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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서문 (A본)

이윤진이카루스 2012. 1. 3. 20:36

 

서문 (A본)

 

 

 

I. 초월적 철학의 개념

 

 

 

경험은 의심할 바 없이 우리의 오성(이해력: Verstand)이, 감각적 인상에 관한 원재료를 다루면서 야기하는 첫 번째 산물이다. 그리하여 경험은 최초의 교육인데 진보하면서 새로운 지식이 무궁무진하여 모든 미래 세대의 상호 관련된 삶에서 수집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이 결핍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은 우리의 오성(이해력: Verstand)이 제한되는 유일한 분야는 전혀 아니다. 경험은 정말로 현재 존재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지, 자체가 반드시 그래야 하고 다른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경험은 우리에게 참된 보편성을 제공하지 않으며, 이성은 이런 종류의 지식을 고집하는데 자체를 통하여 만족한다기보다는 더 자극을 받는다. 그런 보편적 지식들은 동시에 내재적 필연성의 특징을 지니는데 틀림없이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이고 본질적으로 명백하고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지식들을 선험적 지식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반대로 전적으로 경험으로부터 빌려오는 것은 우리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후천적이나 경험적으로 인식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매우 특별한 것으로 틀림없이 선험적 근원을 지니고 아마도 우리의 의미 재현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역할만 하는 지식들이 심지어 우리의 경험으로 섞이는 것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의도에 속하는 모든 것을 제거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확실하고 독창적인 개념들과 확실한 판단들이 남을 것인데 그것들은 경험적인 지식은 제공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보편성과 엄밀한 필연성을 주장들에게 부여하면서, 의미들에 나타나는 대상들과 관련하여 단순한 경험이 가르칠 것보다 더 많을 것을 우리가 말하도록 할 수 있거나 적어도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믿도록 만드는 한,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틀림없이 완전히 선험적으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의 것 모두보다 훨씬 더 특별한 것은 확실한 지식들이 모든 가능한 경험의 분야를 떠나서 우리의 판단 범위를, 경험에서 상응하는 대상이 주어질 수 없는 개념들을 통하여 모든 경험의 한계를 초월하여, 확대하는 모습을 띤다는 것이다.

오성(이해력: Verstand)이 현상의 분야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자체의 중요성 때문에 우리가 훨씬 더 탁월하다고 여기고 자체의 목적에서 훨씬 더 숭고하다고 우리가 여기는 저 연구 활동을 우리의 이성이 수행하는 것은 의미의 세계를 초월한 영역에서 바로 후자(後者) 지식을 통해서인데 그 의미의 세계에서 경험은 지침을 제공할 수도 없고 교정을 할 수도 없다. 정말로 우리는 그렇게 시급한 연구들을 그 연구들이 지닌 불안정한 특징에 근거하여, 혹은 경멸하거나 무관심하여 포기하기보다는 모든 실수를 무릅쓰는 모험을 선호한다.

우리가 경험의 토대를 떠나자마자 신중한 연구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지식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먼저 결정하지 않고서 우리가 지닌 지식을 이용하지 않고 원리들의 출처를 알지 못한 채 그 원리들을 신뢰하지 않고, 우리가 건설하겠다고 제안하는 건물의 기초에 대하여 우리 자신이 확신한다는 것이 정말로 이제 자연스럽게 보인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오성(이해력: Verstand)이 이 모든 선험적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규모와 유효성과 가치를 오성(이해력: Verstand)이 지닐 것인지의 의문이 먼저 고려되어야함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자연스럽다는 용어를 통하여 우리가 합당하고도 합리적으로 틀림없이 발생할 것을 이해한다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스럽다는 말을 통하여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일을 의미한다면, 다른 한편으로 이 연구가 오랫동안 회피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자연스럽고 더 이해 가능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이 지식의 한 부분인 수학은 오랫동안 신뢰를 받아서 다른 부분에 호의적인 기대를 제공하는데 그 다른 부분은 전적으로 다른 본성을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경험의 궤도 밖에 있다면 우리는 경험에 의하여 부인되지 않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을 확대하는 매력은 매우 커서 우리는 명백한 모순을 통해서만 우리의 진보에서 멈출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조작을 하면서 신중하다면 이것은 회피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조작은 여전히 조작으로 남을 것이다. 경험과 독립적으로 우리가 선험적 지식에서 얼마나 멀리 진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탁월한 사례를 수학이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제 대상과 지식이 직감에서 밝혀지는 것을 허용하는 한 수학은 정말로 대상과 지식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은 쉽게 간과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직감 자체가 선험적으로 주어질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적나라하고 순수한 개념과 구분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성이 지닌 능력의 그런 증거에 오도되어 지식을 확대하려는 충동은 한계를 모른다. 가벼운 비둘기는 자유로운 비행에서 공기를 가르고 공기의 저항을 느끼면서 빈 공간에서는 자신의 비행이 훨씬 더 쉬울 것이라고 상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플라톤은 의미의 세계를 떠났는데 왜냐하면 의미의 세계가 오성(이해력: Verstand)에 여러 겹의 장애물을 두고 이데아의 날개를 달고 이해력을 넘어 순수오성이라는 텅 빈 공간으로 모험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보를 이룩하지 못했음을 주목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말하자면 자신이 딛고 일어설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적용할 수 있어서 자신의 오성(이해력: Verstand)을 동원하기 위한 지지대 역할을 할 저항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능한 한 빨리 사변적 구조물을 완성하여 나중에 첫 번째로 그 토대가 신뢰할만한지를 묻는 것이 인간 이성의 공통적 운명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그 토대의 효율성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혹은 그렇게 뒤늦고 위험한 연구를 거부하기 위하여 모든 종류의 구실이 요청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 건축동안에 우리를 모든 걱정과 의심으로부터 지켜주고 겉으로 보이는 완벽함으로써 우리에게 아첨하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가 지닌 이성이 하는 일 중에서 큰, 아마도 가장 큰, 부분은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대상들의 개념을 분석하는 데 놓여있다. 이 분석은 우리에게 상당한 양의 지식을 제공하는데 그 지식은 (비록 혼란스러운 방식으로라 할지라도) 우리가 지닌 개념 속에서 이미 고찰된 설명이나 해설에 지나지 않는 것인 반면 적어도 그 형태에 관하여 새로운 통찰로서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문제나 내용에 관한 한 우리가 이전에 소유한 개념의 확대는 없었고 그 개념들에 대한 분석만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실제적 지식을 선험적으로 유발하는데 그 지식이 확실하고도 유용한 방식으로 진보하기에, 자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인식되지 못한 채 완전히 다른 종류의 주장을 몰래 도입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오해되었는데 그 주장 안에서 이성은 주어진 개념들에 완전히 낯선 다른 개념들을 주어진 개념들에 선험적으로 덧붙인다. 그리고 이성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질문은 고찰된 적조차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두 가지 지식사이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데로 즉시 나아가겠다.

