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원전+번역문

순수이성비판 2판 서문

이윤진이카루스 2011. 5. 5. 21:05

2판 서문

 

이성이 하는 일에 속하는 지식을 다루는 일이 과학의 확실한 길을 가는지 아닌지는 결과로부터 곧 결정되게 되어있다. 그 지식이 많이 고안된 준비 후에 목적지에 다가오자마자 정지하게 되거나, 그것에 도달하기 위하여, 때때로 다시 돌아가서 다른 길을 추구해야 한다면; 같은 방식으로 다양한 동료들이 과정에 대한 공동 계획에 동의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연구가 과학의 확실한 길에 들어서기는커녕 더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것이다. 그리고 숙고 없이 이전에 채택된 목표에 포함된 많은 것이 헛된 것으로서 포기되어야할지라도, 이 길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성에는 이익이 된다.

논리가 고대시대부터 이 확실한 길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은, 예를 들어 과학의 확실성보다는 윤문에 속하는 몇 가지 불필요한 세부묘사의 제거나 보다 분명한 서술의 해명의 제거를 향상으로서 우리가 간주하지 않는다면, 논리아리스토텔레스이래 한 발자국도 후퇴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으로 증명된다.

또한 현재까지 논리가 하나의 진보적 발걸음을 뗄 수 없었고 또한 모든 평가에 문을 닫고 완벽한 것처럼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은 기묘하다. 그 이유는, 몇몇 현대인들이 지식의 다양한 기능에 (상상력, 기지[機智], 기타 등등) 대하여 부분적으로 심리학적 장(章)을, 부분적으로 지식의 근원이나 대상의 다양성에 (관념론, 회의론, 기타 등등) 따른 다양한 종류의 확실성에 대하여 형이상학적 장(章)을, 부분적으로 편견에 (편견의 원인과 치유책) 대하여 인류학적 장(章)을 도입함으로써 논리를 확대하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지닌 이 논리학의 고유한 속성에 대한 무지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학이 서로의 영역에 침해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것은 과학의 증진이 아니라 왜곡이다; 그러나 논리의 영역은 완전히 정확하게 확정되어 있는데 과학으로서 모든 사고의 공식적 규칙을 상세하게 설명하여 엄격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선험적이든 경험적이든, 그 근원이나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의 성향에서 우연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그것이 어떤 방해를 만난다할지라도).

논리가 그렇게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논리의 한계에 빚지고 있는 이점인데, 그 한계로써 논리는, 이해력이 자체와 이해력의 형태를 제외하고는 다룰 것을 남기지 않고, 모든 지식의 대상들과 그 대상들의 차이점으로부터 추상화하는 - 정말로 논리는 그렇게 할 의무를 지닌다 - 자격을 지닌다. 이성이 과학의 확실한 길을 추구한다는 것은 물론 틀림없이 훨씬 더 어려운데 그 까닭은 이성이 자체 뿐 아니라 대상도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리는 준비과정으로서 말하자면 과학의 앞뜰이 될 따름이고, 이야기가 지식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정말로 논리를 그 지식에 대한 판단으로 예상하는지만 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실제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그렇게 지칭되는 과학을 추구해야 한다.

이제 이 과학에 이성이 존재해야 한다면 과학 속에서 중요한 것이 선험적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그리고 이 지식은, (다른 곳에서 제시되어야 하는)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개념을 단지 결정하는 것으로서나 혹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만드는 것으로서, 두 가지 다른 종류로서 그 대상과 관련될 수 있다. 전자(前者)는 이성의 이론적 지식이고 후자(後者)는 이론의 실용적 지식이다. 두 가지 지식 모두에서 이성이 자체의 대상을 철저히 선험적으로 결정하는 부분, 다시 말해서 순수한 부분은 - 아무리 이 부분이 많이 혹은 적게 포함하고 있다 할지라도 - 우선적이고 분리되어 다루어져야 하고 다른 근원으로부터 유래하는 것과 혼동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수입을 맹목적으로 지출한다면 나쁜 가계이고, 수입이 빚에 떨어질 때 우리는 수입의 어느 부분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고 수입의 어느 방향에서 감액을 해야 하는지 구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물리학은 이성이 그 학문의 대상을 선험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두 가지 과학인데, 전자(前者)는 철저히 순수하고 후자(後者)는 그러나 그 때에 이성의 지식 근원과는 다른 지식 근원과 일치해야 한다.

인간의 이성의 역사가 풍부했던 태초의 시대부터 수학은, 탁월한 민족인 그리스인들 사이에, 과학의 안전한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우리는, 저 왕도(王道)와 조우하거나 더 정확하게는 저 왕도(王道)를 개척하는 것이 - 이성이 자체만을 다루어야 하는 - 논리에 대해서만큼 수학에 대해서도 수월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바 그 왕도(王道)는 (특히 이집트인들 사이에) 암중모색 단계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고, 변경(變更)은 단 한 사람의 운 좋은 사고에 때문에 야기된 혁명에 틀림없이 기인했는데 그 사고의 실험을 그는 과학이 시작해야 하는 통로를 표시하면서 그가 고안했고, 그 통로를 준수함으로써 모든 시대를 관통하여 끝없이 확장되는 안전한 진보가 확실하게 확보된다. 이 지적(知的) 혁명의 역사는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로의 발견보다 훨씬 더 중요한데, 그 행운의 저술가의 역사와 같이 보존되지 않았다. 그러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Diogenes Laertius)가 이 문제들에 대한 전설을 전하면서, 기하학적 증명 가운데서 심지어 가장 하찮은, 심지어 평범한 의식에 대해서는 그렇게 증명할 필요도 없는, 증명에 관한 이른바 발견자를 지칭하는 사실은, 적어도 이 새로운 길을 먼저 일별함으로써 야기된 변경(變更)에 대한 기억이 수학자들에게 틀림없이 매우 중요하게 보여서 그리하여 망각될 수 없었음을 증명한다. 한 줄기의 빛이 이등변삼각형의 특성을 증명한 최초의 사람에게 (그가 탈레스[Thales]이든 다른 사람이든) 떠올랐다; 왜냐하면 참된 방법이란 도형에서나 도형의 적나라한 개념에서 그가 본 것을 추적하여 그로부터, 말하자면, 도형의 속성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개념에 따라서 선험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여 기술(記述)했던 (구성을 통하여) 것을 산출해야 한다는 것을 그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험적으로 어떤 것을 확실하게 알기 위하여, 그가 스스로 자신의 개념에 따라서 도형에 도입했던 것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을 제외하고 그는 도형에 어떤 것도 귀속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 과학의 왕도에 들어서기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는데 왜냐하면 영리한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의 명제가 이 발견을 부분적으로 유발하고 이미 그 왕도로 향하던 사람들은 더 격려를 받은 이래 겨우 약 한 세기 반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또한 그 발견은 지적(知的) 혁명의 갑작스런 결과로서 설명될 수 있다. 자연과학이 경험적 원리에 근거하는 한, 나는 여기서 다만 자연과학을 고찰하고 싶다.

갈릴레이(Galilei)가 미리 자신이 결정한 무게를 지닌 공을 경사진 평면 위에서 굴렸을 때나 토리첼리(Torricelli)가 자신이 미리 분명한 양의 물의 무게와 동일하게 계산한 무게를 공기가 지니도록 만들었을 때, 또는 더 최근에 슈탈(Stahl)이 어떤 것을 뽑아내거나 그것을 복원시킴으로써 철을 산화물로 변화시키고 다시 산화물을 철로 변화시켰을 때, 한 줄기 빛이 모든 자연과학자들에게 떠올랐다. 이성은 자체의 계획에 따라서 산출한 것을 이해한다는 것과, 자연의 굴레에 속박되지 않으면서 이성은 자체의 판단 원칙을 사용하여 항구적인 법칙을 향해 전진하고 자연에게 강요하여 이성 자체의 문제에 답변을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터득했다; 왜냐하면 이전에 기획되지 않은 계획에 따라 수행되는 우연한 관찰은, 이성이 관여하여 발견하려는 유일한 필수적 법칙을 낳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은, 한 손에 그 원리에 따라서만 일치하는 현상이 법칙으로서 간주될 수 있는, 자체의 원리를 지니고 다른 한 손에는 그 원리에 따라서 자체가 고안한 실험을 지니고 자연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자연에 다가가지만 스승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듣는 제자의 특징으로서가 아니라 증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제시한 질문에 대답하도록 강요하는 지정된 재판관의 특징으로서 이다. 그래서 심지어 물리학은 자체의 관점에서 이로운 혁명을 전적으로 사고(思考)에 빚지고 있는데, 사고(思考)는 이성이 자연에서 추구해야 하지만 (자연에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 이성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어서 이성 자체로서는 자연에 관하여 스스로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과학은, 그렇게 많은 세기동안 단지 암중모색에 지나지 않다가 과학의 안전한 길에 들어섰다.

형이상학은 완전히 고립된 사변적인 이성의 지식인데 그 지식은 경험의 가르침 위에 전적으로 솟아있고 그 지식 속에서 이성은 그 가르침 자체의 제자가 되어야 하며, 개념만을 (수학처럼, 직감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통해서이다. 형이상학이 다른 과학보다 더 오래되었고, 다른 과학들이 철저히 파괴하는 야만성의 나락에 완전히 떨어져도 살아남는다고 할지라도, 형이상학은 지금까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아서 과학의 안전한 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성은, 심지어 가장 공통적인 경험이 확인하는 법칙을 (이성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선험적으로 보고 싶어 할 때도 과학의 안전한 길에서 부단히 정체되기 때문이다. 항상 우리는 우리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우리를 유도하지 않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다시 추적해야 한다. 또한 형이상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에서 여하한 종류의 의견일치를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어서 형이상학은 장난 전투에선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나 전적으로 독특하게 어울리는 전쟁터로 보였고 그 전쟁터 안에서는 어떤 무사도 조그만 땅덩어리도 성공적으로 획득하지 못했는데 적어도 그 무사에게 그 땅덩어리를 점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에서 그렇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형이상학이 지금까지 단지 암중모색이었고, 최악의 경우로 오직 개념 가운데서 암중모색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야에서 왜 과학의 안전한 길이 발견되지 않았을까? 혹시 그 길이 불가능할까? 그렇다면 왜 본성은 불안한 노력으로써 우리의 이성을 둘러싸고, 자체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하나로서 그런 길을 추구할까? 게다가 우리가 지닌 지적(知的) 호기심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에서 이성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 뿐만 아니라 주장을 통하여 우리를 지체시켜서 종국적으로 우리를 기만한다면, 우리의 이성에 우리가 보낼 신뢰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적은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우리가 참된 길을 놓쳤다면; 소생한 노력으로써 우리의 선배들보다 우리가 더 운이 좋기를 바라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신호를 사용할 수 있을까?

수학과 자연과학의 사례들은, 단 하나의 갑작스런 혁명을 통하여 지금의 상태가 되었는데 내가 보기에 충분히 두드러져서, 그 사례들이 그렇게 크게 이익을 보았던 관점의 변화에서 본질적인 특징이 무엇이었는지를 우리가 고찰할 것을 제안한다. 그 사례들의 성공으로 인하여 우리는 최소한도 실험을 통하여, 이성적 지식으로서 그 사례들이 형이상학에 대하여 지닐 유추가 허용하는 한, 그 사례들의 과정을 모방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닌 지식은 대상과 일치해야 한다고 상정(想定)되었지만, 개념을 통하여 대상과 관련하여 선험적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진보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이런 상정 아래서, 실패로 끝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상이 우리가 지닌 지식과 틀림없이 합치된다고 우리가 상정한다면, 형이상학의 임무에서 더 성공적이지 않을지를 시험해야 한다. 이것은 요구되는 것과 더 잘 합치될 텐데, 즉 대상들이 주어지기 전에 대상들과 관련하여 어떤 것을 결정하여 선험적으로 대상들에 대한 지식을 갖는 일이 틀림없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확히 코페르니쿠스의 최초 가설을 기초로 나아가야 한다. 천체가 모두 관찰자 주위를 회전한다는 가정에 근거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데서 만족스러운 진전을 보지 못하자 그는 관찰자가 회전하고 별들은 정지해 있도록 만든다면 자신이 더 잘 성공하지 않을지 시험했다. 대상에 대한 직감에 관해서도 형이상학에서 우리는 유사한 방식을 시도할 수 있다. 직감이 틀림없이 대상의 특징과 합치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우리가 대상에 대하여 어떤 것을 알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대상이 (감각의 대상처럼) 우리의 직감능력의 특징과 합치된다면, 나는 이 가능성을 철저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직감이 알려질 수 있다면 나는 직감에 머물 수 없고 직감의 대상으로서 어떤 것에 직감을 표현으로서 적용하여 직감을 통하여 대상을 표현하여야 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이용하여 이 결정을 실현하는 개념이 대상과 합치된다고 상정(想定)할 수 있거나 대상이 개념에 합치된다고 나는 상정하는데 그럴 경우 동일한 것은 경험 안에서만 (주어진 대상으로서) 직감이 알려질 수 있는 경험이 개념과 합치된다고 나는 상정한다. 전자(前者)의 경우, 대상에 관하여 내가 어떤 것을 어떻게 선험적으로 알 수 있는지에 대하여 나는 다시 당혹에 빠진다. 후자(後者)의 경우, 전망의 더 희망적인데 왜냐하면 경험 자체가 이해력을 요구하는 지식의 종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해력에는 대상이 나에게 주어지기 전에 내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그리하여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내가 상정해야 할 규칙들이 있다. 그 규칙들은 선험적인 개념들로 표현되고 그 선험적인 개념들에 모든 경험의 대상이 반드시 합치되어야 하고 일치해야 한다. 대상에 관해서는, 대상이 이성을 통해서만 진실로 필수적으로 사고되지만 (최소한도 이성이 대상을 생각하는 방식에서) 경험으로 주어질 수 없다면 대상을 생각하려는 시도는 (사고되는 것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고방식의 변경된 방법으로서 수용하는 것에 대하여 탁월한 표준을 제공할 것인데 다시 말해서, 우리는 물체에 대하여 오직 우리 자신이 물체 안에 위치시키는 것만 인식한다는 것이다.**

                                                                                                                             

 

 

* 나는 여기서 실험적 방법의 역사의 정확한 과정을 추적하고 있지 않은데 그 최초의 시작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 이 방법은 자연과학자가 사용하는 방법을 모방하는데 실험을 통하여 확인이나 반증을 수용하는 것에서 순수이성의 요소를 찾는 데 의존한다. 이제 순수이성의 명제는, 특히 그 명제들이 가능한 경험의 모든 한계를 넘어 모험을 한다면, 실험을 통하여 그 명제의 대상과 함께 실험될 수 없다 (자연과학에서와 같이): 우리가 선험적으로 채택하는 개념들원리들을 다루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것들이 대상을 두 가지 다른 면에서 고찰하는 데 사용되도록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한편으로는 경험과 관련하여 감각의 대상으로서 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의 모든 한계를 초월하려고 노력하는 동떨어진 이유 때문에, 우리가 생각만 하는 대상으로서 이다. 우리가 사물을 이 이중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우리가 순수이성의 원리와의 합치가 있음을 발견하지만, 우리가 사물을 단지 한 가지 관점에서 고찰할 때 이성이 불가피한 갈등에 관련됨을 우리가 발견한다면, 실험이 이 구분에서 올바른 것을 지지하여 결정한다.

