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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오디세이 - 13년간의 참혹한 전쟁 속에서 꽃핀 '명상록'

이윤진이카루스 2011. 7. 9. 06:55

고전 오디세이 35
죽음 앞에 겸허했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얼굴상.

죽음을 명심하지 않는 삶은 지독하게 수치스러우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스로 다짐한다. “너는 수만년을 살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네 곁에 있다.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동안 선한 자가 되라.”

“머지않아 너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 중에 그 어느 것도,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그렇게 되지 않는 존재는 없다.” 그래, 사람은 다 죽고, 죽으면 없어진다. 그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숙명이다. “죽음이 엄습해 올 때, 몸과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헤아려보라. 인생이 짧음을, 너의 앞에 있던 과거와 너의 뒤에 올 미래의 시간이 거대한 심연임을, 만물을 이루는 물질이 연약함을 생각하라.”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년)의 말이다. 그런데 그가 철학적 담론을 펼치는 현장은 강의실이나 조용한 서재가 아니다. 그곳은 그가 13년을 목숨을 걸고 보냈던 게르마니아 전선이었다.

161년 그가 로마 황제에 즉위하였을 때, 로마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기아와 홍수가 이탈리아 반도를 덮쳤고, 아시아에선 지진이 일어났다. 북쪽의 브리타니아에서는 반란의 군대가 일어났고, 동쪽의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를 노리고 있었다. 한편 발트해 연안의 고트족에게 밀린 게르마니아 속주의 부족들과 다뉴브강 북쪽에 있던 마르코만니족과 콰디족이 남쪽으로 밀려와 로마의 국경을 위협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곳으로 직접 가야 했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명상록>을 썼다. 이 책은 편지도, 출판을 위한 저술도 아니며 오히려 은밀한 기록,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또는 비망록에 가깝다. 그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자신을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이 책에는 원래 <자신에게 보내는 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후대 사람에 의해 붙여진 것이지만, 이 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엄습하는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이 글을 썼던 것이다.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이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거기엔 절실함이 없다. 삶과 죽음이 매순간마다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그 사실은 단순한 상식으로 지껄여질 수 없다. 그건 절절한 느낌이며, 아찔한 진실이다. 누구나 죽음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난 적을 죽여야 한다.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나에게 돌진해오는 강인한 생명체의 목숨을 끊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적이 나를 죽인다. 죽음의 비릿한 공포가 생생하게 스멀거리는 곳.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바로 그곳에서 있었다. 밖으로는 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안으로는 죽음의 공포와 삶의 허망함과 싸워야 했다. 전쟁터는 더 이상 “남자의 명예를 드높여주는” 곳이 아니었다.

옛날 옛적 <일리아스>가 그려주는 영웅들은 불멸의 명성을 얻으려고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목숨을 던졌다.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께서도 말씀하셨소, 은빛 발을 가지신 여신 테티스께서, 나를/ 두 가지 서로 다른 사망의 전령이 죽음의 끝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만일 이곳에 남아 머물면서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둘러싸고 싸우면/ 귀향의 길은 내게 사라지겠지만,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라고./ 그러나 만일 내가 나의 사랑하는 조국의 땅으로, 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고귀한 명성은 내게 사라지겠지만, 내 수명은 오랫동안 길고 길게/ 지속될 것이며, 죽음의 끝은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아킬레우스의 선택은 목숨을 값으로 치르고 불멸의 명성을 얻는 길이었다. 인생은 짧다. 그러나 명성은 영원하리. 그는 그렇게 믿고, 영원함을 갈망했다.