 

 

 

 

 

분석적 판단과 종합적 판단의 구별

 

 

술어에 대한 주어의 관계가 고찰되는 모든 판단에서 (내가 긍정적인 판단만을 고려한다면 부정적 판단에 대한 적용은 쉽다) 이 관계는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가능하다. 술어 B가 이 개념 A에 (은밀하게) 포함된 것으로서 주어 A에 속하던지 아니면 B가 실제로 A와 결합되어 있다할지라도 완전히 A밖에 놓여있던지. 첫 번째의 경우에 나는 그 판단을 분석적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의 경우에 그 판단을 나는 종합적이라고 부른다. 분석적 판단은 (긍정적) 그러므로 주어에 대한 술어의 결합이 일치를 통하여 고찰되는 판단이다; 그러나 이 결합이 일치 없이 고찰되는 판단은 종합적으로 지칭되어야 한다. 전자(前者)는 설명적-판단으로, 후자(後者)는 확산적-판단으로 지칭될 것인데 왜냐하면 전자(前者)는 술어를 통하여 주어의 개념에 아무 것도 덧붙이지 못하지만 분석을 통하여 주어의 개념의 개념을 분해하여 자체 안에서 (비록 혼란스럽게라 할지라도) 줄곧 생각되었던 부분적 개념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후자(後者)는 주어의 개념 안에서 전혀 고찰되지 않았고 분석을 통하여 주어의 개념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는 술어를 주어의 개념에 덧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모든 몸체들은 확산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분석적 판단이다. 왜냐하면 그 개념과 묶이는 확대를 발견하기 위하여 내가 몸체(Körper)라는 단어로 연결하는 개념을 넘어 초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술어를 발견하기 위하여 나는 그 개념을 분석하기만 하면 되는데 다시 말해서 내가 그 개념 속에서 항상 생각하는 다양체를 의식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그리하여 분석적 판단이다. 그러나 내가 ‘모든 몸체는 무겁다’라고 말한다면 술어는 내가 일반적으로 몸체에 대한 단순한 개념 속에서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런 술어의 첨가는 그리하여 종합적 판단을 낳는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것이 분명하다: 1. 분석적 판단을 통하여 우리의 지식은 전혀 확대되지 않고 내가 이미 지니고 있는 개념이 제시되어 나에게는 이해가능하게 된다; 2. 이 개념에 포함되지 않은 술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에 속하는지는 알려면, 종합적 판단 안에서 나는 틀림없이 주어 개념 외에 다른 것을 (X) 가지고 있는데 그것에 오성(이해력: Verstand)이 의존할 것이다.

경험적 판단이나 경험의 판단의 경우에는 이와 관련하여 전혀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이 X는 내가 개념 A를 - 이 경험의 한 부분만을 구성하는 개념 - 통하여 생각하는 대상에 대하여 완벽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유인즉 일반적인 몸체의 개념 안에 무게라는 술어를 포함시키지 않는다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개념은 자체의 부분들 중 한 부분을 통하여 완벽한 경험을 기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 그 부분에 속하는 것으로서, 나는 그리하여 동일한 경험의 다른 부분들을 덧붙일 수 있다. 나는 이전 분석에 의하여 확대의 특징, 비관통성, 형태, 기타 등등을 통한 몸체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들 모두는 이 개념 안에서 고찰된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나의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내가 몸체에 대한 개념을 도출한 경험을 회고하고 무게는 항상 앞에 언급한 특징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경험은 개념 A 외부에 놓인 X이고 그 X를 토대로 술어 무게 (B)가 개념 A와 통합되는 가능성이 세워진다.

