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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공부하자… 아이들이 달라졌다

이윤진이카루스 2011. 10. 6. 08:10

교사가 공부하자… 아이들이 달라졌다

한국일보 | 입력 2011.10.06 02:35 | 누가 봤을까? 10대 여성, 제주




[교사, 교사를 말하다] 수업 개혁 나선 경기 장곡중
교사 전원 매주 모여 창의 수업 방법 토론
학급 정원 줄이고 기존 교과서 대신 새 참여형 교재 사용
학업성취 보통 이상 변화 1년 만에 9%p↑

툭 하면 무단 조퇴를 일삼던 A군(16)은 요즘 몰라보게 달라졌다. "학교가 싫다"며 뛰쳐나가던 버릇은 사라지고 수업시간 내내 꿋꿋이 자리를 지킨다. 엉뚱한 소리로 딴죽을 걸며 수업을 방해하기 바빴던 B양(15)도 이제는 잡담하는 친구들을 먼저 나서 훈계할 만큼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한때는 문제아였던 이 아이들이 모범생으로 바뀐 것은 수업이 재미있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수업 개혁에 나선 경기 시흥의 장곡중 교사들은 "교사들이 노력을 하지 않으니 공교육이 늘 그대로인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수업내용을, 학생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단언했다.

장곡중학교의 수업시간은 여느 학교처럼 필기와 강의로 이뤄지지 않는다. 영어시간에 교과서는 웬만하면 들추지 않는다. 대다수 아이들이 학원에서 한번씩은 다 훑어본 내용이라 관심을 자극할 수 없기 때문. 대신 교사들은 해당 단원의 키워드를 뽑아 완전히 새로운 교재를 만든다. 주제가 'Hero'이면 기부천사로 잘 알려진 가수 김장훈 관련 기사를 소개하고 우리 시대 영웅의 의미를 토론한다. 손가영 영어교사는 "모든 학생들이 난생 처음 보는 교재를 만들려고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4명이 1조가 돼 수업하는데 한 명이라도 '다 아는 내용'이라며 시큰둥하면 모르는 옆 친구들이 위축돼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시험문제에도 아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된다. 영어 단어 중 가산명사와 불가산명사를 구분하는 기준을 찾아보라는 과제를 던졌을 때 아이들이 내놓는 답은 다양하다. "형태가 일정치 않고 추상적인 단어는 불가산"이라며 학원식 정답을 외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뭉크러지기 쉽고,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단어가 불가산"이라고 독창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아이도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대답한 표현을 그대로 시험문제 보기에 넣는데, 그러면 또 다시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활발해진다.

이밖에 일부러 어려운 수준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도 학생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 중 하나다.

장곡중의 수업 개혁은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됐다. 교사 52명 전원이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창의 수업이 어떻게 가능할지 머리를 맞댔다. 학교는 행정 인력 3명을 배치해 교사들의 공문 업무를 줄였고 학급당 40명이 넘던 학생수도 30명까지 줄였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다. 가장 먼저 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는 김모(16)군은 "친구들과 조별로 토론하는 협동수업에선 모르는 게 있어도 부끄럽지 않다. 공부 잘하는 애도 틀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분위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성적도 결실을 내고 있다. 수업 개혁을 시행하기 전인 2009년과 후인 2010년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비교해 보면 보통 이상 학생 비율이 64.3%에서 73.3%로 9%포인트나 상승했다. 기초학력, 기초미달 학생은 각각 3.8%, 5.2%씩 줄었다.

미심쩍어하던 학부모들도 이제는 마음을 놓는 분위기다. 학부모 정재란씨는 "엄마들 사이에서 '협동수업 했다가 공부 잘하는 애들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 입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았지만 아이들이 좋아지는 걸 확인하니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외고 진학을 희망하는 정씨의 아이는 지난달 2년 넘게 다닌 종합반 학원을 아예 끊었다. 학교 공부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아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정씨는 "협동수업을 통해 잘 모르는 친구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아이의 배움이 더 탄탄해진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