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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패 자초하는 與, 천운 걷어차는 野/동아일보

이윤진이카루스 2021. 4. 16. 08:58

 

뉴스오피니언칼럼

[이기홍 칼럼]필패 자초하는 與, 천운 걷어차는 野

이기홍 대기자 입력 2021-04-16 03:00수정 2021-04-16 08:31

 

與, 보선 참패하고도 강경파에 휘둘려 직진

野에 로또 같은 기회 왔지만 벌써 중진 당권 다툼, 정강이 폭행 추태

與가 아무리 자멸의 길 걸어도

野 구태·올드보이들 재등장하면 정권교체 물건너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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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대기자

10개월 21일 남은 내년 대선에서 이기려면 어떤 코스를 택해야 할까. 답은 명료하다. 여당은 지난 1년간의 궤도대로 직진하면 망하고, 야당은 1년 전으로 유턴하면 망한다.

 

그런데 집권세력은 직진 태세다. 초선들의 반성 움직임은 친문강경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통령부터 변할 기미가 없다. 정무수석에 다소 온건파를 앉힌다 해서 바뀌는 게 아님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을 강조하지만 청년들을 좌절시키고 등을 돌리게 만든 원인은 외면한다.

 

조국류의 위선·특권의 집합체인 인사들을 비호한 것이 청년들이 중시하는 공정의 가치를 짓밟았음을, 귀족노조 편들기와 기업 옥죄기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막았음을, 집값을 폭등시켜 청년을 ‘벼락거지’ 신세로 만든 장본인이 이념에 매몰돼 규제 일변도 정책을 고집한 자신들임을 외면한다. 왜 낙제했는지에 눈감으니 진단도 처방도 없다.

 

대선으로 가는 길 곳곳에 묻힌 급락의 지뢰밭에 더 취약한 쪽은 국민의힘이다.

 

조금이라도 과거로 유턴하면 몰락이 명약관화한데도 ‘찍기 창피한 정당’ 시절로의 회귀 조짐이 보인다. 다른 학생이 답안을 밀려 쓴 덕에 석차가 올라간 건데 반장 감투만 눈에 들어온다. 입만 열면 “우리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다”라고 하는데, 설령 진심이라고 해도 그 말 자체가 부정확한 표현이다. “우리가 망쳤는데도 운이 좋아 이겼다”가 정확하다.

 

사무처 직원의 정강이를 걷어찬 송언석 사건이 하루 전에만 터졌다면 수십만 표가 빠졌을 것이다.

 

지인, 동창들에게 물어봤다. 수십 년 직장 생활 동안 부하 직원의 정강이를 차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다들 고개를 흔들었다. 수십 년 전 언론사에도 도제식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욕설이나 뺨 때리기 같은 작태가 있었지만, 그 시절에도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천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했다.

 

구시대 조직문화 속에서도 가장 저급한 방식으로 입신양명한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이 드러났는데, 더 한심스러운 건 당 지도부의 대응이다.

 

당연히 사건 발생 직후 제명론이 나왔어야 하는데, 원내대표는 닷새나 지나서야 하나 마나 한 코멘트를 내놓았다. 이런 감과 판단력으로 어떻게 당 이미지 환골탈태라는 고난도의 작업을 지휘하겠는가.

 

오세훈 진영의 내곡동 문제 대처도 구시대적이었다.

 

억지스러운 네거티브 공세에 불과했을 이 문제는 오 후보의 ‘투명하지 않은 대응’으로 인해 정치인의 정직성이라는 중요한 문제로 바뀌었다. “존재도 몰랐다” 식의 무조건 부인하기, “기억 앞에 겸손” 식의 모호한 화법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낡은 발상이었다.

 

과거엔 그런 게 통했을지 몰라도, 요즘 젊은 유권자들은 다 기억하고 다음 선택에서 참작한다.

 

측량현장 논란은 끝까지 사실관계를 가려 만약 오 시장이 거짓말을 했다면 응분의 책임을 지고,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생태탕집 주인의 사과회견 수준까지 명확하게 결론 내야 한다. 차기 대선에서 누가 야권 후보로 나서든 집권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네거티브 폭로전을 전개할 것이다. 그중 하나라도 오세훈 식으로 대응하면, 순식간에 곤두박질칠 수 있는 ‘민감한’ 시대다.

 

야권 성향 국민들의 정권교체 열망은 식민치하 독립 열망을 연상케 할 만큼 간절하다.

 

그런데 이른바 민족 대표들은 그 열망을 담아낼 그릇을 빚기는커녕, 자기 숟가락 들이미는 데만 골몰한다. 나라(黨)를 말아먹던 구태를 못 버린 것이다.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해 보려고 욕심내는 올드보이들은 이해찬의 행보가 민주당의 확장성에 끼치는 부정적 효과에 자신을 대입시켜 봐야 한다.

 

만약 홍준표가 복당하고 황교안 김무성류의 인물들이 다시 뉴스를 타면, 애써 넓혀온 외연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번 보선에서 정말 놀라운 대목은 문재인 정권의 그 숱한 실정(失政)에도 박영선 후보가 39.1%나 득표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혼내주고 싶지만 국민의힘은 도저히 찍고 싶지 않은 ‘잠재적 진보 지지층’이 대거 투표를 포기했는데도 이 정도를 얻었다.

 

절벽 끝에서 정신이 버쩍 들면 집권세력은 ‘집 나간 토끼’들을 잡기 위해 도마뱀보다 기민하게 자기 꼬리를 자르고, 자벌레처럼 신중하게 효과를 계산하며 편 가르기를 할 것이다.

 

집권세력이 친문의 족쇄에 갇힌 지금이 야당에는 천운의 기회다. 오 시장부터 철저히 몸을 낮춰야 한다.

 

야당 내 논쟁과 이견은 당권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정책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의 펀더멘털이 완전히 바뀌는 구조 전환의 시기에 대한민국이 어떤 좌표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놓고 중진 초선을 아울러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면 아무도 집안싸움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이다.

 

야당의 거듭남은 줄탁동시(啐啄同時·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기 위해 부리로 알을 쪼면 어미닭이 동시에 밖에서 알을 쪼아 도와주는 것)의 과정이어야 한다. 당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야당으로의 변신을 돕는 게 중진들의 소명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