그러나 선험적인 종합적 판단에서는 이 보조수단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또 다른 개념 B가 개념 A와 결합되어 있는 것을 알기 위하여 내가 개념 A 외부로 초월해야 한다면 나는 무엇에 의존해야 하며 무엇을 통하여 통합이 가능한가? 나는 여기서 경험의 분야에서 탐색할 이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음 명제를 수용하자: 발생하는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발생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나는 정말로 시간과 기타 등등에 의하여 선행되는 존재를 생각하며 그 개념으로부터 분석적 판단이 도출될 것이다. 그러나 원인이라는 개념은 발생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의미하고 전혀 이 후자(後者) 재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발생하는 것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것을 말하고, 원인의 개념이 그것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할지라도 정말로 그것에 속하는 것을 알게 되는가? 자체가 이 개념에 낯선 술어 B를 개념 A 외부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을 때 오성(이해력: Verstand)이 의존하며, 자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자체와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X는 여기서 무엇인가? 그것은 경험일 리가 없는데 왜냐하면 제시된 원리가, 경험이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보다 큰 보편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필연성의 표현을 지니고 결과적으로 전적으로 선험적이고 단순한 개념들을 토대로 두 번째 재현을 첫 번째 재현에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종합적, 다시 말해서 확산적-원리에 우리가 지닌 사변적인 선험적 지식의 전체 궁극적 목표가 의존한다; 왜냐하면 분석적 판단은 정말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진정으로 새로운 확대와 같은 그런 안전하고 넓은 종합에 필요한 개념의 저 명징성에 도달하기 위해서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어떤 수수께끼가 여기에 숨겨져 있다; [원주] 심지어 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 고대인들 중 누구에게 떠올랐더라면 이것 자체가 우리 시대까지 모든 순수이성 체계에 저항해서,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수행된 그렇게 많은 헛된 노력들을 절약했을 텐데.

단지 그 수수께끼가 해결되자마자 순수오성에 의하여 생긴 지식의 무한한 분야로의 진보가 안전하고 신뢰할만하게 된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런 판단의 각각 종류를 가능하게 만들고 (자체의 고유한 종류를 구성하는) 이런 지식 모두를 개괄적인 개요로서가 아니라 체계로서 완벽하고 어떤 용도에도 충분한 방식으로 자체의 원래 근원, 분류, 규모와 한계에 따라서 표시하기 위하여, 자체의 모든 관련된 보편성에서 선험적인 종합적 판단의 가능성에 관한 토대를 발견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종합적 판단에서 고유한 것에 대해서는 이만큼만 하자.

이 모든 고찰로부터 이제 순수이성비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특수한 과학이 출현한다. 그러나 어떤 지식이든 외적인 것과 뒤섞이지 않는다면 순수하다고 지칭된다. 그러나 지식이 전혀 경험이나 감정이 뒤섞이지 않고 그리하여 완벽하게 선험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면 특별히 절대적으로 순수하다고 지칭될 것이다. 이제 이성은 선험적 지식에 대한 원칙을 제공하는 기능이다. 그리하여 순수이성은 우리가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선험적으로 아는 원칙을 포함하는 것이다. 순수이성의 원칙은 그에 따라서 모든 순수한 선험적 지식이 습득되고 실제로 성취되는 저 원칙들의 총체일 것이다. 그런 기준의 포괄적인 적용은 순수이성의 체계를 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지닌 지식의 그런 확대가 가능할 것인지와 어떤 경우에 가능할 것인지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순수이성에 관한, 그리고 순수이성의 근원 및 한계에 관한 단순한 판단의 과학을 순수이성 체계에 대한 예비학으로서 간주할 수 있다. 그런 것은 순수이성의 교설이 아니라 단지 순수이성의 비판이라고 지칭되어야 하고, 그 용도는 우리의 이성을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설명하여 그 이성이 오류가 없도록 지키기 위하여 실제로 단지 부정적일 것인데 그 일은 이미 매우 많은 소득이다. 대상들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대상들에 대하여 우리가 지닌 선험적 개념들에 대하여 몰두하는 모든 지식을 나는 초월적이라고 지칭한다. 그런 개념들의 체계는 초월적-철학이라고 지칭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이 단계에서는 너무 큰 임무이다. 이유인즉 그런 과학이 분석적 및 종합적인 선험적 지식 두 가지 모두를 틀림없이 완벽하게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닌 목적에 관한 한 그런 과학은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선험적 종합의 원칙들을 그 원칙들의 전체 규모에서 이해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필요한 정도까지만 우리는 분석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 원칙들만을 다룰 것을 우리는 요구받는다. 우리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것은 교설이 아니라 단지 초월적 비판으로 지칭되어야 하는 이 연구이다. 그 연구의 목적은 지식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수정하는 것일 따름이며 모든 선험적 지식의 가치나 가치결여에 대하여 시금석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비판은 가능한 한, 원칙에 대한 예비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다면 적어도 어떤 규범 때문에, 그 규범에 따라서 적당한 과정에서 순수이성 철학의 완벽한 체계가 - 그 체계가 자체의 지식에 대한 확대이든 아니면 단지 제한이든 - 종합적으로 뿐만 아니라 분석적으로도 실행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체계가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로 그런 체계를 완벽하게 완성하려는 희망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킬 그런 큰 규모가 아니리라는 것은, 여기서 우리의 대상을 구성하는 것은 무한한 사물들의 본성이 아니라 사물의 본성을 판단하는 오성(이해력: Verstand)이라는 사실로부터 이미 이해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오성(이해력: Verstand)은 다시 자체의 선험적 지식에 관해서만이다. 오성(이해력: Verstand)에 관한 이 선험적 소유물들은, 그 소유물들이 외부로부터 추구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리로부터 숨겨진 상태로 남아있을 리가 없고 아마도 충분히 작은 규모이어서 우리들이 그 소유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을, 그 소유물들이 지닌 가치나 가치결여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을, 그리하여 그 소유물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을 허용한다.

