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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길

이윤진이카루스 2024. 6. 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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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길

 

85. 과학의 길

우리는 물리학의 진보에서 일반적인 방향과 ㅡ 낮은 수준의 일반성을 지닌 이론으로부터 높은 수준으로의 방향 ㅡ 같은 것을 감지할 것이다. 이것은 통상적으로 귀납적 방향으로 지칭된다; 그래서 물리학이 이 귀납적방향으로 진보한다는 사실이 귀납적 방법을 선호하는 논증으로서 이용될 수 있을 터라고 혹시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귀납적 방향으로의 진보가, 반드시 귀납적 추론들의 수열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진보가 아주 다른 관계들로 ㅡ 시험가능성 등급과 입증가능성 등급의 관계들로 ㅡ 설명될 것임을 우리가 정말로 밝혔다. 이유인즉 잘 입증된 이론이 더 높은 보편성의 수준을 지닌 이론에 의하여 대체될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더 잘 시험될 수 있고 덧붙여, 옛 이론이자 잘 입증된 이론을 ㅡ 혹은 적어도 그 이론에 대한 충분한 근사치 ㅡ 포함하는 이론에 의하여 대체될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 추세를 ㅡ 항상 더 높은 수준의 보편성을 지닌 이론들을 향한 진보 ㅡ 유사-귀납적으로서 기술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유사-귀납적 과정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이 상상된다. 어떤 수준의 보편성을 지닌 이론들이 제시되어 연역적으로 시험된다; 그다음에, 더 높은 수준의 보편성을 지닌 이론들이 제시되어 반대로 이전 수준들의 보편성을 지닌 저 이론들의 도움을 받아서 시험되고 그런 과정이 계속된다. 시험하는 방법들은 더 높은 수준에서 낮은 수준으로의 연역적 추론들에 변함없이 근거한다; 다른 한편으로 보편성의 등급들은 시간 순서로 낮은 수준들에서 높은 수준들로 나아감에 의하여 도달된다.

다음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최고 수준의 보편성을 지닌 이론들을 왜 즉시 발명하지 않는가? 이 유사-귀납적 진보를 왜 기다리는가? 혹시 결국 그 진보 안에 귀납적 요소가 포함되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한 모든 수준의 보편성을 지닌 제안들이 ㅡ 추측들이나 이론들 ㅡ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너무 높은 수준의 보편성 위에 있는 저 이론들은 말하자면 (다시 말해서, 당시의 시험가능한 과학에 의하여 도달되는 수준으로부터 너무 동떨어진), 아마도 형이상학적 이론체계를 낳는다. 이 경우 이 이론체계로부터 지배적인 과학적 이론체계에 속하는 명제들이 틀림없이 연역될 수 (혹은 예를 들어 스피노자의 이론체계의 경우에서처럼 단지 반[]-연역될 수) 있을지라도, 그 명제들 가운데 시험될 수 있는 새로운 명제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문제의 이론체계를 시험하기 위하여 결정적인 실험이 고안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 이론체계에 대하여 결정적인 실험이 고안될 수 있다면, 그 이론체계는 최초의 근사치로서 어떤 잘 입증된 이론을 그리고 동시에 또한 새로운 것을 ㅡ 게다가 시험될 수 있는 것 ㅡ 포함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이론체계는 물론 형이상학적이 아닐 것이다. 이 경우 문제의 이론체계는 과학의 유사-귀납적 진보에서 새로운 진전으로서 간주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당시 과학과의 연계가 통상적으로 당시의 문제 상황에 대처하려는 시도에서 제시되는 저 이론들에 의해서만 확립되는 이유가 설명된다; 다시 말해서, 당시 난제들, 모순들 그리고 오류판정 사례들. 이 난제들에 대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이 이론들은 결정적 실험을 향한 길을 가리킬 것이다.

