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사회음모론은 왜 발생하는가

이윤진이카루스 2025. 9. 29. 15:01

사회음모론은 왜 발생하는가.hwpx
0.08MB

 

사회음모론은 왜 발생하는가

 

VIII

나는 광범위한 철학적 편견의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하고 싶다.

이 세상에서 실제로 나쁜 (혹은 우리가 크게 혐오하는) 중요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그 일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다는, 삶에 매우 영향력이 큰 철학적 견해가 있다; 그런 일을 의도적으로 수행한 누군가가 틀림없이 있다는 견해. 이 견해는 매우 오래되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신들(gods)의 질투와 분노는, 트로이 앞의 들판에서 그리고 트로이 자체에 발생한 지독한 것 대부분에 책임이 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잘못된 모험에 책임이 있었던 것은 포세이돈이었다. 나중에 기독교 사상에서 악행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악마이다; 속류 마르크스주의(vulgar Marxism)에서 사회주의 도래와 지구상에서 천국 건설을 막는 것은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의 음모이다.

전쟁, 빈곤 및 실업을 어떤 사악한 의도의 결과인 어떤 흉악한 고의의 결과로서 보는 이론은 상식의 일부이지만, 그 이론은 무비판적이다. 나는 이 무비판적 상식론을 사회음모론으로 지칭했다. (우리는 아마도 그 이론을 심지어 세계음모론으로 지칭할지도 모르겠다: 제우스의 번개를 생각하라.) 그 이론은 광범위하게 믿어지고, 속죄양을 찾는 형태로 그 이론이 많은 정치적 싸움을 부추겨 가장 무서운 고통을 만들어냈다.

사회음모론에 있는 한 가지 양상은, 사회음모론이 실제로 음모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검토하면 음모는 자체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밝혀진다. 레닌은 음모론을 믿었는데 음모를 꾸몄고 무솔리니와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레닌의 목표는 러시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목표도 이탈리아에서나 독일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음모자 모두는, 자기들이 사회음모론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음모를 꾸몄다.

사회음모론의 오류에 주목하면, 철학에 관하여 아마도 제한적이지만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은 기여가 이루어질 것이다. 게다가 이 기여로 인하여, 사회를 위한 인간 행위의 비의도적 결과의 중요성 발견과 같은 추가적 기여가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 행위의 비의도적 결과를 낳는 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연구를, 이론 사회과학의 목표로서 우리가 간주한다는 제안과 같은 추가적 기여가 발생한다.

전쟁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라. 심지어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위상의 비판적 철학자도, 심리학적 동기에 의하여 ㅡ 인간의 공격성에 의하여 ㅡ 우리가 전쟁을 설명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공격성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지만, 현대에서 발생하는 전쟁 대부분이 개인적 공격성에 의해서라기보다 공격에 대한 두려움에 의하여 고취되었다는 것을 러셀이 알지 못해서 나는 놀란다. 그 전쟁들은 어떤 음모의 힘에 대한 두려움에 의하여 고취된 이념적 전쟁이었거나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어떤 객관적 상황에 의하여 고취된 두려움의 결과로서 발생한 전쟁이었다. 한 가지 사례는, 군비 경쟁과 그것에서부터 전쟁을 초래하는 공격에 대한 상호간의 두려움이다; 아마도 전쟁과 공격을 적대시했던 심지어 러셀이 러시아가 곧 수소폭탄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여 (옳게) 잠시 추천한 것과 같은 예방적 전쟁을 초래하는 공격. (아무도 그 폭탄을 원하지 않았다; 그 폭탄의 제조를 초래한 것은 히틀러가 그 폭탄을 독점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 180-1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