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상대주의는 허용될 수 없고 비판적 다원론이 필요하다

이윤진이카루스 2025. 10. 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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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주의는 허용될 수 없고 비판적 다원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관용과 별개로, 우리가 관용해서는 안 되는 여전히 다른 어리석음이 있다; 무엇보다도 지성인이 최신 유행을 따르도록 만드는 저 어리석음; 많은 저술가가,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통렬하게 비판한 저 비밀스러운 문체인 (예를 들어, 마녀의 곱셈표) 모호하고 웅장한 문체를 채택하도록 만든 어리석음. 허세적이고 모호한 단어들의 문체이자 허풍스럽고 이해 불가능한 문체인 이런 글쓰기의 방식은 더 이상 칭찬받아서는 안 되고 심지어 지성인들에 의하여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지성적으로 무책임하다. 그것은 건전한 상식을 파괴한다; 그것은 이성을 파괴한다; 그로 인하여 상대주의(relativism)로 묘사된 철학이 가능해진다; 모든 논지는 다소 동등하게 옹호될 수 있다는 논지에 해당하는 철학. 무엇이든 합당하게 작용한다! 그리하여 상대주의라는 논지는 난장판을, 무법천지를 초래한다; 그리고 폭력의 지배를 초래한다.

그리하여 나의 주제인 관용과 지성적 책임으로 인하여 나는 상대주의라는 문제에 도달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상대주의를, 거의 항상 상대주의와 혼동되지만 사실상 상대주의와 전혀 다른 입장과 비교하고 싶다. 나는 이 입장을, 다원론(pluralism)으로서 흔히 기술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주의라는 오해들을 초래했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서 그것을, 비판적 다원론으로서 규정하겠다. 상대주의가 관용의 느슨한 형태로 출현하여 폭력의 지배를 초래하는 반면. 비판적 다원론은 폭력을 길들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비판적 다원론으로부터 상대주의를 구분하기 위하여, 진리라는 관념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띤다.

상대주의는, 모든 것이나 실제로 모든 것이 주장될 수 있어서 아무것도 주장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모든 것이 진리이거나 아무것도 진리가 아니다.

리하여 진리는 무의미한 개념이다.

비판적 다원론은, 진리 탐구를 이룩하기 위해서 모든 이론에게 ㅡ 많을수록 낫다 ㅡ 다른 모든 이론과의 경쟁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경쟁은 이론에 대한 합리적 토론을 본질로 하고 그 이론을 비판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토론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ㅡ 그리고 저것은, 토론이 경합하는 이론들의 진리와 관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판적 토론의 과정에서 진리에 더 근접하는 듯이 보이는 이론이 나은 이론이다; 그리고 나은 이론은 열등한 이론을 대체한다. 그리하여 성패에 걸린 것은 진리라는 문제이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 191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