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 흄(Hume), 스피노자, 칸트는 사과해야 한다
모든 철학자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심오하고 가장 재능이 있었던 플라톤은, 내가 아는 바 혐오스럽고 정말로 지독한 견해를 인간의 생활과 관련하여 지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가장 큰 전문적 철학파의 창시자였을 뿐 아니라 영감을 받은 위대한 시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름다운 다른 작품 중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명(The Apology of Socrates)을 저술했다.
그를 괴롭히고 그 후 그렇게 많은 전문적 철학자를 괴롭힌 것은, 소크라테스와 극명하게 대비되어 그가 지배층(elite)을 신뢰했다는 것이다: 철학의 왕국을 신뢰했다는 것이었다. 정치가는 현명해야 한다고, 다시 말해서, 자신이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를 인식해야 한다고 소크라테스가 요구한 반면 플라톤은 현명한 사람들인 박식한 철학자들이 절대 통치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플라톤 이후 과대망상증이 철학자들의 가장 광범위한 직업적 질병이었다.) 게다가 법률(The Laws) 10권에서 종교재판에 영감을 준 제도를 플라톤이 창안했고 플라톤은 반체제 사람들의 영혼 치료를 위하여 집단수용소를 추천하는 지경까지 갔다.
데이비드 흄은 전문적 철학자가 아니었고 아마도 소크라테스 다음으로 모든 위대한 철학자 중에서 가장 솔직하고 잘 균형이 잡힌 사람이었으며 아주 겸손하고 합리적이며 합당하게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불행하고 그릇된 심리학적 이론에 의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이 지녔던 두드러진 이성의 능력을 불신하도록 그를 가르친 지식론에 의하여) ‘이성은 열정의 노예이고 노예가 되어야 할 따름이어서 열정에 봉사하고 순종하는 것 외에 다른 직책을 주장할 수 없다’라는 지독한 교설에 다다랐다. 열정 없이 위대한 것이 이룩된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기꺼이 인정하지만, 흄의 서술에 바로 반대되는 것을 나는 신뢰한다. 우리가 할 수 있을 저 제한된 합리성에 의하여 우리의 열정을 길들이는 것이 인류에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서 성인이었던 스피노자는 소크라테스 및 흄과 같이 전문적 철학자가 아니었는데 흄과 정확하게 거의 반대가 되는 것을 가르쳤지만, 어느 정도 내가 한 사람으로서 오류일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는 결정론자였고 (흄이 결정론자였던 것과 같이), 그에게 인간의 자유란 우리의 행위를 진정으로 강요하는 원인을 분명하고 뚜렷하며 합당하게 이해하는 것만을 본질로 한다: ‘한 가지 효과는 열정인데 우리가 열정에 대하여 분명하고 뚜렷한 관념을 형성하자마자 그 효과는 열정이기를 멈춘다.’ 그 효과가 열정이라면 우리는 그 열정의 통제를 받고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열정에 대하여 분명하고 뚜렷한 관념을 지니자마자 우리는 그 열정에 의하여 여전히 결정되지만, 열정을 우리가 지닌 이성의 일부로 우리가 변환시켰다. 그리고 이것만이 자유라고 스피노자는 가르친다.
나 자신이 일종의 합리주의자일지라도 나는 이 가르침을, 합리주의에 대한 옹호될 수 없고 위험한 형태로서 간주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결정론을 신뢰하지 않고, 스피노자나 다른 어떤 사람이 결정론을 뒷받침하거나 인간의 자유와 (그리하여 상식과) 결정론의 화해를 뒷받침하여 강력한 논증들을 이룩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많은 것이 (그러나 전체는 아니다) 결정되어서 심지어 예언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참일지라도, 내가 보기에 스피노자의 결정론은 철학자의 전형적 오류이다. 두 번째, ‘열정’에 의하여 스피노자가 의미하는 것이 지나치면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참일지라도, 우리 행위의 동기에 대하여 우리가 분명하고 뚜렷하며 합당하고 합리적인 관념을 형성할 수 없을 때마다 내가 인용한 그의 공식으로 인하여 우리의 행위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나게 될 터이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저렇게 할 수 없다고 나는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에서 그리고 우리의 동료들을 다룸에서 우리가 합리적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목표라고 내가 생각할지라도 (그리고 스피노자 또한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 목표가 우리가 어느 때고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목표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칸트는 전문적 철학자 가운데서 칭송받을 수 있고 고도로 독창적인 희소한 사상가 중 한 명인데, 이성을 거부한 흄의 문제와 스피노자의 결정론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노력 모두에서 실패했다.
이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몇몇이고 내가 많이 칭송하는 철학자들이다. 여러분은 내가 왜 철학에 관하여 사과해야 한다고 느끼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75-6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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