 

 

 

 

 

 

 

 

 

 

 

 

 

 

 

 

 

 

 

 

 

 

 

 

 

 

 

 

 

 

 

 

이 실험은 욕망에 비례하여 성공하고, 형이상학이 약속하는 바, 형이상학의 최초 부분에서 - 선험적으로 그 개념들에 몰두해 있는 부분으로 그 개념에 대하여 일치하는 대상이, 그 개념들과 정비례하여, 경험으로 주어질 수 있다 - 과학의 안전한 길이다. 이유인즉 우리는 이 변화된 사고방식에 따라서 어떻게 지식이 선험적으로 가능한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며, 경험 대상의 구현으로서 간주되는 자연의 선험적 토대를 형성하는 법칙에 대하여 충분한 증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인데, 두 가지 업적 모두 지금까지 추구된 과정에서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험적으로 인지하는 우리가 지닌 능력의 이 연역은, 형이상학의 첫 번째 부분에서, 당혹스러운 결과를 낳고 두 번째 부분에서 형이상학의 전체 목표에 매우 해로운 모습을 지닌 결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이 과학이 최고 중요하게 이룩하려는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가능한 경험의 한계를 초월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심지어 실험이 놓여있는데 그 실험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우리가 지닌 선험적인 이성의 지식에 대한 이 최초 평가의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그런 지식이 현상에만 관련되어 있어서, 본질적인 물체를 정말로 그 자체로 남겨두어야 하고 우리들에 의하여 알려진 것으로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를 경험의 한계와 모든 현상의 한계를 반드시 초월하도록 재촉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으로 이성이, 필연적으로 그리고 권리로써, 연속적인 조건을 완수하도록 요구된 바와 같이 본질적인 물체에서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적 지식이 본질적 물체 자체로서의 대상과 일치한다면, 우리는 절대적인 것이 반대의견 없이는 고찰될 수 없음을 발견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개념들이, 그 개념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바와 같이, 본질적인 물체 자체로서 이 물체들과 일치하지 않지만 이 대상들이 반대로 현상으로서 우리들이 지닌 사고방식과 합치된다고 우리가 상정(想定)한다면 반대의견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물체들을 알고 있는 한 (물체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한)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물체를 알지 못하는 한 다시 말해서 물체들이 본질적인 물체들인 한, 결과적으로 물체들 안에서 절대적인 것이 조우될 수 없음을 우리가 발견한다면, 우리가 처음에 실험 목적으로 상정(想定)했던 것이 이제 분명하게 확인된다고 우리는 합당하게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 초월적 분야에서 모든 진보가 사념적 이성에게 거부된 이후에, 이성에 대한 실제적 지식에서 절대적인 것에 대한 이성의 초월적 개념을 결정하기에 자료가 충분한 것으로 밝혀져서, 형이상학의 소망에 따라서, 선험적으로 가능한 지식으로써 우리가 실용적 관점을 통해서만 모든 가능한 경험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열려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하여 사변적 이성은 그런 확장을 위한 여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변적 이성이 동시에 확장을 텅 비게 남겨놓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유롭게 - 정말로 우리는 요구를 받는다 -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이성의 실용적 자료를 이용하여 그 확장을 채운다.**

지금까지 형이상학의 절차였던 것을 변경하려는 이 시도는, 기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이 세운 전례에 따라서 그 절차를 완벽하게 혁명함으로써, 순수사변이성에 대한 이 비판의 주요 목표를 형성한다. 그것은 방법에 대한 논문이지 과학 자체의 체계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과학의 한계뿐만 아니라 과학의 전체 내부 구조에 관하여 과학의 전체 개요를 기술한다. 왜냐하면 순수사변이성에는, 그 이성이 사고의 대상을 선택하는 다양한 방식에 따라서 자체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으며 그 이성이 자체의 문제들을 제시하여 형이상학의 체계에 대한 완벽한 개요를 추적할 수 있고 추적해야 하는 다양한 방식을 또한 철저하게 열거할 수 있는, 고유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요점에 관해서는 생각하는 주체가 자체로부터 도출하는 것을 제외하고, 선험적 지식 속에 있는 어떤 것도 대상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두 번째 요점에 관해서는 순수이성이란, 그 이성의 지식에 대한 원칙들에 관한 한, 완전히 분리된 스스로 존재하는 통합체인데 그 통합체 안에서, 조직된 몸체 안에서처럼, 모든 기관이 모든 다른 기관을 위하여 존재하고 모든 기관이 각각의 기관을 위하여 존재하여, 원칙이 순수이성의 전체 이용과 관련한 순수이성의 보편적 관계에서 조사되지 않는다면, 어떤 원칙도 한 가지 관계에서 안전하게 얻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에는, 이 비판을 통하여 형이상학이 과학의 안전한 길에 세워진다면 형이상학이 자체의 전체 분야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대상을 다루는 다른 과학에는 발생하지 않는 것과 같은 (왜냐하면 논리는 다만 일반적인 사고의 형태에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드문 행운이 또한 있다. 형이상학은 단지 원리들과, 이 원리들 자체에 의하여 결정되는 바와 같이 원리들의 이용 한계를 다루어야 하며 그리하여 형이상학은 자체의 업무를 완수하여 그 업무를 추가 사항이 필요 없는 자본으로서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형이상학은 근본적 학문으로서 이 완벽함을 또한 이룩해야 하며, 형이상학에 관하여 틀림없이 다음과 같이 언급될 수 있다: 미완의 일은 완수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러나 우리가 후손에게 남기자고 제안하는 이것은 어떤 종류의 보물인지라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소위 그렇게 순수이성비판에 의하여 정화되어 확립된다는 형이상학의 가치는 무엇인가? 현재 작업에 대한 개괄적인 견해로써 사람들은 형이상학의 결과가 부정적일 따름이라고 생각하여, 사변적 이성을 사용하여 경험의 한계를 우리가 초월하는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형이상학의 일차적 가치이다. 그러나 사변적 이성이 자체의 고유한 한계를 넘어 모험을 하는 원리들이 실제로 이성사용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다 세밀히 관찰하면서 발견하는 바와 같이, 이성사용을 불가피하게 축소한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긍정적이 된다. 그 원리들은 실제로 감성에 고유하게 속하는데, 그렇게 사용된다면 감성의 한계를 실제적인 것과 동일한 시공에 존재하게 만들어 이성의 순수 (실천적) 사용에서 이성을 대체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순수이성비판이 사변적 이성을 제한하는 한 순수이성비판은 정말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순수이성비판이 그리하여 실천이성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그 사용을 파괴하겠다고 위협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때문에 순수이성비판에는 실제로 긍정적이고 매우 중요한 쓸모가 있다.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순수이성의 실천적 사용이 (도덕) 있으며 그 사용 속에서 순수이성비판이 피할 수 없이 감성의 한계를 초월한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하자마자 적어도 그러하다. 비록 실천이성이, 이 과정에서, 사변적 이성으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할지라도, 이성이 이성 자체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이성의 반작용에 대항하여 확보되어야 한다. 순수이성비판이 하는 일이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그러므로, 시민들 각자가 자신들의 업무를 평화롭고 안전하게 추구하기 위하여, 시민들이 서로 두려워하고 있는 폭력을 예방하는 일이 경찰의 주업무일 뿐인 한 경찰은 긍정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공간과 시간은 감각적 직관의 형태일 따름이어서 현상으로서 물체의 존재에 대한 조건일 따름이라는 것과, 게다가, 직관이 이 개념에 일치하여 주어질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에게는 이해 개념이 없어서 결과적으로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한 요소가 없다는 것과, 그리하여 우리는, 감각적 직관의 대상 즉, 현상의 경우를 제외하고 본질적인 물체로서의 대상에 대한 지식을 지닐 수 없다는 것 - 이 모든 것이 순수이성비판의 분석적 부분에서 증명된다; 그리하여 이성이 지닌 모든 가능한 사변적 지식이 경험의 대상에만 국한된다고 정말로 귀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대상들을 본질적 물체들로서 이해할 수 없다할지라도, 우리는 이 대상들을 적어도 본질적 물체들로서 틀림없이 생각할 수 있다는 우리의 진전된 주장은 기억되어야 한다***. 이유인즉 그렇지 않으면 출현하는 것도 없이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불합리한 명제가 도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순수이성비판이 필요하다고 밝힌, 경험의 대상물로서의 사물들과 본질적인 사물들인 저 동일한 사물들 사이의 구분이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상정하자. 그럴 경우 일반적으로 모든 사물들은, 그 사물들이 효과 있는 원인으로 간주되는 한, 인과성의 원리에 의하여 그리하여 자연의 과정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동일한 존재에 대하여, 예를 들어 인간의 영혼, 그 의지가 자유롭지만 자연적인 필연성에 종속되어 있다고, 다시 말해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명백한 모순 없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영혼을 두 가지 명제에서 동일한 의미로,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물체로서 (본질적인 물체로서) 이해했고, 앞의 순수이성비판을 통해서가 아니면 달리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순수이성비판이 대상은 두 가지 다른 의미에서, 즉 현상과 본질적 물체로서 이해될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해개념의 연역이 유효하고 그리하여 인과성의 원리가 전자(前者)의 의미에서 이해되는 물체들에만 적용된다면, 다시 말해서 그 물체들이 경험의 대상이라면 - 후자(後者)의 의미에서 파악되는 이 동일한 대상들이 원리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에 - 동일한 의지가 현상적으로, 다시 말해서, 그 의지의 가시적 행동에서, 반드시 자연법칙에 종속되어서 지금까지 자유롭지 않은 반면 다른 한 편으로 본질적인 물체에 속해서 그 법칙에 종속되지 않아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데는 모순이 없다. 나의 영혼은, 후자(後者)의 관점에서 고찰되면, 사변적 이성을 통해서는 정말로 알려질 수 없다 (그리고 경험적 관찰을 통해서는 더욱 알려질 수 없다); 내가 의미의 세상에서 효과들이 기인한다고 여기는 존재의 특성으로서의 자유는 그리하여 그런 방식으로서는 또한 알려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 나는 그런 존재를 그 존재에서는 결정되었지만 시간에서는 아직 결정되지 않는 것으로서 틀림없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개념이 여하한 직감에 기인한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자유를 생각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이해에 대한 순수 개념들과 그 개념들로부터 유래하는 원칙들에 대하여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제한들의 두 가지 재현 양태인 감각적인 재현과 지적(知的) 재현을 우리가 비판적으로 구분하는 데 합당한 설명이 주어진다면, 자유의 재현은 적어도 자기-모순적이 아니다. 도덕성이 자유를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가 지닌 의지의 특질로서 상정(想定)한다고 우리가 인정한다면; 다시 말해서 도덕성이 실용적 원칙들을 - 우리의 이성에 고유한 원초적인 원칙들 - 이성의 선험적 자료로서 낳는다고, 그리고 이것은 자유를 전제하지 않고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우리가 인정한다면; 그리고 동시에 그런 자유는 사고되는 것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사변적 이성이 증명했다고 우리가 인정한다면, - 도덕성을 위하여 수행된 - 전자(前者)의 상정은 이 다른 주장에 길을 내주어야 할 것인데 그 주장과 반대되는 주장은 명백한 역설을 포함하고 있다. 왜냐하면 도덕성 부인이 역설을 포함하는 것은 오직 자유를 상정함에 근거하기 때문에 자유는, 자유와 함께 도덕성 또한 자연의 과정에 복종해야 할 것이다. 도덕성은 자유가 이해되어야 한다고 정말로 요구하지 않고, 다만 자유가 스스로 모순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리하여 적어도 사고되는 것을 용인해야 하고 그리하여 그렇게 사고되어 자유가 동일하게 자연의 과정과 일치하면서 자유로운 행동의 (다른 관점에서 간주되는) 길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도덕성의 원리와 자연의 원리는, 그러므로, 각각 자체의 위치를 유효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판이 이전에 본질적 물체에 대하여 우리가 지닌 불가피한 무지(無知)를 확립하는 한에서 가능할 따름이어서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현상에만 국한 시켰다. 심지어 순수이성에 대한 비판적 원리가 지니는 긍정적 이익에 관한 이 토론도 (神)과 우리의 영혼에 대한 단순한 특성의 개념에 관하여 유사하게 밝혀질 수 있지만 간략성을 위하여 나는 지나간다. 동시에 사변적 이성이 과도한 통찰력에 대한 자체의 주장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면, 나는 또한 나의 이성의 필수적인 실용적 이용을 목적으로 한 (), 자유 그리고 불멸을 상정(想定)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통찰력에 도달하기 위하여 사변적 이성은 사실상 가능한 경험의 대상들에게만 확대되고,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에 또한 적용된다면, 항상 실제로 이것을 현상으로 변환시켜서 순수이성의 모든 실용적 확대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념의 여지를 남기기 위하여 나는 지식을 거부하여야 한다. 형이상학의 독단성은, 다시 말해서, 이전에 순수이성을 비판하지 않고도 형이상학에서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는 편견은 도덕성과 갈등을 일으키는, 항상 매우 독단적인, 모든 의심의 근원이다. - 그렇다면 순수이성에 대한 비판에 맞추어 작성된 체계적 형이상학이라는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라도, 그런 선물은 낮게 평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성은, 지금까지처럼 신중함이나 자기비판 없이 무작정 더듬는 대신, 과학의 안전한 길을 따를 수 있을 뿐만 아니다; 호기심 많은 젊은이들은 그들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다른 사람들도 통찰력을 갖지 못할 것들에 관한 쉬운 사념에 빠지기를 그렇게 일찍 그리고 그렇게 크게 격려를 받는 - 정말로 더 완벽한 과학들에 대한 연구를 놓치는 반면, 새로운 사고와 견해를 창안하라고 격려를 받는 - 평범한 독단론에서 보다 더 유용하게 자신들의 시간을 쓸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이익을 참작한다면 도덕성과 믿음에 대한 모든 거부는 영원히 끝장이 날 것인데 그것도 소크라테스의 방식으로 끝장이 나는데 다시 말해서 거부자의 무지에 대한 가장 명백한 증거를 통해서이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형이상학이 항상 존재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인데, 그 형이상학과 함께 순수이성에 천부적인 변증법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으로부터 형이상학이 지닌 오류를 그 오류의 근원에서 막아버림으로써, 한 번이자 마지막으로, 형이상학이 지닌 모든 해로운 영향력을 제거하는 일이 철학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 이 순수이성의 실험은, 화학에서 때때로 감축 실험이나 통상적으로는 합성과정으로 불리는 것과 커다란 유사점을 지닌다. 형이상학자의 분석은 선험적인 순수 지식을 두 가지 매우 다른 요소로 분리하는데 다시 말해서 현상으로서의 물체에 대한 지식과 본질적인 물체에 대한 지식이다. 그의 변증법은, 이성이 요구하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필수적인 개념과 조화를 이루어 다시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며, 위의 구분을 통하지 않고는 이 조화가 획득될 수 없음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그러므로 수용되어야 한다.

