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관용의 필요성과 불관용이 필요할 때

이윤진이카루스 2025. 10. 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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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의 필요성과 불관용이 필요할 떼

 

II

나의 강연 제목인 관용과 지성적 책임은 계몽사조의 아버지인 볼테르의 논증을 언급한다; 관용을 옹호하는 논증. 볼테르는, ‘관용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나는 그의 말을 의역하고 있다):

 

관용은, 우리가 지닌 인간적 오류가능성을 깨달은 필연적 결과이다: 오류를

저지르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어서 우리는 항상 오류를 저지른다. 그래서

서로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자. 이것은 기본권의 첫 번째 원칙이다.

 

여기서 볼테르는 우리의 지성적 솔직함에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오류들을, 우리의 오류가능성, 우리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 완벽하게 확신에 찬 미치광이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을 볼테르는 완전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확신은 정말로 진솔한가? 자신들, 그들의 믿음들 그리고 저 믿음을 주장하는 그들의 이유를 그들이 진솔하게 검토했는가? 그리고 자기-비판적 태도는 모든 지성적 솔직성의 일부가 아닌가? 광신은 흔히, 우리가 억압해서 겨우 반쯤 의식하는, 우리 자신이 인정하지 않은 반감을 삼켜버리려는 시도가 아닌가?

우리의 지성적 겸손을 볼테르가 호소함과, 무엇보다도 우리의 지성적 솔직성을 호소함으로써 그의 시대의 지성인들에게 커다란 인상이 각인되었다. 나는 그의 호소를 여기서 다시 서술하고 싶다.

관용을 지지하여 볼테르에 의하여 제시된 이유는, 우리가 서로의 어리석음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용이라는 어리석음인 흔한 어리석음은 관용하기가 어렵다고 볼테르는 전적으로 올바르게 알아낸다. 정말로 관용에 자체의 한계가 발생하는 것은 여기이다. 우리가 관용 받는 권한을 불관용에게 부여한다면, 우리는 관용과 입헌 국가를 파괴한다. 저것이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Republic)의 운명이었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 190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