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백담사
가을 오는 백담사 오르는 길
흰 바위 감고 물 흐르는데
모래톱에 짐승 발자국 어지럽고
작은 푸른 새 아장거리다 날다.
산 높으면 계곡 깊은데
물 푸르러
높고 깊은 땅 지나며 세월 먹었다.
설악 물도 보러 가는 곳.
스미고 돌고 솟아 아래로 흘러
태초의 푸름이 여전한 까닭
봉우리 골짜기마다
인적이 찾지 못해서 일 게다.
봉우리 아래
꿈꾸듯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산에 떨어져 이리저리 씻기고 부딪쳐
정화(淨化)의 끝 색깔로 증명하며
설악의 물
슬픔 지나고 상처 보듬고 침묵 배웠다.
억만년 흐르면 미륵불 온다
정토(淨土) 온다는 말 누가 못할까.
당신 사하촌(寺下村)에서 조금 떨어져
준령 보고 있지?
백담사 만해기념관
만해가 심술궂게 노려보는데
앉아서 풀어놓은 과일에
왕벌 달려든다.
잎사귀에 물이 들면
꽃 모두 졌지만
생명 끝까지 살려 한다오.
계곡에 쌓인 돌탑들이 서 있듯
절집에서 삶 이어졌다.
사람 때문인지 그악스런 까치 때문인지
도시 떠난 까마귀 수렴동에서 울었는데
높은 나무 위에 윤 나는 검은 자태로
울었다.
어디까지 왔는지
꼭대기 가려져 시야 밖인데
길이 갈라져 있기 때문,
청봉
만년설 꿈꾸며 유린된 몸 가눈다.
목적지 하나 길은 여러 갈래,
이정표 따르지만
종착지 달아난다.
영시암에 심은 무와 배추
추위에 벌레 맥을 못 춰
튼실하고 눈 덮인 골짜기 짐작한다.
불자들이 삶아내는 국수
발우에 받아 열무김치 얹고
아내 긴 줄 벗어나서 그릇 비우고
보시함에 지폐 넣는다.
고개 넘어 수렴동 대피소 가는 길
사람들 봉정암에서 잘 마음 먹고,
내일이면 청봉에서 안개 만나거나
동해에 뜨는 해와 우주가 숨쉬는 절벽
내려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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