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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지교, 로마와 한국 차이는

이윤진이카루스 2011. 11. 13. 15:32

맹모삼천지교, 로마와 한국 차이는

고전 오디세이 44 기원전 1세기 로마의 교육풍경

» 로마 인근에서 발굴된 석관에 새겨진 교실 풍경. 중앙에 앉아 있는 이가 교사이고, 양편의 학생들의 손에 있는 것이 두루마리 책이고, 뒤에 서 있는 이는 지각한 학생으로 보인다.
호라티우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로마에 유학시키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친다. 서양의 맹모삼천인 셈이다.

루키우스 오르빌리우스 푸필루스(기원전 113년~14년)

오르빌리우스 푸필루스는 베네벤툼 출신이다. (중략) 어려서부터 학문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고향에서 오랫동안 교사로 활동하다가 키케로가 집정관이었던 시기(기원전 63년)에 로마로 상경한다. 받은 보수보다도 더 큰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이는 그가 노인이 되었을 때 어떤 저술에서 “자신이 가난하고 지붕 밑 다락방에서 살고 있다”고 밝힌 데에서 확인된다. 또한 그가 <억지에 대해서>에서 부모들의 지나친 극성과 반대로 또한 지나친 무관심으로 인해 선생들이 겪어야 하는 부당함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한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성품은 신랄했다. 그 신랄함은 학생을 다룰 때에 그 위력을 발휘했다 한다. 해서 호라티우스는 그를 “미친 몽둥이”라 불렀다. 아울러 마르수스도 쓰길, “그 누구든 오르빌리우스는 몽둥이와 채찍으로 휘갈겨 큰 대(大)자로 눕혔다네.” (중략) 그는 오래 살았는데, 비바쿨루스의 시에서 읽을 수 있듯이, 이미 오래전에 기억력을 잃었다. “오르빌리우스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오블리비오(글귀를 모두 망각한)만 있구나?” 베네벤툼의 카피톨리움 언덕 왼편에 우뚝 서 있는 그의 동상이 눈에 띈다. (후략) (수에토니우스 <로마의 문법가들에 대하여> 중)

수에토니우스(기원후 70년~130년?)가 전하는 오르빌리우스라는 로마의 문법 교사에 대한 보고다. 오르빌리우스는 고아를 뜻하는 말이다. 최근에 발굴된 비문들에 따르면, 공화정 말기인 기원전 1세기에 이미 이탈리아의 지방 도시에서도 문법 학교들이 성행했다 한다. 그 전거 중 하나가, 호라티우스가 남긴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다. 이에 따르면, 호라티우스의 고향 베누시아에도 이미 학교가 세워졌다. 하지만 고향에서 받았던 교육 내용과 학교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호라티우스의 보고다.

비록 작은 땅뙈기를 부치고 사셨지만, 아버지는 나(호라티우스)를 플라비우스의 시골 학교에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백인대장들의 덩치 큰 아들들이 왼쪽 어깨에 조그만 가방과 서판을 둘러메고 보름에 동화(銅貨) 8아스(약 450그램)의 강의료를 내면서 다닌 학교에 말이다. 대신에 아버지는 어린 나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심하셨다. 나에게도, 원로원 의원과 기사가 자신들과 자식들 교육에 적합하다고 여기었던 학문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였다.(<서한> 제1권 중)





