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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인식론의 역사

이윤진이카루스 2023. 2. 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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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인식론의 역사

 

I

내가 이 강좌에서 새롭게 검토하기를 원하며, 내가 검토하기뿐 아니라 해결하기도 희망하는 문제는 아마도 영국과 유럽대륙 철학파 사이의 오래된 논쟁의 베이컨(Bacon), 로크(Locke), 버클리(Berkeley), (Hume) 그리고 밀(Mill)의 고전적 경험론과 데카르트(Descartes), 스피노자(Spinoza) 및 라이프니츠(Leibniz)의 고전적 합리주의 혹은 지성주의(intellectualism) 사이의 논쟁 의 한 양상으로서 기술될 것이다. 이 논쟁에서 유럽대륙 학파는 모든 지식의 궁극적 근원이 분명하고 뚜렷한 관념들에 대한 지적(知的) 직관이라고 주장한 반면, 영국학파는 모든 지식의 궁극적 근원이 관찰이라고 주장했다.

이 쟁점들의 대부분은 아직도 매우 생생하게 살아있다. 아직도 영국에서 지배적인 교설인 경험론은 미국을 점령하였지만, 이제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참된 이론으로서 유럽대륙에서조차 널리 수용된다. 안타깝게도 데카르트적 지성주의는 현대 비-합리주의의 다양한 형태의 한두 가지로 너무 자주 왜곡되었다.

이 강좌에서 나는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라는 두 학파에 관하여 그들의 차이점이 그들의 유사성보다 훨씬 더 작다는 것과, 두 학파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하겠다. 나 자신이 경험주의자이자와 합리주의자 같은 종류일지라도 나는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모두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찰과 이성 각각에 중요한 역할들이 있을지라도, 그 역할들의 고전적 옹호자들이 관찰과 이성에 귀속시킨 그 역할들과 이 역할들이 유사하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더욱 특히, 오늘날까지 지식의 근원이라고 주장되었던 의미에서 관찰과 이성이 지식의 근원으로서 기술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히려고 나는 시도하겠다.

 

II

우리들의 문제는, 가장 추상적이며 요원하여 완전히 무관한 순수 철학의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지식론 즉, 인식론에 속한다. 예를 들어 그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인 흄(Hume), 자기가 얻은 결과 중 몇 가지의 요원함과 추상성 및 실용에 대한 무관함 때문에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 누구도 한 시간 이상 동안 그 결과들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칸트의 태도는 달랐다. ‘내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인간이 질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 중의 하나라고 그는 생각했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철학적 기질에서 흄(Hume)에 보다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서 칸트의 편을 드는 듯싶다. 그래서 러셀이 과학, 윤리학, 그리고 심지어 정치학에 관한 실용적 결과들이 인식론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할 때 그가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유인즉 그가 인식론적 상대주의 즉, 객관적 진리와 같은 것은 없다는 관념과 인식론적 실용주의 즉, 진리는 유용성과 동일하다는 관념이 권위주의적이자 전체주의적인 관념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사고하게 하라[Let the People Think], 1941, 77쪽 이하 참조.)

러셀의 견해는 물론 논쟁의 대상이 된다. 최근 몇몇 철학자들은 모든 참된 철학의 본질적인 무능과 실용으로 무관함이라는 교설을 전개했으며, 그리하여 인식론도 본질적으로 무능하고 실용과 무관하다고 우리는 상정할 수 있다. 철학은 자체의 본성에 의하여 중요한 결과를 낳을 수 없어서 과학이나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관념들이란 위험하고도 강력한 것이라고, 그리고 심지어 철학자들도 때때로 관념들을 생산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로, 모든 철학의 무능에 관한 이 새로운 교설은 사실에 의하여 충분히 논박된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상황은 실제로 매우 단순하다. 자유주의자의 신념은 법치(法治) 가능성에 대한, 평등권(equal justice) 가능성에 대한, 기본권(fundamental rights) 가능성에 대한, 그리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신념 판사들이란 전지(全知)하지 않아서 사실에 관하여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고, 그래서 실제로 절대적인 정의(正義)는 특정 법률사건에서 완벽하게 실현되지는 않는다고 인식되어도 쉽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특정 경우에서 뿐 아니라 다른 경우에서도 법치(法治) 가능성과 정의(正義) 가능성 및 자유 가능성에 대한 신념은, 객관적인 사실은 없다고 가르치는 인식론이 수용되면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리고 판사는 올바를 수 없지만 사실에 관하여 틀릴 수도 없기 때문에 사실에 관한 실수를 저질렀을 리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인식론이 수용되면 그 신념은 살아남을 수 없다.

 

III

문예부흥(Renaissance)에서 시작되어 개혁의 많은 변천과 종교전쟁 및 혁명전쟁을 통과하여, 영어권 사람들이 살아갈 특권을 지닌 자유로운 사회를 낳은 위대한 자유운동은 유례없는 낙관론적 인식론에 의하여 도처에서 고취되었다: 진리를 인식하여 지식을 얻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매우 낙관적인 관점에 의하여 도처에서 고취되었다.

지식의 가능성에 관한 이 새로운 낙관론적 관점의 중심에는 진리는 명백하다는 교설이 놓여있다. 진리는 아마도 베일에 가려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진리는 우리에 의하여 밝혀질 것이다. 베일을 벗겨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나라한 진리가 베일이 벗겨진 채 우리의 눈앞에 서자마자, 그 진리를 볼, 그 진리를 거짓과 구분할, 그리고 그것이 진리이다는 것을 알,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현대과학과 현대기술의 탄생은, 그 주요 대변인이 베이컨(Bacon)과 데카르트(Descartes)인 이 낙관적 인식론에 의하여 고취되었다. 각자는 자신의 내부에 지식의 근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문제에서 권위자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그들은 가르쳤다; 자신이 자연을 신중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사용할 자신이 지닌 감각지각(senseperception) 능력에서나, 혹은 지성에 의하여 명백하고 뚜렷하게 감지되는 않는 관념의 수용을 거부함에 의하여 거짓으로부터 진리를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할 자신의 지적(知的) 직관 능력에서 지식의 근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이 낙관론적 인식론과 자유주의 관념들 사이의 연결을 설명하는 공식이다.

이 연결은 그 반대 연결에 의하여 비교된다. 인간 이성의 능력에 대한 불신인 진리를 인식할 인간의 능력에 대한 불신(不信)은 거의 변함없이 인간에 대한 불신(不信)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비관론적 인식론은 역사적으로 인간의 타락이라는 교설과 연결되어, 인간을 자신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으로부터 구원할 강력한 전통의 확립과 강력한 권위의 설정을 요구하는 경향을 띤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The Grand Inquisitor]의 이야기에 권위주의에 관한 이 이론의 두드러진 묘사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지닌 부담에 대한 묘사가 있다.)

비관적 인식론과 낙관적 인식론 사이의 대비는 근본적으로 전통주의적 인식론과 합리주의적 인식론 사이의 대비와 동일하다고 언급될 것이다. (나는 합리주의라는 용어를 비-합리주의에 대한 반대 의미에서, 그리고 합리주의가 데카르트적 지성주의뿐 아니라 경험주의를 또한 포함하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유인즉 객관적이고 인식될 수 있는 진리가 없으면 전통의 권위 수용 및 혼란의 수용 사이에서 선택에 우리가 직면한다는 믿음으로서 우리가 전통주의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합리주의는 물론, 어떤 전통과 어떤 권위도 철저한 비이성이나 편견 혹은 우연에 근거한 것으로 비판하고 배격할 이성의 권한과 경험과학의 권한을 항상 주장했다.

 

IV

심지어 순수인식론 같은 추상적인 연구도 사람들이 아마도 생각할 것처럼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믿었던 것처럼) 그렇게 순수하지 않고 그 인식론의 관념들이, 큰 정도까지, 정치적 희망에 의하여 그리고 유토피아적 꿈에 의하여 동기화되고 무의식적으로 고취될 것임은 당혹스러운 사실이다. 이것은 인식론자에게 틀림없이 경고이다. 인식론자는 그것에 대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식론자로서 나는 단 한 가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진리가 나의 정치적 관념에 들어맞든 아니든, 인식론의 문제에 관하여 진리를 발견하는 것. 그러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의 정치적 희망과 신념에 의하여 영향을 받기 쉽지 않을까?

나는 일종은 경험주의자이면서 합리주의자일 뿐 아니라 자유주의자이기도 (그 용어의 영국적 의미에서) 하다; 그러나 내가 자유주의자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양한 자유주의 이론들을 탐색하며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보다 자유주의자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나는 느낀다.

내가 이런 종류의 비판적 검토에 몰두해 있는 동안, 자유주의적 관념들을 전개하는 데 특정 인식론적 이론들에 의하여 수행된 역할을 나는 발견하였다; 그리고 특히 다양한 형태의 낙관적 인식론에 의하여 수행된 역할. 그리고 이 인식론적 이론들이 옹호될 수 없는 것으로서 내가 배척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인식론자로서 발견하였다. 나의 이 경험으로 인하여, 우리의 꿈과 우리의 희망에 의하여 우리가 얻은 결과가 반드시 통제될 필요가 없다는 요점과, 그리고 진리 탐구에서 우리가 가장 애착을 갖는 믿음들을 비판함에 의하여 시작하는 것이 우리가 지닌 최선의 계획일 것이라는 요점이 예시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도착(倒錯)된 계획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발견하고자 원하고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V

특정 자유주의 관념들에 내재된 낙관적 인식론을 검토하면서, 암묵적으로 자주 수용될지라도 내가 알기로 철학자들과 역사가들에 의하여 명시적으로 토론되거나 심지어 주목받지도 못한 한 무리의 교설을 나는 발견하였다. 그 교설들 중 가장 근본적인 교설이 내가 이미 언급한 것이다 진리는 명백하다는 교설. 그 교설 중에서 가장 이상한 교설은 무지(無知) 음모론인데, 그 이론은 진리가 명백하다는 교설에서 기이하게 나타났다.

진리가 명백하다는 교설에 의하여, 진리는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놓인다면 항상 진리로서 인식될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내가 의미함을 여러분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하여 진리는,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베일이 벗겨져 덮개가 제거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이룩되자마자 추가 논증은 필요없다. 우리에게는 진리를 볼 눈이 주어졌고 그 진리를 식별할 이성이라는 자연의 빛(natural light)’이 주어졌다.

이 교설은 데카르트와 베이컨 모두의 가르침의 핵심에 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인식론적 낙관론을 ()의 진실성(veracitas dei)이라는 중요한 이론에 근거시켰다. 우리가 진리라고 명백하고 뚜렷하게 보는 것은 정말로 틀림없이 진리이다; 이유인즉 그렇지 않다면 신()이 우리를 속이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의 진실성으로 인하여 틀림없이 진리가 명백하게 된다.