** 그와 같이 천체의 움직임에 관한 핵심적인 법칙은 코페르니쿠스가 처음에 단지 가설로서 가정했던 것에 확립된 신빙성을 부여했고, 동시에 우주를 붙들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뉴튼의 인력) 증명했다. 코페르니쿠스가 터무니없지만 진실한 방식으로 천체에서가 아니라 관찰자에게서 관찰된 움직임을 찾는 모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주를 붙들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은 영원히 발견되지 않은 채로 남았으리라. 순수이성비판에 설명된 이 가설과 유사한 관점의 변화를 나는, 항상 가설적인 그런 변화의 최초 시도의 특징을 주시하기 위하여, 이 서문에 단지 가설로서 제시한다. 그러나 순수이성비판 자체 안에서는 그런 변화가 우리가 시공을 재현하는 상황으로부터 그리고 이해력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으로부터 가설적으로가 아니라 명백하게 증명될 것이다.

1.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면, 어떤 일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 대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나는 그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경험에 의하여 증명된 자체의 현실성으로 부터나 혹은 이성을 통하여 선험적으로). 그러나 내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내가 지닌 개념이 가능한 사고라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 무엇이든지 생각할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의 구현에서 개념의 가능성과 일치하는 대상이 존재한다고 내가 지지할 수 없을지라도, 이것은 개념의 가능성에 대하여 충분하다. 그런 개념에 객관적인 효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전자[前者] 가능성이 단지 논리적이기 때문에 실제적 가능성)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보다 많은 것은 지식의 이론적 근원에서 추구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실용적인 근원에 놓여 있을 것이다.

 

 

 

 

 

 

 

 

 

 

 

 

 

 

 

 

 

 

 

 

 

 

 

과학 분야의 이 중요한 변화, 그리고 사변적 이성이 겪어야 하는 자체의 거만한 소유물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인간의 관심은 지금까지 동일한 훌륭한 상태에 남아있고 세상이 지금까지 순수이성의 가르침으로부터 도출한 이익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상실은 학파들의 독점에만 영향을 미치지 인류의 이익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나는 가장 고집 센 독단론자에게 질문한다, 본질의 단순성에서 도출된 죽음 이후의 우리 영혼의 지속에 대한 증거가, 또는 주관적과 객관적으로 실용적인 필요성을 미묘하지만 무력한 구분을 통하여 도달된 보편적 작용에 반대가 되는 의지의 자유에 대한 증거가, 또는 철저히 현실적인 존재라는 (변수의 무작위성과 원동자[原動者: eines ersten Bewegers: a prime mover]의 필요성에 관한) 개념으로부터 연역된 신(神)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학파를 떠난 후부터 대중에게 도달하는 데나 대중의 신념에 최소한의 영향력을 미치는 데 성공한 적이 있는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그런 미묘한 사색에 대한 인간이 지닌 보편적 이해력의 무능 때문에 기대된 적도 없다. 사실상 그런 신념은, 그 신념들이 이성적 근거에 놓여 있는 한, 완전히 다른 고찰에 기인한다. 미래의 생활에 대한 희망은 인간 본성의 두드러진 경향 속에 그 뿌리를 지니고 있는데, 시간적인 것에 의하여 충족될 수 없다 (자체의 전체 목적의 경향에 대하여 불충분한 것처럼); 자유의 의식은, 모든 경향의 주장과 반대로, 의무와 관련된 분명한 진술에만 달려있다; 그리고 결국 현명하고 위대한 세계 창시자에 대한 신념은, 이성적 토대에 근거한다면, 자연 속 도처에서 목격되는 탁월한 질서와 아름다움과 복지에 의해서만 발생된다.

학파들이 보편적인 인간 관심사의 문제에서 대부분의 인간들이 쉽게 닿을 수 있는 범위 내에 동등하게 존재하는 (우리가 최고로 경의를 표할 수 있는) 통찰력보다 더 높고 더 폭넓은 통찰력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과, 철학의 학파들로서 자신들을 저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도덕적 목적을 위하여, 충분한 증거의 토대를 기르는 데 국한시켜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을 때 이 후자(後者) 소유물은 방해를 방해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통하여 훨씬 더 큰 명성을 획득한다. 그 변화는 학파들의 오만한 주장에만 영향을 미치는데, 그런 진리에 대한 유일한 전문가이자 그런 진리를 유일하게 소유하고 있는 집단으로 (그 학파들이 많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게 합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흔쾌히 간주될 것인데 열쇠는 자신들이 지니면서 대중에게는 열쇠의 이용만을 알릴 것이다 (나와 같이 그가 모르는 것을 그는 홀로 알고 있는 체하고 싶어 한다 [quod mecum nescit, solus vult scire videri]). 동시에 합당한 존경이 사변적 철학자의 더 겸손한 주장에 주어진다. 그 철학자는 대중이 그것을, 다시 말해서 이성에 대한 비판을 알지 못하는데도 대중에게 이익을 주는 과학과 관련하여 유일한 권위자로 남는다. 왜냐하면 그 비판은 대중적이 될 수 없고, 진실로 그래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인데 이유인즉 사람들은 유용한 진리를 목적으로 정교하게 구성된 논증들을 머릿속에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그 논증들에 반대하여 제기될 수 있는 반대론들 또한 원치 않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두 가지 모두는 사변의 높은 곳에 도달하는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리하여 사변적 이성의 권리를 철저히 조사하여, 형이상학자들이 (그리고 그런 상태로, 드디어 사제들 또한) 후에 자신들의 가르침이 왜곡됨으로써 필연적으로 관련되는 논쟁의 결과로서, 조만간 틀림없이 심지어 군중 속에서 터져 나오는 추악한 소문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예방하는 것이 학파의 의무이다. 비판만이 유물론, 숙명론, 무신론, 자유로운 사고, 광신, 그리고 미신의 뿌리를 잘라 버릴 수 있는데 그것들은 보편적으로 해로울 수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관념론회의론의 뿌리도 잘라 버릴 수 있는데 그것들은 학파에 더 해롭고 군중에게 전해질 수 없다. 정부가 지식인의 문제에 간섭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군중이 주목하지도 않아서 없어진다고 해도 군중이 느낄 수 없는 거미줄의 몰락에 대한 공개적인 위험을 시끄럽게 외치는 학파들의 웃기는 독재를 지원하는 것보다 그런 비판의 자유를 촉진하는 것이 인류뿐 아니라 과학을 현명하게 존중하는 데 더욱 합치될 것인데, 그런 비판의 자유에 의해서 이성의 적용이 확고한 토대에 설립될 수 있다. 이 순수이성비판은 과학으로서 순수한 지식에서 이성의 독단적 과정을 반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항상 독단적이어야 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서 확고한 원리로부터 선험적으로 엄격한 증거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단론, 다시 말해서 원리에 따라서 개념들만으로 부터 (철학적인 개념들), 이성이 오랫동안 해왔던 바와 같이, 순전히 지식만으로 진보를 이룩하는 것과 이성이 그 개념들에 도달한 방식과 법칙을 조사하지 않고 그렇게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는 주장에 순수이성비판은 반대한다. 그러므로 독단론은, 자체의 능력에 대한 사전 비판이 없으면, 순수이성의 독단적 과정이다. 독단론을 이렇게 반대하면서 대중성이라는 이름으로 상정되는 수다스러운 천박함이나, 모든 형이상학을 빨리 처리해버리는 회의론 또한 우리가 옹호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순수이성비판은 철저한 형이상학을 과학으로서 촉진하는 데서 사전적 작업인데 철학체계의 가장 엄격한 요구에 따라서, (대중적이 아니라) 학파에 합당하게 반드시 독단적으로 이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수이성이, 철저히 선험적으로, 사변적 이성을 완전히 만족시키면서 자체가 할 일을 수행하겠다고 자청하는 요구로 타협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순수이성비판이 규정한 계획의 수행에서, 다시 말해서 형이상학의 미래 체계에서 우리는 모든 독단적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인 유명한 볼프(Wolf)의 엄격한 방식을 추종해야 한다. 그는 사례를 통하여 (그리고 그는 이 사례로써 지금까지 죽지 않은 독일에서의 완벽함에 대한 정신을 일깨웠다) 원리의 합법적인 정립과 개념의 명백한 결정과 증거에 대한 엄격한 증명과 서술에서 대담한 오류의 예방을 통하여 어떻게 과학의 안전한 길을 회득될 수 있는지를 밝힌 최초의 사람이었다. 사전에 기관에 대한, 다시 말해서 순수이성 자체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토대를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 그에게 떠올랐더라면, 그는 특히 형이상학을 과학의 위험에 까지 고양시키기에 특히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당시 독단적 사고방식에 기인하는 것이며, 그 독단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당시 철학자들이나 모든 이전 시대의 철학자들 모두가 서로 비난할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볼프가 가르치는 방식과 순수이성비판의 과정 두 가지 모두를 거부하는 과학이 제공하는 족쇄를 완전히 떨치려는, 그리하여 일을 놀이로, 확실성을 견해로 그리고 지혜사랑을 독단사랑으로 바꾸려는 생각밖에 가질 수 없다.