흥미롭게도 호라티우스는 고향 학교의 선생님을 ‘노란 머리’ 혹은 ‘노랭이’라고 놀리고 있다. 라틴어 플라비우스는 ‘황갈색의 머리’를 뜻하고, 그리스어의 ‘크세르크세스’에 해당하는데, 이는 외국인을 조롱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어 호라티우스는 자신의 고향 친구들을 덩치만 큰 아이들이라 묘사하는데, 이는 고향의 친구들이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노는 것에만 치중했던 아이들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저간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에, 호라티우스의 고향 학교가 그리 좋은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런 이유에서 호라티우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로마에 유학시키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친다. 비유컨대, 서양의 맹모삼천(孟母三遷)인 셈이다. 아버지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는데, 나중에 아들이 큰 명성을 얻은 시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들이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나중에는 소위 ‘운동권’ 청년이 되어서 공화파에 가담했고, 해서 아버지에게 마음고생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로마의 이런 교육 풍경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닐 것이다. 좋은 교육을 위해 로마의 부모들이 자식들을 당시 학문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아테네로 보내는 광경들은 여러 문헌에서 자주 접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키케로가 아들을 아테네로 유학 보낸 경우가 대표적이다. 과연 자식의 교육이 모든 재산을 바쳐야 할 정도의 가치 있는 일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물론 호라티우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 한국의 엄마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라티우스의 아버지가 아들을 로마로 유학 보내려 했던 이유는 시골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학문을 교육시키기 위해서였다. 사실 지방 도시들과 로마 사이에 있는 교육의 편차는 매우 컸다. 지방에서는 배우기 힘든 학문을 배우려고 젊은이들이 로마로 몰려들었다는 점이 중요한데, 그 학문이 실은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이었다. 어쩌면 이 지점에서 호라티우스의 아버지와 우리 한국의 엄마들 사이에 있는 약간의 차이가,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드러나는 듯하다. 자식의 교육을 중시하는 점은 같지만, 자식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그 내용에 대한 관심에서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호라티우스의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그 자식에게 좋은 교육이란 배움 혹은 학문 자체의 좋음이었다. 여기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자식의 교육이 모든 재산을 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면, 요컨대 대학을 결정하는 데 외적인 스펙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은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의 내용도 함께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에서는 배우기 힘든 학문을 배우기 위해 젊은이들이 로마로 몰려들었다는 점이 중요한데, 그 학문이 실은 인문학이었다.

어쩌면 상속세를 내지 않고도 온전하게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방법은 다름 아닌 좋은 교육일지도 모른다. 호라티우스의 아버지가 전 재산을 아들의 교육에 투자한 것은 사업적으로 볼 때에도 성공한 비즈니스였다. 이런 점에서 자식 교육을 이를테면 부동산 투기보다 더 확실한 투자로 여기는 한국의 엄마들이 진짜 무서운 사업가일지도 모른다. 맹모(孟母)나 호라티우스 아버지에게는 있지만, 한국의 엄마들에게 없는 2%가 아마도 교육의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다시 오르빌리우스로 돌아가자. 그도 처음엔 고향 베네벤툼에서 생계를 위해서 조그만 학교를 세워 교육을 펼쳤다. 하지만 자신의 학교에 오는 아이들의 수준에 실망하고, 다른 한편으로 좀더 수준 높은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로마로 상경한다. 오르빌리우스의 강의는 로마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고, 그의 학교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수강료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라티우스와 같은 가난한 학생도 감당할 정도의 수강료를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기에 말이다. 하지만 호라티우스가 자신의 스승을 “미친 몽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 오르빌리우스가 교양과 지성을 매우 중시했던 학자였음은 분명하나, 교육자로서 자상하고 자애로운 사람은 결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럼에도 오르빌리우스가 <억지에 대해서>라는 책을 저술한다는 점이다. 이 저서는 아쉽게도 전승되지 않는다. 다만 수에토니우스가 전하는 말의 행간을 읽어보면, 한편으로 일부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과 다른 한편으로 일부 부모들의 철저한 무관심을 지적하는 저술로 추정될 수 있다. 부모들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교육에 간섭하고 개입하는 것도 문제이고, 자녀들의 교육을 전적으로 교사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태도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교육에 대한 로마인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벌어지는 이른바 로마식 ‘치맛바람’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저술이 <억지에 대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오르빌리우스가 한국의 엄마들을 본다면, 뭐라 말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적어도 한마디는 분명하게 했을 것 같다. 좋은 교육을 생각한다면, 교육의 내용에도 관심을 쏟으라고 말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