과학의 이 유사-귀납적 진보의 그림이나 모형을 얻기 위하여, 다양한 관념과 가설이 액체에 뜬 입자들로서 상상될지도 모른다. 시험될 수 있는 과학은 그릇의 바닥에 이 입자들을 침전시키는 것이다; 그 입자들은 층들을 (보편성의) 이루면서 가라앉는다. 침전물의 두께는 이 층들의 숫자에 비례하여 커지며, 모든 새로운 층은 그 층 아래에 있는 저 이론들보다 더 보편적인 이론에 대응한다. 이 과정의 결과로서 더 높은 형이상학적 영역들에서 이전에 부유하던 관념들이 과학의 성장에 의하여 도달되어 그리하여 그 관념들이 과학의 성장과 접촉하여 정착한다. 그런 관념들의 사례들이 원자론이다; 단일한 물리학적 원리나 궁극적 원소라는 (그 원리나 원소로부터 다른 것들이 도출되는) 관념이다; 지구 운동론 (베이컨이 허구라고 반대한); 한 시대나 지난 빛의 입자론; 전기의 유체론 (금속 전도의 전자-기체 가설로서 되살아난). 이 모든 형이상학적 개념들과 관념들은, 심지어 그 개념들과 관념들의 초기 형태로도, 세상에 대한 인간의 그림 속으로 질서를 가져오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고 몇몇 경우에는 심지어 성공적인 예측들을 낳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관념은, 오류로 판정될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될 때만 과학적 위상을 얻는다; 다시 말해서, 그 관념과 어떤 반대 이론 사이에서 경험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때만 과학적 위상을 얻는다.

 

나의 연구는, 이 저서의 시작에서 채택된 결정사항들과 규약들의 ㅡ 특히 구획설정 기준의 ㅡ 다양한 결과들을 추적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제 과학에 대한 그리고 출현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그림을 마지막으로 포괄적으로 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생물학적 현상으로서의, 적응 도구로서의 혹은 우회적 생산 방법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그림이 아니다: 과학에 대한 그림이 지닌 인식론적 모습들을 내가 염두에 두고 있다.)

과학은 확실하거나 잘-확립된 명제들로 구성된 체계가 아니다; 또한 과학은 궁극성의 상태를 향하여 꾸준히 전진하는 체계도 아니다. 우리의 과학은 참된 지식이 (epistēmē) 아니다: 우리의 과학은 진리에 혹은 심지어 확률과 같은 진리 대체물에 도달했다고 결코 주장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는 단순히 생물학적 생존 가치 이상이 있다. 과학은 유용한 도구만이 아니다. 과학이 진리나 확률에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지식에 대한 갈망과 진리 탐구는 여전히 과학적 발견의 가장 강력한 동기이다.

우리는 무식하다; 우리는 추측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의 추측은 우리가 뚜껑을 열 수 있는 ㅡ 발견할 수 있는 ㅡ 법칙에 대한, 규칙성에 대한 비과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라도) 믿음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베이컨처럼, 우리는 아마도 우리 자신의 동시대 과학을 ㅡ 인간들이 지금 평범하게 자연에 적용하는 추론 방법성급하고 미숙한 예상들로 그래서 편견들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기술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그 예상들을 전복하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논리적, 수학적 그리고 기술적(技術的: technical) 병기고의 모든 무기를 사용하여 우리의 예상들이 거짓이었음을 증명하려고 우리가 노력한다 ㅡ 베이컨이 조롱하여 새로운 성급하고 미숙한 편견들로 지칭했던 것처럼 그 예상들 대신 새롭고 정당화되지 않고 정당화될 수 없는 예상들을 제시하기 위하여 우리가 노력한다.*3

과학의 길을 더 무미건조하게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아마도, 진보가 ‘... 두 가지 방식으로만 발생한다: 새로운 지각적 경험들을 수집함에 의하여, 그리고 이미 사용가능한 지각적 경험들을 더 잘 조직함에 의하여라고 아마도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진보에 대한 이 기술은, 실제로 틀리지 않을지라도, 요점을 놓치는 듯하다. 그 기술은 베이컨의 귀납법을 지나치게 상기시킨다:

익어서 제철인 무한히 많은 포도 대한 그의 열성적인 채집을 지나치게 상기시키는데 그 채집으로부터 그는 과학이라는 포도주가 흘러나오기를 기대했다; 관찰과 실험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다음에 이론으로 나아가는 그의 과학적 방법이라는 신화를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 전설적 방법은, 그 방법이 실험적 물리학의 방법이라는 지배적인 믿음 때문에 그 방법을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더 새로운 과학 중 몇 가지를 여전히 고취한다.)

