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인사·예산 등 전권 행사 "그 앞에선 입도 벙긋 못해요"
한국일보 | 입력 2011.10.04 02:37
[교사, 교사를 말하다] < 2 > 권위에 짓눌린 교단
교장 눈 밖에 나면 끝장
출산 막 끝낸 여교사를 말 안 듣는다고 고3 담임에
승진 앞둔 고참 교사들은 교장 눈에 들려 수업은 뒷전
횡포·비리 막을 장치 없다
학교운영위원회 있지만 교장 결정에 영향 못미쳐
교사 임용·교구 납품 등서 비리 공공연히 벌어져
올해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A고교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학년부장에 40,50대 선배 교사들을 제치고 30대 젊은 교사가 발탁된 것. 학년부장은 보통 15년차 이상의 교사가 맡는다. 공교롭게도 인사에서 '물 먹은' 교사 대부분은 진보성향 교원단체에 가입했거나 교장과 의견대립을 보여왔던 인물들이었다. 교사들 사이에선 부장 임명권을 가진 교장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을 배제시켰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교장 눈 밖에 나는 게 두려워 누구도 선뜻 문제삼지 못했다. 하지만 무리한 인사의 후폭풍은 컸다. 선배 교사들에게 일일이 지시하는 게 불편했던 신참 학년 부장은 모든 업무를 혼자 떠안은 채 끙끙댔고 학사 운영은 엉망이 됐다.
교장은 제왕… 눈 밖에 나면 끝장
대한민국 학교는 흡사 군대와 같다. 교장, 교감, 교무부장, 연구부장 등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식 구조는 교사들에게 오로지 상명하복만을 강요한다. 인천의 한 고교 교사는 "교사들은 인사권자인 교장의 말 한마디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다. 자유롭게 말 한마디 못하고 숨조차 맘대로 쉴 수 없는 폐쇄적인 불통 사회"라고 잘라 말했다.
전국의 초중고 교사들이 밝힌 교장의 횡포는 다양했다. 경기의 한 초등교사는 "업무처리 방식에 새로운 의견을 냈다가 다음해 비희망 학년에 배치됐고 전 교직원이 참여한 교무회의에서 심한 모욕을 들었다"고 억울해했다. 경기의 한 고교 교사는 출산 후 복귀하자마자 고3 담임을 맡았다. 출산 1년 미만의 교사는 과중한 업무에서 배려 받을 권리가 있지만 교장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승진 성과급 등 칼자루 들고 군림
하지만 교사들은 입 한번 뻥긋 못한다. 학교에서 교장의 권한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교장은 ▦보직교사 임명권 및 근무성적 평정, 인사고과 평가 ▦학생생활지도를 위한 교칙개정 ▦시설 개선 등 예산 집행 및 업체 선정 ▦기간제 교사 채용 및 면직 등 학교 운영의 전권을 갖는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의 최종 결정은 모두 교장의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승진, 성과급 등의 결정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교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2008년부터 승진을 앞둔 교사들에 대한 근무평정에서 동료교사의 다면평가(30%) 항목이 반영되긴 했지만 여전히 교장(40%) 교감(30%)의 입김이 세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경남 김해의 한 초등학교에선 교감승진을 앞둔 50대 여교사가 교장에게 근무평정을 잘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있었다. 경기의 고2 담임 교사는 "승진에 신경 써야 할 연차의 교사(15년차)들은 본격적으로 관리에 들어가 근무평정 점수 따기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수업은 안중에도 없다"고 고백했다. 서울의 중2 담임 교사도 "교장의 명령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심지어 명찰을 달고 근무하라는 지시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자조했다.
교장 눈치 보느라 아이들은 뒷전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들간 폭력문제가 발생해 학부모 상담을 하느라 교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는데도 다음날 사유서까지 제출했다. 이 교사는 "교감 선생님은 '지금 뭐가 중요한지 분간을 못한다'며 한바탕 호통을 치셨는데, 학교에서 아이들 말고 교무회의가 더 중요하다는 거냐"고 반문했다. 교사들은 수업 중간 공문을 빨리 마무리하라는 독촉 전화를 받는 일은 예사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부터 교원성과상여금 제도에 학교평가가 일부 반영되면서 실적을 높이기 위해 교장 교감은 교사들을 더욱 쥐어짜고 있다. 경기의 한 초등교사는 "(학교 평가에 반영되는) 전국 단위의 줄넘기 대회를 준비하라고 코앞에 예정된 현장학습도 가지 말라는 압력이 받았다. 아이들이 소풍을 못 가게 돼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견제장치 없어 비리 만연
하지만 교장의 권력을 견제할 장치는 전무하다.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 각 학교마다 학부모와 외부인사가 포함된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심의기구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경기 성남의 한 중학교 교감은 "인사자문위원회, 성과급평가위원회 등등 형식적인 위원회는 많지만 이와 상관없이 교장이 한번 결정하면 끝"이라고 단언했다.