베이컨(Bacon)에게서 우리는 유사한 교설을 경험한다. 그 교설은 자연의 진실성(veracitas naturae: truthfulness of Nature)이라는 교설로서 아마도 기술될 것이다. 자연은 열려있는 책이다. 그 책을 순수한 생각으로 읽은 사람은 잘못 읽을 리가 없다. 오직 그의 정신이 편견에 의하여 오염되었다면 그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 마지막 언급으로 인하여, 진리는 명백하다는 교설에 의하여 허위를 설명할 필요가 발생함이 밝혀진다. 진리의 소유인 지식은 설명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진리가 명백하다면 어떻게 우리는 오류에 빠질 수 있는가? 답변은: 우리 자신이 죄악으로 가득 차서 명백한 진리 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혹은 우리의 정신이, 우리가 원래 지닌 순수하고 무구한 정신을 도착(倒錯)시킨 교육과 전통 또는 다른 사악한 영향력에 의하여 주입된 편견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無知)는 우리를 무지(無知)에 묶어두려고, 우리의 생각을 허위로 채움에 의하여 독약을 주입시키려고, 그리고 명백한 사실을 볼 수 없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려고, 음모를 꾸미는 세력들의 작업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편견들과 그런 세력들이 무지(無知)의 근원이다.

무지(無知) 음모론은, 진실을 도착(倒錯)시키고 억압하며 노동자들의 생각을 거짓 이데올로기로 채우는 자본주의 언론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그 음모론의 마르크스의 형태에서 꽤 잘 알려져 있다. 이 이데올로기 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물론 종교에 관한 교설들이다. 이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이 얼마나 독창적이 아닌지를 알면 놀랍다. 사람들을 무지(無知)에 가두어 두는 사악하고 기만적인 사제(司祭)18세기의 평균적인 인물이어서, 내가 우려하는 바, 자유주의에 대한 영감을 준 사람이다. 무지 음모론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음모에 대한 신교도의 믿음까지, 그리고 또한 영국 국교회에 대하여 유사한 관점을 지녔던 영국 국교회 반대파의 믿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나는 이 믿음의 이전 역사를 플라톤의 삼촌 크리티아스[Critias]까지 추적하였다; 나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 8, ii절 참조.)

음모에 대한 이 기묘한 믿음은, 진리에게 공평한 기회만 주어진다면 진리와 그러므로 선()은 틀림없이 승리한다는 낙관적 믿음의 거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진리와 거짓이 대결하도록 하라; 자유롭고 공개된 대결에서 누가 진리 패배를 알았던가?’ (존 밀튼[John Milton]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 프랑스 격언 진리는 항상 승리한다[La vérité triomphe toujours]와 비교하라.) 그래서 밀튼의 진리가 패배했을 때, 필요한 추론은 대결이 자유롭고 공개적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명백한 진리가 승리하지 않는다면, 그 진리는 틀림없이 악의적으로 억압되었다. 진리 승리에 대한 낙관적 신념에 토대를 둔 관용의 자세가 쉽게 흔들릴 것임을 사람들은 알 수 있다. (1959122일 자 청취자[The Listener]에 실린 J. W. N. 와트킨스[Watkins]의 밀튼에 관한 글을 참조할 것.) 이유인즉 진리 승리에 대한 낙관적 신념이, 관용의 자세와 화해하기 어려울 음모론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음모론에 일말의 진실도 없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로 음모론은, 그 음모론이 성장해 나왔던 명백한 진리의 이론이 신화(神話)였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신화(神話)였다.

이유인즉 간단한 사실이, 진리란 자주 얻기가 어렵다와 발견되자마자 진리는 쉽게 다시 실종될 것이다 이기 때문이다. 그릇된 신념은, 경험에 대항하여 음모의 도움이 받든지 못받든지, 생존하는 놀라운 힘을 수천 년 동안 가질 것이다. 과학의 역사, 그리고 특히 의학의 역사가 몇 가지 좋은 사례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을 터이다. 한 가지 사례는, 정말로, 일반적인 음모론 자체이다. 사악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그 일은 틀림없이 사악한 힘의 사악한 의지 때문이라는 그릇된 견해를 나는 의미한다. 이 견해의 다양한 형태가 우리 시대까지 생존해왔다.

그리하여 베이컨(Bacon)과 데카르트(Descartes)의 낙관적 인식론은 사실일 리가 없다. 그러나 아마도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이 허위 인식론이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지적(知的) 및 도덕적 혁명에 대한 주요 영감이었다는 것이다. 이 인식론에 의하여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도록 격려되었다. 이 인식론으로 인하여, 지식을 통하여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노예상태와 비참함으로부터 아마도 해방시킬 것이라는 희망이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이 인식론에 의하여 현대과학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 인식론은 언론검열과 사상의 자유의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의 기반이 되었다. 이 인식론은 영국 국교회 반대파적 양심의 토대, 개인주의의 토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기반이 되었다; 보편 교육에 대한 요구의 기반, 그리고 자유로운 사회라는 새로운 꿈의 토대가 되었다. 이 인식론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느끼고 자신들의 상황뿐 아니라 동료 인간들의 상황을 개선하려고 열중하게 되었다. 이 인식론은 많은 훌륭한 이념들을 고취하는 나쁜 이념의 사례이다.

 

VI

그러나 이 잘못된 인식론으로 인하여 파멸적 결과가 또한 발생했다. 진리는 명백하다는 이론인 진리는 모든 사람이 보기를 원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보도록 그곳에 있다는 이 이론은 거의 모든 종류의 광신(狂信)의 근간이다. 이유인즉 오직 가장 타락한 사악함만이 명백한 진리 보기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두려워할 이유를 지닌 사람들만이 진리를 억압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진리는 명백하다는 이론에 의하여 광신자(狂信者)들이 명백한 진리를 보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은 틀림없이 악마에 의하여 지배당했다는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 태어날 뿐 아니라, 아마도 비관적 인식론보다 덜 직접적일지라도, 권위주의가 또한 발생할 것이다. 단지 일반적으로 진리가 명백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광신자들이 태어나고 권위주의가 발생한다. 그리하여 소위 명백한 진리는 해석과 확인이 끊임없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재해석과 재확인이 끊임없이 필요하기도 하다. 거의 하루하루 명백한 진리가 될 수 있는 것을 공언하고 서술하도록 권위자는 요구를 받으며, 권위자는 그렇게 공언하고 서술하는 것을 자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배울 것이다. 그리고 실망한 많은 인식론자들은 자신들의 이전 낙관론에 등을 돌리고 비관적 인식론을 토대로 휘황찬란한 권위적인 이론을 세울 것이다. 내가 보기에, 모든 인식론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식론자인 플라톤이 이 비극적 상황전개를 예시한다.

 

VII

플라톤은 ()의 진실성(veracitas dei)이라는 데카르트의 교설 ()이 진실하여 우리를 기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지적(知的) 직관은 우리를 기만하지 않는다는 교설, 혹은 다시 말해서 신()이 지식의 근원이기 때문이 우리의 지성이 지식의 근원이라는 교설 이전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교설에는, 적어도 호메로스(Homer)와 헤시오도스(Hesiod)까지 쉽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긴 역사가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근원에 대해서 언급하는 습관은 학자나 역사가에서 우리가 보기에 자연스러울 것이고, 그래서 이 습관이 시인들에게서 나오는 것을 발견하면 아마도 다소 놀랍다. 그러나 그 습관은 시인들에게서 나온다. 그리스 시인들은 자신들이 지닌 지식의 근원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 근원들은 신적(神的)이다. 그 근원들은 뮤즈(Muse) 신들이다. ‘... 그리스 음유시인들은 소위 그들의 영감뿐 아니라, 그들이 지닌 사실에 관한 실제적 지식을 뮤즈(Muse) 신들에게 귀속시킨다. 뮤즈(Muse) 신들은 실재하며 모든 것들을 안다”... 헤시오도스(Hesiod)... 자신이 지닌 지식에 대하여 뮤즈(Muse) 신들에 의지한다고 항상 설명한다. 지식의 다른 근원들도 정말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는 뮤즈(Muse) 신들에게 가장 자주 자문을 구한다.... 호메로스(Homer)도 그리스 군대의 편성목록 같은 주제들에 관하여 그렇게 한다고 길버트 머레이(Gilbert Murray)는 말한다 (그리스 서사시의 발흥[The Rise of the Greek Epic], 3판본, 1924, 96).

이 인용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시인들에게는 영감의 신적(神的) 근원뿐 아니라, 지식의 신적(神的) 근원도 자신들의 이야기의 진실에 대한 신적(神的) 보증자 주장하는 습관이 있었다.

정확하게 동일한 두 가지 주장이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와 파메니데스(Parmenides)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을 신이 들려... 미친 듯한 입으로 말하는모든 지혜의 근원인 제우스(Zeus)에 의하여 신이 들린 (DK, B92, 32; 93, 41, 64, 50 참조) 예언자로서 보는 듯하다. 그리고 파메니데스(Parmenides)는 한편에서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와 다른 편에서 데카르트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형성한다고 우리가 거의 말할 수 있을 터이다. 파메니데스의 길잡이별이자 영감의 근원은,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여 (DK, B28) 진실의 수호자로서 기술되는 여신(女神) 디케(Dikē)이다. 파메니데스는 그 여신을 진실의 열쇠를 수호하여 지키는 사람으로서, 그래서 자신이 지닌 모든 지식의 근원으로서 기술한다. 그러나 파메니데스와 데카르트는 신적(神的) 진실성이라는 교설보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한다. 예들 들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위하여, 시각과 청각 그리고 미각을 배제하고 자신이 지성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말을 파메니데스는 자신의 신적(神的) 진실 보증자로부터 듣는다. (헤라클레이토스 B54, 123 참조. B88, 126은 관찰될 수 있는 대립자를 낳는 관찰될 수 없는 변화를 암시한다.) 그리고 심지어 데카르트처럼, 자신의 지성주의적 지식론 위에 파메니데스가 세우는 물리이론의 원리는 데카르트에 의하여 채택된 원리와 동일하다: 그 원리는 공허함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세계는 필연적으로 충만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온(Ion)에서는 신적(神的) 영감과 시인의 신적(神的) 광증 참된 지식의 신적(神的) 근원이나 기원이 뚜렷이 구분된다. (그 주제는 파이드로스[Phaedrus], 특히 259e에서 계속해서 더 상세하게 전개된다; 해롤드 처니스[Harold Cherniss]가 필자에게 지적하였듯이 275b-c에서 심지어 플라톤은 근원의 문제와 진리의 문제를 구분할 것을 주장한다.) 플라톤은 시인들이 영감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시인들의 주장하는 사실에 관한 지식에 대하여 시인들이 지닌 어떤 신적(神的) 권위를 부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닌 지식의 신적(神的) 근원이라는 교설은, 각자에게 지식의 신적(神的) 근원 소유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플라톤의 유명한 상기(想起: theory of anamnēsis)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이론에서 고찰된 지식은 특정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지식이라기보다는 사물의 본질이나 특성에 관한 지식이다.) 플라톤의 메논(Meno)(81b-d) 따르면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우리의 불멸의 영혼이 알지 못하는 것은 없다. 이유인즉 모든 본성은 동류이고 동질인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도 틀림없이 모든 본성과 동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혼은 모든 본성을 알고 있다: 영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동종관계와 지식에 관하여 파이돈[Phaedo]79d, 국가[Republic]611d, 법률[Laws]899d 참조.) 태어나면서 우리는 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부분적일지라도, 우리의 기억과 우리의 지식을 회복할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다시 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진리를 인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지식은 재인지(再認知: re-cognition)이다 우리가 예전에 알았던 본질이나 진정한 본성을 상기하거나 기억하는 것. (파이돈[Phaedo], 72e 이하; 75e와 비교하라.)

