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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명은 왜 최고의 문명인가

이윤진이카루스 2025. 9. 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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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명은 왜 최고의 문명인가?

 

그리고 그리스 문명은 ㅡ 유례없는 현상 ㅡ 지중해의 서양 문화와 동방 문화 사이의 문화 충돌에서 시작되었다. 이 문화 충돌의 효과들은 깊이 느껴졌다. 호메로스(Homer)는 문화 충돌을 그리스 문학의 주제로 그래서 서구세계 문학의 주제로 만들었다.

나의 강좌 제목인 문화 충돌에 관하여는 역사성 추측인 한 가지 가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 가설은, 이런 종류의 충돌이 항상 유혈 전투들과 파괴적 전쟁들로 이어질 필요가 없고 또한 유익하고 생명-촉진적인 문화적 발전들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 충돌은 심지어 그리스인들의 문화와 같은 독특한 문화의 진화를 야기할 것인데 그리스인들의 문화는, 로마인들의 문화와 충돌했을 때 로마인들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특히 아랍 문화와 훨씬 더 많은 충돌을 거친 후에 그리스인들의 문화는 문예부흥(Renaissance)에서 의도적으로 부흥되었다; 그리고 서적 인쇄의 발명 덕분에, 그리스인들의 문화는 서양의 문화가 되었다: 유럽과 미국의 저 문화인데 그 문화는 추가적 충돌들의 과정에서 세계의 모든 다른 문화를 결국 변화시켰다.

그러나 이 서구 문명은 훌륭하고 바람직한 것인가? 이 질문은, 적어도 루소 시대이래 특히 젊은이들에 의하여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는데 그 젊은이들은 전적으로 올바르게 나은 것을 항상 추구한다. 그 질문은 오늘날의 서구 문명에 전형적 질문인데 그 서구 문명은 세계의 다른 문명보다 더 자기-비판적이고 개혁을 향해 우호적 의향을 지녔다. 문화 충돌이라는 나의 주제로 계속하기 이전에 나는 이 질문에 답하고 싶다.

우리의 서구 문명은, 그 문명에 관하여 온전히 정당하게 발견될 수 있는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저 문명 중에서 가장 정의롭고 가장 인도주의적이어서 최고의 문명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의 서구 문명은, 자기-비판에 관해 그래서 향상에 관해 가장 큰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최고의 문명이다.

전 세계에 걸쳐서 인간은 새롭고 흔히 매우 다른 문화적 세계들을 창조했다: 신화의, 운문의, 미술의, 음악의 세계들; 생산 방식의, 도구의, 기술의, 사업의 세계들; 도덕성의, 정의(justice)의 세계들과 어린이들과 장애인들, 약자들과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고 돕는 세계들. 그러나 법률 앞에서의 평등에 대한 요구와 평화에 대한 요구 및 폭력의 최소화에 대한 요구와 함께, 개인적 자유에 대한 도덕적 요구가 널리 인정되고 심지어 널리 실현되는 것은 유일하게 우리의 서구 문명에서만이다.

이것이, 내가 우리의 서구 문명을 지금까지 최고의 문명으로서 간주하는 이유이다. 물론 우리의 서구 문명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고려하면, 우리의 서구 문명은 거의 모든 사람이 그 문명을 가능한 한 많이 개선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하고 있는 유일한 문명이다.

심지어 우리의 문명도 매우 불완전하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완벽한 사화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가 구체화해야 하는 실제로 모든 가치에 대하여, 상충하는 다른 가치들이 있다. 심지어 아마도 모든 사회적 및 개인적 가치 중에서 최고의 가치인 자유도 제한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갑의 자유가 을의 자유와 너무 쉽게 상충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유를 고집하던 어느 피고인에게 미국 판사가 예전에 말한 바와 같이: ‘당신이 주먹을 쓰는 자유는 당신 이웃의 코의 위치에 의하여 제한된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다른 모든 시민의 가능한 가장 큰 자유와 함께 공존하도록 모든 시민에게 가능한 가장 큰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입법의 과제라는 칸트의 언명에 다다른다. 다시 말해서, 자유는 불행하게도 항상 제한되어야 한다: 법률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질서에 의하여 제한되어야 한다. 질서에 의한 이 제한은 자유에 대한 필수적 ㅡ 거의 논리적으로 필수적 ㅡ 견제이다. 그리고 우리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모든 혹은 적어도 거의 모든 가치에 대하여 그런 견제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바로 이 순간에도, 복지국가라는 훌륭한 관념에도 자체의 한계들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사람에게 자신과 자신에 의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책임을 덜어주는 것은 위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서 젊은이들에게 삶을 위한 투쟁을 우리가 훨씬 더 쉽게 만들어주어야 하는지는 혹시 심지어 의심스럽다. 실제적 도전을 그리고 개인적 책임을 감소시킴에 의하여 많은 사람에게 삶은 자체의 의미를 빼앗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사례는 평화인데 우리는 모두 평화를 이전보다 오늘날 더 강력하게 갈망한다. 폭력적 싸움을 피하기 위하여, 혹은 적어 그런 싸움을 제한하기 위하여 모든 능력을 다하기를 우리가 원하고 정말로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다른 한편 갈등이 없는 사회는 비인간적일 터이다. 그런 사회는 인간의 사회가 아니라 개미무리의 사회일 터이다. 또한 우리는, 위대한 평화주의자들이 위대한 투사들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마하트마 간디도 투사였다: -폭력을 위한 투사.

인간의 사회에 평화가 필요하지만 진지한 관념적 싸움도 역시 필요하다: 가치들, 관념들인데 우리가 지향하여 싸울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의 서구 문명은, 칼보다 말이 이 싸움들에서 훨씬 더 크고 더 지속적 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배웠다 ㅡ 그리스인들로부터; 그러나 모든 것 중에서 매우 효과적인 것은, 간단하게 표현되면, 합리적 논증들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사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몇몇 사회적 질서는 다른 질서들보다 낫다. 우리의 서구 사회는, 말에 (words) 의하여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ㅡ 오직 드물지라도 ㅡ 심지어 합리적 논증들이라는 수단에 의하여 바뀔 수 있는 사회체계로서의 민주주의를 선호했다. 합리적, 다시 말해서, 객관적 비판에 의하여: 과학에서, 특히 그리스인들 이래 자연과학에 전형적으로 사용되는 것들과 꼭 같은 개인적이 아닌 비판적 고찰들에 의하여. 그리하여 나는 서구 문명에 대한 나의 지지를 선언한다; 과학에 대한;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지지를 선언한다. 그것들로 인하여, 피할 수 있는 비극을 예방하는 기회와 복지국가와 같은 개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추가로 필요한 개선을 실행하기 위하여 그 개혁을 시험할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나는 또한 오늘날 그렇게 자주 폄훼되는 과학에 대하여 나의 지지를 선언하는데 과학은 자체의 진리 탐구에서 자기-비판을 이용하고 새로운 발견마다 우리에게 아는 게 얼마나 없는지를 새롭게 발견한다: 우리의 무지가 실제로 얼마나 무한하게 큰지 새롭게 발견한다. 위대한 자연과학자 모두는 자신들의 무한한 무지를 그리고 오류가능성을 인식했다. 그들은 지성적으로 겸손했다. 괴테가 악당만 겸손하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지성적 악당만 건방지다고 답변하고 싶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 117-120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