이 두 번째 판본에 관하여, 가능한 한 많이 난제와 모호함을 완화시키기 위하여, 합당한 바와 같이 나는 기회가 그냥 지나가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그 난제와 모호함은 아마도 나의 잘못이 없지 않겠지만, 신중한 사람들이 나의 책을 평가하면서 빠지는 오해를 야기했을 것이다. 명제들 자체와 그 명제들의 증거, 그리고 또한 그 계획의 형태와 완벽성에서 나는 변경시킬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것은 내가 그것들을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기 전에 복속시켰던 긴 시험에 부분적으로 기인하며, 부분적으로 물체 자체의 성질에 다시 말해서 순수사변이성에 기인한다. 순수사변이성은 안에서 모든 것이 기관(器官: Organ)인, 다시 말해서 전체가 모든 부분을 위하여 존재하고 모든 개체들이 전체를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기관인 참된 구조를 포함하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작은 결함일지라도, 그 결함이 오류(실수)이든 결핍이든, 틀림없이 사용되면서 불가피하게 드러난다. 이 철학체계는, 내가 희망하는 바와 같이, 미래를 통하여 이 불변성을 유지할 것이다. 이 믿음에서 나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자만심이 아니라, 우리가 최소의 요소에서 순수이성 전체로 나아가든 반대로 전체에서 (왜냐하면 실용적인 것의 분야에서 자체의 최종 목적을 통하여 이것 또한 주어지기 때문에) 각 부분으로 후퇴하든, 결과의 동일성을 통하여 실험적으로 획득되는 증거이다. 심지어 제일 작은 부분이라도 변경하려는 시도는 철학체계 안에서 뿐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이성 안에서도 즉시 역설을 유발한다. 오직 서술에는 아직도 할 일이 많고 나는 이 판본에서 부분적으로 미학(美學: Ästhetik)에 대한, 특히 시간의 개념에 대한 오해와, 부분적으로 이해력 개념의 추론에 대한 모호성, 부분적으로 순수 이해력의 원리에 대한 증거에서 예상되는 충분한 증거 부족, 마지막으로 부분적으로 합리적인 심리학에 부쳐진 잘못된 추론에 대한 오해를 고쳐야 하는 개선을 추구했다. 이 지점을 넘어서 (다시 말해서 초월적 변증법의 제 1장 끝을 넘어) 나는 서술방식을 바꾸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시간이 너무 짧고 유능하고 공정한 비판가들 가운데서 내가 나머지 부분과 관련하여 오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들의 몫인 합당한 칭찬을 하며 그들의 이름을 나는 감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내가 그들의 비평에 쏟았던 배려는 합당한 장소에서 자동적으로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개선사항들은 이 책을 너무 두껍게 만들지 않으면 면할 수 없는 작은 손실을 포함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서, 전체의 완벽성에 실제로 필수적이지는 않다할지라도 다른 목적으로는 실용적일 수 있는 많은 독자들이 놓치기를 꺼려하는 특정을 구절들은 나는 생략하거나 축약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야 나는, 내가 희망하는 바와 같이, 이제 더 이해가능한 말에 대한 공간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말은 근본적으로 문장과 문장의 근거에 관하여 절대적으로 아무 것도 변경하지 않는다할지라도 이전 표현방식으로부터 때때로 멀리 벗어나서 활성화만으로는 효과를 보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은 손실은, 초판본과 대조함으로써 대체될 수 있는데, 내가 희망하는 바와 같이, 새로운 판본이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우월하게 대체될 것이다. 나는 발간된 다양한 책에서 (부분적으로는 많은 서적에 대한 비판 기회를 통하여, 부분적으로는 특별한 논문에서) 독일에서 철저함에 대한 정신이 없어지지 않았고 탁월한 사고의 자유가 우세함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가려졌음을 주목하고 기뻤으며 감사했다; 그리고 순수이성비판의 어려운 과정이 용감하고 비상한 머리들이 나의 책을 - 체계적이어서 그런 상태로서만 지속적이고 그리하여 매우 필수적인 순수이성의 과학을 낳는 저술 - 통독하는 것을 막지 않았음을 주목했다. 통찰의 완벽함을 명백한 설명을 위한 재능과 (나는 심지어 인식하지도 못하는 재능이다) 매우 행복하게 결합시키는 이 귀중한 사람들에게 때때로 설명에서 여전히 다소 결함을 지닌 것을 완성시키는 책무를 남기는데 왜냐하면 이런 면에서 위험은 반증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지금부터 논쟁에 관여할 수 없지만, 친구로부터 나오든 적으로부터 나오든 모든 제안을 신중하게 존중할 것인데 그 제안을 준비과정에 따라서 철학체계를 더 설명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노력을 하는 동안에 나는 다소 많이 나이를 먹어 (이 달에 나는 예순 네 살이 되었다), 사변적 이성 및 실천적 이성 두 가지 분야에서 나의 책 순수이성비판의 진실성을 확인할 자연과 도덕의 형이상학을 제공하는 내가 제안한 계획에서 내가 성공하려면 나는 나의 시간에 관하여 신중해야한다. 그러므로 현재 저작에서의 모호함을 - 이 저술에서 그 모호함은 피할 수 없었다 - 설명하는 일과 그 저술 전체를 옹호하는 일을 나는 나의 가르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합당한 분들에게 기대해야 한다. 철학 강좌는 특정한 면에서 자체가 비난을 받는 것을 허용한다 (왜냐하면 철학 강좌는 수학처럼, 그렇게 철갑을 두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철학체계의 구조는, 그 구조의 통합체로 보면,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 우리가 개별적 구절들을, 그 구절들의 문맥에서 분리하여, 서로 비교한다면, 분명한 모순이 짚일 수 있는데 특히 표현이 자유롭게 쓰인 저술에서 그러하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모순이 그 저술에 해로운 빛을 던지지만 그 모순들은 전체에 대한 생각을 지녔던 사람들에 의하여 매우 쉽게 해결된다. 그러나 어떤 이론이 본질적으로 지속된다면 처음에 그 이론에 매우 위협적일 작용과 반작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론의 굴곡을 평탄화하기 위하여, 공정하고 통찰력을 지니고 참되게 인기 있는 사람이 그 이론에 열중한다면 짧은 시간 안에 그 이론은 또한 필수적인 우아함을 제공할 것이다.

 

1787년, 4월, 쾨니히스베르크.

                                                                                                                                       

* 내가 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추가사항은, 단지 증거방식에 영향을 미칠지라도, 심리학적 관념론에 대한 새로운 논박이며, 외연적 직감의 객관적 실체성에 대한 엄격한 (내가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믿는 바와 같이) 증거이다 (아래 273쪽 참조). 관념론이 형이상학의 필수적 목표와 관련하여 아무리 무해한 것으로 간주된다할지라도 (실제로 관념론은 그렇게 무해하지는 않다), 우리 밖의 물체의 존재가 (그로부터, 심지어 우리 내부의 의미를 위하여, 우리가 지식의 자료 전체를 도출한다) 단지 신념에 근거하여 수용되어야 하고, 누군가가 물체들의 존재를 의심한다면 우리는 충분한 증거로 그의 의심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은 항상 철학에 대한 불명예로 남으며 일반적인 인간 이성에도 불명예로 남는다. 3행에서 6행까지 증거 표현에 애매함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바꾸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 영속성은 나에게서 직감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내부에서 발견될 수 있는 나의 존재의 모든 결정 근거는 재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현 자체로서 재현과 구별되는 영속성을 요구하는데 그 영속성과 관련하여 재현의 변화와 결과적으로 그 재현이 변화하는 시간 속의 나의 존재가 결정될 것이다.” 이 증거에 대하여 사람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내 안에 있는 것만을, 다시 말해서 외부 물체에 대한 나의 재현을 즉각 의식한다; 그래서 나의 재현과 일치하는 것이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지는 틀림없이 여전히 불확실하게 남는다고. 그러나 내부의 경험을 통하여 시간 속의 나의 존재를 의식하며 (결과적으로 시간 속에서 나의 존재의 결정 가능성 또한), 그리고 이것은 나의 재현만을 의식하는 것 이상이지만 나의 존재에 대한 경험적 인식과 동일하며, 나의 존재에 대한 경험적 인식은, 나의 존재와 결합된 반면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관계를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시간 속의 나의 존재에 대한 이 인식은 나의 외부에 있는 것의 관계에 대한 인식과 동일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그리하여 이 외부의 것을 나의 내부의 의미와 불가분하게 연결시키는 것은 경험이지 허구가 아니며 의미이지 환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의미는 이미 본질적으로 나의 외부에 있는 실제적인 것에 대한 직감적 관계이고, 외부 의미의 실제는 상상과 구별에서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 즉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서 내부의 경험과 불가분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에만 근거하기 때문이다. 내 존재에 대한 지적 인식으로써, 나의 모든 판단과 이해 행동이 수반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재현 속에서 내가 지적 직감을 통하여 내 존재의 결정을 동시에 결합시킬 수 있다면 나의 외부의 것에 대한 관계에 관한 인식은 필요하지 않을 텐데. 그러나 이제 저 지적 인식이 정말로 선행한다할지라도 나의 존재가 유일하게 결정될 수 있는 내부의 직감은 합리적이고 시대 상황과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은,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부의 경험 자체는 나의 내부에 있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나의 외부에 있는 영원한 것에만 근거를 두는데 나는 내 자신이 그것과 관련하여 서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경험이 가능하려면 외부 의미의 실제성이 반드시 내부 의미와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내 자신이 시간 속에서 결정된 것으로서 존재함을 내가 의식하는 것과 같이 내 외부에 물체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의식할 따름인데 그 외부의 물체는 나의 감각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외부의 대상이 실제로 주어진 어떤 직감과 일치하는지, 그리하여 어느 것이 (그 직감이 치부되는 상상의 기능에게가 아니라) 외부 의미에 속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우리는 각각의 경우에 일반적인 경험이, 심지어 내부의 경험이 상상과 구분되는 규칙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명제가 생긴다: 항상 토대를 이루는 외부의 경험이 실제로 있다. 우리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언급을 추가할 수 있다: 존재에서 영원한 것에 대한 재현은 영원한 재현과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의 재현이 물질에 대한 재현을 제외하지 않고 우리가 행하는 다른 재현들처럼 매우 일시적이고 변할 수 있다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재현은 영원한 것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영원한 것은 틀림없이 나의 모든 재현과 구분되는 외부의 것이며, 그 존재는 틀림없이 내 자신의 존재의 결정에 포함되어, 또한 동시에 부분적으로 외부에 있지 않다면 심지어 내부에서도 발생하지 않을 그런 하나의 경험을 내 자신의 존재와 구성한다. 우리가 시간 속의 지속성을 생각하는 능력에 대하여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만큼 우리가 변화와 함께 변화의 개념을 낳는 동시성을 설명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Vorrede zur zweiten Auflage

 

Ob die Bearbeitung der Erkenntnisse, die zum Vernunftgeschäfte gehören, den sicheren Gang einer Wissenschaft gehe oder nicht, das läßt sich bald aus dem Erfolg beurteilen. Wenn sie nach viel gemachten Anstalten und Zurüstungen, sobald es zum Zweck kommt, in Stecken gerät, oder, um diesen zu erreichen, öfters wieder zurückgehen und einen andern Weg einschlagen muß; imgleichen wenn es nicht möglich ist, die verschiedenen Mitarbeiter in der Art, wie die gemeinschaftliche Absicht erfolgt werden soll, einhellig zu machen: so kann man immer überzeugt sein, daß ein solches Studium bei weitem noch nicht den sicheren Gang einer Wissenschaft eingeschlagen, sondern ein bloßes Herumtappen sei, und es ist schon ein Verdienst um die Vernunft, diesen Weg womöglich ausfindig zu machen, sollte auch manches als vergeblich aufgegeben werden müssen, was in dem ohne Überlegung vorher genommenen Zwecke enthalten war.

Daß die Logik diesen sicheren Gang schon von den ältesten Zeiten her gegangen sei, läßt sich daraus ersehen, daß sie seit dem Aristoteles keinen Schritt rückwärts hat tun dürfen, wenn man ihr nicht etwa die Wegschaffung einiger entbehrlicher Subtilitäten, oder deutlichere Bestimmung des Vorgetragenen als Verbesserungen anrechnen will, welches aber mehr zur Eleganz, als zur Sicherheit der Wissenschaft gehört. Merkwürdig ist noch an ihr, daß sie auch bis jetzt keinen Schritt vorwärts hat tun können, und also allem Ansehen nach geschlossen und vollendet zu sein scheint. Denn, wenn einige Neuere sie dadurch zu erweitern dachten, daß sie teils psychologische Kapitel von den verschiedenen Erkenntniskräften (der Einbildungskraft, dem Witze), teils metaphysische über den Ursprung der Erkenntnis oder der verschiedenen Art der Gewißheit nach Verschiedenheit der Objekte (dem Idealismus, Skeptizismus usw.), teils anthropologische von Vorurteilen (den Ursachen derselben und Gegenmitteln) hineinschoben, so rührt dieses von ihrer Unkunde der eigentümlichen Natur dieser Wissenschaft her. Es ist nicht Vermehrung, sondern Verunstaltung der Wissenschaften, wenn man ihre Grenzen ineinander laufen läßt; die Grenze der Logik aber ist dadurch ganz genau bestimmt, daß sie eine Wissenschaft ist, welche nichts als die formalen Regeln alles Denkens (es mag a priori oder empirisch sein, einen Ursprung oder Objekt haben, welches es wolle, in unserem Gemüte zufällige oder natürliche Hindernisse antreffen) ausführlich darlegt und strenge beweist.

Daß es der Logik so gut gelungen ist, diesen Vorteil hat sie bloß ihrer Eingeschränktheit zu verdanken, dadurch sie berechtigt, ja verbunden ist, von allen Objekten der Erkenntnis und ihrem Unterschiede zu abstrahieren, und in ihr also der Verstand es mit nichts weiter, als sich selbst und seiner Form, zu tun hat. Weit schwerer mußte es natürlicherweise für die Vernunft sein, den sicheren Weg der Wissenschaft einzuschlagen, wenn sie nicht bloß mit sich selbst, sondern auch mit Objekten zu schaffen hat; daher jene auch als Propädeutik gleichsam nur den Vorhof der Wissenschaften ausmacht, und wenn von Kenntnissen die Rede ist, man zwar eine Logik zur Beurteilung derselben voraussetzt, aber die Erwerbung derselben in eigentlich und objektiv so genannten Wissenschaften suchen muß.

