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정의(justice)에 의하여 향상되고 불의에 의하여 타락한다
소크라테스의 영혼 교설에 관하여, ‘당신의 영혼을 돌보라’는 격언이 소크라테스의 것이라 것이라고 버넷이 옳게 주장했다고 나는 믿는다; 이유인즉 이 격언이 소크라테스의 도덕적 이해관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영혼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론을 믿었다는 것은 고도로 비개연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파이돈(Phaedo), 국가(Republic), 기타 등등의 이론은 내가 보기에 틀림없이 피타고라스의 것이다. (신체는 영혼의 무덤이라는 오르페우스-피타고라스적 이론에 대하여, 애덤[Adam], 국가[Republic]에 대한 저서 IX권의 부록 IV와 비교하라; 또한 이 장의 주석39 참조.) 그리고 자신은 ‘그런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라는 (다시 말해서, 자연에 대한 사색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이 장의 주석56 (5) 참조) 변명(Apology), 19c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분명한 진술을 고려하며, 소크라테스가 피타고라스적이었다는 버넷의 견해에 강력하게 나는 반대한다; 그가 영혼의 ‘본성’에 대하여 확정된 형이상학적 교설을 믿었다는 견해에 강력하게 나는 반대한다.
‘당신의 영혼을 돌보라’는 소크라테스의 격언이 그의 도덕적 (그리고 지성적) 개인주의의 표현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의 교설 중에서, 덕성을 갖춘 사람들의 도덕적 자족성이라는 그의 개인주의적 이론만큼 잘 증명된 듯이 보이는 것은 없다. (5장의 주석25에서 그리고 6장의 주석36에서 언급된 증거 참조.) 그러나 이것은, ‘당신의 영혼을 돌보라’는 문장에 표현된 관념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된다. 자족성에 대한 그의 강조에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었다: 그들은 당신의 육체를 파멸시킬 수 있지만, 그들은 당신의 도덕적 정직성을 파멸시킬 수 없다. 후자(後者)가 당신의 주요 관심사라면 그들은 당신에게 실제로 심각한 해꼬지를 할 수 없다.
플라톤이 피타고라스의 형이상학적 영혼 이론에 친숙해졌을 때 소크라테스의 도덕적 자세에 형이상학적 토대 특히 생존 이론이 필요하다고 플라톤이 느꼈던 듯하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은 당신의 도덕적 솔직성을 파멸시킬 수 없다’를 영혼의 파멸 불가능성이라는 관념으로 대체했다. (7장의 주석9 이하와 또한 비교하라.)
나의 해석에 반대하여 형이상학자들과 실증주의자들 모두에 의하여, 영혼에 대하여 말하는 어떤 방식도 틀림없이 형이상학적이기 때문에 내가 소크라테스에게 귀속시키는 바와 같은 영혼에 대한 도덕적이고 비-형이상학적 관념은 있을 리 없다고 주장될 것이다. 플라톤적 형이상학자들을 확신시키려는 희망이 나에게 많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소크라테스에게 귀속시키는 것과 매우 유사한 의미에서 실증주의자들이 또한 ‘영혼’을 신뢰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신체보다 저 ‘영혼’을 더 높이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실증주의자들에게 (혹은 유물론자들에게, 기타 등등) 밝히려고 나는 시도하겠다.
무엇보다도 심지어 실증주의자들도, 다소 부정확할지라도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질병을 우리가 완벽하게 경험적으로 그리고 ‘유의미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사실상 이 구분은, 병원 조직과 기타 등등에 대하여 상당히 실제로 중요하다. (어느 날 그것이 더 정확한 것에 의하여 대체될 것임은 아주 개연적이지만 저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 대부분, 심지어 실증주의자들도 경증 형태의 정신병보다 경증 신체 질환을 선호할 터이다. 게다가 심지어 실증주의자들도, 동등하게 치료 불가능한 긴 기간의 정신병보다 그리고 아마도 심지어 치료 가능한 정신병의 기간보다 길고 결국 치료 불가능한 신체 질환을 (그 질환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다, 기타 등등이면) 선호할 터이다. 이런 방식으로 형이상학적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의 ‘신체’보다 그들의 ‘영혼’을 그들이 돌본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파이돈[Phaedo], 82d: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돌보고 자신들의 육체의 하인이 아니다’; 변명[Apology], 29d-30b 또한 참조.) 그리고 이 말하기 방식은, ‘영혼’에 관하여 그들이 혹시 지닌 이론과 완전히 독립적일 터이다; 실제로 그것이 신체의 일부일 뿐이고 모든 정신병은 신체적 질환의 일부일 뿐이라고 그들이 틀림없이 주장할지라도 우리의 결론은 여전히 성립할 터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에 해당할 터이다: 그들의 신체의 다른 부분들보다 그들의 두뇌를 그들이 더 귀하게 여긴다는 것.)
이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관념에 훨씬 더 가까운 ‘영혼’이라는 관념에 대한 고찰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순전히 지성적 목적들을 위하여 상당한 육체적 고통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과학적 지식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자신의 지성적 발전을 진전시키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지혜’를 얻기 위하여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의 지성주의에 대하여, 예를 들어 크리톤[Crito], 44d/e 및 47b와 비교하라.) 도덕적 목적, 예를 들어 평등주의적 정의(justice), 평화, 기타 등등의 촉진에 대해서도 유사한 것들이 언급될 수 있을 터이다. (크리톤[Crito], 47e/48a와 비교하는데 그곳에서 ‘영혼’이란 ‘정의[justice]에 의하여 향상되고 불의에 의하여 타락되는 우리의 저 부분을 자신이 의미한다고 소크라테스가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소크라테스와 함께, 우리가 좋은 건강상태에 있기를 좋아할지라도 건강 같은 것보다 이것들이 우리에게 더 중요하다고 말할 터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그런 태도를 채택하는 가능성이 동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임을 소크라테스와 함께 심지어 동의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영혼의 본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론을 참고하지 않고도 언급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자신은 저 종류의 사색과 관련이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진술에 대면하여 우리가 그런 이론을 소크라테스에게 귀속시켜야 하는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권, 1971년, 301-2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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