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시

가을 백담사 (수정본)

이윤진이카루스 2025. 2. 28. 20:12

가을 백담사.hwpx
0.04MB

 

    가을 백담사

 

가을 오는 백담사 오르는 길

흰 바위 감고 물 흐르는데

모래톱에 짐승 발자국 어지럽고

작은 푸른 새 아장거리다 날다.

 

산 높으면 계곡 깊은데

물 푸르러

높고 깊은 땅 지나며 세월 먹었다.

설악 물도 보러 가는 곳.

스미고 돌고 솟아 아래로 흘러

태초의 푸름이 여전한 까닭

봉우리 골짜기마다

인적이 찾지 못해서 일 게다.

 

봉우리 아래

꿈꾸듯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산에 떨어져 이리저리 씻기고 부딪쳐

정화(淨化)의 끝 색깔로 증명하며

설악의 물

슬픔 지나고 상처 보듬고 침묵 배웠다.

 

억만년 흐르면 미륵불 온다

정토(淨土) 온다는 말 누가 못할까.

당신 사하촌(寺下村)에서 조금 떨어져

준령 보고 있지?

 

백담사 만해기념관

만해가 심술궂게 노려보는데

앉아서 풀어놓은 과일에

왕벌 달려든다.

 

잎사귀에 물이 들면

꽃 모두 졌지만

생명 끝까지 살려 한다오.

계곡에 쌓인 돌탑들이 서 있듯

절집에서 삶 이어졌다.

 

사람 때문인지 그악스런 까치 때문인지

도시 떠난 까마귀 수렴동에서 울었는데

높은 나무 위에 윤 나는 검은 자태로

울었다.

 

어디까지 왔는지

꼭대기 가려져 시야 밖인데

길이 갈라져 있기 때문,

청봉

만년설 꿈꾸며 유린된 몸 가눈다.

목적지 하나 길은 여러 갈래,

이정표 따르지만

종착지 달아난다.

 

영시암에 심은 무와 배추

추위에 벌레 맥을 못 춰

튼실하고 눈 덮인 골짜기 짐작한다.

불자들이 삶아내는 국수

발우에 받아 열무김치 얹고

아내 긴 줄 벗어나서 그릇 비우고

보시함에 지폐 넣는다.

 

고개 넘어 수렴동 대피소 가는 길

사람들 봉정암에서 잘 마음 먹고,

내일이면 청봉에서 안개 만나거나

동해에 뜨는 해와 우주가 숨쉬는 절벽

내려다보리라.

'습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시대 (수정본)  (1) 2025.02.28
memento mori (수정본)  (0) 2025.02.28
살려면 (수정본)  (0) 2025.02.28
눈물 전파 쉽다 (수정본)  (0) 2025.02.28
여기까지 왔네 (수정본)  (0) 2025.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