Sofern in diesen nun Vernunft sein soll, so muß darin etwas a priori erkannt werden, und ihre Erkenntnis kann auf zweierlei Art auf ihren Gegenstand bezogen werden, entweder diesen und seinen Begriff (der anderweitig gegeben werden muß) bloß zu bestimmen, oder ihn auch wirklich zu machen. Die erste ist theoretische, die andere praktische Erkenntnis der Vernunft. Von beiden muß der reine Teil, soviel oder sowenig er auch enthalten mag, nämlich derjenige, darin Vernunft gänzlich a priori ihr Objekt bestimmt, vorher allein vorgetragen werden, und dasjenige, was aus anderen Quellen kommt, damit nicht vermengt werden, denn es gibt üble Wirtschaft, wenn man blindlings ausgibt, was einkommt, ohne nachher, wenn jene in Stecken gerät, unterscheiden zu können, welcher Teil der Einnahme den Aufwand tragen könne, und von welcher man denselben beschneiden muß.

Mathematik und Physik sind die beiden theoretischen Erkenntnisse der Vernunft, welche ihre Objekte a priori bestimmen sollen, die erstere ganz rein, die zweite wenigstens zum Teil rein, dann aber auch nach Maßgabe anderer Erkenntnisquellen als der der Vernunft.

Die Mathematik ist von den frühesten Zeiten her, wohin die Geschichte der menschlichen Vernunft reicht, in dem bewundernswürdigen Volke der Griechen den sicheren Weg einer Wissenschaft gegangen. Allein man darf nicht denken, daß es ihr so leicht geworden, wie der Logik, wo die Vernunft es nur mit sich selbst zu tun hat, jenen königlichen Weg zu treffen, oder vielmehr sich selbst zu bahnen; vielmehr glaube ich, daß es lange mit ihr (vornehmlich noch unter den Ägyptern) beim Herumtappen geblieben ist, und diese Umänderung einer Revolution zuzuschreiben sei, die der glückliche Einfall eines einzigen Mannes in einem Versuche zustande brachte, von welchem an die Bahn, die man nehmen mußte, nicht mehr zu verfehlen war, und der sichere Gang einer Wissenschaft für alle Zeiten und in unendliche Weiten eingeschlagen und vorgezeichnet war. Die Geschichte dieser Revolution der Denkart, welche viel wichtiger war, als die Entdeckung des Weges um das berühmte Vorgebirge, und des Glücklichen, der sie zustande brachte, ist uns nicht aufbehalten. Doch beweist die Sage, welche Diogenes der Laertier uns überliefert, der von den kleinsten, und, nach dem gemeinen Urteil, gar nicht einmal eines Beweises benötigten, Elementen der geometrischen Demonstrationen den angeblichen Erfinder nennt, daß das Andenken der Veränderung, die durch die erste Spur der Entdeckung dieses neuen Weges bewirkt wurde, den Mathematikern äußerst wichtig geschienen haben müsse, und dadurch unvergeßlich geworden sei. Dem ersten, der den gleichseitigen Triangel demonstrierte (er mag nun Thales oder wie man will geheißen haben), dem ging ein Licht auf; denn er fand, daß er nicht dem, was er in der Figur sah, oder auch dem bloßen Begriffe derselben nachspüren und gleichsam davon ihre Eigenschaften ablernen, sondern durch das, was er nach Begriffen selbst a priori hineindachte und darstellte (durch Konstruktion), hervorbringen müsse, und daß er, um sicher etwas a priori zu wissen, er der Sache nichts beilegen müsse, als was aus dem notwendig folgte, was er seinem Begriffe gemäß selbst in sie gelegt hat.

Mit der Naturwissenschaft ging es weit langsamer zu, bis sie den Heeresweg der Wissenschaft traf, denn es sind nur etwa anderthalb Jahrhunderte, daß der Vorschlag des sinnreichen Baco von Verulam diese Entdeckung teils veranlaßte, teils, da man bereits auf der Spur derselben war, mehr belebte, welche eben sowohl durch eine schnell vorgegangene Revolution der Denkart erklärt werden kann. Ich will hier nur die Naturwissenschaft, so fern sie auf empirische Prinzipien gegründet ist, in Erwägung ziehen.

Als Galilei seine Kugeln die schiefe Fläche mit einer von ihm selbst gewählten Schwere herabrollen, oder Torricelli die Luft ein Gewicht, was er sich zum voraus dem einer ihm bekannten Wassersäule gleich gedacht hatte, tragen ließ, oder in noch späterer Zeit Stahl Metalle in Kalk und diesen wiederum in Metall verwandelte, indem er ihnen etwas entzog und wiedergab*; so ging allen Naturforschern ein Licht auf. Sie begriffen, daß die Vernunft nur das einsieht, was sie selbst nach ihrem Entwurfe hervorbringt, daß sie mit Prinzipien ihrer Urteile nach beständigen Gesetzen vorangehen und die Natur nötigen müsse auf ihre Fragen zu antworten, nicht aber sich von ihr allein gleichsam am Leitbande gängeln lassen müsse; denn sonst hängen zufällige, nach keinem vorher entworfenen Plane gemachte Beobachtungen gar nicht in einem notwendigen Gesetze zusammen, welches doch die Vernunft sucht und bedarf. Die Vernunft muß mit ihren Prinzipien, nach denen allein übereinkommende Erscheinungen für Gesetze gelten können, in einer Hand, und mit dem Experiment, das sie nach jenen ausdachte, in der anderen, an die Natur gehen, zwar um von ihr belehrt zu werden, aber nicht in der Qualität eines Schülers, der sich alles vorsagen läßt, was der Lehrer will, sondern eines bestallten Richters, der die Zeugen nötigt, auf die Fragen zu antworten, die er ihnen vorlegt. Und so hat sogar Physik die so vorteilhafte Revolution ihrer Denkart lediglich dem Einfalle zu verdanken, demjenigen, was die Vernunft selbst in die Natur hineinlegt, gemäß, dasjenige in ihr zu suchen (nicht ihr anzudichten), was sie von dieser lernen muß, und wovon sie für sich selbst nichts wissen würde. Hierdurch ist die Naturwissenschaft allererst in den sicheren Gang einer Wissenschaft gebracht worden, da sie so viel Jahrhunderte durch nichts weiter als ein bloßes Herumtappen gewesen war.

Der Metaphysik, einer ganz isolierten spekulativen Vernunfterkenntnis, die sich gänzlich über Erfahrungsbelehrung erhebt, und zwar durch bloße Begriffe (nicht wie Mathematik durch Anwendung derselben auf Anschauung), wo also Vernunft selbst ihr eigener Schüler sein soll, ist das Schicksal bisher noch so günstig nicht gewesen, daß sie den sicheren Gang einer Wissenschaft einzuschlagen vermocht hätte; ob sie gleich älter ist, als alle übrige, und bleiben würde, wenn gleich die übrigen insgesamt in dem Schlunde einer alles vertilgenden Barbarei gänzlich verschlungen werden sollten. Denn in ihr gerät die Vernunft kontinuierlich in Stecken, selbst wenn sie diejenigen Gesetze, welche die gemeinste Erfahrung bestätigt, (wie sie sich anmaßt) a priori einsehen will. In ihr muß man unzählige Male den Weg zurück tun, weil man findet, daß er dahin nicht führt, wo man hin will, und was die Einhelligkeit ihrer Anhänger in Behauptungen betrifft, so ist sie noch so weit davon entfernt, daß sie vielmehr ein Kampfplatz ist, der ganz eigentlich dazu bestimmt zu sein scheint, seine Kräfte im Spielgefechte zu üben, auf dem noch niemals irgend ein Fechter sich auch den kleinsten Platz hat erkämpfen und auf seinen Sieg einen dauerhaften Besitz gründen können. Es ist also kein Zweifel, daß ihr Verfahren bisher ein bloßes Herumtappen, und, was das Schlimmste ist, unter bloßen Begriffen, gewesen sei.

Woran liegt es nun, daß hier noch kein sicherer Weg der Wissenschaft hat gefunden werden können? Ist er etwa unmöglich? Woher hat denn die Natur unsere Vernunft mit der rastlosen Bestrebung heimgesucht, ihm als einer ihrer wichtigsten Angelegenheiten nachzuspüren? Noch mehr, wie wenig haben wir Ursache, Vertrauen in unsere Vernunft zu setzen, wenn sie uns in einem der wichtigsten Stücke unserer Wißbegierde nicht bloß verläßt, sondern durch Vorspiegelungen hinhält und am Ende betrügt! Oder ist er bisher nur verfehlt; welche Anzeige können wir benutzen, um bei erneuertem Nachsuchen zu hoffen, daß wir glücklicher sein werden, als andere vor uns gewesen sind?

Ich sollte meinen, die Beispiele der Mathematik und Naturwissenschaft, die durch eine auf einmal zustande gebrachte Revolution das geworden sind, was sie jetzt sind, wäre merkwürdig genug, um dem wesentlichen Stücke der Umänderung der Denkart, die ihnen so vorteilhaft geworden ist, nachzusinnen, und ihnen, soviel ihre Analogie, als Vernunfterkenntnisse, mit der Metaphysik verstattet, hierin wenigstens zum Versuche nachzuahmen. Bisher nahm man an, alle unsere Erkenntnis müsse sich nach den Gegenständen richten, aber alle Versuche über sie a priori etwas durch Begriffe auszumachen, wodurch unsere Erkenntnis erweitert würde, gingen unter dieser Voraussetzung zunichte. Man versuche es daher einmal, ob wir nicht in den Aufgaben der Metaphysik damit besser fortkommen, daß wir annehmen, die Gegenstände müssen sich nach unserem Erkenntnis richten, welches so schon besser mit der verlangten Möglichkeit einer Erkenntnis derselben a priori zusammenstimmt, die über Gegenstände, ehe sie und gegeben werden, etwas festsetzen soll. Es ist hiermit ebenso, als mit den ersten Gedanken des Kopernikus bewandt, der, nachdem es mit der Erklärung der Himmelsbewegungen nicht gut fort wollte, wenn er annahm, das ganze Sternenheer drehe sich um den Zuschauer, versuchte, ob es nicht besser gelingen möchte, wenn er den Zuschauer sich drehen, und dagegen die Sterne in Ruhe ließ. In der Metaphysik kann man nun, was die Anschauung der Gegenstände betrifft, es auf ähnliche Weise versuchen. Wenn die Anschauung sich nach der Beschaffenheit der Gegenstände richten müßte, so sehe ich nicht ein, wie man a priori von ihr etwas wissen könne; richtet sich aber der Gegenstand (als Objekt der Sinne) nach der Beschaffenheit unseres Anschauungsvermögens, so kann ich mir diese Möglichkeit ganz wohl vorstellen. Weil ich aber bei diesen Anschauungen, wenn sie Erkenntnisse werden sollen, nicht stehen bleiben kann, sondern sie als Vorstellungen auf irgend etwas als Gegenstand beziehen und diesen durch jene bestimmen muß, so kann ich entweder annehmen, die Begriffe, wodurch ich diese Bestimmung zustande bringe, richten sich auch nach dem Gegenstande, und dann bin ich wiederum in derselben Verlegenheit, wegen der Art, wie ich a priori hiervon etwas wissen könne; oder ich nehme an, die Gegenstände oder, welches einerlei ist, die Erfahrung, in welcher sie allein (als gegebene Gegenstände) erkannt werden, richte sich nach diesen Begriffen, so sehe ich sofort eine leichtere Auskunft, weil Erfahrung selbst eine Erkenntnisart ist, die Verstand erfordert, dessen Regel ich in mir, noch ehe mir Gegenstände gegeben werden, mithin a priori voraussetzen muß, welche in Begriffen a priori ausgedrückt wird, nach denen sich also alle Gegenstände der Erfahrung notwendig richten und mit ihnen übereinstimmen müssen.

Was Gegenstände betrifft, sofern sie bloß durch Vernunft und zwar notwendig gedacht, die aber (so wenigstens, wie die Vernunft sie denkt) gar nicht in der Erfahrung gegeben werden können, so werden die Versuche sie zu denken (denn denken müssen sie sich doch lassen), hernach einen herrlichen Probierstein desjenigen abgeben, was wir als die veränderte Methode der Denkungsart annehmen, daß wir nämlich von den Dingen nur das a priori erkennen, was wir selbst in sie legen.**

                                                                                                                                   

 

* Ich folge hier nicht genau dem Faden der Geschichte der Experimentalmethode, deren erste Anfänge auch nicht wohl bekannt sind.

** Diese dem Naturforscher nachgeahmte Methode besteht also darin: die Elemente der reinen Vernunft in dem zu suchen, was sich durch ein Experiment bestätigen oder widerlegen läßt. Nun läßt sich zur Prüfung der Sätze der reinen Vernunft, vornehmlich wenn sie über alle Grenze möglicher Erfahrung hinaus gewagt werden, kein Experiment mit ihren Objekten machen (wie in der Naturwissenschaft): also wird es nur mit Begriffen und Grundsätzen, die wir a priori annehmen, tunlich sein, indem man sie nämlich so einrichtet, daß dieselben Gegenstände einerseits als Gegenstände der Sinne und des Verstandes für die Erfahrung, andererseits aber doch als Gegenstände, die man bloß denkt, allenfalls für die isolierte und über Erfahrungsgrenze hinausstrebende Vernunft, mithin von zwei verschiedenen Seiten betrachtet werden können. Findet es sich nun, daß, wenn man die Dinge aus jenem doppelten Gesichtspunkte betrachtet, Einstimmung mit dem Prinzip der reinen Vernunft stattfinde, bei einerlei Gesichtspunkte aber ein unvermeidlicher Widerstreit der Vernunft mit sich selbst entspringe, so entscheidet das Experiment für die Richtigkeit jener Unterscheidung.