이 이론은 우리의 영혼이, 태어나기 전에 이데아나 본질 혹은 본성이라는 신적(神的) 세상에 거주하면서 참여한다면 전지(全知)의 신적(神的)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사람의 출생은 은총으로부터의 몰락이다; 사람의 출생은 지식의 자연적이거나 신적(神的) 상태로부터의 몰락이다; 그래서 사람의 출생은 사람이 지닌 무지(無知)의 근원이자 원인이다. (여기에 무지는 죄악이거나 적어도 죄악과 관련되어 있다는 관념의 씨앗이 있을 것이다; 파이돈[Phaedo], 76d와 비교하라.)

상기(想起: theory of anamnēsis)과 우리가 지닌 지식의 신적(神的) 근원이나 출처라는 교설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동시에 상기(想起: theory of anamnēsis)과 명백한 진리의 교설 사이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심지어 우리의 망각이라는 타락한 상태에서도, 우리가 진리를 본다면, 우리는 그것을 진리로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상기(想起: anamnēsis)의 결과로서, 진리는 망각되지 않았고 숨겨지지 않은(αlēthēs) 것의 위상으로 복원된다: 그것이 명백한 것이다.

메논(Meno)의 한 아름다운 구절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라는 특별한 경우의 증명을 상기하도록교육을 받지 못한 어린 노예를 도와줌에 의하여,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증명한다. 여기에 정말로 인식론적 낙관론, 그리고 데카르트 철학의 뿌리가 있다. 메논(Meno)에서 플라톤은 자신의 이론이 지닌 고도로 낙관적인 특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듯 보이는데, 이유인즉 플라톤이 자신의 이론을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배우고 탐구하고 발견하도록 만드는 교설로서 기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틀림없이 실망이 플라톤에게 찾아왔다; 이유인즉 국가(Republic)에서 (그리고 파이드로스[Phaedrus]에서도 또한) 우리가 인식론적 비관론의 단초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동굴 속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514 이하) 그는 우리의 경험 세계가 실재 세상의 그림자이자 반영일 뿐임을 밝힌다. 그리고 그는 갇힌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동굴로부터 탈출하여 실재 세상을 대면할지라도, 그는 실재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데에서 거의 극복 불가능한 난관을 뒤에 남은 사람들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데에서 그가 겪을 난관은 말할 것도 없고 경험할 터이다. 실재 세상을 이해하는 길에 놓인 난관들은 거의 초인적이어서, 있다면 극소수만 실재 세상을 이해하는 신적(神的) 상태에 진정한 지식의 즉, 에피스테메(epistēmē)의 신적(神的) 상태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모든 사람에 관해서는 아닐지라도, 거의 모든 사람들에 관한 비관론적 이론이다. (이유인즉 진리는 소수에 선택된 자들 의해서만 도달될 것이라고 이것이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 선택된 자들에 관해서 이 비관론적 이론은 심지어 진리는 명백하다는 교설보다 더 특이하게 낙관적이라고 사람들은 아마도 말할 것이다.) 이 비관론적 이론의 권위주의적이고 전통주의적인 결론들이 법률(Laws)에서 완전하게 부연된다.

그리하여 인식론적 낙관론에서 인식론적 비관론으로의 최초 변환을 플라톤에게서 우리가 발견한다. 이 인식론 각각은, 국가와 사회에 관한 두 가지 철저히 반대가 되는 철학 중 하나를 위한 토대를 형성한다: 한편으로는 데카르트 종류의 반()-전통주의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이며 혁명적이고 유토피아적인 합리주의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인 전통주의이다.

이 상황전개는, 인간의 인식론적 몰락이라는 관념이 상기(想起: anamnēsis)라는 낙관론적 교설의 의미에서 뿐 아니라 비관론적 의미에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과 연결될 것이다.

이 비관론적 의미의 해석에서, 인간의 몰락으로 인하여 모든 인간이 혹은 거의 모든 인간 무지(無知)로 몰린다. 사람들은 동굴 이야기에서 (그리고 아마도, 뮤즈[Muse] 신들과 그들의 신적[神的] 가르침이 무시당했을 때, 도시의 몰락 이야기에서도 또한; 국가[Republic] 546d 참조) 이 관념의 흥미로운 옛 형태에 관한 반향을 감지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의 견해는 기만이며, 오도된 규약의 결과라는 파메니데스(Parmenides)의 교설을 나는 염두에 두고 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지식이 어림짐작이라는, 그리고 인간 자신의 이론은 기껏해야 진리에 흡사할 따름이라는 크세노파네스[Xenophanes]의 교설에서 유래할 것이다.) 오도된 규약이란 언어적인 규약이다: 그 규약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인간의 인식론적 몰락이라는 관념은, 칼 라인하르트(Karl Reinhardt)가 제시한 바와 같이, 진리의 길에서 기만적인 견해의 길로의 전이(轉移)를 표시하는 여신(女神)의 말들에서 아마도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너희들 또한 저 기만적인 견해가 어떻게 사실로

수용되어 만물을 통과하여 밀치고 나가는지 알게 되리라...

 

이제 그렇게 정비되어 전부 진리처럼 보이는 세상에 대하여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인간의 관념에 의하여 미혹되는 일이

두 번 다시없으리라.

 

그리하여 그 몰락이 모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지라도, 진리는 심지어 인간들이 지닌 기만, 견해, 규약적 관념과 결정의 비실재적 세상에 관한 진리도 은총에 의하여 선택된 자들에게 밝혀질 것이다: 실재적으로 수용되어 승인받을 현상의 비실재적 세상에 관한 진리도 은총에 의하여 선택된 자들에게 밝혀질 것이다.

파메니데스(Parmenides)가 받은 계시, 그리고 영원한 실재의 불변하는 세상에 관한 그리고 박진(迫眞: verisimilitude)과 기만의 비실재적이고 변화하는 세상 두 가지에 대한 확실성에 소수가 도달할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플라톤 철학의 주요 영감들 중 두 가지였다. 그것은, 희망과 절망 그리고 체념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플라톤이 영원히 회귀하던 주제였다.

 

VIII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플라톤의 인식론적 낙관론으로 메논(Meno)에 나오는 상기(想起說: theory of anamnēsis)이다. 그 설에는, 데카르트의 지성주의의 기원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와 특히 베이컨의 귀납론 기원이 담겨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유인즉 메논(Meno)의 노예가, 자신의 영혼이 전지(全知)라는 탄생 이전의 상태에서 소유하고 있던 망각된 지식을 기억해내거나 되찾는 소크라테스의 현명한 질문에 의하여,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귀납법의 창시자였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을 때 (형이상학[Metaphysics], 1078b17-33; 또한 987b1 참조)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했던 것은, 테아이테토스(Theaetetus)에서 산파술(the art of midwifery or maieutic)로 지칭되었던 이 유명한 소크라테스식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베이컨 또한 귀납법에 의하여 특정 관찰된 사례로부터 보편적 법칙을 추론하기보다는 사물의 본질이나 진정한 본성을 우리가 직관하거나 감지할 수 있는 지점까지 우리가 안내를 받는 방법을 의미했다고 나는 제안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안 바와 같이, 이것은 정확하게 소크라테스의 산파술(maieutic)이 지닌 목표이다: 그 목표는 우리를 돕거나 이끌어 상기(想起: anamnēsis)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기(想起: anamnēsis)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가 은총으로부터 몰락하기 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본성이나 본질인 사물의 진정한 본성이나 본질을 아는 능력이다. 그리하여 산파술(maieutic)과 귀납법 두 가지 방법의 목표는 동일하다. (부언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귀납법의 결과가 본질의 직관 그 본질에 대한 정의[定義]에 의하여 표현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제 두 가지 과정을 더 세밀하게 살펴보자.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본질적으로 편견들을 파괴하려고 고안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본질이다; 흔히 전통적이거나 유행하는 믿음인 허위 신념들이 그 편견들이다; 무지한 자만(自慢)의 정신으로 주어지는 허위 답변들이 그 편견들이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의 태도는,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제기했지만 해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유인즉 그가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기술된다. (소피스트적 논박[Sophist El.], 183b7; 테아이테토스[Theaetetus], 150c-d, 157c, 161b와 비교하라.) 그리하여 소크라테스의 산파술(maieutic)은 신념을 가르칠 목적인 기법이 아니라, 영혼으로부터 거짓 신념, 표면적인 지식, 편견을 정화하거나 청소할 목적인 기법이다 (테아이테토스[Theaetetus] 160e암피드로미아[Amphidromia]에 관한 언급 참조; 파이돈[Phaedo] 67b, 69b/c와 비교하라).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우리가 지닌 신념들을 의심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침에 의하여 이 목적을 이룩한다.

근본적으로 동일한 과정이 베이컨 귀납법의 일부이다.

 

IX

베이컨 귀납론의 구조는 이와 같다. 그는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에서 옳은 방법과 거짓 방법을 구분한다. 그가 옳은 방법에 붙인 명칭인 interpretαtio nαturαe자연의 해석(interpretation of nature)’으로, 거짓 방법에 붙인 명칭인 αnticipαtio mentis정신의 기대(anticipation of mind)’로 보통 번역된다. 이 번역은 분명하게 보일지라도, 호도이다. ‘interpretαtio nαturαe에 의하여 베이컨이 의미하는 것은 자연이라는 책을 읽기 혹은 훨씬 낫게, 자연이라는 책을 판독하는 것이라고 나는 제안한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저서 황금 계량자[Il saggiatore], 6절의 유명한 구절에서, ‘우리 눈앞에 놓인 저 위대한 책 나는 우주를 의미한다고 말하는데 마리오 붕게[Mario Bunge]가 친절하게도 나에게 그 구절을 상기시켜주었; 데카르트의 방법서설[Discourse], 1절 참조.)

현대 영어에서 해석(interpretation)’이라는 용어는 결정적으로 주관주의적이나 상대주의적 느낌을 띤다. 우리가 루돌프 제르킨(Rudolf Serkin)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황제 협주곡(Emperor Concerto)을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말할 때,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이 해석은 제르킨의 해석임을 우리는 암시한다. 우리는 물론 제르킨의 해석이 가장 훌륭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으며 베토벤의 의도에 가장 근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더 훌륭한 해석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지라도, ‘해석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 의하여 이 다른 해독들 중 몇 가지가 동등하게 참일 것인지 아닌지의 의문을 열어놓고 우리는 다른 해석들이나 해독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나는 여기서 해독(reading)’이라는 단어를 해석(interpretation)’과 동의어로서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의미가 매우 흡사할 뿐 아니라 해독(reading)’해독하다(to read)’, ‘해독의 경우에 두 가지 의미 모두가 아직도 완전히 사용된다는 것을 제외하고, ‘해석(interpretation)’해석하다(to interpret)’의 수정과 비슷한 수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존의 편지를 해독했다(I have read John's letter)’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평범하고 비()-주관주의적인 의미를 경험한다. 그러나 나는 존의 편지의 이 구절을 완전히 다르게 해독한다나 아마도 이 구절에 대한 나의 해독은 전혀 다르다에 의하여 해독이라는 단어의 나중 의미인 주관론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의미가 예시될 것이다.