 

 

 

 

II. 초월적-철학의 구분

 

 

초월적-철학은 여기서 이념일 뿐인데 그 이념을 향하여 순수이성비판은 이 건축물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의 완벽성과 안정성을 철저히 보증하여 건축적으로, 다시 말해서 원칙으로부터 계획을 짜야 한다. 이 비판 자체가 아직 초월적-철학으로 지칭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비판이 완벽한 체계가 되기 위하여, 선험적인 인간 지식 전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근거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순수이성비판은 고찰된 순수 지식을 구성하는 모든 근본적인 개념들에 대하여 완벽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순수이성비판은 이 개념들에 대하여 상세한 분석을 제공할 필요도 없고 모든 추론적 개념들을 완벽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 분석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런 분석은 종합에 내재하고, 자체만이 순수이성비판을 필요로 하는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분석은 그런 분석과 추론의 완벽함에 대하여 책임을 지려는 우리의 목적에 답변하지도 것이다. 그러나 분석의 이 완벽함과, 우리가 곧 다루어야 할 것과 같은 그런 선험적 개념들로부터의 추론의 완벽함은, 그것들이 먼저 종합의 원칙들로서 놓였고 그것들에게 이 본질적 목적과 관련하여 결여된 것이 없다면 쉽게 제공될 것이다.

그리하여 초월적-철학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순수이성비판에 속하여 초월적-철학에 대한 완전한 이념이지만, 이 과학은 그 철학 자체의 전체는 아직 아닌데 왜냐하면 그 이념이 선험적인 종합적 지식에 대한 완벽한 검토에 요구되는 만큼만 분석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학을 분류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점은 다음과 같다: 경험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은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또는 선험적 지식은 완벽하게 순수할 것. 그리하여 도덕성의 최고 원칙들과 그 원칙들의 근본적 개념들이 선험적인 지식이라 할지라도, 초월적-철학에 속하지 않는데 이유인즉 쾌락과 고통, 욕망과 경향, 자유의지, 기타 등등이 모두 경험적 근원을 지니고 그런 상황에서 틀림없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월적-철학은 순수 사변적 이성의 지혜이다. 왜냐하면 실천적인 모든 것은 동기를 포함하는 한, 감정과 관련되고 감정은 지식의 경험적 근원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제 이 과학의 분류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그 분류는 첫째로 순수이성의 요소론을, 두 번째로 순수이성의 방법론을 포함해야 한다. 이 주요 분류들에 하위분류들이 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분류들에 대한 근거는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분류나 사전 지식에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 듯이 보여서 인간의 지식에 관하여 두 가지 줄기가 있는데 그 두 가지 줄기는 아마도 공통적이지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뿌리로부터 출현하는데 즉, 감성(Sinnlichkeit)과 오성(이해력: Verstand)으로 감성을 통하여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오성(이해력: Verstand)을 통하여 고찰된다. 이제 감성이 재현을 선험적으로 포함하여 대상이 우리에게 제공될 수 있는 조건을 구성한다면 그 감성은 초월적-철학에 속할 것이다. 초월적 감성론은 틀림없이 요소론의 첫 번째 부분에 속할 것인데 왜냐하면 그 아래서만 인간의 지식에 관한 대상이 주어지는 조건이 그 아래서 대상들이 고찰되는 조건에 앞서기 때문이다.

 

 

 

 

 

 

 

 

 

Einleitung

 

 

 

I. Idee der Transzendental-

 

 

Philosophie

 

 

 

Erfahrung ist ohne Zweifel das erste Produkt, welches unser Verstand hervorbringt, indem er den rohen Stoff sinnlicher Empfindungen bearbeitet. Sie ist eben dadurch die erste Belehrung und im Fortgange so unerschöpflich an neuem Unterricht, daß das zusammengekettete Leben aller künftigen Zeugungen an neuen Kenntnissen, die auf diesem Boden gesammelt werden können, niemals Mangel haben wird. Gleichwohl ist sie bei weitem nicht das einzige Feld, darin sich unser Verstand einschränken läßt. Sie sagt uns zwar, was da sei, aber nicht, daß es notwendigerweise, so und nicht anders, sein müsse. Eben darum gibt sie uns auch keine wahre Allgemeinheit, und die Vernunft, welche nach dieser Art von Erkenntnissen so begierig ist, wird durch sie mehr gereizt, als befriedigt. Solche allgemeine Erkenntnisse nun, die zugleich den Charakter der innern Notwendigkeit haben, müssen, von der Erfahrung unabhängig, vor sich selbst klar und gewiß sein; man nennt sie daher Erkenntnisse a priori: da im Gegenteil das, was lediglich von der Erfahrung erborgt ist, wie man sich ausdrückt, nur a posteriori, oder empirisch erkannt wird.

Nun zeigt es sich, welches überaus merkwürdig ist, daß selbst unter unsere Erfahrungen sich Erkenntnisse mengen, die ihren Ursprung a priori haben müssen und die vielleicht nur dazu dienen, um unsern Vorstellungen der Sinne Zusammenhang zu verschaffen. Denn wenn man aus den ersteren auch alles wegschafft, was den Sinnen angehört, so bleiben dennoch gewisse ursprüngliche Begriffe und aus ihnen erzeugte Urteile übrig, die gänzlich a priori, unabhängig von der Erfahrung entstanden sein müssen, weil sie machen, daß man von den Gegenständen, die den Sinnen erscheinen, mehr sagen kann, wenigstens es sagen zu können glaubt, als bloße Erfahrung lehren würde, und daß Behauptungen wahre Allgemeinheit und strenge Notwendigkeit enthalten, dergleichen die bloß empirische Erkenntnis nicht liefern kann.