 

 

 

 

 

 

 

 

 

 

 

 

 

 

 

 

 

 

 

 

 

 

 

 

Dieser Versuch gelingt nach Wunsch, und verspricht der Metaphysik in ihrem ersten Teile, da sie sich nämlich mit Begriffen a priori beschäftigt, davon die korrespondierenden Gegenstände in der Erfahrung jenen angemessen gegeben werden können, den sicheren Gang einer Wissenschaft. Denn man kann nach dieser Veränderung der Denkart die Möglichkeit einer Erkenntnis a priori ganz wohl erklären, und, was noch mehr ist, die Gesetze, welche a priori der Natur, als dem Inbegriffe der Gegenstände der Erfahrung, zum Grunde liegen, mit ihren genugtuenden Beweisen versehen, welches beides nach der bisherigen Verfahrungsart unmöglich war. Aber es ergibt sich aus dieser Deduktion unseres Vermögens a priori zu erkennen, im ersten Teile der Metaphysik ein befremdliches und dem ganzen Zwecke derselben, der den zweiten Teil beschäftigt, dem Anscheine nach sehr nachteiliges Resultat, nämlich daß wir mit ihm nie über die Grenze möglicher Erfahrung hinauskommen können, welches doch gerade die wesentlichste Angelegenheit dieser Wissenschaft ist. Aber hierin liegt eben das Experiment einer Gegenprobe der Wahrheit des Resultats jener ersten Würdigung unserer Vernunfterkenntnis a priori, daß sie nämlich nur auf Erscheinungen gehe, die Sache an sich selbst dagegen zwar als für sich wirklich, aber von uns unerkannt, liegen lasse. Denn das, was uns notwendig über die Grenze der Erfahrung und aller Erscheinungen hinaus zu gehen treibt, ist das Unbedingte, welches die Vernunft in den Dingen an sich selbst notwendig und mit allem Recht zu allem Bedingten, und dadurch die Reihe der Bedingungen als vollendet verlangt. Findet sich nun, wenn man annimmt, unsere Erfahrungserkenntnis richte sich nach den Gegenständen als Dingen an sich selbst, daß das Unbedingte ohne Widerspruch gar nicht gedacht werden könne; dagegen, wenn man annimmt, unsere Vorstellung der Dinge, wie sie uns gegeben werden, richte sich nicht nach diesen, als Dingen an sich selbst, sondern diese Gegenstände vielmehr, als Erscheinungen, richten sich nach unserer Vorstellungsart, der Widerspruch wegfalle; und daß folglich das Unbedingte nicht an Dingen, sofern wir sie kennen, (sie uns gegeben werden,) wohl aber an ihnen, sofern wir sie nicht kennen, als Sachen an sich selbst, angetroffen werden müsse: so zeigt sich, daß, was wir Anfangs nur zum Versuche annahmen, gegründet sei.* Nun bleibt uns immer noch übrig, nachdem der spekulativen Vernunft alles Fortkommen in diesem Felde des Übersinnlichen abgesprochen worden, zu versuchen, ob sich nicht in ihrer praktischen Erkenntnis Data finden, jenen transzendenten Vernunftbegriff des Unbedingten zu bestimmen, und auf solche Weise, dem Wunsche der Metaphysik gemäß, über die Grenze aller möglichen Erfahrung hinaus mit unserem, aber nur in praktischer Absicht möglichen Erkenntnisse a priori zu gelangen. Und bei einem solchen Verfahren hat uns die spekulative Vernunft zu solcher Erweiterung immer doch wenigstens Platz verschafft, wenn sie ihn gleich leer lassen mußte, und es bleibt uns also noch, ja wir sind gar dazu durch sie aufgefordert, ihn durch praktische Data derselben, wenn wir können, auszufüllen.**

In jenem Versuche, das bisherige Verfahren der Metaphysik umzuändern, und dadurch, daß wir nach dem Beispiele der Geometer und Naturforscher eine gänzliche Revolution mit derselben vornehmen, besteht nun das Geschäft dieses Kritik der reinen spekulativen Vernunft. Sie ist ein Traktat von der Methode, nicht ein System der Wissenschaft selbst; aber sie verzeichnet gleichwohl den ganzen Umriß derselben, sowohl in Ansehung ihrer Grenzen, als auch den ganzen inneren Gliederbau derselben. Denn das hat die reine, spekulative Vernunft Eigentümliches an sich, daß sie ihr eigen Vermögen, nach Verschiedenheit der Art, wie sie sich Objekte zum Denken wählt, ausmessen, und auch selbst die mancherlei Arten, sich Aufgaben vorzulegen, vollständig vorzählen, und so den ganzen Vorriß zu einem System der Metaphysik verzeichnen kann und soll; weil, was das erste betrifft, in der Erkenntnis a priori den Objekten nichts beigelegt werden kann, als was das denkende Subjekt aus sich selbst hernimmt, und, was das zweite anlangt, sie in Ansehung der Erkenntnisprinzipien eine ganz abgesonderte, für sich bestehende Einheit ist, in welcher ein jedes Glied, wie in einem organisierten Körper, um aller anderen und alle um eines willen da sind, und kein Prinzip mit Sicherheit in einer Beziehung genommen werden kann, ohne es zugleich in der durchgängigen Beziehung zum ganzen reinen Vernunftgebrauch untersucht zu haben. (nil actum reputam, si quid superesset agendum). Dafür aber hat auch die Metaphysik das seltene Glück, welches keiner anderen Vernunftwissenschaft, die es mit Objekten zu tun hat (denn die Logik beschäftigt sich nur mit der Form des Denkens überhaupt), zuteil werden kann, daß, wenn sie durch diese Kritik in den sicheren Gang einer Wissenschaft gebracht worden, sie das ganze Feld der für sie gehörigen Erkenntnisse völlig befassen und also ihr Werk vollenden und für die Nachwelt, als einen nie zu vermehrenden Hauptstuhl, zum Gebrauche niederlegen kann, weil sie es bloß mit Prinzipien und den Einschränkungen ihres Gebrauchs zu tun hat, welche durch jene selbst bestimmt werden. Zu dieser Vollständigkeit ist sie daher, als Grundwissenschaft, auch verbunden, und von ihr muß gesagt werden können: nil actum reputam, si quid superesset agendum1).

Aber was ist denn das, wird man fragen, für ein Schatz, den wir der Nachkommenschaft mit einer solchen durch Kritik geläuterten, dadurch aber auch in einen beharrlichen Zustand gebrachten Metaphysik zu hinterlassen gedenken? Man wird bei einer flüchtigen Übersicht dieses Werkes wahrzunehmen glauben, daß der Nutzen davon doch nur negativ sei, uns nämlich mit der spekulativen Vernunft niemals über die Erfahrungsgrenze hinaus zu wagen, und das ist auch in der Tat ihr erster Nutzen. Dieser aber wird alsbald positiv, wenn man inne wird, daß die Grundsätze, mit denen sich spekulative Vernunft über ihre Grenze hinauswagt, in der Tat nicht Erweiterung, sondern, wenn man sie näher betrachtet, Verengung unseres Vernunftgebrauchs zum unausbleiblichen Erfolg haben, indem sie wirklich die Grenzen der Sinnlichkeit, zu der sie eigentlich gehören, über alles zu erweitern und so den reinen (praktischen) Vernunftgebrauch gar zu verdrängen drohen. Daher ist eine Kritik, welche die erstere einschränkt, sofern zwar negativ, aber, indem sie dadurch zugleich ein Hindernis, welches den letzteren Gebrauch einschränkt oder gar zu vernichten droht, aufhebt, in der Tat von positivem und sehr wichtigem Nutzen, sobald man überzeugt wird, daß es einen schlechterdings notwendigen praktischen Gebrauch der reinen Vernunft (den moralischen) gebe, in welchem sie sich unvermeidlich über die Grenzen der Sinnlichkeit erweitert, dazu sie zwar von der spekulativen keiner Beihilfe bedarf, dennoch aber wider ihre Gegenwirkung gesichert sein muß, um nicht in Widerspruch mit sich selbst zu geraten. Diesem Dienste der Kritik den positiven Nutzen abzusprechen, wäre eben so viel, als sagen, daß Polizei keinen positiven Nutzen schaffe, weil ihr Hauptgeschäft doch nur ist, der Gewalttätigkeit, welche Bürger von Bürgern zu besorgen haben, einen Riegel vorzuschieben, damit ein jeder seine Angelegenheit ruhig und sicher treiben könne. Daß Raum und Zeit nur Formen der sinnlichen Anschauung, also nur Bedingungen der Existenz der Dinge als Erscheinungen sind, daß wir ferner keine Verstandesbegriffe, mithin auch gar keine Elemente zur Erkenntnis der Dinge haben, als sofern diesen Begriffen korrespondierende Anschauung gegeben werden kann, folglich wir von keinem Gegenstande als Dinge an sich selbst, nur sofern es Objekt der sinnlichen Anschauung ist, d. i. als Erscheinung, Erkenntnis haben können, wird im analytischen Teile der Kritik bewiesen; woraus denn freilich die Einschränkung aller nur möglichen spekulativen Erkenntnis der Vernunft auf bloße Gegenstände der Erfahrung folgt. Gleichwohl wird, welches wohl gemerkt werden muß, doch dabei immer vorbehalten, daß wir eben dieselben Gegenstände auch als Dinge an sich selbst, wenn gleich nicht erkennen, doch wenigstens müssen denken können***. Denn sonst würde der ungereimte Satz daraus folgen, daß Erscheinung ohne etwas wäre, was da erscheint. Nun wollen wir annehmen, die durch unsere Kritik notwendiggemachte Unterscheidung der Dinge als Gegenstände der Erfahrung, von eben denselben, als Dingen an sich selbst, wäre gar nicht gemacht, so mußte der Grundsatz der Kausalität und mithin der Naturmechanismus in Bestimmung derselben durchaus von allen Dingen überhaupt als wirkenden Ursachen gelten. Von eben demselben Wesen also, z. B. der menschlichen Seele, würde ich nicht sagen können, ihr Wille sei frei, und er sei doch zugleich der Naturnotwendigkeit unterworfen, d. i. nicht frei, ohne in einen offenbaren Widerspruch zu geraten; weil ich die Seele in beiden Sätzen in eben derselben Bedeutung, nämlich als Ding überhaupt (als Sache an dich selbst) genommen habe, und, ohne vorhergehende Kritik, auch nicht anders nehmen konnte. Wenn aber die Kritik nicht geirrt hat, da sie das Objekt in zweierlei Bedeutung nehmen lehrt, nämlich als Erscheinung, oder als Ding an sich selbst; wenn die Deduktion ihrer Verstandesbegriffe richtig ist, mithin auch der Grundsatz der Kausalität nur auf Dinge im ersten Sinne genommen, nämlich sofern sie Gegenstände der Erfahrung sind, geht, eben dieselben aber nach der zweiten Bedeutung ihm nicht unterworfen sind, so wird eben derselbe Wille in der Erscheinung (den sichtbaren Handlungen) als dem Naturgesetze notwendig gemäß und sofern nicht frei, und doch andererseits, als einem Dinge an sich selbst angehörig, jenem nicht unterworfen, mithin als frei gedacht, ohne daß hierbei ein Widerspruch vorgeht.

