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소크라테스의 자율성 원리
VI. 자율성의 원리
우주론자이자 지식에 관한 그리고 과학에 관한 철학자인 칸트로부터 나는 이제 도덕주의자인 칸트에게로 선회한다. 칸트의 윤리학의 근본적인 개념들이 모든 면에서 내가 기술한 한 가지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에 유사한 또 다른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전에 주목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유인즉 칸트가 인간을 자연에 대한 입법자로 만든 것과 꼭 마찬가지로 칸트는 인간을 도덕성 부여자로서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그는 인간의 도덕적 우주와 인간의 물리적 우주 모두에서 인간의 핵심적 지위를 인간에게 돌려준다. 칸트는, 과학을 인간화한 것처럼, 윤리를 인간화했다.
윤리학 분야에서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은 그의 자율성 교설에 ㅡ 아무리 고양되었을지라도 권위의 명령을 우리가 윤리의 궁극적 근거로서 수용할 수 없다는 교설 ㅡ 담겨있다. 이유인즉 우리가 권위에 의한 명령에 직면할 때마다, 이 명령이 도덕적인지 혹은 비도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권위는 자체의 명령을 강요할 힘이 있을 것이고 우리에게 저항할 힘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방해받지 않는다면 책임은 우리의 것으로 남는다. 명령에 복종할 것인지, 권위를 수용할 것인지는 우리의 결정이다.
칸트는 이 혁명을 종교의 영역까지 대담하게 가져간다. 여기에 두드러진 구절이 있다:
나의 말이 여러분을 많이 놀라게 할지라도,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여러분은 나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하느님을 창조한다. 도덕적 관점 에서... 여러분은 심지어 여러분을 창조한 분인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여러분 의 하느님을 창조해야한다. 이유인즉 어떤 방식으로든...하느님이 자신을 여러분에 게 틀림없이 밝힌다면... 하느님은 틀림없이 여러분에게 알려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믿어서 숭배하는 게 여러분에게 허용되는지를 [여러분의 양심에 의하여] 판단해야 하는 것은 여러분이다....
칸트의 윤리 이론은, 인간의 양심이 인간의 도덕적 권위라는 서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명령하는지를 그는 또한 우리에게 말하려고 시도한다. 이 도덕적 법칙에 관하여 그는 몇 가지 언명을 제시한다. 그 언명 중 한 가지는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을 본질적으로 목표로서 간주하고 모든 사람을 단지 여러분의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결코 이용하지 말라.’ 칸트 윤리학의 정신은 다음 말로 요약될 것이다: 과감하게 자유를 추구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라.
이 윤리학을 토대로 칸트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국가론과 자신의 국제법 이론을 세웠다. 그는 국제연맹 즉, 국가들의 연맹을 요구했는데 그 연맹은 궁극적으로 지구상에서 영구적 평화를 선언하고 유지할 목적이었다.
나는, 인간과 인간의 세상에 대한 칸트의 철학과 그 철학의 두 가지 주요 영감을 ㅡ 뉴튼의 우주론 및 자유의 윤리학 ㅡ 폭넓게 개괄하려고 시도했다; 칸트가 우리의 머리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우리 내부에 있는 도덕적 법칙을 말할 때 그가 언급한 두 가지 영감.
칸트의 역사적 역할에 대하여 훨씬 더 먼 관점을 얻기 위하여 뒤로 멀리 발걸음을 옮기면, 우리는 그를 소크라테스와 비교할 것이다. 두 사람 모두는 국가 종교를 왜곡하고 젊은이들의 정신을 타락시켰다고 비난받았다. 두 사람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사상의 자유를 옹호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자유는 억압의 부재 이상을 의미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자유는 생활 방식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부터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부터 자유인이라는 새로운 관념이 솟았다: 그의 정신이 억압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관념; 자족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관념; 자신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법률의 지배를 자유롭게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억압이 필요 없는 사람.
우리 서구 유산의 일부를 형성하는 자족(自足: self-sufficiency)이라는 이 소크라테스적 관념에게 칸트는 지식과 도덕 분야 모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는 그 관념에 자유인들의 ㅡ 모든 사람의 ㅡ 공동체라는 관념을 추가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로운 결정을 위한 책임이라는 짐을 지고 그가 태어나기 때문.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32-134쪽 ㅡ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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