과학의 발전은, 시간이 흐르면 점점 더 많이 지각적 경험들이 축적된다는 사실에 기인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의 발전은, 우리가 우리의 감각들을 항상 더 잘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기인하지도 않는다. 해석되지 않은 감각-경험들로부터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그 경험들을 수집하여 정리하려고 노력할지라도 과학은 정제되지 않는다. 대담한 관념, 정당화되지 않은 예상 그리고 사변적 사고가 자연을 해석하기 위하여 우리가 지닌 유일한 수단들이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가 지닌 유일한 지식 도구이자 우리가 지닌 도구이다. 그래서 보상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수단들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 중에서 자신들의 관념들을 반박당하는 위험에 노출시키기를 꺼리는 사람들은 과학적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경험에 의하여 우리의 관념을 신중하고 냉철하게 시험하는 것도 반대로 관념에 의하여 고취된다: 실험은, 모든 단계가 이론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계획된 행위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우연히 발견하지 않고, 또한 우리는 우리의 경험이 우리 위를 시냇물처럼 흘러가도록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능동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들을 만들어야한다. 자연에 부쳐질 질문을 항상 정식화하는 것은 우리다; 명백한 혹은 아니오를 뽑아내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이 질문들을 제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우리다 (이유인즉 답변하라는 압박을 받지 않으면 자연은 답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답변을 내는 것도 다시 우리다; 엄격한 분석 후에 우리가 자연에 부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결정하는 ㅡ 자연으로부터 분명한 아니오를 뽑아내려고 지연되고 진지한 시도들 후에 ㅡ 것은 우리 자신이다. ‘최종적으로 나는, 우리가 만드는 이론들을 결정적인 아니오(No)로써 ㅡ 혹은 들리지 않는 (Yes)로써 ㅡ 대처하는 방법을 매우 잘 알고 있는 완고한 자연으로부터 해석 가능한 사실들을 빼내려고 싸우는 데서 실험가의 작업에 대하여 나의 무한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바일(Weyl) 말하는데 나는 전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참된 지식(epistēmē)이라는 ㅡ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증명가능한 지식 ㅡ 오래된 과학적 이상은 우상으로 판명되었다.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요구로 인하여, 모든 과학적 명제가 틀림없이 영원히 잠정적이라는 것이 불가피하게 된다. 과학적 명제가 정말로 입증될 것이지만 모든 입증은, 다시 잠정적인 다른 명제들과 상대적이다. 확신과 관련된 우리의 주관적 경험인 우리의 주관적 신념에서만 우리가 절대적으로 확신할수 있다.

확실성이라는 우상에 (불완전한 확실성의 등급들이라는 혹은 확률이라는 우상을 포함하여) 과학적 발전의 길을 막는 반계몽주의에 대한 옹호 중 한 가지 옹호가 대응한다. 이유인즉 이 우상 숭배가 우리의 질문이 지닌 대담성뿐 아니라 우리가 수행하는 시험의 엄격성 및 온전함도 방해하기 때문이다. 과학에 대한 그릇된 견해는 옳아지고자 하는 열망에서 드러난다; 이유인즉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과학자의 지식 소유, 반박불가능한 진리의 소유가 아니라 과학자의 끈질기고도 무모하게 비판적인 진리 추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태도는 유보적인 태도여야 하는가? 과학은 자체의 생물학적 과제만을 성취할 수 있다고; 과학은 기껏해야 과학을 입증할 실용적 적용에서 과학의 패기를 증명할 수 있을 따름이라고 우리가 말해야 하는가? 과학과 관련된 지성적 문제들은 해결이 불가능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은 결코 자체가 내놓는 답변을 최종적으로 혹은 심지어 개연적으로 만드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은 오히려 무한하지만 도달가능한 목표를 향한다: 새롭고 더 깊고 그리고 더 일반적인 문제들을 항상 발견하는, 그리고 우리가 내놓는 항상 잠정적인 답변을 언제나 갱신되고 언제나 더 엄혹한 시험들에 부치는 목표를 향한다.