Was aber noch weit mehr sagen will ist dieses, daß gewisse Erkenntnisse sogar das Feld aller möglichen Erfahrungen verlassen, und durch Begriffe, denen überall kein entsprechender Gegenstand in der Erfahrung gegeben werden kann, den Umfang unserer Urteile über alle Grenzen derselben zu erweitern den Anschein haben.

Und gerade in diesen letzteren Erkenntnissen, welche über die Sinnenwelt hinausgehen, wo Erfahrung gar keinen Leitfaden noch Berichtigung geben kann, liegen die Nachforschungen unserer Vernunft die wir der Wichtigkeit nach für weit vorzüglicher, und ihre Endabsicht für viel erhabener halten, als alles, was der Verstand im Felde der Erscheinungen lernen kann, wobei wir, sogar auf die Gefahr zu irren, eher alles wagen, als daß wir so angelegene Untersuchungen aus irgendeinem Grunde der Bedenklichkeit, oder aus Geringschätzung und Gleichgültigkeit aufgeben sollten.

Nun scheint es zwar natürlich, daß, sobald man den Boden der Erfahrung verlassen hat, man doch nicht mit Erkenntnissen, die man besitzt, ohne zu wissen woher, und auf den Kredit der Grundsätze, deren Ursprung man nicht kennt, sofort ein Gebäude errichten werde, ohne der Grundlegung desselben durch sorgfältige Untersuchungen vorher versichert zu sein, daß man also die Frage vorlängst werde aufgeworfen haben, wie denn der Verstand zu allen diesen Erkenntnissen a priori kommen könne, und welchen Umfang, Gültigkeit und Wert sie haben mögen. In der Tat ist auch nichts natürlicher, wenn man unter diesem Wort das versteht, was billiger- und vernünftigerweise geschehen sollte; versteht man aber darunter das, was gewöhnlichermaßen geschieht, so ist hinwiederum nichts natürlicher und begreiflicher, als daß diese Untersuchung lange Zeit unterbleiben mußte. Denn ein Teil dieser Erkenntnisse, die mathematischen, ist im alten Besitze der Zuverlässigkeit, und gibt dadurch eine günstige Erwartung auch für andere, ob diese gleich von ganz verschiedener Natur sein mögen. Überdem, wenn man über den Kreis der Erfahrung hinaus ist, so ist man sicher, durch Erfahrung nicht widersprochen zu werden. Der Reiz, seine Erkenntnisse zu erweitern, ist so groß, daß man nur durch einen klaren Widerspruch, auf den man stößt, in seinem Fortschritte aufgehalten werden kann. Dieser aber kann vermieden werden, wenn man seine Erdichtungen behutsam macht, ohne daß sie deswegen weniger Erdichtungen bleiben. Die Mathematik gibt uns ein glänzendes Beispiel, wie weit wir es unabhängig von der Erfahrung in der Erkenntnis a priori bringen können. Nun beschäftigt sie sich zwar mit Gegenständen und Erkenntnissen, bloß so weit als sich solche in der Anschauung darstellen lassen. Aber dieser Umstand wird leicht übersehen, weil gedachte Anschauung selbst a priori gegeben werden kann, mithin von einem bloßen reinen Begriff kaum unterschieden wird. Durch einen solchen Beweis von der Macht der Vernunft aufgemuntert, sieht der Trieb zur Erweiterung keine Grenzen. Die leichte Taube, indem sie im freien Fluge die Luft teilt, deren Widerstand sie fühlt, könnte die Vorstellung fassen, daß es ihr im luftleeren Raum noch viel besser gelingen werde. Ebenso verließ Plato die Sinnenwelt, weil sie dem Verstande so vielfältige Hindernisse legt, und wagte sich jenseit derselben auf den Flügeln der Ideen, in den leeren Raum des reinen Verstandes. Er bemerkte nicht, daß er durch seine Bemühungen keinen Weg gewönne, denn er hatte keinen Widerhalt, gleichsam zur Unterlage, worauf er sich steifen, und woran er seine Kräfte anwenden konnte, um den Verstand von der Stelle zu bringen. Es ist aber ein gewöhnliches Schicksal der menschlichen Vernunft in der Spekulation ihr Gebäude so früh, wie möglich, fertigzumachen, und hintennach allererst zu untersuchen, ob auch der Grund dazu gut gelegt sei. Alsdann aber werden allerlei Beschönigungen herbeigesucht, um uns wegen dessen Tüchtigkeit zu trösten, oder eine solche späte und gefährliche Prüfung abzuweisen. Was uns aber während dem Bauen von aller Besorgnis und Verdacht freihält, und mit scheinbarer Gründlichkeit schmeichelt, ist dieses. Ein großer Teil, und vielleicht der größte, von dem Geschäfte unserer Vernunft besteht in Zergliederungen der Begriffe, die wir schon von Gegenständen haben. Dieses liefert uns eine Menge von Erkenntnissen, die, ob sie gleich nichts weiter als Aufklärungen oder Erläuterungen desjenigen sind, was in unsern Begriffen, (wiewohl noch auf verworrene Art) schon gedacht worden, doch wenigstens der Form nach neuen Einsichten gleich geschätzt werden, wiewohl sie der Materie oder dem Inhalte nach die Begriffe, die wir haben, nicht erweitern, sondern nur auseinander setzen. Da dieses Verfahren nun eine wirkliche Erkenntnis a priori gibt, die einen sichern und nützlichen Fortgang hat, so erschleicht die Vernunft, ohne es selbst zu merken, unter dieser Vorspiegelung Behauptungen von ganz anderer Art, wo die Vernunft zu gegebenen Begriffen a priori ganz fremde hinzutut, ohne daß man weiß, wie sie dazu gelangen und ohne sich diese Frage auch nur in die Gedanken kommen zu lassen. Ich will daher gleich anfangs von dem Unterschiede dieser zweifachen Erkenntnisart handeln.

