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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파멸a: 과거를 이해하여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
여러분이 나의 강좌 제목으로부터 추정할 바와 같이, 나는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나의 강좌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1917년 10월 혁명으로 시작된 우리 서구 문명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공격에 초점을 맞출 것인데, 그 공격의 실패를 여기 오늘 만난 우리가 생전에 목격했다.
우리의 모든 고통들의 시작을 개인적으로 기억할 정도로 충분히 나이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예보(Sarajevo)에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the Archduke Franz Ferdinand)이 암살된 날인 1914년 6월 28일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는 극소수의 생존자이다. 암살자가 세르비아인이라고 (‘Der Täter ein Serbe!’) 소리치는 신문 소년의 목소리를 나는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그리고 나는, 1914년 7월 28일의 (나의 12살생일) 1차 세계대전 발발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그 전쟁 소식을 나의 부친에게서 온 편지로부터 그리고 또한 '나의 민족들에게(To My Peoples)'라고 쓰인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 황제의 선언이 인쇄된 커다란 현수막으로부터 알았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자기들이 시작한 전쟁에서 패할 예정이었음을 내가 깨달은 1916년의 그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러시아에서 민주혁명이 시작된 1917년 3월의 그 날들을 나는 기억한다; 러시아에서 케렌스키(Kerensky) 정권에 대한 레닌의 반란폭동과 내전의 시작을 나는 기억한다; 1918년 3월 독일과 레닌 및 트로츠키의 러시아 사이에 브레스트-리토브프스크(Brest-Litovsk) 평화조약을 기억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제국의 붕괴를 나는 기억하는데 그 붕괴로 1918년 10월 전쟁이 끝났다. 이 사건들은, 내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지금 내가 아는 바와 같이 모든 인류를 멸종의 지경까지 몰고 갔다.
짧은 강좌에서 나는 물론 근본적으로 과도하게 단순히 말해야 한다. 큰 붓
* 1992년 3월 6일 세비야(Seville)의 엑스포 ‘92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강좌.
a 역주: ‘공산주의의 파멸’의 원어 표현은 THE COLLAPSE OF COMMUNISM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을 사용하여 그리고 가장 조악한 색깔들로 나의 역사 초상화들을 나는 색칠해야 하겠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서유럽과 독일 및 북미에서의 산업화로 인하여 정말로 자유로운 사회가 승리했을 터이다. 사실상 세계의 이 지역 사람들은 자유와 커다란 경제적 성공을 정말 알았다; 개방된 국경들, 여권 불필요, 범죄 및 폭력의 감소, 문자해득률a 증가 그리고 임금상승과 번영을 알았다.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여전히 지독하게 어렵던 육체노동자의 상황에 심지어 다소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1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시작했는데 이 모든 것을 파괴되어, 구정권은 더 이상 신뢰될 수 없음이 드러났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배한 강대국들은 ㅡ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 ㅡ 외부로부터 전복되었다. 그러나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받고 혁명이 또한 일어났다. 승리한 강대국들 중에서 프랑스와 이태리 또한 크게 흔들렸다. 러시아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아서 혁명을 시작하려던 시도가 있었던 영국에서 총파업이 실패한b 이후만이였을지라도, 영국과 미국만 자유를 위한, 전쟁 이전 개혁의 발걸음을 다시 시작했다.
금융 대위기와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2개국의 사례는 의심의 여지없이 안정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1935년 영국은, 실업과 히틀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내가 나의 전 생애를 통하여 본 최고로 행복한 산업국가였다c: 모든 육체노동자, 모든 버스 차장, 모든 택시운전사 그리고 모든 경찰관이 완벽한 신사였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승리와 공산주의자들이 정치선전과 세계 혁명 조직화에 쏟아 부은 엄청난 양의 돈으로 인하여 서양 도처에서 좌파와 우파 사이에 깊은 양극화가 생겼다. 먼저 이태리에서 무솔리니의 통치하에 이 양극화는, 파시즘을 초래했는데 다른 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파시즘 운동에 의하여 곧 모방되었고 지역 내전을 ㅡ 그 내전이 주로 우파 테러리스트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매우 일방적인 ㅡ 초래했다.
그래서 다음 상황이 출현했다. 동유럽 특히 소련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강력한 이념과 무한한 거짓말의 보고를 근거로 독재 권력으로 무자비하게 통치하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ㅡ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의 영향력과 정치선전 및
a 역주: ‘문자해득율’의 원어는 literacy인데 허형은 번역은 ‘문학’이다.
b 역주: ‘총파업이 실패한’의 원어 표현은 the defeat of a general strike인데 허형은 번역은 ‘(혁명의 시도가 영국을) 한 차례 휩쓸고 간’이다.
c 역주: ‘산업국가’의 원어 표현은 industrial nation인데 허형은 번역은 ‘나라’이다.