원래 의미가 아마도 스스로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낭독하기실제로 실종되었다는 것을 제외하고, ‘해석하다(interpret)’의 의미가 (‘번역하다[translate]의 의미에서가 아닐지라도) 정확하게 동일한 방식으로 변했다고 나는 주장한다. 오늘날 판사는 법률을 해석해야 한다는 표현조차도 판사에게는 법률을 해석함에서 어떤 자유재량이 있음을 의미한다; 베이컨 시대에 판사에게는 법률을 당시 상태로 해석하여 단 한 가지 올바른 방식으로 상술하여 적용할 의무가 있음을 그것이 의미했을지라도. 법률 해석(Interpretαtio juris [또는 legis])은 이것을 의미하거나 법률을 비전문가에게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베이컨의 학문의 존엄성과 진보에 관하여[De Augmentis] VI, xlvi; T. 맨리[Manley]해석자:... 영국의 법률에서 사용되는 애매한 단어들과 용어들[The interpreter:... Obscure Words and Terms used in the Lawes of this Realm], 1672년과 비교하라.) 그 법률 해석으로 인하여 법률 해석가에게 자유재량이 남지 않는다; 아무튼 선서한 해석가에게 법률 서류 해석만 허용될 터이다.

그리하여 자연의 해석이라는 번역은 호도이다; 그 번역은, ‘법률에 대한 (올바른) 해독과 비슷하게‘, ‘자연에 대한 (올바른) 해독과 같은 것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연의 책을 있는 그대로 해독하기혹은 훨씬 낫게 자연의 책을 판독하는 것이 베이컨이 의미했던 것이라고 나는 제안한다. 요점은, 그 표현이 틀림없이 현대적 의미에서의 모든 해석의 회피를 제시한다는 것, 그리고 더욱 특히 그 표현은 명백하지 않은 원인들이나 가설들에 비추어 자연에서 명백한 것을 해석하려는 시도의 제안을 틀림없이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이 모든 것이 베이컨이 의미하는 바, 정신의 기대(αnticipαtio mentis)이기 때문일 터이다. (가설들이 혹은 추측들 베이컨의 귀납법으로부터 귀결될 것이라는 가르침이 베이컨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오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유인즉 베이컨의 귀납법이 추측이라기보다는 확실한 지식을 낳기 때문이다.)

정신의 기대αnticipαtio mentis)’의 의미에 관해서 우리는 로크(Locke)의 말만 인용하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최초 정신적 기대에 스스로를 던져버린다 (오성행동론[Conduct Underst.], 26). 이것은 실제로 베이컨으로부터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대(αnticipαtio)’편견이나 심지어 미신을 의미함을 매우 분명히 한다. 제신(諸神)에 관하여 고지식하거나 원시적이거나 미신적인 관점을 품고 있음을 의미하는 ()의 기대(αnticipαtio deorum)라는 표현을 우리는 또한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를 훨씬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편견(prejudice)’(데카르트의 철학 원리[Princ.] I, 50 참조) 법률용어에서 파생되며,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미리 판단하다(to prejudge)’라는 동사를 미리 역으로 판단하다다시 말해서, 판사의 의무를 위반하여 의미로 영어에 도입한 사람은 베이컨이었다.

그리하여 두 가지 방법은 (1) 지식 즉, epistēmē을 초래하며 자연이라는 열린 책을 판독하는 것(2) doxα , 단지 짐작과 자연이라는 책의 오독(誤讀)을 초래하는 자연을 틀리게 미리 판단하고 아마도 잘못 판단하는 정신의 편견이다. 후자의 방법은 베이컨에 의하여 거부되었는데 사실상, 그 단어의 현대적 의미에서, 한 가지 해석 방법이다. 그것은 추측 혹은 가설의 방법이다 (부언하여 내가 우연히도 확신하여 옹호자가 된 방법).

자연이라는 책을 합당하거나 진실하게 읽도록 어떻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비할 수 있는가? 베이컨의 답변은: 우리의 정신으로부터 모든 기대나 추측 혹은 상상이나 편견을 정화함으로써 이다 (노붐 오르가눔[Nov. Org.] i 68, 60 말미). 그렇게 우리의 정신을 정화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다양하게 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우상들,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거짓 신념을 제거해야 한다; 이유인즉 이것들로 인하여 우리의 관찰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노붐 오르가눔[Nov. Org.] i 97). 그러나 소크라테스처럼, 우리가 발견하고 싶어 하는 참된 본질이나 본성을 지닌 사물의 종류에 관하여 우리가 지닌 편견을 파괴할 모든 종류의 반례(反例: counterinstances)를 우리는 또한 찾아야 한다. 소크라테스처럼, 우리의 지성을 정화함에 의하여 우리의 영혼이 본질이나 본성의 영원한 빛에 대면하도록 우리가 대비시켜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신국론[Civ. Dei], VIII, 3 참조): 우리가 지닌 불순한 편견은 반례(反例: counterinstances)를 적용하여 추방되어야 한다 (노붐 오르가눔[Nov. Org.] ii, 16 이하).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진 다음에만 우리는 자연이라는 열린 책인 명백한 진리를 열심히 판독하는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베이컨의 (그리고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은 근본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동일하다고 나는 제안한다; 다시 말해서 정신이 명백한 진리를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혹은 자연이라는 열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우리의 정신으로부터 편견을 제거함에 의하여 정신을 대비시키는 것.

데카르트의 체계적 회의 방법(method of systematic doubt)도 또한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그것은 자명한 진리라는 흔들릴 수 없는 토대에 도달하기 위하여 정신이 지닌 모든 거짓 편견을 타파하는 방법이다.

무지 상태는 사람이 은총으로부터 추락하면서 순진무구한 눈이 겪은 상처에 정화과정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치유될 수 있는 상처 그 근원을 두고 있는 반면, 이 인식론적 낙관론에서 어떻게 지식의 상태가 사람의 자연적이거나 순수한 상태로 진리를 알 수 있는 순진무구한 눈의 상태인지를 우리는 이제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인식론이, 데카르트의 형태에서 뿐 아니라 베이컨의 형태에서도, 근본적으로 모든 지식의 근원이 신적(神的) 권위인 종교적 교리인 이유를 우리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플라톤의 신적(神的) ‘본질이나 신적(神的) ‘본성에 의하여, 그리고 자연의 진실성과 인공적인 규약의 기만성 사이의 전통적 그리스식 대립에 의하여 격려를 받아 베이컨은, 자신의 인식론에서, ‘()’자연으로 갈음한다고 사람들은 아마도 말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여신(女神) 자연(Natura)에게 다가가기 전에 우리 자신을 정화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정신을 정화했을 때, 심지어 우리가 지닌 때때로 신뢰될 수 없는 감각들이 (플라톤에 의하여 절망적으로 불순하다고 믿어지는) 순수해질 것이다. 불순이 무지의 근원이 될 것이기 때문에, 지식의 근원은 순수한 상태로 지켜져야 한다.

 

X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지녔던 인식론의 종교적 특징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중하지 못하게 혹은 무모하게 품고 있는 편견에 대한 그리고 전통적 신념에 대한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공격들은 분명히 반()-권위주의적이고 반()-전통주의적이다. 이유인즉 그들이, 우리 스스로 그 진리를 감지한 신념들을 제외하고 모든 신념들을 버릴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공격은 확실히 권위와 전통에 대한 공격으로 의도되었다. 그 공격은 당시 유행인 권위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 및 학파들의 전통에 대항하는 투쟁의 일부였다. 스스로 진리를 감지할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그런 권위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자신들의 인식론을 권위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종교적 권위의 자연이나 신()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깊은 이유 때문에.

그들이 지닌 개인주의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히 우리들이 지닌 비판적 판단력의 여러분이나 나의 판단력 도움을 받지 않았다; 아마도 그렇게 하면 혹시 주관주의와 독단가 발생할 것이라고 그들이 아마도 느꼈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들이 권위를 통한 생각의 포기를 많이 원했을지라도 그들은 틀림없이 그 생각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한 가지 권위를 아리스토텔레스와 성경의 권위 또 다른 권위로 갈음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각자 새로운 권위의 도움을 받았다; 전자(前者)감각의 권위, 후자(後者)지성의 권위.

이것은 그들이 다음과 같은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우리가 지닌 지식이 모두 개인적인 변덕이자 독단임을 암시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지닌 지식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일임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문제는 오래 전에 알려지고 해결되었다; 첫째로 크세노파네스(Xenophanes)에 의하여 그 다음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의 의하여 그리고 소크라테스에 의하여 (메논[Meno]보다는 변명[Apology]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 알려지고 해결된 듯이 보인다. 해답은 우리 모두가 단독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오류를 저지를 것이고 흔히 정말로 오류를 저지르지만, 오류와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관한 바로 이 관념이 또 다른 관념을 우리가 미치지 못할 표준인 객관적 진리라는 관념 포함하고 있다는 깨달음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오류가능성의 교설은 인식론적 비관론의 일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이 교설은, 자주 우리가 커다란 격차로 진리를 놓칠지라도 우리가 진리인 객관적 진리를 탐구할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교설은 우리가 진리를 존중한다면 우리의 오류를 끈질기게 추적함에 의하여 진리를 탐구해야함을 의미한다: 지칠 줄 모르는 합리적 비판, 그리고 자기-비판에 의하여 진리를 탐구해야함을 의미한다.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Erasmus of Rotterdam)는 소크라테스의 이 교설을 신중할지라도 중요한 교설인 네 자신을 알라, 그리하여 얼마나 네가 아는 게 없는지를 스스로 인정하라!’ 부활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 교설은 진리가 명백하다는 믿음에 의하여, 그리고 루터(Luther)와 칼뱅(Calvin), 베이컨과 데카르트에 의하여 다른 방식으로 예시되고 가르쳐진 새로운 자기 확신에 의하여 제거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데카르트의 회의(懷疑)와 소크라테스나 에라스무스 혹은 몽테뉴(Montaigne)의 회의(懷疑) 사이의 차이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를 의심하여 지식이나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을 단호하게 거부한 반면,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소유함으로써 끝났을 따름이다; 이유인즉 자신의 보편적 의심으로 인하여 자신이 신()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될 것인데 그것이 터무니없다고 그가 발견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의심이 터무니없음을 증명한 다음에, 우리는 안전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현명할 있다고 이성을 자연스럽게 고찰하여, 그 근원이 신()인 분명하고도 두드러진 관념들과 그 근원이 우리 자신의 불순한 상상인 모든 다른 관념들을 구분함에 의하여 그는 결론을 내린다. 데카르트의 회의(懷疑), 진리의 기준을 확립하기 위한 그리고 그 기준으로써 지식과 지혜를 확보하는 방법을 확립하기 위한 산파술적 도구일 뿐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변명(Apology)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에게, 지혜의 본질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를 인식하는 것.

