자가 올 1월부터 5월까지 세 번 바뀌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군부 인사가 계속된다는 것은 그만큼 김정은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잦은 인사와 숙청이 정권교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가.
“거의 없다. 인민무력부(국방부)라는 관료집단이 있지만 여기 근무하는 사람들은 평양 안에서 총을 휴대할 수 없다. 휴대가 가능한 건 오직 호위사령부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당 중심 정치는 군부 통제가 가능하다는 뜻 아닌가.
“김정은은 북한 사회를 통치하는 데 있어 자기 할아버지(김일성)를 많이 모방한다. 외모부터 국가 운영방식까지 모두다. 김정일 때는 군부 지도자들과 상당히 가까웠다. 하지만 김정은은 할아버지 때처럼 당 사람들을 많이 내세우고 당을 통해 군부를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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