러시아의 힘에 매혹당하여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희망의 영향을 받아
서 ㅡ 좌파의 강력한 권력으로부터 나와서 우파들로부터 반대-폭력을 야기하고 그리하여 파시스트들을 강화시키는, 심각한 폭력의 위협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및 유럽 남부는 좌파와 우파 사이의 첨예한 양극화로 파시즘에 굴복했는데, 그 양극화는 부분적으로 소련인들과 독일 나치들에 의한 현대전에서 한 가지 실험으로서 실행된 스페인 내전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파시스트 정당들은 심지어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발전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그곳에서 그리고 북유럽의 작은 국가들에서 유지되었다.
서양에 대한 히틀러의 전쟁 전a 이 상황에서, 거의 모든 현명한 사람들이자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민주주의란 인류의 역사에서 지나가는 단계일 뿐이라고 선언하고 곧 사라진다고 예언했다. 부언하여 나는 열린사회에 관한 나의 저서를 이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역사적 예언의 악의적 유행에 대한 공격으로써 저술하기 시작했다.b
그다음에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패배했는데 한 사람 때문이었다: 윈스턴 처칠. 히틀러와 그의 동맹들을 궁극적으로 패퇴시킬 수 있었던 서양 민주주의 국가들과 러시아의 연합을 공고히 한 것은 그의 덕분이다. 그러나 한 가지 결과로서 민주주의 국가들 내부에서 좌우 양극화로 좌파의 권력이 이전보다 더 강력해졌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패배로 인하여 파시즘이 도처에 패퇴했지만 동서간에 훨씬 더 위협적인 냉전이 출현하여 공산주의 독재의 철권 하에서 동양은 전보다 훨씬 더 단결되었고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여전히 내부적으로 분리되어 취약해졌다. 여기서 좌파는 소련인들에 의하여 사주를 받고 지지를 받았는데 소련인들은 또한 소위 서양의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항하여 중동과 정말로 세계를 휘저었다.
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열린사회들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정말로 승리했다. 거대한 국제적 중압감 ㅡ 그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토론했던 중압감 ㅡ 하에서 붕괴한 것은 그 국가들이 아니었다. 먼저 붕괴하였고 소련 제국의 철권을 데리고 붕괴한 것은 고도로 통합되고 완전히 통일된 동독의 공산주의 독재체제였다.
a 역주: ‘서양에 대한 히틀러의 전쟁 전’의 원문 표현은 preceding Hitler's war against the West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b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Incidentally, I started my book on the open society with an attack upon these people and the mischievous fashion of historical prophecy.인데 허형은 번역은 ‘우연하게도, 내가 열린사회를 주제로 소위 지식인들과 전혀 도움 될 것 없는 그들의 예언 성향을 공격하는 내용의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즈음이었다.’이다.
여러분, 민주주의 국가들이 감내할 수 있었던 거대한 중압감을 고려하라.a
그 중압감은 여하한 정치적 권력 집단에 의하여 감내된 가장 큰 중압감이었다
고 나는 말하고 싶다.b 그리고 이 권력 집단은 민주주의적 국가들이 매우 느슨하게 모인 것이었는데 각각의 국가는 내부세력들에 의하여 분할되어 있었고 저 내부 긴장 상태들을 고조시켰던 압도적인 외부세력들에 의하여 위협을 받았고 ㅡ 심지어 공격을 받았고 ㅡ 각각의 국가에는 해결할 자체의 그리고 심지어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도 이해하지 못한 큰 문제들이 있었다. 각각의 국가는 ‘스스로 분쟁했’고 (마가복음 3장 25절c) 각각의 국가는 외부의 엄청난 세력들에 의하여 위협을 받는 집이었다. 그러나 이 집들인 이 자유로운 사회들은 설 수 있었고 정말로 섰다; 그 집들은 열린사회들이었다.
쇠사슬에 의하여 폐쇄되어 단단히 묶여 통일된 집 ㅡ 이것이 붕괴하여 산산조각이 난 집이었다.
그리하여 열린사회들이 이겼고 소련 제국은 졌다. 다행히 우리나 소련인들이 총 한방 쏘지 않았는데 소련 제국은 ㅡ 적어도 지금까지d ㅡ 졌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최근 적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우리에게 초래된 경제 위기의 한 가운데 우리 자신이 놓여있을지라도, 마르크스주의가 그 적들에게 초래한 불행인 그 적들의 불행에서 우리에 의하여 지금 도움을 받고 있는 그 적들 가운데는 내부적 혈투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있다).
1989년 이래 우리가 목격한 그리고 결코 끝나지 않은 이 크고도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나의 이론인 마르크스주의의 죽음을 불러온 질병에 대한 나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로 인하여 죽었다.