Ob ich nun gleich meine Seele, von der letzteren Seite betrachtet, durch keine spekulative Vernunft (noch weniger durch empirische Beobachtung), mithin auch nicht die Freiheit als Eigenschaft eines Wesens, dem ich Wirkungen in der Sinnenwelt zuschreibe, erkennen kann, darum weil ich ein solches seiner Existenz nach, und doch nicht in der Zeit, bestimmt erkennen müßte, (welches, weil ich meinem Begriffe keine Anschauung unterlegen kann, unmöglich ist), so kann ich mir doch die Freiheit denken, d. i. die Vorstellung davon enthält wenigstens keinen Widerspruch in sich, wenn unsere kritische Unterscheidung beider (der sinnlichen und intellektuellen) Vorstellungsarten und die davon herrührende Einschränkung der reinen Verstandesbegriffe, mithin auch der aus ihnen fließenden Grundsätze, statt hat. Gesetzt nun, die Moral setze notwendig Freiheit (im strengsten Sinne) als Eigenschaft unseres Willens voraus, indem sie praktische in unserer Vernunft liegende ursprüngliche Grundsätze als Data derselben a priori anführt, die ohne Voraussetzung der Freiheit schlechterdings unmöglich wären, die spekulative Vernunft aber hätte bewiesen, daß diese sich gar nicht denken lasse, so muß notwendig jene Voraussetzung, nämlich die moralische, derjenigen weichen, deren Gegenteil einen offenbaren Widerspruch enthält, folglich Freiheit und mit ihr Sittlichkeit (denn deren Gegenteil enthält keinen Widerspruch, wenn nicht schon Freiheit vorausgesetzt wird,) dem Naturmechanismus den Platz einräumen. So aber, da ich zur Moral nichts weiter brauche, als daß Freiheit sich nur nicht selbst widerspreche, und sich also doch wenigstem denken lasse, ohne nötig zu haben, sie weiter einzusehen, daß sie also dem Naturmechanismus eben derselben Handlung (in anderer Beziehung genommen) gar kein Hindernis in den Weg lege: so behauptet die Lehre der Sittlichkeit ihren Platz, und die Naturlehre auch den ihrigen, welches aber nicht stattgefunden hätte, wenn nicht Kritik uns zuvor von unserer unvermeidlichen Unwissenheit in Ansehung der Dinge an sich selbst belehrt, und alles, was wir theoretisch erkennen können, auf bloße Erscheinungen eingeschränkt hätte. Eben diese Erörterung des positiven Nutzens kritischer Grundsätze der reinen Vernunft läßt sich in Ansehung des Begriffs von Gott und der einfachen Natur unserer Seele zeigen, die ich aber der Kürze halber vorbeigehe. Ich kann also Gott, Freiheit und Unsterblichkeit zum Behuf des notwendigen praktischen Gebrauchs meiner Vernunft nicht einmal annehmen, wenn ich nicht der spekulativen Vernunft zugleich ihre Anmaßung überschwenglicher Einsichten benehme, weil sie sich, um zu diesen zu gelangen, solcher Grundsätze bedienen muß, die, indem sie in der Tag bloß auf Gegenstände möglicher Erfahrung reichen, wenn sie gleichwohl auf das angewandt werden, was nicht ein Gegenstand der Erfahrung sein kann, wirklich dieses jederzeit in Erscheinung verwandeln, und so alle praktische Erweiterung der reinen Vernunft für unmöglich erklären. Ich mußte also das Wissen aufheben, um zum Glauben Platz zu bekommen, und der Dogmatismus der Metaphysik, d. i. das Vorurteil, in ihr ohne Kritik der reinen Vernunft fortzukommen, ist die wahre Quelle alles der Moralität widerstreitenden Unglaubens, der jederzeit gar sehr dogmatisch ist. Wem es also mit einer nach Maßgabe der Kritik der reinen Vernunft abgefaßten systematischen Metaphysik eben nicht schwer sein kann, der Nachkommenschaft ein Vermächtnis zu hinterlassen, so ist dies kein für gering zu achtendes Geschenk; man mag nun bloß auf die Kultur der Vernunft durch den sicheren Gang einer Wissenschaft überhaupt, in Vergleichung mit dem grundlosen Tappen und leichtsinnigen Herumstreifen derselben ohne Kritik sehen, oder auch auf bessere Zeitanwendung einer wißbegierigen Jugend, die beim gewöhnlichen Dogmatismus so frühe und so viele Aufmunterung bekommt, über Dinge, davon sie nichts versteht, und darin sie, so wie niemand in der Welt, auch nie etwas einsehen wird, bequem zu vernünfteln, oder gar auf Erfindung neuer Gedanken und Meinungen auszugehen, und so die Erlernung gründlicher Wissenschaften zu verabsäumen; am meisten aber, wenn man den unschätzbaren Vorteil in Anschlag bringt, allen Einwürfen wider Sittlichkeit und Religion auf sokratische Art, nämlich durch den klarsten Beweis der Unwissenheit der Gegner, auf alle künftige Zeit ein Ende zu machen. Denn irgend eine Metaphysik ist immer in der Welt gewesen, und wird auch wohl ferner, mit ihr aber auch eine Dialektik der reinen Vernunft, weil sie ihr natürlich ist, darin anzutreffen sein. Es ist also die erste und wichtigste Angelegenheit der Philosophie, einmal für allemal ihr dadurch, daß man die Quelle der Irrtümer verstopft, allen nachteiligen Einfluß zu benehmen.

                                                                                                                               

 

 

* Dieses Experiment der reinen Vernunft hat mit dem der Chemiker, welches sie manchmal den Versuch der Reduktion, im allgemeinen aber das synthetische Verfahren nennen, viel Ähnliches. Die Analysis des Metaphysikers schied die reine Erkenntnis a priori in zwei sehr ungleichartige Elemente, nämlich die der Dinge als Erscheinungen, und dann der Dinge an sich selbst. Die Dialektik verbindet beide wiederum zur Einhelligkeit mit der notwendigen Vernunftidee des Unbedingten und findet, daß diese Einhelligkeit niemals anders, als durch jene Unterscheidung herauskomme, welche also die wahre ist.

** So verschafften die Zentralgesetze der Bewegung der Himmelskörper dem, was Kopernikus, anfänglich nur als Hypothese annahm, ausgemachte Gewißheit und bewiesen zugleich die unsichtbare, den Weltbau verbindende Kraft (der Newtonischen Anziehung), welche auf immer unentdeckt geblieben wäre, wenn der erstere es nicht gewagt hätte, auf eine widersinnische, aber doch wahre Art, die beobachteten Bewegungen nicht in den Gegenständen des Himmels, sondern in ihrem Zuschauer zu suchen. Ich stelle in dieser Vorrede die in der Kritik vorgetragene, jener Hypothese analogische, Umänderung der Denkart auch nur als Hypothese auf, ob sie gleich in der Abhandlung selbst aus der Beschaffenheit unserer Vorstellungen von Raum und Zeit und den Elementarbegriffen des Verstandes, nicht hypothetisch, sondern apodiktisch bewiesen wird, um nur die ersten Versuche einer solchen Umänderung, welche allemal hypothetisch sind, bemerklich zu machen.

1. "Sie hält noch nichts für erledigt, so lange noch etwas zu tun übrig ist."

*** Einen Gegenstand erkennen, dazu wird erfordert, daß ich seine Möglichkeit (es sei nach dem Zeugnis der Erfahrung aus seiner Wirklichkeit, oder a priori durch Vernunft) beweisen könne. Aber denken kann ich, was ich will, wenn ich mir nur nicht selbst widerspreche, d. i. wenn mein Begriff nur ein möglicher Gedanke ist, ob ich zwar dafür nicht stehen kann, ob im Inbegriffe aller Möglichkeiten diesem auch ein Objekt korrespondiere oder nicht. Um einem solchen Begriffe aber objektive Gültigkeit (reale Möglichkeit, denn die erstere war bloß die logische) beizulegen, dazu wird etwas mehr erfordert. Dieses Mehrere aber braucht eben nicht in theoretischen Erkenntnisquellen gesucht zu werden, es kann auch in praktischen liegen.

 

 

 

 

 

 

 

 

 

 

 

 

 

 

 

 

Bei dieser wichtigen Veränderung im Felde der Wissenschaften, und dem Verluste, den spekulative Vernunft an ihrem bisher eingebildeten Besitze erleiden muß, bleibt dennoch alles mit der allgemeinen menschlichen Angelegenheit, und dem Nutzen, den die Welt bisher aus den Lehren der reinen Vernunft zog, in demselben vorteilhaften Zustande, als es jemalen war, und der Verlust trifft nur das Monopol der Schulen, keineswegs aber das Interesse der Menschen. Ich frage den unbiegsamsten Dogmatiker, ob der Beweis von der Fortdauer unserer Seele nach dem Tode aus der Einfachheit der Substanz, ob der von der Freiheit des Willens gegen den allgemeinen Mechanismus durch die subtilen, obzwar ohnmächtigen Unterscheidungen subjektiver und objektiver praktischer Notwendigkeit, oder ob der vom Dasein Gottes aus dem Begriffe eines allerrealsten Wesens, (der Zufälligkeit des Veränderlichen, und der Notwendigkeit eines ersten Bewegers,) nachdem sie von den Schulen ausgingen, jemals haben bis zum Publikum gelangen und auf dessen Überzeugung den mindesten Einfluß haben können? Ist dieses nun nicht geschehen, und kann es auch, wegen der Untauglichkeit des gemeinen Menschenverstandes zu so subtiler Spekulation, niemals erwartet werden; hat vielmehr, was das erstere betrifft, die jedem Menschen bemerkliche Anlage seiner Natur, durch das Zeitliche (als zu den Anlagen seiner ganzen Bestimmung unzulänglich) nie zufrieden gestellt werden zu können, die Hoffnung eines künftigen Lebens, in Ansehung des zweiten die bloße klare Darstellung der Pflichten im Gegensatze aller Ansprüche der Neigungen das Bewußtsein der Freiheit, und endlich, was das dritte anlangt, die herrliche Ordnung, Schönheit und Fürsorge, die allerwärts in der Natur hervorblickt, allein den Glauben an einen weisen und großen Welturheber, die sich aufs Publikum verbreitende Überzeugung, sofern sie auf Vernunftgründen beruht, ganz allein bewirken müssen: so bleibt ja nicht allein dieser Besitz ungestört, sondern er gewinnt vielmehr dadurch noch an Ansehen, daß die Schulen nunmehr belehrt werden, sich keine höhere und ausgebreitetere Einsicht in einem Punkte anzumaßen, der die allgemeine menschliche Angelegenheit betrifft, als diejenige ist, zu der die große (für uns achtungswürdigste) Menge auch eben so leicht gelangen kann, und sich also auf die Kultur dieser allgemein faßlichen und in moralischer Absicht hinreichenden Beweisgründe allein einzuschränken. Die Veränderung betrifft also bloß die arroganten Ansprüche der Schulen, die sich gerne hierin (wie sonst mit Recht in vielen anderen Stücken) für die alleinigen Kenner und Aufbewahrer solcher Wahrheiten möchten halten lassen, von denen sie dem Publikum nur den Gebrauch mitteilen, den Schlüssel derselben aber für sich behalten (quod mecum nescit, solus vult scire videri). Gleichwohl ist doch auch für einen billigeren Anspruch des spekulativen Philosophen gesorgt. Er bleibt immer ausschließlich Depositär einer dem Publikum ohne dessen Wissen nützlichen Wissenschaft, nämlich der Kritik der Vernunft; denn die kann niemals populär werden, hat aber auch nicht nötig, es zu sein; weil, so wenig dem Volke die fein gesponnenen Argumente für nützliche Wahrheiten in den Kopf wollen, ebensowenig kommen ihm auch die eben so subtilen Einwürfe dagegen jemals in den Sinn; dagegen, weil die Schule, so wie jeder sich zur Spekulation erhebende Mensch, unvermeidlich in beide gerät, jene dazu verbunden ist, durch gründliche Untersuchung der Rechte der spekulativen Vernunft einmal für allemal dem Skandal vorzubeugen, das über kurz oder lang selbst dem Volke aus den Streitigkeiten aufstoßen muß, in welche sich Metaphysiker (und als solche endlich auch wohl Geistliche) ohne Kritik unausbleiblich verwickeln, und die selbst nachher ihre Lehren verfälschen. Durch diese kann nun allein dem Materialismus, Fatalismus, Atheismus, dem freigeisterischen Unglauben, der Schwärmerei und Aberglauben, die allgemein schädlich werden können, zuletzt auch dem Idealismus und Skeptizismus, die mehr den Schulen gefährlich sind und schwerlich ins Publikum übergehen können, selbst die Wurzel abgeschnitten werden. Wenn Regierungen sich ja mit Angelegenheiten der Gelehrten zu befassen gut finden, so würde es ihrer weisen Fürsorge für Wissenschaften sowohl als Menschen weit gemäßer sein, die Freiheit einer solchen Kritik zu begünstigen, wodurch die Vernunftbearbeitungen allein auf einen festen Fuß gebracht werden können, als den lächerlichen Despotismus der Schulen zu unterstützen, welche über öffentliche Gefahr ein lautes Geschrei erheben, wenn man ihre Spinneweben zerreißt, von denen doch das Publikum niemals Notiz genommen hat, und deren Verlust es also auch nie fühlen kann.

Die Kritik ist nicht dem dogmatischen Verfahren der Vernunft in ihrem reinen Erkenntnis als Wissenschaft entgegengesetzt, (denn diese muß jederzeit dogmatisch, d. i. aus sicheren Prinzipien a priori strenge beweisend sein,) sondern dem Dogmatismus, d. i. der Anmaßung, mit einer reinen Erkenntnis aus Begriffen (der philosophischen), nach Prinzipien, so wie sie die Vernunft längst im Gebrauche hat, ohne Erkundigung der Art und des Rechts, womit sie dazu gelangt ist, allein fortzukommen. Dogmatismus ist also das dogmatische Verfahren der reinen Vernunft, ohne vorangehende Kritik ihres eigenen Vermögens. Diese Entgegensetzung soll daher nicht der geschwätzigen Seichtigkeit, unter dem angemaßten Namen der Popularität, oder wohl gar dem Skeptizismus, der mit der ganzen Metaphysik kurzen Prozeß macht, das Wort reden; vielmehr ist die Kritik die notwendige vorläufige Veranstaltung zur Beförderung einer gründlichen Metaphysik als Wissenschaft, die notwendig dogmatisch und nach der strengsten Forderung systematisch, mithin schulgerecht (nicht populär) ausgeführt werden muß; denn diese Forderung an sie, da sie sich anheischig macht, gänzlich a priori, mithin zu völliger Befriedigung der spekulativen Vernunft ihr Geschäft auszuführen, ist unnachläßlich. In der Ausführung also des Plans, den die Kritik vorschreibt, d. i. im künftigen System der Metaphysik, müssen wir dereinst der strengen Methode des berühmten Wolf, des größten unter allen dogmatischen Philosophen, folgen, der zuerst das Beispiel gab, (und durch dies Beispiel der Urheber des bisher noch nicht erloschenen Geistes der Gründlichkeit in Deutschland wurde,) wie durch gesetzmäßige Feststellung der Prinzipien, deutliche Bestimmung der Begriffe, versuchte Strenge der Beweise, Verhütung kühner Sprünge in Folgerungen der sichere Gang einer Wissenschaft zu nehmen sei, der auch eben darum eine solche, als Metaphysik ist, in diesen Stand zu versetzen vorzüglich geschickt war, wenn es ihm beigefallen wäre, durch Kritik des Organs, nämlich der reinen Vernunft selbst, sich das Feld vorher zu bereiten: ein Mangel, der nicht sowohl ihm, als vielmehr der dogmatischen Denkungsart seines Zeitalters beizumessen ist, und darüber die Philosophen seiner sowohl, als aller vorigen Zeiten einander nichts vorzuwerfen haben. Diejenigen, welche seine Lehrart und doch zugleich auch das Verfahren der Kritik der reinen Vernunft verwerfen, können nichts anderes im Sinne haben, als die Fesseln der Wissenschaft gar abzuwerfen, Arbeit in Spiel, Gewißheit in Meinung und Philosophie in Philodoxie zu verwandeln.