 

 

 

 

Von dem Unterschiede analytischer und synthetischer Urteile

 

In allen Urteilen, worinnen das Verhältnis eines Subjekts zum Prädikat gedacht wird, (wenn ich nur die bejahenden erwäge: denn auf die verneinenden ist die Anwendung leicht) ist dieses Verhältnis auf zweierlei Art möglich. Entweder das Prädikat B gehört zum Subjekt A als etwas, was in diesem Begriffe A (versteckterweise) enthalten ist; oder B liegt ganz außer dem Begriff A, ob es zwar mit demselben in Verknüpfung steht. Im ersten Fall nenne ich das Urteil analytisch, im andern synthetisch. Analytische Urteile (die bejahenden) sind also diejenigen, in welchen die Verknüpfung des Prädikats mit dem Subjekt durch Identität, diejenigen aber, in denen diese Verknüpfung ohne Identität gedacht wird, sollen synthetische Urteile heißen. Die ersteren könnte man auch Erläuterungs-, die anderen Erweiterungs-Urteile heißen, weil jene durch das Prädikat nichts zum Begriff des Subjekts hinzutun, sondern diesen nur durch Zergliederung in seine Teilbegriffe zerfällen, die in selbigen schon, (obschon verworren) gedacht waren: dahingegen die letzteren zu dem Begriffe des Subjekts ein Prädikat hinzutun, welches in jenem gar nicht gedacht war, und durch keine Zergliederung desselben hätte können herausgezogen werden, z. B. wenn ich sage: alle Körper sind ausgedehnt, so ist dies ein analytisch Urteil. Denn ich darf nicht aus dem Begriffe, den ich mit dem Wort Körper verbinde, hinausgehen, um die Ausdehnung als mit demselben verknüpft zu finden, sondern jenen Begriff nur zergliedern, d. i. des Mannigfaltigen, welches ich jederzeit in ihm denke, nur bewußt werden, um dieses Prädikat darin anzutreffen; es ist also ein analytisches Urteil. Dagegen, wenn ich sage: alle Körper sind schwer, so ist das Prädikat etwas ganz anderes, als das, was ich in dem bloßen Begriff eines Körpers überhaupt denke. Die Hinzufügung eines solchen Prädikats gibt also ein synthetisch Urteil.

Nun ist hieraus klar: l. daß durch analytische Urteile unsere Erkenntnis gar nicht erweitert werde, sondern der Begriff, den ich schon habe, auseinandergesetzt, und mir selbst verständlich gemacht werde; 2. daß bei synthetischen Urteilen ich außer dem Begriffe des Subjekts noch etwas anderes (X) haben müsse, worauf sich der Verstand stützt, um ein Prädikat, das in jenem Begriffe nicht liegt, doch als dazu gehörig zu erkennen.

Bei empirischen oder Erfahrungsurteilen hat es hiermit gar keine Schwierigkeit. Denn dieses X ist die vollständige Erfahrung von dem Gegenstande, den ich durch einen Begriff A denke, welcher nur einen Teil dieser Erfahrung ausmacht. Denn ob ich schon in dem Begriff eines Körpers überhaupt das Prädikat der Schwere gar nicht einschließe, so bezeichnet er doch die vollständige Erfahrung durch einen Teil derselben, zu welchem also ich noch andere Teile eben derselben Erfahrung, als zu dem ersteren gehörig, hinzufügen kann. Ich kann den Begriff des Körpers vorher analytisch durch die Merkmale der Ausdehnung, der Undurchdringlichkeit, der Gestalt usw., die alle in diesem Begriff gedacht werden, erkennen. Nun erweitere ich aber meine Erkenntnis, und, indem ich auf die Erfahrung zurücksehe, von welcher ich diesen Begriff des Körpers abgezogen hatte, so finde ich mit obigen Merkmalen auch die Schwere jederzeit verknüpft. Es ist also die Erfahrung jenes X, was außer dem Begriffe A liegt, und worauf sich die Möglichkeit der Synthesis des Prädikats der Schwere B mit dem Begriffe A gründet.