혹은 더 명시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 권력은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의 황폐함으로 인하여 죽었다.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인 마르크스주의적 이념은 아마도 아주 영특했지만 그 이론은 역사 및 사회적 삶의 사실들과 반대였다: 그 이론은 완
a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Ladies and gentlemen, please consider the immense strains that the democracies were capable of enduring.인데 허형은 번역은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민주주의의 힘을 이해하기를 바란다.’이다.
b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I would say that they were the greatest ever endured by any political power group.인데 허형은 번역은 ‘나는 민주주의가 아무리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권력집단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고 단언한다.’이다.
c 역주: 마가복음 3장 25절의 내용은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이다.
d 역주: 이 표현의 원어는 at least so far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전히 허위 이론이었고 완전히 과시적인 이론이었다. 그리고 그 이론이 지닌 많
은 허위성인 많은 이론적 실패는,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거짓말들과 큰 거짓말
들로 은폐되었다. 거짓말은 잔혹한 권위와 폭력의 지원을 받아 곧 러시아 내부에서는 공산주의 독재계급의 표준적인 지식적 흐름이 되었고 러시아 외부에서는 희망찬 독재자들이 갈망하는 계급의 표준적인 지식적 흐름이 되었다.a 거짓말의 세계는 축소되어 지식의 블랙홀이 되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블랙홀에는 모든 것을 먹어치워서 파괴하여 없애버리는 무한한 힘이 있다. 거짓말과 진실 말하기의 구분이 사라졌다.b 지식적 공허함이 결국 자체를 먹어치웠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로 인하여 죽었다 ㅡ 사실상 그 죽음은 오래전에 일어났다. 그러나 동서양에 있는 수백만 명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실제 세상에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라도, 과거에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르크스주의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나는 우려한다: 사실들은 무시될 수 있거나 변명으로 처리될 수 있다.
여기서 나의 강좌의 소개 부분이 ㅡ 넓고 매우 개괄적인 역사적 탐사 ㅡ 끝난다. 나의 나머지 강좌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은 마르크스주의를 개괄하여 비판한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우리의 민주주의들에 대한 정치개혁을 통하여 우리 삶의 향상을 위하여 새로운 상황이 혹시 어떻게 이용될지를 밝히려고 시도한 것이다: 우리의 제도들에 관해서라기보다는 우리의 전망에 관한 개혁.
그러나 모두 부분이 아마도 다소 너무 추상적이었기c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내가 심지어 간략하게 설명하고 비판하기 전에 여러분이 혹시 싫증을 느낀 동일한 추상적인 방식으로 전적으로 계속하기보다는 나는 여기서 자서전적인 것을 넣어야겠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의 초년 연혁을 조금 보고함에 의하여 나의 강좌를 더 생동감 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내가 어떻게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했는지 ㅡ 아니면 전향에 매우 가까웠는지; 1919년 7월 28일 나의 17번째 생일 바로 전에 내가 일생동안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하게 된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나의 양친은 심지어 1차 세계 대전 이전에도 강력한 평화주의자였고 나의 부친은, 이마누엘 칸트,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및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영향을 받은 매우 학구적인 변호사로 자유주의
a 역주: 이 문장에서 ‘표준적인 지식적 흐름’의 원어 표현은 the standard intellectual currency인데 허형은 번역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이다.
b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The difference between lying and speaking the truth disappeared.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c 역주: ‘너무 추상적’의 원어 표현은 too abstract인데 허형은 번역은 ‘너무 이론적’이다.
자였다. 전쟁 동안에 내가 정치적 자유라는 난제에 관한 흥미로운 관념이 떠올랐을 때 나는 14살내지 15살이었다. 비엔나의 구텐베르크 동상 뒤에서 걸으면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소망하면서 생각하는데, 민주주의는 결코 실제로 안정화될 수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나에게 떠올랐다. 이유인즉 자유가 안정될 바로 그때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당연시하면 자유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 상실이 의미할 것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를 더 이상 간직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 테러리즘이나 혹시 전쟁이라는 자유 상실이 의미하는 것.
이 불꽃같은 통찰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이 평화의 정당이라고 주장했을 때인 1918년 3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t-Litovsk) 조약 때 나는 공산주의에 매료되었다.a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그 시절에는 평화 이야기가 많았지만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기꺼이 자유를 위하여 정치적 희생을 하려하지 않았다: 이것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서 트로츠키(Trotsky)가 한 주장이었고 나머지 세상에 대한 그의 전갈이었다. 나는 볼셰비키들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그 전갈을 수용했다. 그들의 광신주의와 거짓말 습관에 관하여 나는 러시아 친구로부터 많은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새로운 평화주의 선언에 나는 매료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붕괴 이후, 나는 다양한 이유들로 학교를 떠나 대학입학 시험에 대비하여 독학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오래지 않아서 시험적인 정신으로 공산당이 어떤지를 시험하기로 나는 결심했다. 내가 공산당 본부를 찾아가서 나 자신을 자발적인 심부름꾼으로 제안한 것은 틀림없이 1919년 4월경이었다. 당시 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관하여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당원이 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당 고위층이 두 팔을 벌려 나를 환영했는데 그들은 모든 종류의 일에 나를 이용했다. 기묘하게도 나는 그들의 비밀 등급이 낮은 회의들에 자주 참석해서 그들의 사고방식에 관하여 엄청나게 많이 배웠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념적 쥐덫에 (내가 훨씬 뒤에 그것에 이름을 붙인 바와 같이b) 빠지는 것을 가까스로 피했다. 나의 도덕적 의무로 내가 느낀 것에 의하여 나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나를 사로잡은 것이었다.