ㅡ 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1968, 276-281쪽 ㅡ

 

 

85 THE PATH OF SCIENCE

 

One may discern something like a general direction in the evolution of physics a direction from theories of a lower level of universality to theories of a higher level. This is usually called the 'inductive' direction; and it might be thought that the fact that physics advances in this 'inductive' direction could be used as an argument in favour of the inductive method.

Yet an advance in the inductive direction does not necessarily consist of a sequence of inductive inferences. Indeed we have shown that it may be explained in quite different terms in terms of degree of testability and corroborability. For a theory which has been well corroborated can only be superseded by one of a higher level of universality; that is, by a theory which is better testable and which, in addition, contains the old, well corroborated theory or at least a good approximation to it. It may be better, therefore, to describe that trend the

advance towards theories of an ever higher level of universality as 'quasi-inductive'.

The quasi-inductive process should be envisaged as follows. Theories of some level of universality are proposed, and deductively tested; after that, theories of a higher level of universality are proposed, and in their turn tested with the help of those of the previous levels of universality, and so on. The methods of testing are invariably based on deductive inferences from the higher to the lower level;*1 on the other hand, the levels of universality are reached, in the order of time, by

proceeding from lower to higher levels.

The question may be raised: 'Why not invent theories of the highest level of universality straight away? Why wait for this quasi-inductive evolution? Is it not perhaps because there is after all an inductive element contained in it?' I do not think so. Again and again suggestions are

 

*1 The 'deductive inferences from the higher to the lower level' are, of course, explanations (in the sense of section 12); thus the hypotheses on the higher level are explanatory with respect to those on the lower level.

 

 

 

CORROBORATION, OR HOW A THEORY STANDS UP TO TESTS 277

 

put forward conjectures, or theories of all possible levels of universality. Those theories which are on too high a level of universality, as it were (that is, too far removed from the level reached by the testable science of the day) give rise, perhaps, to a 'metaphysical system'. In this case, even if from this system statements should be deducible (or only semi-deducible, as for example in the case of Spinoza's system), which belong to the prevailing scientific system, there will be no new testable statement among them; which means that no crucial experiment can be designed to test the system in question.*2 If, on the other hand, a crucial experiment can be designed for it, then the system will contain, as a first approximation, some well corroborated theory, and at the same time also something new and something that can be tested. Thus the system will not, of course, be 'metaphysical'. In this case, the system in question may be looked upon as a new advance in the quasi-inductive evolution of science. This explains why a link with the science of the day is as a rule established only by those theories which are proposed in an attempt to meet the current problem situation; that is, the current difficulties, contradictions, and falsifications. In proposing a solution to these difficulties, these theories may point the way to a crucial experiment.

To obtain a picture or model of this quasi-inductive evolution of science, the various ideas and hypotheses might be visualized as particles suspended in a fluid. Testable science is the precipitation of these particles at the bottom of the vessel: they settle down in layers (of universality). The thickness of the deposit grows with the number of these layers, every new layer corresponding to a theory more universal than those beneath it. As the result of this process ideas previously

floating in higher metaphysical regions may sometimes be reached by the growth of science, and thus make contact with it, and settle. Examples of such ideas are atomism; the idea of a single physical 'principle' or ultimate element (from which the others derive); the theory of terrestrial motion (opposed by Bacon as fictitious); the

 

*2 It should be noted that I mean by a crucial experiment one that is designed to refute a theory (if possible) and more especially one which is designed to bring about a decision between two competing theories by refuting (at least) one of them without, of course, proving the other. (See also note x to section 22, and appendix *ix.)