트로이아의 전사 사르페돈도 전쟁터로 나가며 이렇게 외쳤다. “이것 보게 친구, 만일 우리 둘이 이 전쟁을 피하여/ 영원무궁토록 늙지도 않고 또 죽지도 않을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이 맨 앞에 서서 싸우지는 않을 것일세./ 남자의 명예를 드높여주는 싸움터로 자넬 보내지도 않을 것일세./ 하지만 지금 죽음의 운명들이 떡하니 버티고 우뚝 서 있네,/ 수도 없이, 그것들을 인간들은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으니/ 나가세! 누군가에게 명성을 주든, 누군가가 우리에게 줄 것인즉!”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전쟁이 일상이었고, 결국 일상조차도 무한 경쟁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삶을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강력한 전사는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옳기에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하기에 옳다는 힘의 윤리학이 통하고, 강한 것이 미화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숭앙되면서 폭력의 미학도 정당화되었던 시대였다. 아킬레우스는 그런 시대정신 속에서 최고의 영웅이었고, 그를 노래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불멸의 걸작으로 읽혀왔다. 위대한 정복자였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자기 시대의 아킬레우스가 되길 원했고,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아킬레우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한때 그는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서서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정복한 땅으로 본다면 내가 당신보다 훨씬 위대한데, 내 곁에는 당신처럼 나를 노래해줄 호메로스가 없구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속의 욕구가 있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영원히 존재하며 죽지 않는 신을 상상하고 갈구한다. 존재의 탄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필멸의 존재는 불멸의 명성을 갈망하였던 것. 불멸의 명성으로 신을 닮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다음 작품인 <오디세이아>는 아킬레우스의 회한을 보여준다. 지하세계로 내려간 오디세우스는 전쟁터에서 죽어 그곳에 있던 아킬레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킬레우스여,/ 예전의 어떤 전사도 그대보다 행복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살아생전 그대를 신처럼 존경했으니까, 우리/ 아르고스인들은. 그리고 그대는 지금 죽은 자들을 강력하게 통치하고 있으니까/ 이곳에 있으면서. 그러니까 그대는 죽었다고 애통해하지 마시오, 아킬레우스여.”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충격적인 대답을 한다. “나에게 죽음에 관해 위로하려 하지 마오, 영광스런 오디세우스여./ 땅 위에 살 수만 있다면 난 다른 사람의 머슴으로 품을 팔아도 좋소,/ 농토도 없고 살림살이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이라도 좋소./ 쓰러져 소멸하여 죽은 모든 자들 위에 군림하는 것보다 그게 더 좋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 짧아도 좋으니 삶은 삶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할 수 있다는 말. 영원히 펼쳐진 시간 속에 찰나로 살 수밖에 없기에 우리의 삶은 오히려 영원한 것보다도 더 짜릿하고 찬란할지도 모른다. 삶에 대해 이것보다도 더 절실한 예찬이 있을까?

»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생의 찰나성과 찰나적 인생들의 연속선상 속에 근근이 기억되는 명성의 허망함을 통찰하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각자는 현재를, 이 짧은 순간만을 살고 있음을 명심하라. 나머지는 이미 살아버린 과거거나 아직 불확실한 미래일 뿐이다. 그러니 각자가 사는 시간도 작고, 각자가 살고 있는 땅 구석도 작다. 가장 길다는 사후의 명성도 작기는 마찬가지다. 그것도 곧 죽고 말 사람들에 의해, 그리고 오래전에 죽은 사람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해져오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다른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을 다독이며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전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전쟁터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죽음은 태어남과도 같은 것, 자연의 신비로다. 어떤 요소들이 결합되어 태어남이 있다면, 그 요소들과 똑같은 것들로 해체되는 것이 죽음일 뿐. 그것에 대해 곤혹스러워할 건 없다.” 오히려 죽음을 명심하지 않는 삶은 지독하게 수치스러우니. 그는 자기를 향해 다짐한다. “너는 수만년을 살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네 곁에 있다.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동안 선한 자가 되라.”(IV.17)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전성기 ‘팍스 로마나’를 이끌었던 5현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했던 철인왕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는 검소한 삶을 살면서 철학으로 영혼을 돌보았으며, 무서운 죽음 앞에 단단하게 자신을 다지며 선한 마음으로 로마 제국을 이끌었다. 그의 모습이 무한경쟁의 전쟁터 같은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립고, 그립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