이제 나는 이념과 그 함정을 기술하겠고 그다음에 나의 다음 요점으로서
a 역주: 이 문장에서 ‘이 불꽃같은 통찰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와 ‘1918년 3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t-Litovsk) 조약’의 원어 표현은 각각 In spite of experiencing this flash of insight와 the treaty of Brest-Litovsk in March 1918인데 허형은 번역에 앞부분은 누락되었고 뒷부분은 ‘평화조약’이다.
b 역주: 이 표현의 원어는 as I called it much later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지독한 경험의 도덕적 충격을 통하여 그리고 커다란 도덕적 혐오감을 통하여a 그 이념으로부터 내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기술하겠다.
마르크스주의 이론 혹은 마르크스주의 이념에는 몇 가지 측면들이 있지만 단연코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 이론이 역사적 이론이라는 것으로 (넓은 개괄을 통해서만) 절대적인 과학적 확실성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상되건대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 특히, 뉴튼의 천문학이 태양과 달의 일월식을 예측할 수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자체가 사회혁명을 예측할 수 있다고 그 이론은 주장한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을 근거시킨 근본적인 관념은 다음과 같다: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마르크스는 1847년 자신의 저서 철학의 빈곤(The Poverty of Philosophy)의 말미에서 계급투쟁은, 계급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세울 사회혁명을 틀림없이 초래한다고 먼저 선언했다. 그의 주장은 매우 간략했다. 노동자계급이 (즉 ‘무산자[proletariat]’) 남겨진 유일한 압박을 받는 계급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그 계급이 거대한 다수가 속하는 계급일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생산하는 계급이기 때문에 그 계급은 틀림없이 필연적으로 승리한다. 그러나 그 계급의 혁명적 승리는 틀림없이 다른 모든 계급들의 제거로 이어져서 그리하여 하나의 계급만 남는 사회가 된다. 그러나 단일-계급 사회는 계급이 없는 사회이다 ㅡ 지배계급도 없고 억압받는 계급도 없는 사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년 후에 그들의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에서 선언한 바와 같이, 그리하여 그것은 공산주의 사회이다.
모든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이기 때문에, 계급 없는 사회는 역사의 종말일 것이다. 전쟁도 더 이상 없고, 투쟁도 없고, 폭력도 없고, 억압도 없을 것이다; 국가권력은 사라질 것이다. 또는 종교적 언어사용법으로 지구상에 천국이 도래할 것이다.
대조적으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로 지칭한 현존하는 사회는 그의 눈에 자본가들이 완전히 지배하는 사회였다 ㅡ 사실상, 계급 독재. 마르크스는 자신의 거작 자본론(Capital)에서 ㅡ 1,748쪽에 달하는 3권 ㅡ 노동자들의 숫자는 증가할 것인 반면 자본가들의 숫자는 자본집중의 법칙(law of the concentration of capital) 때문에 틀림없이 점점 줄어든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본가들이 점점 부유하게 될 것인 반면, 유사한 법칙인 참혹함 증가의 법칙(law of increasing misery)에 의하여 노동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질 것이다.
a 역주: ‘그리고 커다란 도덕적 혐오감을 통하여’의 원어 표현은 and through a great moral revulsion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참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참혹함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혁명적 계급 이익들을 의식하여 급격한 혁명가들이 될 것이다. 모든 국가의 노동자들은 연합하여 사회혁명을 수행할 것이다.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은 파괴될 ㅡ 박멸될 ㅡ 것이다; 그리고 지구상에 평화가 올 것이다.
오늘날, 마르크스에 의하여 예언된 역사는 더 이상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서양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더 이상 이 견해들을 지니지 않는다 ㅡ 우리가 짐승 같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자본주의적’ 사회에 산다는 이론을 그들이 여전히 전파할지라도.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1차 세계대전의 굶주린 기간에 그다음 훨씬 더 굶주리는 기간에 여전히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는 매우 많은 시간이 지나서 탁월한 물리학자들과 생물학자들에a 의하여 여전히 수용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포함하여 이론들이란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마르크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틀림없이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했고 심지어 칭송했다. J.B.S. 홀데인(Haldane)과 J.D. 버널(Bernal)을 포함하여 몇몇 지도적인 영국 과학자들이 공산당원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역사관련 과학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주장에 매료당했다.b 버널은 스탈린 사망쯤에 스탈린은 생존하는 최고의 과학자이고 역대 최고의 과학자들 중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여러분에게 과학적 위상이라는 이 주장의 심각함을 밝히기 위하여: 지금은 사망했지만 스탈린에 대한 열정으로 1931년 그가 러시아에 가기 전에 내가 잘 알던 비엔나의 물리학자 알렉잔더 바이스베르크(Alexander Weissberg)가 저술한 책이 있다. 1936년c 러시아에서 그는 대숙청 동안에 투옥되었고 여러 번 고문을 당하고 1939년 히틀러-스탈린 조약 때까지 지독한 상황에 놓였는데d 당시 스탈린은 그와 독일 및 오스트리아출신 많은 다른 공산주의자들을 히틀러에게 팔아넘겼다 ㅡ 틀림없이 역사상 가장 추잡한 판매. 그는 다른 사람들 모두와 히틀러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도주했다가 여러 번 다시 잡혔고 마침내 그는 1945년 소련군에 의하여 풀려났다. 그러나 매우 흥미로운 그의 저서에서 그는 스탈린의 감옥들에서의 자신의 경험들을 보고하는데, 우리는 말미에서 그가 여전히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을 신뢰한다는 암시를 우리는 받는다.
