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의 ‘사상적 지도’ 다시 그리다
[한겨레] 최원형 기자 | |
반국가·직접민주주의 등
다양한 사상 본모습 조명 허행의 ‘소규모 공동체론’ 양주 ‘반전·평화’ 주장도
제자백가의 귀환 1·2 강신주 지음/사계절·각 권 1만5000원 낡아빠지고 왜곡된 통념에 대한 거침없는 도전이요, 반격이다. 공자가 말한 ‘인’(仁)이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이라고? 미안하지만 “공자의 ‘인’은 귀족들끼리의 사랑”이란다. 인류 보편적인 사랑을 설파한 사람은 공자가 아니라 ‘겸애’(兼愛)를 말한 묵자라고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난세 속에서 피어난 다양한 사상들을 말하는 제자백가는 우리 사회에서 필수교양으로 꼽히고, 많은 사람들이 ‘기초적인 건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철학자 강신주씨는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공유하고 있는 제자백가에 대한 통념을 부수고 무너뜨리는 작업에 나섰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 당시의 현실조건과 제자백가 사상들의 본모습을 차근차근 연결지으며, 제자백가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책으로 펴냈다. 물론 늘 그렇듯 그의 유려한 설명엔 변함없는 질문 하나가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 넌 어떻게 살 건데?’ 책과 강연으로 대중과 직접 소통해온 철학자 강신주씨의 새 책 시리즈 ‘제자백가의 귀환’은 제자백가의 사상들을 정리하고 자신의 관점으로 다시 쓰는 대형 기획이다. 제자백가의 범위가 너무나 넓다 보니 모두 12권으로 기획해 제자백가 사상의 전반적인 배경과 계보학을 다룬 1권 <철학의 시대>와 제자백가의 실질적인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제나라 재상 관중과 공자를 다룬 2권 <관중과 공자>가 먼저 출간됐다.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강씨는 20여년 전부터 “언젠가 반드시 제자백가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이번 시리즈는 그의 철학공부 20년을 총결산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강씨는 상아탑에 안주해왔던 철학을 모든 사람들의 삶의 문제로 끌어내렸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의 저작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철학책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어색하지만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이번 제자백가 시리즈에서는 그의 이런 모습이 더욱 확실히 드러난다. 강씨는 그저 사상가들의 텍스트를 따라 읊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현실적 시대조건, 사상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관계 등 제자백가의 전체적인 ‘사상적 지도’를 그리는 데 주력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자백가의 출발점으로 공자를 꼽는데, 그는 현실 정치가였던 관중을 꼽는다. 제후를 돕는 지식인 계급으로서, 관중은 피지배계급인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꿰뚫고 이를 위해 ‘국가주의’ 철학을 확립한 최초의 사상가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관중의 성공 뒤로 많은 지식인들이 관중처럼 제후에게 발탁돼 입신양명하길 꿈꿨고, 공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주나라 통치질서를 되돌리려 한 시대착오적인 그의 철학은 관념적인 세계로 빠져들었다. 강씨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공자가 택한 길은 현실정치와 동떨어진 ‘철학자’의 길이었다”고 조롱을 섞어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제자백가 논의 속에서 강씨가 드러내려는 새로운 구도는 ‘국가주의 대 반국가주의’라 할 수 있다. 제자백가에는 보수적 국가주의부터 반국가적 아나키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했다. 그러나 뒷날 역사가들은 이미 제국으로 확립된 지배질서의 틀 안에서 제자백가를 분류·규정했고, 국가주의에 반기를 드는 사상들은 배제되고 잊혀져갔다는 것이다. <맹자>를 보면, 당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상가로 묵자와 양주를 지목하고 있다고 한다. 또 “군주가 직접 노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농가’ 사상가 허행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고 한다. 양주는 반전과 평화를 주장한 사상가였고, 허행은 소규모 공동체로서의 삶을 강조한 사상가였다. 이에 대해 강씨는 “부국강병 등 ‘보수적 국가주의’ 담론들이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반권위와 직접민주주의를 꿈꾸는 사상체계가 존재했으며, 당시 피지배층에게 이들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강씨가 제자백가를 총정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이 드러난다. “모든 기존 질서가 붕괴된 바닥과 같은 춘추전국시대에,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듯이 희망을 꿈꿨던 다양한 사유와 철학이 피어났다.” 그러나 국가와 권력을 앞세운 사유와 철학은 지배질서의 담론이 되어 오랫동안 영향력을 끼친 반면, 개인의 삶과 행복을 절대적인 목적으로 삼았던 사유와 철학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아 바닥까지 이르게 되면, 이미 2500여년 전 바닥으로부터 ‘인간의 삶’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사유와 철학으로부터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것이야말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를 주장하는 인문학자로서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이미지 교보문고·사계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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