교장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업무가 처리되다 보니 비리도 만연하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선 불성실한 강의로 해고될 위기에 처한 한 원어민교사가 교감의 민원으로 재임용됐다. 원어민교사 관리 업무를 맡은 이 학교 영어교사는 "교감이 점수?높여 평가표를 다시 작성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말했다. 수업 기자재 등 업체 선정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선 사물함 설치 공사를 하는데 공개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가 선정됐다. 이 학교 교사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 사장과 교장이 '절친'이라고 하더라. 사물함 문이 자꾸 떨어져서 교사들 사이에선 부실업체라는 불만이 나오지만 속으로만 삭힐 뿐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대한민국 학교는 입도 귀도 막고 사는 닫힌 사회"라며 "교사들조차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해본 경험이 없는데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하는 것은 모순 아니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교장 눈 밖에 나면 끝장
출산 막 끝낸 여교사를 말 안 듣는다고 고3 담임에
승진 앞둔 고참 교사들은 교장 눈에 들려 수업은 뒷전
횡포·비리 막을 장치 없다
학교운영위원회 있지만 교장 결정에 영향 못미쳐
교사 임용·교구 납품 등서 비리 공공연히 벌어져
↑ 교단의 비민주적 풍토가 공교육을 질식시키는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사진은 2009년 한국교육평가원에서 열린 교육과정 공청회에서 교사들이 다양한 요구들이 적힌 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교장은 제왕… 눈 밖에 나면 끝장
대한민국 학교는 흡사 군대와 같다. 교장, 교감, 교무부장, 연구부장 등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식 구조는 교사들에게 오로지 상명하복만을 강요한다. 인천의 한 고교 교사는 "교사들은 인사권자인 교장의 말 한마디에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다. 자유롭게 말 한마디 못하고 숨조차 맘대로 쉴 수 없는 폐쇄적인 불통 사회"라고 잘라 말했다.
전국의 초중고 교사들이 밝힌 교장의 횡포는 다양했다. 경기의 한 초등교사는 "업무처리 방식에 새로운 의견을 냈다가 다음해 비희망 학년에 배치됐고 전 교직원이 참여한 교무회의에서 심한 모욕을 들었다"고 억울해했다. 경기의 한 고교 교사는 출산 후 복귀하자마자 고3 담임을 맡았다. 출산 1년 미만의 교사는 과중한 업무에서 배려 받을 권리가 있지만 교장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승진 성과급 등 칼자루 들고 군림
하지만 교사들은 입 한번 뻥긋 못한다. 학교에서 교장의 권한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교장은 ▦보직교사 임명권 및 근무성적 평정, 인사고과 평가 ▦학생생활지도를 위한 교칙개정 ▦시설 개선 등 예산 집행 및 업체 선정 ▦기간제 교사 채용 및 면직 등 학교 운영의 전권을 갖는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의 최종 결정은 모두 교장의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특히 승진, 성과급 등의 결정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교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2008년부터 승진을 앞둔 교사들에 대한 근무평정에서 동료교사의 다면평가(30%) 항목이 반영되긴 했지만 여전히 교장(40%) 교감(30%)의 입김이 세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경남 김해의 한 초등학교에선 교감승진을 앞둔 50대 여교사가 교장에게 근무평정을 잘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있었다. 경기의 고2 담임 교사는 "승진에 신경 써야 할 연차의 교사(15년차)들은 본격적으로 관리에 들어가 근무평정 점수 따기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수업은 안중에도 없다"고 고백했다. 서울의 중2 담임 교사도 "교장의 명령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심지어 명찰을 달고 근무하라는 지시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자조했다.
교장 눈치 보느라 아이들은 뒷전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들간 폭력문제가 발생해 학부모 상담을 하느라 교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는데도 다음날 사유서까지 제출했다. 이 교사는 "교감 선생님은 '지금 뭐가 중요한지 분간을 못한다'며 한바탕 호통을 치셨는데, 학교에서 아이들 말고 교무회의가 더 중요하다는 거냐"고 반문했다. 교사들은 수업 중간 공문을 빨리 마무리하라는 독촉 전화를 받는 일은 예사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부터 교원성과상여금 제도에 학교평가가 일부 반영되면서 실적을 높이기 위해 교장 교감은 교사들을 더욱 쥐어짜고 있다. 경기의 한 초등교사는 "(학교 평가에 반영되는) 전국 단위의 줄넘기 대회를 준비하라고 코앞에 예정된 현장학습도 가지 말라는 압력이 받았다. 아이들이 소풍을 못 가게 돼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견제장치 없어 비리 만연
하지만 교장의 권력을 견제할 장치는 전무하다.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 각 학교마다 학부모와 외부인사가 포함된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돼 있지만 심의기구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경기 성남의 한 중학교 교감은 "인사자문위원회, 성과급평가위원회 등등 형식적인 위원회는 많지만 이와 상관없이 교장이 한번 결정하면 끝"이라고 단언했다.
교장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업무가 처리되다 보니 비리도 만연하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선 불성실한 강의로 해고될 위기에 처한 한 원어민교사가 교감의 민원으로 재임용됐다. 원어민교사 관리 업무를 맡은 이 학교 영어교사는 "교감이 점수?높여 평가표를 다시 작성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말했다. 수업 기자재 등 업체 선정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선 사물함 설치 공사를 하는데 공개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가 선정됐다. 이 학교 교사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회사 사장과 교장이 '절친'이라고 하더라. 사물함 문이 자꾸 떨어져서 교사들 사이에선 부실업체라는 불만이 나오지만 속으로만 삭힐 뿐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대한민국 학교는 입도 귀도 막고 사는 닫힌 사회"라며 "교사들조차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해본 경험이 없는데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하는 것은 모순 아니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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