a 역주: ‘생물학자들’의 원어 표현은 biologists인데 허형은 번역은 ‘생화학자들’이다.
b 역주: 이 문장의 원어는 They were actually attracted by the claim of Marxist theory to have the status of a historical science.인데 허형은 번역은 ‘실제로 그들은 마르크시즘이 과학의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까지 했다.’이다.
c 역주: 허형은 번역은 ‘1931년’이다.
d 역주: ‘지독한 상황에 놓였는데’의 원어 표현은 kept in terrible conditions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1946년 나는 런던에서 그를 만났고 그가 그의 경험들에 관하여 나에게 처음
말했을 때 그가 치유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그의 저서가 1951년 독일에서 나오고 내가 몇 년 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이 몇 가지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인정했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그 역사이론을 신뢰했다. 물론 나는 그의 신뢰를 바꾸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스탈린의 감옥들도 실패했는데 내가 성공했는지 나는 의심스럽다.
나는 세 명의 마르크스주의 신봉자들이자 훌륭한 과학자들을 추가로 언급하고 싶다. 첫째, 두 명의 유명한 물리학자들인 졸리오-퀴리(Joliot-Curie) 부부; 라듐 발견인 마담 퀴리의 딸 이레느(Irene)와 이레느의 남편 프레데릭(Frédéric). 1935년 그들은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두 사람은 레지스탕스 운동과 프랑스 원자력위원회의 회원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 공산당의 활동적인 당원이었다.
그다음에 러시아의 핵폭탄의 아버지인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가 있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반체제 인사인 사하로프를 크게 존경한다: 그의 탄생 60주년에 나는 뉴욕에서 그를 지지하는 공개 연설을 해서 소련 정부에 그를 석방하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의 회고록(Memoir)으로부터 그가 40세의 나이에 얼마나 공산주의 공식 노선을 신뢰했는지를 알고서 나는 놀랐다. 스탈린이 죽었을 때, 그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와 같이 그는 위대한 인도주의자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고 적어도 그가 40세이던 1961년까지 그는 필연적인 혁명 이론과 저 위대한 인도주의자에 의하여 저질러진 그 혁명의 잔인성들을 신뢰했다. 생애의 말엽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a
이제 ‘마르크주의의 함정’에 의하여 나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련 예언을 초래하는 소위 과학적 이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이 예언을 믿는 사람이 자신이 공산당에게 묶인 것을 알게 될 도덕적 족쇄를 나는 의미한다. 예언에 대한 믿음과 함께 함정인 도덕적 족쇄에 대하여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처음부터 혁명으로부터 생기는 천국에 관하여 다소 회의적이었다. 나는 틀림없이 오스트리아에 현존하는 사회를 혐오했는데 그 사회에는 굶주림과 가난과 실업 및 통제가 불가능한 인플레가 ㅡ 그리고 그 인플레로부터 이익을 취하던 화폐 투기꾼들 ㅡ 있었다. 내가 보기에 공산당 추종자들에게 “계급의
a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Later in his life he changed his mind radically.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적”에 대한 살인적 본능을 부추기려는 공산당의 명백한 의도를 나는 우려했다a. 이것은 필연적이라는b 그리고 여하한 경우에도 전혀 그런 심각한 의도가 없다는 말을 나는 들었다; 그리고 전체 혁명 동안에 살해당할 노동자들보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매일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살해당했기 때문에 혁명에서는 승리만 중요하다는 말을 나는 들었다. 나는 저것을 마지못해서 수용했지만 도덕적 품위와 관련하여 나는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다음에 지도자들이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분명히 그들은 하루는 한 가지를 말하고 그 다음날에는 전혀 반대로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다시 전혀 다르게 말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하루는 적색테러(Red Terror)를 부인하고 다음날에는 그 테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실수들은 아마도 발생할 것이지만 그 실수들은 질문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당의 노선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직 당의 규율만 승리를 촉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이것을 마지못해서 수용하는 반면, 당을 위하여 나의 개인적인 정직성과 같은 것을 내가 희생해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나는 가졌다.