Aber bei synthetischen Urteilen a priori fehlt dieses Hilfsmittel ganz und gar. Wenn ich außer dem Begriffe A hinausgehen soll, um einen andern B, als damit verbunden zu erkennen, was ist das, worauf ich mich stütze, und wodurch die Synthesis möglich wird, da ich hier den Vorteil nicht habe, mich im Felde der Erfahrung danach umzusehen? Man nehme den Satz: Alles, was geschieht, hat seine Ursache. In dem Begriff von etwas, das geschieht, denke ich zwar ein Dasein, vor welchem eine Zeit vorhergeht usw. und daraus lassen sich analytische Urteile ziehen. Aber der Begriff einer Ursache zeigt etwas von dem, was geschieht, Verschiedenes an, und ist in dieser letzteren Vorstellung gar nicht mit enthalten. Wie komme ich denn dazu, von dem, was überhaupt geschieht, etwas davon ganz Verschiedenes zu sagen, und den Begriff der Ursachen, obzwar in jenen nicht enthalten, dennoch, als dazu gehörig, zu erkennen. Was ist hier das X, worauf sich der Verstand stützt, wenn er außer dem Begriff von A ein demselben fremdes Prädikat aufzufinden glaubt, das gleichwohl damit verknüpft sei. Erfahrung kann es nicht sein, weil der angeführte Grundsatz nicht allein mit größerer Allgemeinheit, als die Erfahrung verschaffen kann, sondern auch mit dem Ausdruck der Notwendigkeit, mithin gänzlich a priori und aus bloßen Begriffen diese zweite Vorstellungen zu der ersteren hinzufügt. Nun beruht auf solchen synthetischen d. i. Erweiterungs-Grundsätzen die ganze Endabsicht unserer spekulativen Erkenntnis a priori; denn die analytischen sind zwar höchst wichtig und nötig, aber nur um zu derjenigen Deutlichkeit der Begriffe zu gelangen, die zu einer sicheren und ausgebreiteten Synthesis, als zu einem wirklich neuen Anbau, erforderlich ist.

Es liegt also hier ein gewisses Geheimnis verborgen; [Fußnote]Wäre es einem von den Alten eingefallen, auch nur diese Frage aufzuwerfen, so würde diese allein allen Systemen der reinen Vernunft bis auf unsere Zeit mächtig widerstanden haben, und hätte so viele eitele Versuche erspart, die, ohne zu wissen, womit man eigentlich zu tun hat, blindlings unternommen worden.

Aufschluß allein den Fortschritt in dem grenzenlosen Felde der reinen Verstandeserkenntnis sicher und zuverlässig machen kann: nämlich mit gehöriger Allgemeinheit den Grund der Möglichkeit synthetischer Urteile a priori aufzudecken, die Bedingungen, die eine jede Art derselben möglich machen, einzusehen, und diese ganze Erkenntnis (die ihre eigene Gattung ausmacht) in einem System nach ihren ursprünglichen Quellen, Abteilungen, Umfang und Grenzen, nicht durch einen flüchtigen Umkreis zu bezeichnen, sondern vollständig und zu jedem Gebrauch hinreichend zu bestimmen. Soviel vorläufig von dem Eigentümlichen, was die synthetischen Urteile an sich haben.

Aus diesem allen ergibt sich nun die Idee einer besondern Wissenschaft, die zur Kritik der reinen Vernunft dienen könne. Es heißt aber jede Erkenntnis rein, die mit nichts Fremdartigen vermischt ist. Besonders aber wird eine Erkenntnis schlechthin rein genannt, in die sich überhaupt keine Erfahrung oder Empfindung einmischt, welche mithin völlig a priori möglich ist. Nun ist Vernunft das Vermögen, welches die Prinzipien der Erkenntnis a priori an die Hand gibt. Daher ist reine Vernunft diejenige, welche die Prinzipien etwas schlechthin a priori zu erkennen, enthält. Ein Organon der reinen Vernunft würde ein Inbegriff derjenigen Prinzipien sein, nach denen alle reinen Erkenntnisse a priori können erworben und wirklich zustande gebracht werden. Die ausführliche Anwendung eines solchen Organon würde ein System der reinen Vernunft verschaffen. Da dieses aber sehr viel verlangt ist, und es noch dahin steht, ob auch überhaupt eine solche Erweiterung unserer Erkenntnis, und in welchen Fällen sie möglich sei; so können wir eine Wissenschaft der bloßen Beurteilung der reinen Vernunft, ihrer Quellen und Grenzen, als die Propädeutik zum System der reinen Vernunft ansehen. Eine solche würde nicht eine Doktrin, sondern nur Kritik der reinen Vernunft heißen müssen, und ihr Nutzen würde wirklich nur negativ sein, nicht zur Erweiterung, sondern nur zur Läuterung unserer Vernunft dienen, und sie von Irrtümern frei halten, welches schon sehr viel gewonnen ist. Ich nenne alle Erkenntnis transzendental, die sich nicht sowohl mit Gegenständen, sondern mit unsern Begriffen a priori von Gegenständen überhaupt beschäftigt. Ein System solcher Begriffe würde Transzendental-Philosophie heißen. Diese ist aber wiederum für den Anfang zu viel. Denn weil eine solche Wissenschaft sowohl die analytische Erkenntnis, als die synthetische a priori vollständig enthalten müßte, so ist sie, insofern es unsere Absicht betrifft, von zu weitem Umfange, indem wir die Analysis nur so weit treiben dürfen, als sie unentbehrlich nötig ist, um die Prinzipien der Synthesis a priori, als warum es uns nur zu tun ist, in ihrem ganzen Umfange einzusehen. Diese Untersuchung, die wir eigentlich nicht Doktrin, sondern nur transzendentale Kritik nennen können, weil sie nicht die Erweiterung der Erkenntnisse selbst, sondern nur die Berichtigung derselben zur Absicht hat, und den Probierstein des Werts oder Unwerts aller Erkenntnisse a priori abgeben soll, ist das, womit wir uns jetzt beschäftigen. Eine solche Kritik ist demnach eine Vorbereitung, wo möglich, zu einem Organon, und, wenn dieses nicht gelingen sollte, wenigstens zu einem Kanon derselben, nach welchen allenfalls dereinst das vollständige System der Philosophie der reinen Vernunft, es mag nun in Erweiterung oder bloßer Begrenzung ihrer Erkenntnis bestehen, sowohl analytisch, als synthetisch dargestellt werden könnte. Denn daß dieses möglich sei, ja daß ein solches System von nicht gar großem Umfange sein könne, um zu hoffen, es ganz zu vollenden, läßt sich schon zum voraus daraus ermessen, daß hier nicht die Natur der Dinge, welche unerschöpflich ist, sondern der Verstand, der über die Natur der Dinge urteilt, und auch dieser wiederum nur in Ansehung seiner Erkenntnis a priori den Gegenstand ausmacht, dessen Vorrat, weil wir ihn doch nicht auswärtig suchen dürfen, uns nicht verborgen bleiben kann, und allem Vermuten nach klein genug ist, um vollständig aufgenommen, nach seinem Werte oder Unwerte beurteilt und unter richtige Schätzung gebracht zu werden.

