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암환자 몇년 살 수 있는지 의사도 사실 잘 몰라

이윤진이카루스 2011. 10. 10. 08:25

 

의료ㆍ보건

[MD앤더슨 종신교수 김의신 박사의 癌이야기] 암환자 몇년 살 수 있는지 의사도 사실 잘 몰라

  • 김의신 박사·MD앤더슨 종신교수

 

입력 : 2011.10.10 02:58

[2] 10년 넘게 사는 말기암 환자들
의사들 "기적같은 일" - 암 걸린 뒤 태평양 보이는 곳서
쉬다가 죽겠다던 후배의사, 10년째 매년 안부인사 보내
약물로 암정복, 아직은 요원 - 폐암유발 유전자만 100개 넘어
암 발생·성장과정 너무 복잡… 사람마다 유전자 구조 달라 암환자 생존기간 확신 못해
카레 많이 먹어라 - 카레성분 큐커민 항암효과 여러 실험 통해 입증돼

암 환자를 보다 보면 의사인 우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나의 의과대학 후배 이야기다.

재미(在美) 이비인후과 의사인 그는 어느 날 코에서 피가 나왔다. 코피는 흔한 일이고 자신의 전공 분야이기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코를 둘러싼 얼굴 뼈에 생긴 암(癌)으로 밝혀졌다. 그의 나이 40대의 일이다.

처음 우리 병원에 와서 얼굴 뼈 상당 부분을 드러내는 수술을 받았다. 계속 재발해 15번 수술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도 이어졌다. 나중에는 암이 두개골 바닥과 안구(眼球)까지 퍼져 뇌 일부와 한쪽 눈도 절제했다. 그러니 상상을 해봐라. 암은 둘째치고 얼굴을 차마 쳐다보기 미안할 정도가 됐다. 암 치료는 이제 더 할 것이 없게 됐다.

세계적인 ‘암 전문의’ 김의신 박사(미국 MD 앤더슨 종신교수)가 최근 서울대병원 암병원에서 암진단 첨단장비인 PET-CT 모니터를 보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선배님, 내가 이제 죽게 됐는데,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 죽이면 큰 손해 아닌가요?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나야 전도가 잘 될 텐데…."

그는 이렇게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며 태평양이 보이는 곳에서 쉬다 죽겠다고 캘리포니아로 집을 옮겼다. 다들 앞으로 6개월을 못 넘길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매년 그에게서 연락이 온다. 죽을 줄 알고 기다리는데 안 죽더라는 것이다. 그러길 10년째이다.

난소암으로 16년째 사는 60대 초반 재미교포 여성도 있다. 발병 당시 그녀는 아직 아이들이 어렸기에 "5년만 살게 해달라"고 했다. 수술도 하고 항암치료도 받았다. 다행히 5년을 버텼다. 하지만 암은 이제 횡격막까지 올라와 숨쉬기도 힘들고 통증도 심했다. 치료를 포기하고 약도 끊었지만 난소암 지표인 'CA125' 수치가 정상보다 수십 배 높은 800을 넘었었는데 점점 떨어지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난소암을 앓았던 두 명의 재미교포 여성은 동일한 수술과 항암제를 썼는데도 모두 4년 안에 세상을 떠났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암 환자들은 의사들에게 "몇 년을 살 수 있느냐"고 자꾸 묻지만 사실 의사들은 그것을 알기 어렵다. 사람마다 유전자 구조가 다르고 항암제에 대한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 병원 의사들은 이 두 사례를 '기적'이라고 말한다. 암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남아 있는데 더는 진전이 안 되는 상황이니 말이다. 학술지에는 암이 저절로 나은 사례가 아주 드물게 보고되곤 한다. 논리를 따지는 사람에게는 정말 이해 못 할 일이다.

그런데 내 경험상 이런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죽음을 앞두고 마음을 완전히 비웠다는 점이다. 하다 하다가 정말 안 돼 어느 날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통증도 사라졌다고 말한다.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기실 암 연구를 하다 보면 암이 발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너무 복잡해 막막할 때가 잦다. 암은 기본적으로 세포 안의 핵(核)에 유전자 변이가 발생해 시작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발암(發癌) 요소가 세포핵 안으로 들어가는 채널이 있어야 한다. 통상 세포막 표면의 수용체에 달라붙어 그 문을 통해 들어간다. 항암제도 암세포 치료효과를 내려면 수용체에 붙어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채널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 통로를 찾아내는 데 '연구 인생'을 건다.

그런데 이런 채널을 찾아내 "이제 이 암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채널이 또 생긴다. 그 통로가 수십 가지가 나온다. 암처럼 복잡한 병이 없다. 사람은 동물보다 이런 과정이 훨씬 복잡해 동물실험에서 성공한 신약이 사람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는 것도 있다. 폐암만 해도 발암 유전자가 100개나 넘게 발견됐다. 유전자 하나 차단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설사 모든 채널을 다 찾아내 약물로 차단한다면 아마도 사람 몸이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병원에서 항암제를 3개 정도만 섞어 쓰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어떤 암은 그 과정이 단순해 약물치료가 효과적으로 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아직 약물로 암을 완전히 정복하기란 요원하다. 그래서 암을 연구하는 과학자 중에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많다. 알면 알수록 이것은 신의 영역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역설적으로 암을 정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암을 예방하는 데 힘쓰고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면 암과 함께 자기 수명대로 살 수 있다. 그게 암을 정복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밝고 긍정적으로 생활하고, 스트레스 잘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적절한 체중 유지하면 암 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도 음식 카레 성분인 큐커민의 항암효과는 여러 실험을 통해 입증된 것이니 자주 먹길 추천한다. 미국에서는 큐커민을 알약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셀레브렉스라는 관절염 약은 우리 병원에서 암 예방 약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대장암 발생 위험이 큰 사람 등에게 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