 

 

 

278 SOME STRUCTURAL COMPONENTS OF A THEORY OF EXPERIENCE

 

age-old corpuscular theory of light; the fluid-theory of electricity (revived as the electron-gas hypothesis of metallic conduction). All these metaphysical concepts and ideas may have helped, even in their early forms, to bring order into man's picture of the world, and in some cases they may even have led to successful predictions. Yet an idea of this kind acquires scientific status only when it is presented in falsifiable form; that is to say, only when it has become possible to decide empirically between it and some rival theory.

 

My investigation has traced the various consequences of the decisions and conventions in particular of the criterion of demarcation adopted at the beginning of this book. Looking back, we may now try to get a last comprehensive glimpse of the picture of science and of scientific discovery which has emerged. (What I have here in mind is not a picture of science as a biological phenomenon, as an instrument of adaptation, or as a roundabout method of production: I have in mind its epistemological aspects.)

Science is not a system of certain, or well-established, statements; nor is it a system which steadily advances towards a state of finality. Our science is not knowledge (epistēmē): it can never claim to have attained truth, or even a substitute for it, such as probability.

Yet science has more than mere biological survival value. It is not only a useful instrument. Although it can attain neither truth nor probability, the striving for knowledge and the search for truth are still the strongest motives of scientific discovery.

We do not know; we can only guess. And our guesses are guided by the unscientific, the metaphysical (though biologically explicable) faith in laws, in regularities which we can uncover discover. Like Bacon, we might describe our own contemporary science 'the method of reasoning which men now ordinarily apply to nature' as consisting of 'anticipations, rash and premature' and of 'prejudices'.1

But these marvellously imaginative and bold conjectures or 'anticipations' of ours are carefully and soberly controlled by systematic tests. Once put forward, none of our 'anticipations' are dogmatically upheld. Our method of research is not to defend them, in order to prove how

 

 

 

1 Bacon, Novum Orgcmum I, 26.

 

 

 

CORROBORATION, OR HOW A THEORY STANDS UP TO TESTS 279

 

 

 

right we were. On the contrary, we try to overthrow them. Using all the weapons of our logical, mathematical, and technical armoury, we try to prove that our anticipations were false in order to put forward, in their stead, new unjustified and unjustifiable anticipations, new 'rash and premature prejudices', as Bacon derisively called them.*3

It is possible to interpret the ways of science more prosaically. One might say that progress can '. . . come about only in two ways: by gathering new perceptual experiences, and by better organizing those which are available already'. 2 But this description of scientific progress, although not actually wrong, seems to miss the point. It is too reminiscent of Bacon's induction: too suggestive of his industrious

gathering of the 'countless grapes, ripe and in season',3 from which he expected the wine of science to flow: of his myth of a scientific method that starts from observation and experiment and then proceeds to theories. (This legendary method, by the way, still inspires some of the newer sciences which try to practice it because of the prevalent belief that it is the method of experimental physics.)

 

*3 Bacon's 'anticipation' ('anticipatio'; Novum Organum I, 26) means almost the same as 'hypothesis' (in my usage). Bacon held that, to prepare the mind for the intuition of the true essence or nature of a thing, it has to be meticulously cleansed of all anticipations, prejudices, and idols. For the source of all error is the impurity of our own minds: Nature itself does not lie. The main function of eliminative induction is (as with Aristotle) to assist the purification of the mind. (See also my Open Society, chapter 24; note 59 to chapter 10; note 33 to chapter 1 1, where Aristotle's theory of induction is briefly described). Purging the mind of prejudices is conceived as a kind of ritual, prescribed for the scientist who wishes to prepare his mind for the interpretation (the unbiassed reading) of the Book of Nature: just as the mystic purifies his soul to prepare it for the vision of God. (Cf. the Introduction to my Conjectures and Refutations (1963) 1965.)