쿠사의 니콜라우스(Nicolas of Cusa)와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Erasmus of Rotterdam)(그는 소크라테스를 언급한다) 부활시켰던 것이 본질적인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관한 이 교설이었다; 그리고 니콜라우스와 에라스무스, 몽테뉴와 로크 및 볼테르, 뒤를 이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버트런드 러셀이 관용에 관한 교설의 토대를 만든 것이 이 인본주의적교설이었다 (밀튼이 의지했던 낙관론적 교설인 진리는 승리할 것이라는 교설과 대비되는). ‘관용이란 무엇인가?’라고 볼테르는 자신의 저서 철학 사전(Philosophical Dictionary)에서 묻는다; 그리고 그는 답변한다: ‘관용은 우리가 지닌 인간성의 필연적 결과이다. 우리 모두는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실수하기 쉽다; 그러므로 서로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자. 이것이 자연권의 첫째 원리이다.’ (더 최근에 오류가능성에 관한 교설은 정치적 자유론의 토대가 되었다; 다시 말해서, 강압으로부터의 자유. F. A. 하이에크[Hayek]자유의 헌법[The Constitution of Liberty], 특히 22쪽과 29쪽 참조.)

 

XI

베이컨과 데카르트는 관찰과 이성을 새로운 권위로서 세웠는데, 그들은 모든 개별인간 내부에 그것들을 세웠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진리에 관하여 권위를 지닌 상위 부분의 인간과 베이컨의 관찰, 데카르트의 지성 하위 부분의 인간으로 양분했다. 우리들의 평범한 자아인 우리들 내부의 인간의 원죄(原罪: the Old Adam)인 것은 이 하위 부분이다. 이유인즉 진리가 명백하다면, 오류에 대해서 오로지 책임이 있는 사람은 항상 우리자신이기 때문이다. 비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우리의 편견, 우리의 태만, 우리의 고집과 함께 우리다; 우리가 지닌 무지(無知)의 근원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음 두 부분으로 분리된다; 인간적 부분인 우리 자신, 즉 우리가 지닌 오류가능한 견해(doxα), 우리가 지닌 오류의, 그리고 우리가 지닌 무지(無知)의 근원인 부분; 그리고 감각이나 지성과 같은 초인간적 부분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그 권위가 거의 신적(神的)인 실재적 지식(epistēmē)의 근원.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인즉 데카르트의 물리학이, 여러 면에서 찬탄을 받을만할지라도, 틀렸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물리학은, 데카르트가 생각하기에 명백하고 뚜렷하여 틀림없이 진실인 관념에만 근거했다. 그리고 지식의 근원으로서의 감각의 권위에 관하여, 감각이 신뢰될 수 없다는 사실은 심지어 파메니데스(Parmenides) 이전 고대인들에게, 예를 들어 크세노파네스(Xenophanes)와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물론 데모크리토스(Democritus)와 플라톤에게도 알려졌다. (164쪽 이하와 비교하라.)

고대의 이 가르침이, 현상론자들과 실증주의자들을 포함하여 현대 경험주의자들에 의하여 거의 무시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이하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실증주의자들과 현상론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 대부분에서,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에서, 무시된다. 이유는 이러하다;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진것을 우리가 해석하는 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항상 우리 자신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우리의 감각은 진리를 말하지만, 예를 들어 우리의 감각이 우리에 말하는 것을 우리가 언어 규약적이고 인공적이며 불완전한 언어 표현하려고 시도할 때 우리는 오류를 저지를 것이다. 편견으로 물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결점이 있는 것은 우리의 언어적 기술(記述: description)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쓰는 인공적인 언어가 틀렸다. 그러나 그다음에, 중요한 의미에서, 우리의 언어도 또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우리의 언어가 여러 세대의 지혜와 경험을 구체화했다는 것과,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언어를 오용한다면 우리의 언어가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언어 또한 결코 우리를 속일 수 없는 진실한 권위자가 되었다. 우리가 유혹에 빠져서 언어를 헛되게 사용한다면, 뒤따르는 문제에 대하여 비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우리다. 이유인즉 언어는 질투하는 신()이어서 자신의 말을 헛되게 수용하는 사람을 죄가 없다고 믿지 않고 암흑과 혼돈 속으로 내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우리의 언어를 (혹은 언어의 오용[誤用]) 비난함에 의하여, 감각들의 (그리고 심지어 언어의) 신적(神的) 권위를 옹호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 권위와 우리 자신 사이의 격차를 넓히는 대가를 치르고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진실한 여신(女神)인 자연에 관한 권위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순수한 근원과, 우리가 지닌 불순하고 죄진 자아 사이의 격차: ()과 인간 사이의 격차. 이전에 지적된 바와 같이, 베이컨에게서 감지될 수 있다고 내가 믿는 자연의 진실성이라는 이 관념은 그리스인들로부터 유래한다; 이유인즉 그 관념이, 플라톤에 따르면 핀다로스(Pindar)에게서 비롯되는 자연과 인간 규약 사이의 고전적 대립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파메니데스(Parmenides)에게서 감지될 자연과 인간 규약 사이의 고전적 대립의 일부; 그리고 파메니데스에 의하여, 그리고 몇몇 소피스트에 의하여 (예를 들어, 히피아스[Hippias]에 의하여) 그리고 부분적으로 플라톤 자신에 의하여서도 신적(神的) 진리와 인간의 오류 혹은 심지어 허위 사이의 대립과 동일시되는 자연과 인간 규약 사이의 고전적 대립의 일부. 베이컨 이후에 그의 영향을 받아서 자연은 신성하고 진실하다는, 그리고 모든 오류나 거짓은 우리 자신이 지닌 인간적인 규약의 기만성에 기인한다는 관념은, 철학과 과학 그리고 정치의 역사에서 뿐 아니라 시각예술의 역사에서도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예를 들어 이 관념은 E. H. 곰브리치(Gombrich)예술과 환상(Art and Illusion)에서 인용된 자연, 진실성, 편견 그리고 규약에 관한 컨스터블(Constable) 매우 흥미로운 이론으로부터 밝혀질 것이다. 그 관념은 문학사에서, 그리고 심지어 음악사에서 또한 한 가지 역할을 수행했다.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5, 4-18, 1989년 루트리쥐 출판사, 칼 포퍼

 

 

 

 

 

 

 

 

 

 

 

 

 

 

 

 

 

 

 

 

I

The problem which I wish to examine afresh in this lecture, and which I hope not only to examine but to solve, may perhaps be described as an aspect of the old quarrel between the British and the Continental schools of philosophy the quarrel between the classical empiricism of Bacon, Locke, Berkeley, Hume, and Mill, and the classical rationalism or intellectualism of Descartes. Spinoza, and Leibniz (이 문장에서 Descartes 뒤의 마침표는 쉼표로 바뀌어야 한다. 원문의 오류로 보인다. 역자 주). In this quarrel the British school insisted that the ultimate source of all knowledge was observation, while the Continental school insisted that it was the intellectual intuition of clear and distinct ideas.

Most of these issues are still very much alive. Not only has empiricism, still the ruling doctrine in England, conquered the United States, but it is now widely accepted even on the European Continent as the true theory of scientific knowledge. Cartesian intellectualism, alas, has been only too often distorted into one or another of the various forms of modern irrationalism.

In this lecture I shall try to show of the two schools of empiricism and rationalism that their differences are much smaller than their similarities, and that both are mistaken. I hold that they are mistaken although I am myself an empiricist and a rationalist of sorts. But I believe that, though observation and reason have each an important role to play, these roles hardly resemble those which their classical defenders attributed to them. More especially, I shall try to show that neither observation nor reason can be described as a source of knowledge, in the sense in which they have been claimed to be sources of knowledge, down to the present day.

 

II

Our problem belongs to the theory of knowledge, or to epistemology, reputed to be the most abstract and remote and altogether irrelevant region of pure philosophy. Hume, for example, one of the greatest thinkers in the field, predicted that, because of the remoteness and abstractness and practical irrelevance of some of his results, none of his readers would believe in them for more than an hour.

Kant's attitude was different. He thought that the problem 'What can I know?' was one of the three most important questions a man could ask. Bertrand Russell, in spite of being closer to Hume in philosophic temperament, seems to side in this matter with Kant. And I think Russell is right when he attributes to epistemology practical consequences for science, ethics, and even politics. For he says that epistemological relativism, or the idea that there is no such thing as objective truth, and epistemological pragmatism, or the idea that truth is the same as usefulness, are closely linked with authoritarian and totalitarian ideas. (Cf. Let the People Think, 1941, pp. 77 ff.)

Russell's views are of course disputed. Some recent philosophers have developed a doctrine of the essential impotence and practical irrelevance of all genuine philosophy, and thus, one can assume, of epistemology. Philosophy, they say, cannot by its very nature have any significant consequences, and so it can influence neither science nor politics. But I think that ideas are dangerous and powerful things, and that even philosophers have sometimes produced ideas. Indeed, I do not doubt that this new doctrine of the impotence of all philosophy is amply refuted by the facts.

The situation is really very simple. The belief of a liberal the belief in the possibility of a rule of law, of equal justice, of fundamental rights, and a free society can easily survive the recognition that judges are not omniscient and may make mistakes about facts and that, in practice, absolute justice is never fully realized in any particular legal case. But the belief in the possibility of a rule of law, of justice, and of freedom, can hardly survive the acceptance of an epistemology which teaches that there are no objective facts; not merely in this particular case, but in any other case; and that the judge cannot have made a factual mistake because he can no more be wrong about the facts than he can be right.

 

III

The great movement of liberation which started in the Renaissance and led through the many vicissitudes of the reformation and the religious and revolutionary wars to the free societies in which the Englishspeaking peoples are privileged to live, this movement was inspired throughout by an unparalleled epistemological optimism: by a most optimistic view of man's power to discern truth and to acquire knowledge.

At the heart of this new optimistic view of the possibility of knowledge lies the doctrine that truth is manifest. The truth may perhaps be veiled. But it may reveal itself.󰊔 And if it does not

 

󰊔 See my mottoes: Spinoza, Of God, Man, and Human Happiness, ch. 15 (parallel passages are: Ethics, ii, scholium to propos. 43: 'Indeed, as light manifests itself and darkness, so with truth: it is its own standard, and that of falsity.' De intell, em., 35, 36; letter 76[74], end of para. 5[7]; Locke, Cond. Underst., 3. (Cp. also Romans, i, 19, and see ch. 17, below.)

 

reveal itself, it may be revealed by us. Removing the veil may not be easy. But once the naked truth stands revealed before our eyes, we have the power to see it, to distinguish it from falsehood, and to know that it is truth.