Was diese zweite Auflage betrifft, so habe ich, wie billig, die Gelegenheit derselben nicht vorbei lassen wollen, um den Schwierigkeiten und der Dunkelheit so viel möglich abzuhelfen, woraus manche Mißdeutungen entsprungen sein mögen, welche scharfsinnigen Männern, vielleicht nicht ohne meine Schuld, in der Beurteilung dieses Buchs aufgestoßen sind. In den Sätzen selbst und ihren Beweisgründen, imgleichen der Form sowohl als der Vollständigkeit des Plans, habe ich nichts zu ändern gefunden; welches teils der langen Prüfung, der ich sie unterworfen hatte, ehe ich es dem Publikum vorlegte, teils der Beschaffenheit der Sache selbst, nämlich der Natur einer reinen spekulativen Vernunft, beizumessen ist, die einen wahren Gliederbau enthält, worin alles Organ ist, nämlich alles um eines willen und ein jedes Einzelne um aller willen, mithin jede noch so kleine Gebrechlichkeit, sie sei ein Fehler (Irrtum) oder Mangel, sich im Gebrauche unausbleiblich verraten muß. In dieser Unveränderlichkeit wird sich dieses System, wie ich hoffe, auch fernerhin behaupten. Nicht Eigendünkel, sondern bloß die Evidenz, welche das Experiment der Gleichheit des Resultats, im Ausgange von den mindesten Elementen bis zum Ganzen der reinen Vernunft, und im Rückgange vom Ganzen (denn auch dieses ist für sich durch die Endabsicht derselben im Praktischen gegeben) zu jedem Teile bewirkt, indem der Versuch, auch nur den kleinsten Teil abzuändern, sofort Widersprüche, nicht bloß des Systems, sondern der allgemeinen Menschenvernunft herbeiführt, berechtigt mich zu diesem Vertrauen. Allein in der Darstellung ist noch viel zu tun, und hierin habe ich mit dieser Auflage Verbesserungen versucht, welche teils dem Mißverstande der Ästhetik, vornehmlich dem im Begriffe der Zeit, teils der Dunkelheit der Deduktion der Verstandesbegriffe, teils dem vermeintlichen Mangel einer genügsamen Evidenz in den Beweisen der Grundsätze des reinen Verstandes, teils endlich der Mißdeutung der der rationalen Psychologie vorgerückten Paralogismen abhelfen sollen. Bis hierher (nämlich nur bis zu Ende des ersten Hauptstücks der transzendentalen Dialektik) und weiter nicht erstrecken sich meine Abänderungen der Darstellungsart*, weil die Zeit zu kurz und mir in Ansehung des übrigen auch kein Mißverstand sachkundiger und unparteiischer Prüfer vorgekommen war, welche, auch ohne daß ich sie mit dem ihnen gebührenden Lobe nennen darf, die Rücksicht, die ich auf ihre Erinnerungen genommen habe, schon von selbst an ihren Stellen antreffen werden. Mit dieser Verbesserung aber ist ein kleiner Verlust für den Leser verbunden, der nicht zu verhüten war, ohne das Buch gar zu voluminös zu machen, nämlich, daß verschiedenes, was zwar nicht wesentlich zur Vollständigkeit des Ganzen gehört, mancher Leser aber doch ungern missen möchte, indem es sonst in anderer Absicht brauchbar sein kann, hat weggelassen oder abgekürzt vorgetragen werden müssen, um meiner, wie ich hoffe, jetzt faßlicheren Darstellung Platz zu machen, die im Grunde in Ansehung der Sätze und selbst ihrer Beweisgründe, schlechterdings nichts verändert, aber doch in der Methode des Vortrags hin und wieder so von der vorigen abgeht, daß sie durch Einschaltungen sich nicht bewerkstelligen ließ. Dieser kleine Verlust, der ohnedem, nach jedes Belieben, durch Vergleichung mit der ersten Auflage ersetzt werden kann, wird durch die größere Faßlichkeit, wie ich hoffe, überwiegend ersetzt. Ich habe in verschiedenen öffentlichen Schriften (teils bei Gelegenheit der Rezension mancher Bücher, teils in besonderen Abhandlungen) mit dankbarem Vergnügen wahrgenommen, daß der Geist der Gründlichkeit in Deutschland nicht erstorben, sondern nur durch den Modeton einer geniemäßigen Freiheit im Denken auf kurze Zeit überschrieen worden, und daß die dornigen Pfade der Kritik, die zu einer schulgerechten, aber als solche allein dauerhaften und daher höchstnotwendigen Wissenschaft der reinen Vernunft führen, mutige und helle Köpfe nicht gehindert haben, sich derselben zu bemeistern. Diesen verdienten Männern, die mit der Gründlichkeit der Einsicht noch das Talent einer lichtvollen Darstellung (dessen ich mir eben nicht bewußt bin) so glücklich verbinden, überlasse ich meine in Ansehung der letzteren hin und wieder etwa noch mangelhafte Bearbeitung zu vollenden, denn widerlegt zu werden ist in diesem Falle keine Gefahr, wohl aber nicht verstanden zu werden. Meinerseits kann ich mich auf Streitigkeiten von nun an nicht einlassen, ob ich zwar auf alle Winke, es sei von Freunden oder Gegnern, sorgfältig achten werde, um sie in der künftigen Ausführung des Systems dieser Propädeutik gemäß zu benutzen. Da ich während dieser Arbeiten schon ziemlich tief ins Alter fortgerückt bin (in diesem Monat ins vierundsechzigste Jahr,) so muß ich, wenn ich meinen Plan, die Metaphysik der Natur sowohl als der Sitten, als Bestätigung der Richtigkeit der Kritik der spekulativen sowohl als praktischen Vernunft, zu liefern, ausführen will, mit der Zeit sparsam verfahren, und die Aufhellung sowohl der in diesem Werke anfangs kaum vermeidlichen Dunkelheiten, als die Verteidigung den Ganzen von den verdienten Männern, die es sich zu eigen gemacht haben, erwarten. An einzelnen Stellen läßt sich jeder philosophische Vortrag zwacken, (denn er kann nicht so gepanzert auftreten, als der mathematische,) indessen, daß doch der Gliederbau des Systems, als Einheit betrachtet, dabei nicht die mindeste Gefahr läuft, zu dessen Übersicht, wenn es neu ist, nur wenige die Gewandtheit des Geistes, noch wenigere aber, weil ihnen alle Neuerung ungelegen kommt, Lust besitzen. Auch scheinbare Widersprüche lassen sich, wenn man einzelne Stellen, aus ihrem Zusammenhange gerissen, gegeneinander vergleicht, in jeder, vornehmlich als freie Rede fortgehenden Schrift ausklauben, die in den Augen dessen, der sich auf fremde Beurteilung verläßt, ein nachteiliges Licht auf diese werfen, demjenigen aber, der sich der Idee im Ganzen bemächtigt hat, sehr leicht aufzulösen sind. Indessen, wenn eine Theorie in sich Bestand hat, so dienen Wirkung und Gegenwirkung, die ihr anfänglich große Gefahr drohten, mit der Zeit nur dazu, um ihre Unebenheiten abzuschleifen, und wenn sich Männer von Unparteilichkeit, Einsicht und wahrer Popularität damit beschäftigen, ihr in kurzer Zeit auch die erforderliche Eleganz zu verschaffen.

 

Königsberg, im Aprilmonat 1787.

                                                                                                                       

 

* Eigentliche Vermehrung, aber doch nur in der Beweisart, könnte ich nur die nennen, die ich durch eine neue Widerlegung des psychologischen Idealismus, und einen strengen (wie ich glaube auch einzig möglichen) Beweis von der objektiven Realität der äußeren Anschauung S. 273 gemacht habe. Der Idealismus mag in Ansehung der wesentlichen Zwecke der Metaphysik für noch so unschuldig gehalten werden, (das er in der Tat nicht ist,) so bleibt es immer ein Skandal der Philosophie und allgemeinen Menschenvernunft, das Dasein der Dinge außer uns (von denen wir doch den ganzen Stoff zu Erkenntnissen selbst für unseren inneren Sinn her haben) bloß auf Glauben annehmen zu müssen, und, wenn es jemand einfällt es zu bezweifeln, ihm keinen genugtuenden Beweis entgegenstellen zu können. Weil sich in den Ausdrücken des Beweises von der dritten Zeile bis zur sechsten einige Dunkelheit findet, so bitte ich diesen Period so umzuändern: »Dieses Beharrliche aber kann nicht eine Anschauung in mir sein. Denn alle Bestimmungsgründe meines Daseins, die in mir angetroffen werden können, sind Vorstellungen, und bedürfen, als solche, selbst ein von ihnen unterschiedenes Beharrliches, worauf in Beziehung der Wechsel derselben, mithin mein Dasein in der Zeit, darin sie wechseln, bestimmt werden könne.« Man wird gegen diesen Beweis vermutlich sagen: ich bin mir doch nur dessen, was in mir ist, d. i. meiner Vorstellung äußerer Dinge, unmittelbar bewußt; folglich bleibe es immer noch unausgemacht, ob etwas ihr Korrespondierendes außer mir sei, oder nicht. Allein ich bin mir meines Daseins in der Zeit (folglich auch der Bestimmbarkeit desselben in dieser) durch innere Erfahrung bewußt, und dieses ist mehr, als bloß mich meiner Vorstellung bewußt zu sein, doch aber einerlei mit dem empirischen Bewußtsein meines Daseins, welches nur durch Beziehung auf etwas, was mit meiner Existenz verbunden, außer mir ist, bestimmbar ist. Dieses Bewußtsein meines Daseins in der Zeit ist also mit dem Bewußtsein eines Verhältnisses zu etwas außer mir identisch verbunden, und es ist also Erfahrung und nicht Erdichtung, Sinn und nicht Einbildungskraft, welches das Äußere mit meinem inneren Sinn unzertrennlich verknüpft; denn der äußere Sinn ist schon an sich Beziehung der Anschauung auf etwas Wirkliches außer mir, und die Realität desselben, zum Unterschiede von der Einbildung, beruht nur darauf, daß er mit der inneren Erfahrung selbst, als die Bedingung der Möglichkeit derselben unzertrennlich verbunden werde, welches hier geschieht. Wenn ich mit dem intellektuellen Bewußtsein meines Daseins, in der Vorstellung Ich bin, welche alle meine Urteile und Verstandeshandlungen begleitet, zugleich eine Bestimmung meines Daseins durch intellektuelle Anschauung verbinden könnte, so wäre zu derselben das Bewußtsein eines Verhältnisses zu etwas außer mir nicht notwendig gehörig. Nun aber jenes intellektuelle Bewußtsein zwar vorangeht, aber die innere Anschauung, in der mein Dasein allein bestimmt werden kann, sinnlich und an Zeitbedingung gebunden ist, diese Bestimmung aber, mithin die innere Erfahrung selbst, von etwas Beharrlichem, welches in mir nicht ist, folglich nur in etwas außer mir, wogegen ich mich in Relation betrachten muß, abhängt: so ist die Realität des äußeren Sinnes mit der des inneren, zur Möglichkeit einer Erfahrung überhaupt, notwendig verbunden: d. i. ich bin mir eben so sicher bewußt, daß es Dinge außer mir gebe, die sich auf meinen Sinn beziehen, als ich mir bewußt bin, daß ich selbst in der Zeit bestimmt existiere. Welchen gegebenen Anschauungen nun aber wirklich Objekte außer mir korrespondieren, und die also zum äußeren Sinne gehören, welchem sie und nicht der Einbildungskraft zuzuschreiben sind, muß nach den Regeln, nach welchen Erfahrung überhaupt (selbst innere) von Einbildung unterschieden wird, in jedem besonderen Falle ausgemacht werden, wobei der Satz: daß es wirklich äußere Erfahrung gebe, immer zum Grunde liegt. Man kann hiezu noch die Anmerkung fügen: die Vorstellung von etwas Beharrlichem im Dasein ist nicht einerlei mit der beharrlichen Vorstellung; denn diese kann sehr wandelbar und wechselnd sein, wie alle unsere und selbst die Vorstellungen der Materie, und bezieht sich doch auf etwas Beharrliches, welches also ein von allen meinen Vorstellungen unterschiedenes und äußeres Ding sein muß, dessen Existenz in der Bestimmung meines eigenen Daseins notwendig mit eingeschlossen wird, und mit derselben nur eine einzige Erfahrung ausmacht, die nicht einmal innerlich stattfinden würde, wenn sie nicht (zum Teil) zugleich äußerlich wäre. Das Wie? läßt sich hier ebensowenig weiter erklären, als wie wir überhaupt das Stehende in der Zeit denken, dessen Zugleichsein mit dem Wechselnden den Begriff der Veränderung hervorbringt.

 

 

2판 서문.hwp

2판 서문.hwp
0.08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