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한국 전쟁 (13) (수정본)

이윤진이카루스 2025. 2. 1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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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13)

 

밀기울

보리껍질을 빻아 만든 가루로

가축 사료로 쓰이지만

전쟁 끝나고 사람의 주식도 됐다.

막걸리 거르고 남은 찌꺼기

지게미 먹은 아이

불과해진 얼굴로 휘청거리기도.

 

깔깔하고 짚 냄새 풍기는

밀기울

떡을 만들어 먹는데

밀가루라도 섞으면 얼굴 환하고

그마저 충분하면 안심됐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지나는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보릿고개에

밀기울도 없고

쑥버무리

묽은 쌀죽

강냉이죽

좁쌀죽

수제비

밀가루 국수로 연명했고

바닷가에 살면 반찬

시절에 따라 잡히는

오징어

양미리

도루묵

꽁치

멸치 따위와

고춧가루 소금에 버무린

김치뿐

육류 냄새도 드물다.

 

소나무 껍질 벗겨 먹으면

소화불량에 얼굴 검어지고

간장에 물 타 배 채우는 대낮의 햇빛

너무나 화사하여 드러누운 몸뚱이를

조롱했다.

 

보릿고개

푸른빛 아니라

회색빛이었는데

화사한 봄과 여름 사이

태양 빛을 잃고

사람 눈 뜨지 못했다.

 

인간 동물로 돌아갔을 때

배나 채우며 연명할 때

슬픔

절망 되었고

육체

늘어졌다.

 

희망

얼마나 요원한 사치던가,

절망

악착같은 현실이었고

기억의 뒤안길에 각인되어

끝내 붙들고 늘어졌고

태양이 비웃었다.

 

과거 사랑하지 못한다면

미래 위하여 기억하라,

겹겹이 쌓인 허탈한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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