The birth of modern science and modern technology was inspired by this optimistic epistemology whose main spokesmen were Bacon and Descartes. They taught that there was no need for any man to appeal to authority in matters of truth because each man carried the sources of knowledge in himself; either in his power of senseperception which he may use for the careful observation of nature, or in his power of intellectual intuition which he may use to distinguish truth from falsehood by refusing to accept any idea which is not clearly and distinctly perceived by the intellect.

Man can know: thus he can be free. This is the formula which explains the link between epistemological optimism and the ideas of liberalism.

This link is paralleled by the opposite link. Disbelief in the power of human reason, in man's power to discern the truth, is almost invariably linked with distrust of man. Thus epistemological pessimism is linked, historically, with a doctrine of human depravity, and it tends to lead to the demand for the establishment of powerful traditions and the entrenchment of a powerful authority which would save man from his folly and his wickedness. (There is a striking sketch of this theory of authoritarianism, and a picture of the burden carried by those in authority, in the story of The Grand Inquisitor in Dostoievsky's The Brothers Karamazov.)

The contrast between epistemological pessimism and optimism may be said to be fundamentally the same as that between epistemological traditionalism and rationalism. (I am using the latter term in its wider sense in which it is opposed to irrationalism, and in which it covers not only Cartesian intellectualism but empiricism also.) For we can interpret traditionalism as the belief that, in the absence of an objective discernible truth, we are faced with the choice accepting the authority of tradition, and chaos; while rationalism has, of course, always claimed the right of reason and of empirical science to criticize, and to reject, any tradition, and any authority, as being based on sheer unreason or prejudice or accident.

 

IV

It is a disturbing fact that even an abstract study like pure epistemology is not as pure as one might think (and as Aristotle believed) but that its ideas may, to a large extent, be motivated and unconsciously inspired by political hopes and by Utopian dreams. This should be a warning to the epistemologist. What can he do about it? As an epistemologist I have only one interest to find out the truth about the problems of epistemology, whether or not this truth fits in with my political ideas. But am I not liable to be influenced, unconsciously, by my political hopes and beliefs?

It so happens that I am not only an empiricist and a rationalist of sorts but also a liberal (in the English sense of this term); but just because I am a liberal, I feel that few things are more important for a liberal than to submit the various theories of liberalism to a searching critical examination.

While I was engaged in a critical examination of this kind I discovered the part played by certain epistemological theories in the development of liberal ideas; and especially by the various forms of epistemological optimism. And I found that, as an epistemologist, I had to reject these epistemological theories as untenable. This experience of mine may illustrate the point that our dreams and our hopes need not necessarily control our results, and that, in searching for the truth, it may be our best plan to start by criticizing our most cherished beliefs. This may seem to some a perverse plan. But it will not seem so to those who want to find the truth and are not afraid of it.

 

V

In examining the optimistic epistemology inherent in certain ideas of liberalism, I found a cluster of doctrines which, although often accepted implicitly, have not, to my knowledge, been explicitly discussed or even noticed by philosophers or historians. The most fundamental of them is one which I have already mentioned the doctrine that truth is manifest. The strangest of them is the conspiracy theory of ignorance, which is a curious outgrowth from the doctrine of manifest truth.

By the doctrine that truth is manifest I mean, you will recall, the optimistic view that truth, if put before us naked, is always recognizable as truth. Thus truth, if it does not reveal itself, has only to be unveiled, discovered. Once this is done, there is no need for further argument. We have been given eyes to see the truth, and the 'natural light' of reason to see it by.

This doctrine is at the heart of the teaching of both Descartes and Bacon. Descartes based his optimistic epistemology on the important theory of the veracitas dei. What we clearly and distinctly see to be true must indeed be true; for otherwise God would be deceiving us. Thus the trustfulness of God must make truth manifest.

In Bacon we have a similar doctrine. It might be described as the doctrine of the veracitas naturae, the truthfulness of Nature. Nature is an open book. He who reads it with a pure mind cannot misread it. Only if his mind is poisoned by prejudice can he fall into error.

This last remark shows that the doctrine that truth is manifest creates the need to explain falsehood. Knowledge, the possession of truth, need not be explained. But how can we ever fall into error if truth is manifest? The answer is: through our own sinful refusal to see the manifest truth; or because our minds harbour prejudices inculcated by education and tradition, or other evil influences which have perverted our originally pure and innocent minds. Ignorance may be the work of powers conspiring to keep us in ignorance, to poison our minds by filling them with falsehood, and to blind our eyes so that they cannot see the manifest truth. Such prejudices and such powers, then, are sources of ignorance.

The conspiracy theory of ignorance is fairly well known in its Marxian form as the conspiracy of a capitalist press that perverts and suppresses truth and fills the workers' minds with false ideologies. Prominent among these, of course, are the doctrines of religion. It is surprising to find how unoriginal this Marxist theory is. The wicked and fraudulent priest who keeps the people in ignorance was a stock figure of the eighteenth century and, I am afraid, one of the inspirations of liberalism. It can be traced back to the protestant belief in the conspiracy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and also to the beliefs of those dissenters who held similar views about the Established Church. (Elsewhere I have traced the prehistory of this belief back to Plato's uncle Critias; see chapter 8, section ii, of my Open Society.)

This curious belief in a conspiracy is the almost inevitable consequence of the optimistic belief that truth, and therefore goodness, must prevail if only truth is given a fair chance. 'Let her and falsehood grapple; who ever knew Truth put to the worse, in a free and open encounter?' (Areopagitica. Compare the French proverb, La vérité triomphe toujours.) So when Milton's Truth was put to the worse, the necessary inference was that the encounter had not been free and open: if the manifest truth does not prevail, it must have been maliciously suppressed. One can see that an attitude of tolerance which is based upon an optimistic faith in the victory of truth may easily be shaken. (See J. W. N. Watkins on Milton in The Listener, 22nd January 1959.) For it is liable to turn into a conspiracy theory which would be hard to reconcile with an attitude of tolerance.

I do not assert that there was never a grain of truth in this conspiracy theory. But in the main it was a myth, just as the theory of manifest truth from which it grew was a myth.

For the simple truth is that truth is often hard to come by, and that once found it may easily be lost again. Erroneous beliefs may have an astonishing power to survive, for thousands of years, in defiance of experience, with or without the aid of any conspiracy. The theory of science, and especially of medicine, could furnish us with a number of good examples. One example is, indeed, the general conspiracy theory itself. I mean the erroneous view that whenever something evil happens it must be due to the evil will of an evil power. Various forms of this view have survived down to our own day.

Thus the optimistic epistemology of Bacon and of Descartes cannot be true. Yet perhaps the strangest thing in this story is that this false epistemology was the major inspiration of an intellectual and moral revolution without parallel in history. It encouraged men to think for themselves. It gave them hope that through knowledge they might free themselves and others from servitude and misery. It made modern science possible. It became the basis of the fight against censorship and the suppression of free thought. It became the basis of the nonconformist conscience, of individualism, and of a new sense of man's dignity; of a demand for universal education, and of a new dream of a free society. It made men feel responsible for themselves and for others, and eager to improve not only their own condition but also that of their fellow men. It is a case of a bad idea inspiring many good ones.

 

VI

This false epistemology, however, has also led to disastrous consequences. The theory that truth is manifest that it is there for everyone to see, if only he wants to see it this theory is the basis of almost every kind of fanaticism. For only the most depraved wickedness can refuse to see the manifest truth; only those who have reason to fear truth conspire to suppress it.

Yet the theory that truth is manifest not only breeds fanatics men possessed by the conviction that all those who do not see the manifest truth must be possessed by the devil but it may also lead, though perhaps less directly than does a pessimistic epistemology, to authoritarianism. This is so, simply, because truth is not manifest, as a rule. The allegedly manifest truth is therefore in constant need, not only of interpretation and affirmation, but also of reinterpretation and reaffirmation. An authority is required to pronounce upon, and lay down, almost from day to day, what is to be the manifest truth, and it may learn to do so arbitrarily and cynically. And many disappointed epistemologists will turn away from their own former optimism and erect a resplendent authoritarian theory on the basis of a pessimistic epistemology. It seems to me that the greatest epistemologist of all, Plato, exemplifies this tragic development.

 

VII

Plato plays a decisive part in the prehistory of Descartes' doctrine of the veracitas dei the doctrine that our intellectual intuition does not deceive us because God is truthful and will not deceive us; or in other words, the doctrine that our intellect is a source of knowledge because God is a source of knowledge. This doctrine has a long history which can easily be traced back at least to Homer and Hesiod.

To us, the habit of referring to one's sources would seem natural in a scholar or an historian, and it is perhaps a little surprising to find that this habit stems from the poets; but it does. The Greek poets refer to the sources of their knowledge. The sources are divine. They are the Muses. ' ... the Greek bards', Gilbert Murray observes (The Rise of the Greek Epic, 3rd edn., 1924, p.96), 'always owe, not only what we should call their inspiration, but their actual knowledge of facts to the Muses. The Muses "are present and know all things" ... Hesiod ... always explains that he is dependent on the Muses for his knowledge. Other sources of knowledge are indeed recognized .... But most often he consults the Muses .... So does Homer for such subjects as the Catalogue of the Greek army.'

As this quotation shows, the poets were in the habit of claiming not only divine sources of inspiration, but also divine sources of knowledge divine guarantors of the truth of their stories.

Precisely the same two claims were raised by the philosophers Heraclitus and Parmenides. Heraclitus, it seems, sees himself as a prophet who 'talks with raving mouth,... possessed by the god' by Zeus, the source of all wisdom (DK,󰊕 B 92, 32;cf.93, 41, 64, 50). And Parmenides, one could almost say, forms the missing link between Homer or Hesiod on the one side and Descartes on the other. His guiding star and inspiration is the goddess Dikē, described by Heraclitus (DK, B 28) as the guardian of truth. Parmenides describes her as the guardian and keeper of the keys of truth, and as the source of all his knowledge. But Parmenides and Descartes have more in common than the doctrine of divine veracity. For example, Parmenides is told by his divine guarantor of truth that in order to distinguish between truth and falsehood, he must rely upon the intellect alone, to the exclusion of the senses of sight, hearing, and taste. (Cf. Heraclitus, B 54, 123; 88 and 126 hint at unobservable changes yielding observable opposites.) And even the principle of his physical theory which, like Descartes, he founds upon his

 

󰊕 DK = DielsKranz, Fragmente der Vorsokratiker.

 

intellectualist theory of knowledge, is the same as that adopted by Descartes: it is the impossibility of a void, the necessary fullness of the world.

