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전통을 향한 두 가지 태도

이윤진이카루스 2023. 5. 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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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을 향한 두 가지 태도

 

전통을 향해서 오직 두 가지 가능한 주요 태도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는, 흔히 전통을 심지어 인식하지도 않고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우리는 흔히 우리가 전통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내가 시계를 왼쪽 손목에 찬다면, 내가 전통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필요가 나에게 없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전통들의 영향 아래서 수백 가지 일을 매일 우리가 수행한다. 그러나 우리가 전통의 영향 아래서 행동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다른 가능성은 비판적 태도로, 수용이나 거부 혹은 아마도 타협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전통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기 전에 우리는 전통에 관하여 알고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이 전통을 합리적 근거를 토대로 배척한다.’ 이제 우리가 전통이라는 굴레로부터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해방시킬 수 있을 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소위 해방이라는 것은 실제로 한 전통에서 다른 전통으로 바뀌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의 금기들(taboos)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전통을 배척함에 의해서 뿐 아니라 전통을 비판적으로 수용함에 의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금기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금기를 수용해야 하는지 혹은 배척해야 하는지를 자문한다면, 우리 자신이 금기로부터 해방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전통을 우리 앞에 명료하게 놓아야 하며, 무엇이 전통의 기능과 중요성인지 우리가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합리주의자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인데, 이유인즉 합리주의자들은 그들 자신의 전통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 도전하여 비판할 태세가 되어있는 저 사람들이기를 내가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어도 그들 염두에서 모든 것에게 의문부호를 붙일 태세가 되어있다. 그들에게는 어떤 전통에도 맹목적으로 굴복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무한한 가치를 지닌 우리의 합리주의적 전통에 (그 전통을 합리주의자들은 너무 무비판적으로 그렇게 자주 수용한다) 우리가 도전해야 하는 상당히 많은 요점들이 있다고 나는 말해야겠다. 합리주의적 전통의 일부는, 예를 들어 결정론에 관한 형이상학적 관념이다. 결정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통 합리주의자들이 의심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비결정론을 수용하면 우리가 자유의지(Free Will) 교설을 수용하기 마련이고 그리하여 영혼과 신의 은총에 관한 신학적 논쟁에 휘말리게 될 것임을 합리주의자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의지에 관하여 말하기를 통상적으로 피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에 관하여 나는 충분히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심지어 자유의지에 대한 우리의 직감에 의하여 우리가 오도될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론은 많은 근거로써 옹호될 수 없는 이론이라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결정론을 수용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로, 우리가 합리주의적 전통에서 결정론적 요소를 제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정론적 요소는 옹호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끝없이 문제를 만들어낸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비결정론을 ㅡ 다시 말해서, 결정론에 대한 부정 ㅡ 채택하면 반드시 우리의 의지에 관한 혹은 책임에 관한 어떤 교설에도 우리가 연루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합리주의적 전통의 또 다른 요소는 관찰주의(observationalism)라는 관념이다 ㅡ 우리가 여기저기를 보고,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서, 우리가 보고 듣고, 기타 등등 하는 것을 적어놓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안다는 관념;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지닌 지식의 재료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관념. 이것은 극도로 뿌리 깊은 편견이어서, 과학적 방법의 이해를 저애하는 관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ㅡ 칼 포퍼,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1989, 122-123쪽 ㅡ

 

 

 

 

 

 

 

 

 

 

 

 

 

 

It should be clearly understood that there are only two main attitudes possible towards tradition. One is to accept a tradition uncritically, often without even being aware of it. In many cases we cannot escape this; for we often just do not realize that we are faced with a tradition. If I wear a watch on my left wrist, I need not be conscious that I am accepting a tradition. Every day we do hundreds of things under the influence of traditions of which we are unaware. But if we do not know that we are acting under the influence of a tradition, then we cannot help accepting the tradition uncritically.

The other possibility is a critical attitude, which may result either in acceptance or in rejection, or perhaps in a compromise. Yet we have to know of and to understand a tradition before we can criticize it, before we can say: 'We reject this tradition on rational grounds.' Now I do not think that we could ever free ourselves entirely from the bonds of tradition. The so-called freeing is really only a change from one tradition to another. But we can free ourselves from the taboos of a tradition; and we can do that not only by rejecting it, but also by critically accepting it. We free ourselves from the taboo if we think about it, and if we ask ourselves whether we should accept it or reject it. In order to do that we have first to have the tradition clearly before us, and we have to understand in a general way what may be the function and significance of a tradition. That is why it is so important for rationalists to deal with this problem, for rationalists are those people who are ready to challenge and to criticize everything, including, I hope, their own tradition. They are ready to put question-marks to anything, at least in their minds. They will not submit blindly to any tradition.

I should say that in our invaluable rationalist tradition (which rationalists so often accept too uncritically) there are quite a few points which we ought to challenge. A part of the rationalist tradition is, for example, the metaphysical idea of determinism. People who do not agree with determinism are usually viewed with suspicion by rationalists who are afraid that if we accept indeterminism, we may be committed to accepting the doctrine of Free Will, and may thus become involved in theological arguments about the Soul and Divine Grace. I usually avoid talking about free will, because I am not clear enough about what it means, and I even suspect that our intuition of a free will may mislead us. Nevertheless, I think that determinism is a theory which is untenable on many grounds, and that we have no reason whatever to accept it. Indeed, I think that it is important for us to get rid of the determinist element in the rationalist tradition. It is not only untenable, but it creates endless trouble for us. It is, for this reason, important to realize that indeterminism - that is, the denial of determinism - does not necessarily involve us in any doctrine about our 'will' or about 'responsibility'.

Another element in the rationalist tradition which we should question is the idea of observationalism - the idea that we know about the world because we look around, open our eyes and ears, and take down what we see, hear, and so on; and that this is what constitutes the material of our knowledge. This is an extremely deep-rooted prejudice and is, I think, an idea which impedes the understanding of scientific meth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