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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뉴튼의 우주론

이윤진이카루스 2025. 9. 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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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뉴튼의 우주론

 

II. 칸트의 뉴튼적 우주론

이 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은 뉴튼 이론에 의하여 수행되었는데 그 이론은 볼테르에 의하여 유럽대륙에 알려지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와 뉴튼의 우주론은, 칸트의 지성적 삶에 강력하고 흥미진진한 영감을 주었다. 그의 첫 번째 주요 저서 천체 이론(The Theory of the Heavens)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부제를 지녔다: 뉴튼의 원리에 따라서 다루어진 우주의 구조와 역학적 기원에 관한 논문(An Essay on the Constitution and the Mechanical Origin of the Universe, Treated According to Newtonian Principles). 그 저서는 우주론과 우주발생론에 대한 최고의 공헌 중 한 가지 공헌이었다. 그 저서는, 태양계에 관하여 지금 칸트-라플라스 가설로 지칭되는 것에 관한 최초의 언명뿐 아니라 진스(Jeans)에 앞서서 이 관념을 은하계(토마스 라이트[Thomas Wright]5년 앞서서 행성 체계로서 해석한) 적용한 것을 또한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칸트가 성운들(nebulae)을 다른 은하계들과 ㅡ 우리 은하계와 유사한 먼 생성체계들 ㅡ 동일시함에 의하여 초월되었다. 칸트가 자기 지식론에 그리고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 다다르게 된 것은, 그가 그의 서한 한 가지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우주론적 문제였다. 그는, 공간과 시간 모두와 관련하여, 우주의 유한성이나 무한성이라는 난해한 문제들에 (모든 우주론자들이 틀림없이 직면하는) 관심을 가졌다. 공간에 관한 한, 아인슈타인에 의하여 확정적이기도 하고 한계들이 없는 세계의 형태로 매혹적 해답이 그 후 제시되었다. 이 해답은 칸트의 매듭을 바로 해결해버렸지만, 그 해답은 칸트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수단들보다 더 강력한 수단들을 사용한다. 시간에 관한 한, 칸트가 지녔던 난제들에 대하여 동등하게 유망한 해답이 지금까지 제시되지 않았다.

 

III. 순수이성비판과 우주론적 문제

시간적으로 우주에 시작이 있었는지 아닌지를 고찰할 때 자신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의 핵심적 문제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고 칸트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 두 가지 가능성 모두에 대하여 표면적으로 유효한 증명들을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음을 그는 발견하고 당황했다. 두 가지 증명은 흥미롭다; 그 증명들을 이해하기에 집중이 필요하지만, 그 증명들은 길지 않고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첫 번째 증명에 관하여 우리는, 연도들의 (혹은 하루들이나 아니면 시간과 관련된 동등하고 정해진 다른 간격들) 무한수열이라는 개념을 분석함에 의하여 시작한다. 연도의 그런 무한수열은 틀림없이, 계속해서 진행하여 끝나는 적이 없는 수열이다. 그 수열은 결코 완료될 리가 없다: 완료되거나 경과한 시간의 무한성이라 하면 모순된 단어들로 구성되는 서술이다. 이제 그의 첫 번째 증명에서, 세계에 틀림없이 시간적으로 시작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이 현재의 순간에 무한한 숫자의 연도가 틀림없이 경과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칸트는 논증한다. 이것으로 첫 번째 증명이 끝난다.