In Plato's Ion a sharp distinction is made between divine inspiration the divine frenzy of the poet and the divine sources or origins of true knowledge. (The topic is further developed in the Phaedrus, especially from 259c on; and in 275bc Plato even insists, as Harold Cherniss pointed out to me, on the distinction between questions of origin and of truth.) Plato grants that the poets are inspired, but he denies to them any divine authority for their alleged knowledge of facts. Nevertheless, the doctrine of the divine source of our knowledge plays a decisive part in Plato's famous theory of anamnēsis which in some measure grants to each man the possession of divine sources of knowledge. (The knowledge considered in this theory is knowledge of the essence or nature of a thing rather than of a particular historical fact.) According to Plato's Meno (81bd) there is nothing which our immortal soul does not know, prior to our birth. For as all natures are kindred and akin, our soul must be akin to all natures. Accordingly it knows them all: it knows all things. (On kinship and knowledge see also Phaedo, 79d; Republic, 611d; Laws, 899d.) In being born we forget; but we may recover our memory and our knowledge, though only partially: only if we see the truth again shall we recognize it. All knowledge is therefore recognition recalling or remembering the essence or true nature that we once know. (Cp. Phaedo, 72e ff.; 75e.)

This theory implies that our soul is in a divine state of omniscience as long as it dwells, and participates, in a divine world of ideas or essences or natures, prior to being born. The birth of a man is his fall from grace; it is his fall from a natural or divine state of knowledge; and it is thus the origin and cause of his ignorance. (Here may be the seed of the idea that ignorance is sin, or at least related to sin; cp. Phaedo, 76d.)

It is clear that there is a close link between this theory of anamnēsis and the doctrine of the divine origin or source of our knowledge. At the same time, there is also a close link between the theory of anamnēsis and the doctrine of manifest truth: if, even in our depraved state of forgetfulness, we see the truth, we cannot but recognize it as the truth. So, as the result of anamnēsis, truth is restored to the status of that which is not forgotten and not concealed (alēthēs): it is that which is manifest.

Socrates demonstrates this in a beautiful passage of the Meno by helping an uneducated young slave to 'recall' the proof of a special case of the theorem of Pythagoras. Here indeed is an optimistic epistemology, and the root of Cartesianism. It seems that, in the Meno, Plato was conscious of the highly optimistic character of his theory, for he describes it as a doctrine which makes men eager to learn, to search, and to discover.

Yet disappointment must have come to Plato; for in the Republic (and also in the Phaedrus) we find the beginnings of a pessimistic epistemology. In the famous story of the prisoners in the cave (514 ff.) he shows that the world of our experience is only a shadow, a reflection, of the real world. And he shows that even if one of the prisoners should escape from the cave and face the real world, he would have almost insuperable difficulties in seeing and understanding it to say nothing of his difficulties in trying to make those understand who stayed behind. The difficulties in the way of an understanding of the real world are all but superhuman, and only the very few, if anybody at all, can attain to the divine state of understanding the real world the divine state of true knowledge, of epistēmē.

This is a pessimistic theory with regard to almost all men, though not with regard to all. (For it teaches that truth may be attained by a few the elect. With regard to these it is, one might say, more wildly optimistic than even the doctrine that truth is manifest.) The authoritarian and traditionalist consequences of this pessimistic theory are fully elaborated in the Laws.

Thus we find in Plato the first transition from an optimist to a pessimistic epistemology. Each of these forms a basis for one of two diametrically opposed philosophies of the state and of society: on the one hand an antitraditionalist, antiauthoritarian, revolutionary and Utopian rationalism of the Cartesian kind, and on the other hand an authoritarian traditionalism.

This development may well be connected with the fact that the idea of an epistemological fall of man can be interpreted not only in the sense of the optimistic doctrine of anamnēsis, but also in a pessimistic sense.

In this latter interpretation, the fall of man condemns all mortals or almost all to ignorance. I think one can discern in the story of the cave (and perhaps also in the story of the fall of the city, when the Muses and their divine teaching are neglected; see Republic, 546d) an echo of an interesting older form of this idea. I have in mind Parmenides' doctrine that the opinions of mortals are delusions, and the results of a misguided convention. (This may stem from Xenophanes' doctrine that all human knowledge is guesswork, and that his own theories are, at best, merely similar to the truth.󰊖) The misguided convention is a linguistic one: it consists in giving names to what is nonexistent. The idea of an epistemological fall of man can perhaps be found, as Karl Reinhardt suggested, in those words of the goddess that mark the transition from the way of truth to the way of delusive opinion.󰊗

 

󰊖 Xenophanes' fragment here alluded to is DK, B 35, quoted here in ch. 5, section xii, below. For the idea of truthlikeness of a doctrine that partly corresponds to the facts (and so may be 'taken for real', as Parmenides has it here) see especially pp. 236 f., below, where verisimilitude is contrasted with probability, and the Addenda 3, 4, 6, and 7.

󰊗 See Karl Reinhardt, Parmenides, 2nd ed., p. 26; see also pp. 511 for the text of Parmenides, DK, B 1: 3132. which are the first two lines quoted here. My third line is Parmenides, DK, B 8:60, cf. Xenophanes, B 35. My fourth line is Parmenides, DK, B 8:61.

 

 

But you also shall learn how it was that delusive opinion,

Bound to be taken for real, was forcing its way through

all things...

 

Now of this world thus arranged to seem wholly like truth

I shall tell you;

Then you will be nevermore led astray by the notions

of mortals.

 

Thus though the fall affects all men, the truth may be revealed to the elect by an act of grace even the truth about the unreal world of the delusions, opinions, conventional notions and decisions, of mortals: the unreal world of appearance, destined to be accepted, and to be approved of, as real.󰊘

 

󰊘 It is interesting to contrast this pessimistic view of the necessity of error with the optimism of Descartes, or of Spinoza who scorns (letter 76[74], paragraph 5[7]) those 'who dream of an impure spirit inspiring us with false ideas which are similar to true ones (veris similes)'; see also ch. 10, section xiv, and Addendum 6, below.

 

The revelation received by Parmenides, and his conviction that a few may reach certainty about both the unchanging world of eternal reality and the unreal and changing world of verisimilitude and deception, were two of the main inspirations of Plato's philosophy. It was a theme to which he was for ever returning, oscillating between hope, despair, and resignation.

 

VIII

Yet what interests us here is Plato's optimistic epistemology, the theory of anamnēsis in the Meno. It contains, I believe, not only the germs of Descartes' intellectualism, but also the germs of Aristotle's and especially of Bacon's theories of induction.

For Meno's slave is helped by Socrates' judicious questions to remember or recapture the forgotten knowledge which his soul possessed in its prenatal state of omniscience. It is, I believe, this famous Socratic method, called in the Theaetetus the art of midwifery or maieutic, to which Aristotle alluded when he said (Metaphysics, 1078b1733; see also 987b1) that Socrates was the inventor of the method of induction.

Aristotle, and also Bacon, I wish to suggest, meant by 'induction' not so much the inferring of universal laws from particular observed instances as a method by which we are guided to the point whence we can intuit or perceive the essence or the true nature of a thing.󰊙 But this, as we have seen, is precisely the aim of Socrates' maieutic: its aim is to help or lead us to anamnēsis; and anamnēsis is the power of seeing the true nature or essence of a thing, the nature or essence with which we were acquainted before the birth, before our fall from grace. Thus the aims of the two, maieutic and induction, are the same. (Incidentally, Aristotle taught that the result of an induction the intuition of the essence was to be expressed by a definition of that essence.)

 

󰊙 Aristotle meant by 'induction' (epagōgē) at least two different things which he sometimes links together. One is a method by which we are 'led to intuit the general principle' (Anal. Pr. 67a 22f., on anamnēsis in the Meno; An. Post., 71a 7). The other (Topics 105a 13, 156a 4; 157a 34; Anal. Posteriora 78a 35; 81b 5 ff.) is a method of adducing (particular) evidence positive evidence rather than critical evidence or counterexamples. The first method seems to me the older, and the one which can be better connected with Socrates and his maieutic method of criticism and counterexamples. The second method seems to originate in the attempt to systemize induction logically or, as Aristotle (Anal. Priora, 68b 15 ff.). puts it, to construct a valid 'syllogism which springs out of induction'; this, to be valid, must of course be a syllogism of perfect or complete induction (complete enumeration of instances); and ordinary induction in the sense of the second method here mentioned is just a weakened (and invalid) form of this valid syllogism. (Cp. my Open Society, note 33 to ch. 11.)

 

Now let us look more closely at the two procedures. The maieutic art of Socrates consists, essentially, in asking questions designed to destroy prejudices; false beliefs which are often traditional or fashionable beliefs; false answers, given in the spirit of ignorant cocksureness. Socrates himself does not pretend to know. His attitude is described by Aristotle in the words, 'Socrates raised questions but gave no answers; for he confessed that he did not know.' (Sophist. El., 183b7; cp. Theaetetus, 150cd, 157c, 161b.) Thus Socrates' maieutic is not an art that aims at teaching any belief, but one that aims at purging or cleansing (cf. the allusion to the Amphidromia in Theaetetus 160e; cp. Phaedo 67b, 69b/c) the soul of its false beliefs, its seeming knowledge, its prejudices. It achieves this by teaching us to doubt our own convictions.

Fundamentally the same procedure is part of Bacon's induction.

 

IX

The framework of Bacon's theory of induction is this. He distinguishes in the Novum Organum between a true method and a false method. His name for the true method, 'interpretatio naturae' is ordinarily translated by the phrase 'interpretation of nature', and his name for the false method, 'anticipatio mentis', by 'anticipation of the mind'. Obvious as these translation may seem, they are misleading. What Bacon means by 'interpretatio naturae' is, I suggest, the reading of, or better still, the spelling out of, the book of Nature. (Galileo, in a famous passage of his Il saggiatore, section 6, of which Mario Bunge has kindly reminded me, speaks of 'that great book which lies before our eyes I mean the universe'; cf. Descartes' Discourse, section 1.)

The term 'interpretation' has in modern English a decidedly subjectivistic or relativistic tinge. When we speak of Rudolf Serkin's interpretation of the Emperor Concerto, we imply that there are different interpretations, but that this one is Serkin's. We do not of course wish to imply that Serkin's is not the best, the truest, the nearest to Beethoven's intentions. But although we may be unable to imagine that there is a better one, by using the term 'interpretation' we imply that there are other interpretations or readings, leaving the question open whether some of these other readings may, or may not, be equally true.

I have here used the word 'reading' as a synonym for 'interpretation', not only because the two meanings are so similar but also because 'reading' and 'to read' have suffered a modification analogous to that of 'interpretation' and 'to interpret'; except that in the case of 'reading' both meanings are still in full use. In the phrase 'I have read John's letter', we have the ordinary, nonsubjectivist meaning. But 'I read this passage of John's letter quite differently' or perhaps 'My reading of this passage is very different' may illustrate a later, a subjectivistic or relativistic, meaning of the word 'reading'.

I assert that the meaning of 'interpret' (though not in the sense of 'translate') has changed in exactly the same way, except that the original meaning perhaps 'reading aloud for those who cannot read themselves' has been practically lost. Today even the phrase 'the judge must interpret the law' means that he has a certain latitude in interpreting it; while in Bacon's time it would have meant that the judge had the duty to read the law as it stood, and to expound it and to apply it in the one and only right way. Interpretatio juris (or legis) means either this or else the expounding of the law to the layman (Cp. Bacon, De Augmentis VI, xlvi; and T. Manley, The Interpreter: ... Obscure Works and Terms used in the Lawes of this Realm, 1672.) It leaves the legal interpreter no latitude; at any rate no more than would be allowed to a sworn interpreter translating a legal document.