그러나 그때 재앙이 왔다. 1919년 6월 어느 날 당이 후원하는 비무장 젊은 동무들의 시위에 경찰이 발포했고 몇 명이 (나의 기억이 옳다면 8명) 사망했다. 나는 경찰의 행동에 격분했지만 또한 나 자신에게도 분노했다. 이유인즉 내가 참가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나는 당의 후원을 승인했고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합류하도록 부추겼다. 아마도 그들 중 몇 명은 죽은 자들에게 포함되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 나는 그들에게 책임을 느꼈다. 나에게는 나의 이상들을 위하여 나 자신의 생명을 걸 권리가 있을지라도, 나에게는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이상을 위하여 목숨을 걸라고 부추길 권리가 없다고 ㅡ 그리고 심지어 그 진실성에 대하여 아마도 어떤 의심이 들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이론을 위해서는 더욱 권리가 없다고 ㅡ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진지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했던지 나는 자문했다. 그리고 그 답변이 ‘아니다’였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내가 인정해야 했을 때 나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러나 내가 공산당 본부로 돌아왔을 때 나는 매우 다른 견해를 발견했다: 혁명 때문에 그런 희생자들이 필요했다; 그 희생자들은 불가피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보를c 의미했는데 이유인즉 그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경찰에 대하여 분
a 역주: ‘나는 우려했다’의 원어 표현은 I felt worried (about)인데 허형은 번역은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이다.
b 역주: ‘필연적’의 원어는 necessary인데 허형은 번역은 ‘필요악’이다.
c 역주: ‘진보’의 원어는 progress인데 허형은 번역은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이다.
노하고 계급의 적을 의식하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때 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다양한 이유들 때문에 ㅡ 주로 내가 파시즘을 부추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ㅡ 겨우 26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결과들을 나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 발표했다. 그동안, 나는 몇 가지 다른 결과들을 발표했다: 이론이 과학의 ㅡ 예를 들어 뉴튼의 천문학과 같은 과학 ㅡ 위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척도를 나는 개발했다.
이 강좌에서 나는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이 틀린 많은 요점들을 토론할 수 없다. 열린사회에 관한 나의 저서에서 나는 마르크스주의적 예언에 대하여 상세하게 분석하여 비판했다. 여기서 나는 매우 분명한 것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마르크스가 의미한 바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마르크스가 알았던 사회는 크고 정말로 훌륭한 혁명들을 겪었다. 수백만의 남녀가 해야 했던 한때 참을 수 없이 무겁고 탈진시키는 육체노동은 우리 서구 사회들로부터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목격했다; 자신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차이점을 알 수 없다 ㅡ 정말로 혁명인데 그 혁명은 많이 중상모략을 당한 과학기술의 덕분이다.
전체적으로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의 반대현상이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덜 비참해졌고 많은 노동자들은 서양 민주주의 체제들 안에서 행복하다. 물론 좌파의 정치선전이 ㅡ 적화선전 및 녹색선전 모두 ㅡ 우리 세계의 야수성과 우리의 불행에 대한 믿음을 아직도 퍼뜨린다. 아주 불행하게도 이런 방식으로 그 정치선전은 불행 자체를 퍼뜨리기도 하는데 이유인즉 행복은 부분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가로서 말하여, 우리의 열린사회가 바로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최고로 훌륭한 사회이자 최고로 정의로운 사회라고 나는 주장한다.
분명히 마르크스가 예전에 ‘자본주의’로 지칭한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사회를 저 명칭으로 불러서 우리 자신을 우리가 계속해서 오도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여 사용된 역사적 의미에서의 ‘자본주의’는 이 지구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참혹함 증가의 법칙’이나 자본가들의 숨은 독재와 같은 내장된 경향을 지닌 사회가 존재한 적이 없다. 이 모든 것은 순전히 망상이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산업화의 초기는 지독히 어려웠다. 그러나 산업화는 생산성 증가를 의미하기도 했고 산업화는 곧 대량생산을 의미했다. 분명히, 대량생산의 일부는 조만간 대중들에게 돌아갔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그림은 자체의 예언과 함께 허위만은 아니다; 그 그림은 불가능하다. 여러분은 작고 줄어드는 부유한 자본가들을 숫자를 위하여 대량생산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정말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는 불가능한 정신적 구축물로 망상이다.
그러나 망상이었던 것을 파괴하기 위하여 소련은, 대량 핵무기들을 포함하여 역대 최대의 무기고를 만들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들의 단위들로 환산하여 그 폭탄들은 수천만 배에 달한다; 혹시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모든 폭탄들이 소위 지옥의 야수성 때문에 지옥이라는 망상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현실은 틀림없이 천국이 아니었다 ㅡ 그러나 공산주의적 현실이 천국에 가까웠던 것보다 우리의 현실은 훨씬 더 천국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동일한 결론에 ㅡ 다른 측면에서, 마르크스적 이념에 대한 논리적 분석 및 비판에서 ㅡ 두 번째로 다다른다.
그런 이념들이 우리를 사로잡도록 우리가 다시 허용해서는 안 된다.
이제 나는 나의 강좌의 마지막 부분으로 선회한다. 미래와 관련하여 우리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정치가들에게 무엇을 권유할 수 있는가?