2 P. Frank, Das Kausalgesetz und seine Grenzen, 1932. *The view that the progress of science is due to the accumulation of perceptual experiences is still widely held (cf. my second Preface, 1958). My denial of this view is closely connected with the rejection of the doctrine that science or knowledge is bound to advance since our experiences are bound to accumulate. As against this, I believe that the advance of science depends upon the free competition of thought, and thus upon freedom, and that it must come to an end if freedom is destroyed (though it may well continue for some time in some fields, especially in technology). This view is more fully expounded in my Poverty of Historicism (section 32). I also argue there (in the Preface) that the growth of our knowledge is unpredictable by scientific means, and that, as a consequence, the future course of our history is also unpredictable.

3 Bacon, Novum Organum I, 123.

 

 

 

280 SOME STRUCTURAL COMPONENTS OF A THEORY OF EXPERIENCE

 

The advance of science is not due to the fact that more and more perceptual experiences accumulate in the course of time. Nor is it due to the fact that we are making ever better use of our senses. Out of uninterpreted sense-experiences science cannot be distilled, no matter how industriously we gather and sort them. Bold ideas, unjustified anticipations, and speculative thought, are our only means for interpreting nature: our only organon, our only instrument, for grasping her. And we must hazard them to win our prize. Those among us who are unwilling to expose their ideas to the hazard of refutation do not take part in the scientific game.

Even the careful and sober testing of our ideas by experience is in its turn inspired by ideas: experiment is planned action in which every step is guided by theory. We do not stumble upon our experiences, nor do we let them flow over us like a stream. Rather, we have to be active: we have to 'make' our experiences. It is we who always formulate the questions to be put to nature; it is we who try again and again to put these question so as to elicit a clear-cut 'yes' or 'no' (for nature does not give an answer unless pressed for it). And in the end, it is again we who give the answer; it is we ourselves who, after severe scrutiny, decide upon the answer to the question which we put to nature after protracted and earnest attempts to elicit from her an unequivocal 'no'. 'Once and for all', says Weyl,4 with whom I fully agree, 'I wish to record my unbounded admiration for the work of the experimenter in his struggle to wrest interpretable facts from an unyielding Nature who knows so well how to meet our theories with a decisive No or with an inaudible Yes.'

The old scientific ideal of epistēmē of absolutely certain, demonstrable knowledge has proved to be an idol. The demand for scientific objectivity makes it inevitable that every scientific statement must remain tentative for ever. It may indeed be corroborated, but every corroboration is relative to other statements which, again, are tentative. Only in our subjective experiences of conviction, in our subjective faith, can we be 'absolutely certain'.5

 

4 Weyl, Gruppentheorie und Quantenmechcmik, 1931, p. 2. English translation by H. P. Robertson: The Theory of Groups and Quantum Mechanics, 1 93 1 , p. xx.

5 Cf. for example note 3 to section 30. This last remark is of course a psychological remark rather than an epistemological one; cf. sections 7 and 8.

 

 

 

CORROBORATION, OR HOW A THEORY STANDS UP TO TESTS 281

 

With the idol of certainty (including that of degrees of imperfect certainty or probability) there falls one of the defences of obscurantism which bar the way of scientific advance. For the worship of this idol hampers not only the boldness of our questions, but also the rigour and the integrity of our tests. The wrong view of science betrays itself in the craving to be right; for it is not his possession of knowledge, of irrefutable truth, that makes the man of science, but his persistent and recklessly critical quest for truth.

Has our attitude, then, to be one of resignation? Have we to say that science can fulfil only its biological task; that it can, at best, merely prove its mettle in practical applications which may corroborate it? Are its intellectual problems insoluble? I do not think so. Science never pursues the illusory aim of making its answers final, or even probable. Its advance is, rather, towards an infinite yet attainable aim: that of ever discovering new, deeper, and more general problems, and of subjecting our ever tentative answers to ever renewed and ever more rigorous te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