Thus the translation 'the interpretation of nature' is misleading; it should be replaced by something like 'the (true) reading of nature'; analogous to 'the (true) reading of the law'. And I suggest that 'reading the book of Nature as it is' or better still 'spelling out the book of Nature' is what Bacon meant. The point is that the phrase should suggest the avoidance of all interpretation in the modern sense, and that it should not contain, more especially, any suggestion of an attempt to interpret what is manifest in nature in the light of nonmanifest causes or of hypotheses; for all this would be an anticipatio mentis, in Bacon's sense. (It is a mistake, I think, to ascribe to Bacon the teaching that hypotheses or conjectures may result from his method of induction; for Baconian induction results in certain knowledge rather than in conjecture.)

As to the meaning of 'anticipatio mentis' we have only to quote Locke: 'men give themselves up to the first anticipation of their minds' (Conduct Underst., 26). This is, practically, a translation from Bacon; and it makes it amply clear that 'anticipatio' means 'prejudice' or even 'superstition'. We can also refer to the phrase 'anticipatio deorum' which means harbouring naïve or primitive or superstitious views about the gods. But to make matters still more obvious: 'prejudice' (cp. Descartes, Princ. I, 50) derives from a legal term, and according to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it was Bacon who introduced the verb 'to prejudge' into the English language, in the sense of 'to judge adversely in advance' that is, in violation of the judge's duty.

Thus the two methods are (1) 'the spelling out of the open book of Nature', leading to knowledge or epistēmē, and (2) 'the prejudice of the mind that wrongly prejudges, and perhaps misjudges, Nature', leading to doxα, or mere guesswork, and to the misreading of the book of Nature. This latter method, rejected by Bacon, is in fact a method of interpretation, in the modern sense of the word. It is a method of conjecture or hypothesis (a method of which, incidentally, I happen to be a convinced advocate.)

How can we prepare ourselves to read the book of Nature properly or truly? Bacon's answer is: by purging our minds of all anticipations or conjectures or guesses or prejudices (Nov. Org. i, 68, 60 end). There are various things to be done in order so to purge our minds. We have to get rid of all sorts of 'idols', or generally held false beliefs; for these distort our observations (Nov. Org. i, 97). But we have also, like Socrates, to look out for all sorts of counterinstances by which to destroy our prejudices concerning the kind of thing whose true essence or nature we wish to ascertain. Like Socrates, we must, by purifying our intellects, prepare our souls to face the eternal light of essences or natures (cf. St Augustine, Civ. Dei, VIII, 3): our impure prejudices must be exorcized by the invocation of counterinstances (Nov. Org. ii, 16 ff.)

Only after our souls have been cleansed in this way may we begin the work of spelling out diligently the open book of Nature, the manifest truth,

In view of all this I suggest that Baconian (and also Aristotelian) induction is the same, fundamentally, as Socratic maieutic; that is to say, the preparation of the mind by cleansing it of prejudices, in order to enable it to recognize the manifest truth, or to read the open book of Nature.

Descartes' method of systematic doubt is also fundamentally the same: it is a method of destroying all false prejudices of the mind, in order to arrive at the unshakable basis of selfevident truth.

We can now see more clearly how, in this optimistic epistemology, the state of knowledge is the natural or the pure state of man, the state of the innocent eye which can see the truth, while the state of ignorance has its source in the injury suffered by the innocent eye in man's fall from grace; an injury which can be partially healed by a course of purification. And we can see more clearly why this epistemology, not only in Descartes' but also in Bacon's form, remains essentially a religious doctrine in which the source of all knowledge is divine authority.

One might say that, encouraged by the divine 'essence' or divine 'natures' of Plato, and by the traditional Greek opposition between the truthfulness of nature and the deceitfulness of manmade convention, Bacon substitutes, in his epistemology, 'Nature' for 'God'. This may be the reason why we have to purify ourselves before we may approach the goddess Natura: when we have purified our minds, even our sometimes unreliable senses (held by Plato to be hopelessly impure) will be pure. The source of knowledge must be kept pure, because any impurity may become a source of ignorance.

 

X

In spite of the religious character of their epistemologies, Bacon's and Descartes' attack upon prejudice, and upon traditional beliefs which we carelessly or recklessly harbour, are clearly antiauthoritarian and antitraditionalist. For they require us to shed all beliefs except those whose truth we have perceived ourselves. And their attacks were certainly intended to be attacks upon authority and tradition. They were part of the war against authority which it was the fashion of the time to wage, the war against the authority of Aristotle and the tradition of the schools. Men do not need such authorities if they can perceive the truth themselves.

But I do not think that Bacon and Descartes succeeded in freeing their epistemologies from authority; not so much because they appealed to religious authority to Nature or to God but for an even deeper reason.

In spite of their individualistic tendencies, they did not dare to appeal to our critical judgment to your judgment, or to mine; perhaps because they felt that this might lead to subjectivism and to arbitrariness. Yet whatever the reason may have been, they certainly were unable to give up thinking in terms of authority, much as they wanted to do so. They could only replace one authority that of Aristotle and the Bible by another. Each of them appealed to a new authority; the one to the authority of senses, and the other to the authority of the intellect.

This means that they failed to solve the great problem: How can we admit that our knowledge is a human an all too human affair, without at the same time implying that it is all individual whim and arbitrariness?

Yet this problem had been seen and solved long before; first, it appears, by Xenophanes, and then by Democritus, and by Socrates (the Socrates of the Apology rather than of the Meno). The solution lies in the realization that all of us may and often do err, singly and collectively, but that this very idea of error and human fallibility involves another one the idea of objective truth: the standard which we may fall short of. Thus the doctrine of fallibility should not be regarded as part of a pessimistic epistemology. This doctrine implies that we may seek for truth, for objective truth, though more often than not we may miss it by a wide margin. And it implies that if we respect truth, we must search for it by persistently searching for our errors: by indefatigable rational criticism, and selfcriticism.

Erasmus of Rotterdam attempted to revive this Socratic doctrine the important though unobtrusive doctrine, 'Know thyself, and thus admit to thyself how little thou knowest!' Yet this doctrine was swept away by the belief that truth is manifest, and by the new selfassurance exemplified and taught in different ways by Luther and Calvin, by Bacon and Descartes.

It is important to realize, in this connection, the difference between Cartesian doubt and the doubt of Socrates, or Erasmus, or Montaigne. While Socrates doubts human knowledge or wisdom, and remains firm in his rejection of any pretension to knowledge or wisdom, Descartes doubts everything but only to end up with the possession of absolutely certain knowledge; for he finds that his universal doubt would lead him to doubt the truthfulness of God, which is absurd. Having proved that universal doubt is absurd, he concludes that we can know securely, that we can be wise by distinguishing, in the natural light of reason, between clear and distinct ideas whose source is God, and all other ideas whose source is our own impure imagination. Cartesian doubt, we see, is merely a maieutic instrument for establishing a criterion of truth and, with it, a way to secure knowledge and wisdom. Yet for the Socrates of the Apology, wisdom consisted in the awareness of our limitations; in knowing how little we know, every one of us.

It was this doctrine of an essential human fallibility which Nicolas of Cusa and Erasmus of Rotterdam (who refers to Socrates) revived; and it was this 'humanist' doctrine (in contradiction to the optimistic doctrine on which Milton relied, the doctrine that truth will prevail) which Nicolas and Erasmus, Montaigne and Locke and Voltaire, followed by John Stuart Mill and Bertrand Russell, made the basis of the doctrine of tolerance. 'What is tolerance?' asks Voltaire in his Philosophical Dictionary; and he answers: 'It is a necessary consequence of our humanity. We are all fallible, and prone to error; let us then pardon each other's follies. This is the first principle of natural right.' (More recently the doctrine of fallibility has been made the basis of a theory of political freedom; that is, freedom from coercion. See F. A. Hayek, The Constitution of Liberty, especially pp. 22 and 29.)

 

XI

Bacon and Descartes set up observation and reason as new authorities, and they set them up within each individual man. But in doing so they split man into two parts, into a higher part which had authority with respect to truth Bacon's observations, Descartes' intellect and a lower part. It is this lower part which constitutes our ordinary selves, the old Adam in us. For it is always 'we ourselves' who are alone responsible for error, if truth is manifest. It is we, with our prejudices, our negligence, our pigheadedness, who are to blame; it is we ourselves who are the sources of our ignorance.

Thus we are split into a human part, we ourselves, the part which is the source of our fallible opinions (doxα), of our errors, and of our ignorances; and a superhuman part, such as the senses or the intellect, the sources of real knowledge (epistēmē), whose authority over us is almost divine.

But this will not do. For we know that Descartes' physics, admirable as it was in many ways, was mistaken; yet it was based only upon ideas which, he thought, were clear and distinct, and which therefore should have been true. And as to the authority of the senses as sources of knowledge, the fact that the senses are not reliable was known to the ancients even before Parmenides, for example to Xenophanes and Heraclitus; and of course to Democritus and to Plato. (Cp. pp. 164 f., below.)

It is strange that this teaching of antiquity could be almost ignored by modern empiricists, including phenomenalists and positivists; yet it is ignored in most of the problems posed by positivists and phenomenalists, and in the solutions they offer. The reason is this: they believe that it is not our senses that err, but that it is always 'we ourselves' who err in our interpretation of what is 'given' to us by our senses. Our senses tell the truth, but we may err, for example, when we try to put into language conventional, manmade, imperfect language what they tell us. It is our linguistic description which is faulty because it may be tinged with prejudice.

(So our manmade language was at fault. But then it was discovered that our language too was 'given' to us, in an important sense: that it embodied the wisdom and experience of many generations, and that it should not be blamed if we misused it. So language too became a truthful authority that could never deceive us. If we fall into temptation and use language in vain, then it is we who are to blame for the trouble that ensues. For language is a jealous God and will not hold him guiltless that taketh His words in vain, but will throw him into darkness and confusion.)

By blaming us, and our language (or misuse of Language), it is possible to uphold the divine authority of the senses (and even of Language). But it is possible only at the cost of widening the gap between this authority and ourselves: between the pure sources from which we can obtain an authoritative knowledge of the truthful goddess Nature, and our impure and guilty selves: between God and man. As indicated before, this idea of the truthfulness of Nature which, I believe, can be discerned in Bacon, derives from the Greeks; for it is part of the classical opposition between nature and human convention which, according to Plato, is due to Pindar; which may be discerned in Parmenides; and which is identified by him, and by some Sophists (for example, by Hippias) and partly also by Plato himself, with the opposition between divine truth and human error, or even falsehood. After Bacon, and under his influence, the idea that nature is divine and truthful, and that all error or falsehood is due to the deceitfulness of our own human conventions, continued to play a major role not only in the history of philosophy, of science, and of politics, but also in that of the visual arts. This may be seen, for example, from Constable's most interesting theories on nature, veracity, prejudice, and convention, quoted in E. H. Gombrich's Art and Illusion. It also played a role in the history of literature, and even in that of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