먼저 우리는, 현명한 사람이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지를 예언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과 단절해야 한다. 참된 예언들을 내놓는 것이 지혜의 특징이라고 거의 모든 사람이 믿는 듯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미래에 대한 합리적 프로그램은 참된 예언에 근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인간의 역사를 우리 눈앞에서 흘러가는 강력한 강으로서 본다. 우리는 그 역사를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것으로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의견에 충분한 지식이 있다면, 우리는 적어도 그 역사의 미래 과정의 일반적인 방향을a 틀림없이 예언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표면적으로 괜찮은 말로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 틀렸다 ㅡ 심지어 도덕적으로도 틀렸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나는 다음 것을 제안한다.
역사는 오늘 멈춘다. 우리는 그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미래는 결코 과거의 연장이 아니다; 또한 미래는 추정이 아니다.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커다란 책임은 정확하게, 우리가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
a 역주: ‘일반적인 방향’의 원어 표현은 general direction인데 허형은 번역은 ‘어떤 방향’이다.
다는 사실인 우리가 미래를 낫게 만들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놓여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과거로부터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배웠어야 하는 한 가지 중요하는 것은 겸손하기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라고 제안하는가?
그 과정에서 인류가 붕괴되었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자본주의가 지옥이라는 믿음은 인류를 위하여 파괴되어야 했는데 그 믿음으로부터 주로 생긴 좌-우 양극화에 의하여 과거가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인류는 붕괴될 뻔했다; 그러나 이제 이 광적인 망상에는 더 이상 영향력이 없기를 (그 망상이 완전히 소멸하는 데는 긴 시간을 걸릴 것이라고 내가 염려할지라도) 우리는 희망할 수 있다.a
우리의 외교관계들에서 외부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비무장을 위하여 우리가 크게 노력해야 한다고 나는 제안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좌-우 양극화 없이 정치를 이행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이룩하기 어렵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나 좌파 정당들과 우파 정당들이 항상 있지 않았던가?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닌 이전에는, 이 ‘과학적’ 확실성에 의하여 지탱되는 양극화인 이 증오와 광신주의는 없었다. 윈스턴 처칠은 의회의 한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옮길 수 있었다b. 그로 인하여 추문과 분노, 심지어 약간의 지속적인 개인적 씁쓸함인 아마도 배신감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현재 좌-우 양극화의 수준과는 ㅡ 선량한 공산주의자들이 당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을 그리고 우연히 소련에 있다면 투옥되거나 숙청될 위험에 처해 항상 살았을지라도 ㅡ 또 다른 수준에 있다. 차이점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기술될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스파이 짓과, 최악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스파이 짓은 여전히 말할 수 없이 무섭고 상상 불가능한 활동이다. 그러나 적어도 스탈린 시대에 많은 선량한 공산주의자들이 기소당한 것은 ㅡ 다시 말해서 여하한 종류의 공식적 기소가 이루어졌다면 ㅡ 이것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좌-우 양극화가 자체의 극단적인 형태들로 초래한 분위기의 종류가 밝혀진다. 열린사회에서는 이것을 제거하는 일이 틀림없이 가능하다.
a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but now we can hope that this insane delusion will be no longer influential (though I fear it will take a long time to wither away completely).인데 허형은 번역은 ‘앞으로 우리는 다시 그런 망상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안타깝게도 그 마수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이다.
b 역주: ‘한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옮길 수 있었다’의 원어 표현은 could move (in Parliament) from one side to the other인데 허형은 번역은 ‘갈팡질팡 했고’이다.
좌-우 양극화 대신에 우리는 무엇을 세워야 할까? 혹은 아마도 더 낫게,
좌-우 양극화에 대항하여 그 양극화를 대체하려는 희망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우리는 결정할 수 있는가?
정당들 중 한 정당이 ㅡ 주요 정당들 중 한 정당이기를 나는 희망한다 ㅡ 다음과 같이 선언할 것을 나는 제안한다.
이제 우리는 이념 전쟁 기계들을 허물 수 있고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은 다소 공동의 인도주의적 프로그램을 채택할 수 있다. (우리의 프로그램이 틀림없이 만장일치의 동의를 이룰지라도, 적어도 두 개의 정당들이 틀림없이 있어서 야당이 여당의 솔직성과 행정적 재능을 통제할 수 있음을 주시하라.) 우리의 잠정적인 프로그램은 이것이고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열성적으로 토론하여 개선한다.
1. 책임에 의하여 통제를 받아 자유를 강화하기.a 우리는 최대한의 개인적 자유와 같은 것을 성취하기를 희망하지만 이것은 문명화된 사회에서만 ㅡ 다시 말해서, 비폭력의 삶에 헌신하는 사회 ㅡ 가능하다. 정말로, 이것은 문명화된 사회를 구분하는 특징이다: 그 사회가 자체의 문제들에 대하여 평화롭고 비폭력적인 해결책들을 부단히 추구한다는 것.
2. 세계평화. 원자폭탄과 핵탄두들이 발명된 것을 고려하여, 모든 문명화된 사회들은 평화를 유지하고 원자폭탄 및 수소폭탄의 확산을 긴밀하게 감시하는 데 협력해야 한다. 이것은 정말로 우리의 첫 번째 의무인데 이유인즉 그렇지 않으면 문명이 그리고 바로 그다음에 인류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진리는, 서양의 이념적 제국주의로서 ㅡ 매우 교묘하지만 전혀 무관한 비난 ㅡ 기술될 것이다.)