 

 

II. Einteilung der Transzendental-Philosophie

 

Die Transzendental-Philosophie ist hier nur eine Idee, wozu die Kritik der reinen Vernunft den ganzen Plan architektonisch, d. i. aus Prinzipien entwerfen soll, mit völliger Gewährleistung der Vollständigkeit und Sicherheit aller Stücke, die dieses Gebäude ausmacht. Daß diese Kritik nicht schon selbst Transzendental-Philosophie heißt, beruht lediglich darauf, daß sie, um ein vollständiges System zu sein, auch eine ausführliche Analysis der ganzen menschlichen Erkenntnis a priori enthalten müßte. Nun muß zwar unsere Kritik allerdings auch eine vollständige Herzählung aller Stammbegriffe, welche die gedachte reine Erkenntnis ausmachen, vor Augen legen. Allein der ausführlichen Analysis dieser Begriffe selbst, wie auch der vollständigen Rezension der daraus abgeleiteten, enthält sie sich billig, teils weil diese Zergliederung nicht zweckmäßig wäre, indem sie die Bedenklichkeit nicht hat, welche bei der Synthesis angetroffen wird, um deren willen eigentlich die ganze Kritik da ist, teils, weil es der Einheit des Planes zuwider wäre, sich mit der Verantwortung der Vollständigkeit einer solchen Analysis und Ableitung zu befassen, deren man in Ansehung seiner Absicht doch überhoben sein konnte. Diese Vollständigkeit der Zergliederung sowohl, als der Ableitung aus den künftig zu liefernden Begriffen a priori, ist indessen leicht zu ergänzen, wenn sie nur allererst als ausführliche Prinzipien der Synthesis da sind, und ihnen in Ansehung dieser wesentlichen Absicht nichts ermangelt.

Zur Kritik der reinen Vernunft gehört demnach alles, was die Transzendental-Philosophie ausmacht, und sie ist die vollständige Idee der Transzendental-Philosophie, aber diese Wissenschaft noch nicht selbst, weil sie in der Analysis nur so weit geht, als es zur vollständigen Beurteilung der synthetischen Erkenntnis a priori erforderlich ist.

Das vornehmste Augenmerk bei der Einteilung einer solchen Wissenschaft ist: daß gar keine Begriffe hineinkommen müssen, die irgend etwas Empirisches in sich enthalten, oder daß die Erkenntnis a priori völlig rein sei. Daher, obzwar die obersten Grundsätze der Moralität, und die Grundbegriffe derselben, Erkenntnisse a priori sind, so gehören sie doch nicht in die Transzendental-Philosophie, weil die Begriffe der Lust und Unlust, der Begierden und Neigungen, der Willkür usw., die insgesamt empirischen Ursprunges sind, dabei vorausgesetzt werden müßten. Daher ist die Transzendental-Philosophie eine Weltweisheit der reinen bloß spekulativen Vernunft. Denn alles Praktische, sofern es Bewegungsgründe enthält, bezieht sich auf Gefühle, welche zu empirischen Erkenntnisquellen gehören.

Wenn man nun die Einteilung dieser Wissenschaft aus dem allgemeinen Gesichtspunkte eines Systems überhaupt anstellen will, so muß die, welche wir jetzt vortragen, erstlich eine Elementar-Lehre, zweitens eine Methoden-Lehre der reinen Vernunft enthalten. Jeder dieser Hauptteile würde seine Unterabteilung haben, deren Gründe sich gleichwohl hier noch nicht vortragen lassen. Nur so viel scheint zur Einleitung oder Vorerinnerung nötig zu sein, daß es zwei Stämme der menschlichen Erkenntnis gebe, die vielleicht aus einer gemeinschaftlichen, aber uns unbekannten Wurzel entspringen, nämlich, Sinnlichkeit und Verstand, durch deren ersteren uns Gegenstände gegeben, durch den zweiten aber gedacht werden. Sofern nun die Sinnlichkeit Vorstellungen a priori enthalten sollte, welche die Bedingungen ausmachen, unter der uns Gegenstände gegeben werden, so würde sie zur Transzendental-Philosophie gehören. Die transzendentale Sinnenlehre würde zum ersten Teile der Elementarwissenschaft gehören müssen, weil die Bedingungen, worunter allein die Gegenstände der menschlichen Erkenntnis gegeben werden, denjenigen vorgehen, unter welchen selbige gedacht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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