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을 이렇게 보지 않는다
1. 나는 철학을, 언어적 수수께끼들에 대한 풀이로서 보지 않는다; 오해를 제거하는 것이 간혹 필수적인 사전 과제일지라도.
2. 일련의 예술적 작품들로서, 세상에 대한 두드러지고 독창적 그림들로서, 혹은 세상을 묘사하는 영리하고 특수한 방식들로서 나는 철학을 보지 않는다. 우리가 철학을 이런 방식을 간주하면 우리는 정말로 위대한 철학자들에게 불의를 저지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심미적 노력에 몰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리한 체계들을 구축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대한 과학자들처럼 그들은 무엇보다도 진리를 ㅡ 진짜 문제들에 대한 참된 해답을 ㅡ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철학사를 본질적으로 진리 탐구 역사의 일부로서 보아서, 아름다움이 과학에서뿐 아니라 철학에서도 중요할지라도 철학에 대하여 순전히 심미적인 견해를 나는 배격한다.
나는 지성적 대담성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우리는 지성적 겁쟁이와 진리 탐구자가 동시에 될 수 없다. 진리 추구자는 대담하게 현명해져야 한다 ㅡ 그는 사상의 분야에서 대담한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3. 나는 철학 체계들의 긴 역사를, 모든 가능한 관념이 시험되고 진리가 부산물로서 아마도 명백해질 지성적 건축물 중의 한 가지 건축물로서 보지 않는다. 진정으로 위대한 과거의 철학자 모두가 그의 철학 체계가 아마도 탁월했을지라도 진리로 향하는 길에서 한 단계가 아니라고 확신했다면 그 체계를 버렸을 터임을 (그가 그렇게 했어야 했던 것처럼) 우리가 잠깐 의심한다면 우리가 그 철학자들에게 불의를 가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부연하여, 피히테나 헤겔을 진정한 철학자들로서 내가 간주하지 않는 이유이다: 진리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4. 나는 철학을, 개념이나 단어 혹은 언어를 설명하거나 분석 혹은 ‘해석하려는’ 시도로서 보지 않는다.
개념과 단어는 명제와 추측 및 이론을 언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개념이나 단어는 본질적으로 참일 리가 없다; 그것들은 인간의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이고 논증적인 언어에 도움을 줄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흥미롭고 중요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참인 이론의 추구.
5. 나는 철학을, 영리해지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보지 않는다.
6. 나는 철학을, 일종의 치유책으로 (비트겐슈타인) 사람들이 철학적 곤경에서 빠져나오도록 돕는 활동으로 보지 않는다. 나의 생각으로,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나중 저술에서) 혼란스러운 사유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혼란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혼란스러운 사유에서 탈출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사람에게서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두드러진 자화상을 본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경우였다 ㅡ 프로이트가 프로이트의 경우였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7. 나는 철학을, 사물들을 더 정밀하게 혹은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의 연구로서 보지 않는다. 정밀성과 정확성은 본질적으로 지성적 가치들이 아니어
서, 당장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에 의하여 요구되는 것 이상으로 정밀하거나 정
확하려고 결코 노력해서는 안 된다.
8. 따라서 나는 철학을, 조만간 나타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대나 개념적 체제를 제공하려는 시도로서 보지 않는다. 존 로크는 그렇게 했다; 그는 윤리학에 관한 논문을 쓰고 싶어서, 개념적 예비단계들을 먼저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고찰했다.
그의 저서 인간오성론(Essay)은 이 예비단계들로 구성되고, 영국 철학은 그 후 (흄의 정치적 논문 몇 편과 같이 매우 드문 예외와 함께) 이 예비단계들이라는 수렁에 빠졌다.
9. 나는 또한 철학을, 시대정신의 표현으로서 보지 않는다. 시대정신은 헤겔의 관념이었는데 비판에 견디지 못한다. 과학에 유행이 있는 것과 같이, 철학에도 유행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진리 탐구자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유행을 불신할 것이고 심지어 유행과 싸울 것이다.
VII
남녀 모두는 철학자들이다. 그들이 철학적 문제를 지니고 있음을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튼 그들에게 철학적 편견들이 있다. 이 편견들 대부분은, 그들이 당연시하는 이론이다: 그들은, 그들의 지성적 환경으로부터 혹은 전통으로부터 그 편견들을 흡수했다.
이 이론들은 의식적으로 유지되지 않기 때문에, 그 이론들이 사람들의 실제적 행위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의 생애 전체에 대하여 커다란 중요성을 지닐지라도 비판적 검토 없이 그 이론들이 유지된다는 의미에서 그 이론들은 편견이다.
이 광범위하고 영향력이 있는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전문적 철학이 존재하기 위한 변명이다.
이것들과 같은 이론은 모든 과학의 그리고 모든 철학의 불안정한 출발점이다. 모든 철학은, 무비판적 상식에 대하여 의심스럽고 흔히 해로운 견해들로부터 틀림없이 출발한다. 그 철학의 목표는 계몽되고 비판적인 상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진리에 더 근접한 견해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덜 해로운 영향을 미치면서.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78-180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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