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허풍에 반대하여

이윤진이카루스 2025. 9. 1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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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에 반대하여

 

내가 위에서 (요점 1) 큰 죄악으로 지칭한 것은 ㅡ 4분의 3만 교육받은 자의 거만함 ㅡ 우리가 지니지 못한 지혜를 주장하면서 빈말을 내뱉고 있을 따름이다. 그 방식은 역설적 헛소리를 가미한 항진명제들(恒眞命題: tautologies)과 진부한 표현들이다. 또 다른 방식은 이해 불가능한 허풍을 약간 서술하고 때때로 진부한 표현들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런 심오한책에서 자기 자신이 이미 지니고 있던 사유들을 발견했다고 아첨을 받는 독자

에 의하여 향유될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유행한다는 것을 오늘날 누구도 알 수 있다.)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면 어떤 기준들을 자신이 적용해야 하는지 그에게 생각이 없고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발견하는 기준들을 채택한다. 철학과들 (그리고 특히 사회학들) 대부분에서 지성적 기준들이 허풍과 추정된 지식을 (이 모든 교수는 아주 많이 아는 듯이 보인다) 허용하기 때문에 심지어 머리가 좋은 학생들도 완전히 바뀐다. 그리고 지배적인철학의 허위 주장에 의하여 화가 난 저 학생들은 철학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되는데 그렇게 되는 게 마땅하다. 그 학생들은 그다음 이 주장들이 지배계급의 주장들이라고 그리고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받은 철학이 나을 터라고 잘못 믿는다. 그러나 현대의 좌파 헛소리는 일반적으로 현대의 우파 헛소리보다 훨씬 더 나쁘다.

()-변증가들은 무엇을 배웠나? 문제들을 해결하여 진리에 더 근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들은 배우지 않았다. 자신들의 동료 인간들을 단어들의 바다에 익사시키는 방법을 그들이 배웠을 따름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사람들과 승강이하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는 기준들이 없다.

학생 소요사태 전체 기간에 런던정경대학의 나의 학과에 (철학, 논리학, 과학적 방법 관련) 당시까지 혁명 지향적 학생이 단 한 명 있었음을 알면 당신에게 아마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 학생에게 자기 견해를 제시할 많을 기회가 있어서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학과 동료교수들과 나는 권위주의적이거나 독단적 방식으로 가르친 적이 없다. 우리의 학생들은, 중요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못하면, 항상 (내가 1946년에 그 학과를 맡은 이래) 강의에 개입하라고 요구받았다; 그리고 학생들은 저열하게 취급된 적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 위대한 사상가들로서 내세운 적이 없다. 나는 누구의 믿음도 바꾸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누차 강조했다: 나는 단지 학생들 앞에 문제들과 시험적 해결책을 놓아두었다. 물론 나의 자세를 ㅡ 내가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무엇이 틀렸다고 생각하는지 ㅡ 매우 분명히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철학적 교설이나 새로운 사실을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를 제외하고, 귀하가 귀하의 서한에서 언급하는 모든 사람과 달리)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문제들과 시험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 시험적 해

결책들은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이것으로 인하여 나 자신과 귀하가 언급하는 다른 철학자들 사이의 커다란 차이점이 조금 밝혀진다. 문제들을 해결하는 철학자는 없다. 나는 언급하는 것을 주저하지만 실제로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들 전체를 ㅡ 예를 들어 귀납의 문제 ㅡ 내가 풀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시험적 해결책들에 의하여 ㅡ 늘 그러하듯이 ㅡ 새롭고 풍요로운 문제들이 발생했다.)

내가 자격도 없이 그렇게 많은 성공을 거두었을지라도, 내가 문제를 풀었다는 사실은 주로 무시된다. (한스 알베르트는 독일에서 예외적인 훌륭한 인물이다.) 철학자 대부분은, 심지어 문제와 해결책을 면전에서 바라볼 때도, 문제와 해결책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들은 그들의 관심 분야 밖에 놓여있을 따름이다.

나는 철학자들을 비판하는 것을 꺼린다. 철학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칼을 빼 들고 그들이 이미 가라앉고 있는 수렁 속으로 그들을 뒤따라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침몰하는 것일 따름일 터이다 (나의 친구 칼 멩거[Karl Menger]가 예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한스 알베르트도 그런 모험을 했지만,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들을 비판하는 대신,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들을 토론함에 의하여 나는 새롭고 나은 기준들을 세우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하게 올바른 행동 과정이라고 내가 믿는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 86-7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