3. 빈곤과의 싸움. 과학기술 덕분에, 세계는 빈곤을 없애고 또한 실업을 허용할만한 최소한으로 줄이기에 적어도 잠재적으로 충분히 부유하다. 경제전문가들은 이것이 매우 어렵다고 ㅡ 의심의 여지없이 그러한 바와 같이b ㅡ 안다; 그래서 그들은 다소 갑자기 (1965년경) 그것을 자신들의 주요 목표로 삼는 것을 중단했는데 과거에도 그랬다c. 그것은 별안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문제로 보이고, 자유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매우 어려울지라도 많은 경제전
a 역주: 이 표현의 원어는 Strengthening Freedom, Controlled by Responsibility.인데 허형은 번역은 ‘자유 강화, 책임의식으로 자유 통제’이다.
b 역주: 이 부분의 원문 표현은 as no doubt it is인데 허형은 번역에서 누락되었다.
c 역주: ‘과거에도 그랬다’의 원어 표현은 as it was before인데 허형은 번역에서 누락되었다.
문가들은 마치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증거라도 있는 양 행동한다. 그러
나 아마도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는 부단히 자유 시장에 개입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시급하고, 그 해결책이 사람들의 관심에 멀어진 것은 추악하다. 경제전문가들이 나은 방법들을 내놓을 수 없다면, 우리는 단지 필수적인 공공사업들로 특히 도로건설과 학교건설 및 교사양성등과 같은 민영화된 공공사업들을 이용하여 반(反)-주기적 정책을 목표로a 실업이 증가할 때 그런 공공사업들을 강화해야 한다.
4. 인구폭발과 싸우라. 피임약의 발명으로 게다가 다른 산아제한의 방법들로 생화학적 과학기술은b, 인구 억제에 관한 교육이 전 세계에 걸쳐 가능해진 상태를 이루었다. 이것이 서양의 제국주의적 정책일 터이라는 교설에, 열린사회들이 자신들의 (이미 감소하고 있는) 인구들을 더욱 감소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반론이 될 수 있다.
이 요점은 가장 시급하고, 인도주의적 프로그램을 지닌 모든 정당들의 정치적 사안들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해야 한다. 이유인즉 소위 우리의 환경 문제들 모두는 본질적으로, 1분만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확신하기에 틀림없이 충분한 바와 같이, 인구폭발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1인당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고 있어서 감소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러하다면 인구폭발의 원인들을 공격하는 것이 여전히 훨씬 더 시급한데 인구폭발의 원인들은 빈곤 및 문맹과 관련이 있는 듯이 보인다. 게다가 인간적인 이유들로 인하여 원하는 아이들만 태어나는 목표를 향하여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은 것은 잔인한 짓이고 이것은 너무 자주 정신적 및 육체적으로 폭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5. 비폭력을 향한 교육. 폭력이 최근 증가했다는 것은 내가 고려한 의견이다 (물론 내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것은, 조사될 수 있는 가설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을 폭력 관용으로 교육시키고 있는지 또한 조사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러고 있다면 조치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유인즉 폭력을 수용하는 태도로 인하여 우리의 문명이 분명히 위협을 받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그들에게 필요할 돌봄을 준비하여, 그 아
a 역주: ‘반(反)-주기적 정책을 목표로’의 원어 표현은 for the purpose of a counter-cyclical policy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b 역주: ‘생화학적 과학기술’의 원어 표현은 biochemical technology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이들을 합당하게 보살피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요점인데 이유인즉 우리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거의 완전이 우리의 손안에 있어서 그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구폭발과 같은 이전 요점들 중 몇 가지 요점들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데 비폭력의 미덕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모든 악행들 중에서 가장 큰 악행인 모든 사악함 중에서 가장 큰 사악함은 잔인성이라고 가르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는 ‘불필요한 잔인성’이라고 말하지 않는데 이유인즉 잔인성은 결코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코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신적 잔인성을 포함하는데 그 잔인성을 우리는 자주 우리의 무분별로부터, 다시 말해서, 어리석음이나 태만이나 이기심으로부터 저지른다.
내가 우려하는 바,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행동하려는 유행성 자유 (그 자유가 유행성이 아닌 도덕들에 따라서 사악할지라도) 때문에 그리고 내가 인정하는 바, 도덕성과 관련된 위선이 그렇게 많기 때문에 이 교육적 문제들을 말하는 것이 널리 퍼지지 않게 되었다. 이것에 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칸트는 우리에게 ‘용감하게a 현명해지라!’고 말했다. 나는 아마도 여러분에게 더 겸손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용감하게a 시류들을 무시하라 그리고 매일 조금 더 책임을 지라. 이것이 아마도 여러분이 자유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이다.
a 역주: ‘용감하게’의 원어 표현은 Dare to인데 허형은 번역에 누락되었다.
ㅡ 칼 포퍼, '모든 생명체는 문제해결 중이다', II부 12장, 126~138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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