두 번째 증명에 관하여 우리는, 완전히 비어있는 시간이라는 ㅡ 세상이 있기 이전의 시간 ㅡ 관념을 분석함에 의하여 시작한다. 그런 비어있는 시간은 그 시간 안에 어떤 것도 없고, 틀림없이 그 시간의 간격들이 하나도 사물들 및 사건들에 대한 자체의 시간적 관계에 의하여 다른 시간의 간격과 차별화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사물들과 사건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제 비어있는 시간의 마지막 간격을 ㅡ 세상이 시작되기 직전의 간격 ㅡ 고려하라. 분명히 이 간격은 앞선 모든 간격과 차별화되는데 왜냐하면 그 간격은 어떤 사건에 ㅡ 세계의 시작 ㅡ 대한 자체의 밀접한 시간적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일한 간격은 비어있는 것으로 상정되는데 그것은 모순된 단어들로 구성되는 서술이다. 이제 이 두 번째 증명에서, 세상에 시간적으로 시작이 있을 리가 없는데 왜냐하면 시작이 있다면 비어있고 그러나 세상에서 어떤 사건에 대한 자체의 즉각적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시간-간격이 ㅡ 세상이 시작되기 직전의 순간 ㅡ 있을 터이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칸트는 논증할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증명 사이의 충돌을 경험한다. 그런 충돌을 칸트는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y)’이라고 불렀다. 공간적으로 우주의 한계들에 관한 이율배반들과 같은, 칸트 자신이 휘말렸던 다른 이율배반들로 나는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겠다.

 

IV. 공간과 시간

이 당혹스러운 이율배반들로부터 칸트는 어떤 교훈을 도출했는가? 공간 및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들은 우주 전체에 적용될 수 없다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우리는 공간 및 시간에 대한 관념들을 평범한 물리적 물체들과 물리적 사건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간 및 시간 자체는 물체들도 아니고 사건들도 아니다: 그것들은 심지어 관찰될 수도 없다: 그것들은 더 포착하기 어렵다. 그것들은 물체와 사건에 대한 일종의 틀이다: 관찰을 위한 우편물함이나 파일 시스템과 같은 것. 공간과 시간은 물체와 사건의 실제적 경험 세상의 일부가 아니지만, 더 정확하게 이 세상을 파악하기 위한 우리의 도구이자 우리의 정신적 장비이다. 그것들의 고유한 쓸모는 관찰의 도구로서이다: 사건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공간과 시간의 순서로 통상 즉각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그 사건의 위치를 발견한다. 그리하여 공간과 시간은, 경험에 근거하지는 않지만, 경험에서 직관적으로 이용되고 경험에 합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참고의 틀로서 기술될 것이다. 이것이, 공간과 시간을 가능한 모든 경험을 초월하는 분야에 이용하여 ㅡ 우주 전체에 관한 우리의 두 가지 증명에서 우리가 그렇게 했던 바와 같이 ㅡ 우리가 공간과 시간이라는 관념을 잘못 적용하면,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이유이다.

내가 방금 개괄한 견해에, 칸트는 아름답지 못하고 이중으로 기만적인 초월적 관념론(Transcendental Idealism)’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곧 이 선택을 후회했는데, 이유인즉 그로 인하여 물리적 물체의 실재성을 부인한다는 의미에서 그가 관념론자라고 사람들이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리적 물체는 관념일 뿐이라고 그가 선언했다고 사람들이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칸트는 서둘러, 공간과 시간이 경험적이고 실재적이라는 ㅡ 물리적 물체와 사건이 경험적이고 실재적이라는 의미에서 경험적이고 실재적 ㅡ 것을 자신이 부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항변은 소용이 없었다. 그의 난해한 문체가 그의 운명을 결정해버렸다: 그는 독일 관념론의 아버지로서 존경받게 되었다. 이것을 바로잡을 때라고 나는 제안한다. 칸트는 항상, 공간과 시간에서의 물리적 물체가 실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독일 관념론자들의 거칠고 애매한 형이상학적 사변에 관하여, 칸트의 순수이성비판(Critique)이라는 바로 그 제목이 그런 사변적 추론 모두에 대한 비판적 공격을 선언하도록 선택되었다. 이유인즉 순수이성비판(Critique)이 비판하는 것은 순수이성이기 때문이다; 그 저서는, 감각 경험에 의하여 오염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순수한세상에 대한 모든 추론을 비판하고 공격한다. 세상에 대한 순수한 추론으로 인하여 우리가 틀림없이 이율배반들에 항상 휩싸인다는 것을 밝힘에 의하여 칸트는 순수이성을 공격했다. (Hume)에 의하여 자극받아, 감각 경험의 한계들이 세상에 관한 모든 건전한 추론의 한계들임을 확립하기 위하여 칸트는 자신의 저서 순수이성비판(Critique)을 저술했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 128-131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