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금세기의 교훈 대담 II 및 두 가지 담화 (번역 수정본)

이윤진이카루스 2025. 11. 26. 16:42

금세기의 교훈 대담 II 및 두 가지 담화.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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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II (1993)

 

 

 

 

 

 

 

 

 

 

 

 

 

 

 

 

 

 

 

 

 

 

 

 

 

 

 

 

 

 

 

 

 

 

 

 

 

 

6장에 대한 서문

 

지안카를로 보세티(Giancarlo Bosetti)

 

 

보스니아(Bosnia)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서양에 사는 우리의 실패, 비겁, 맹목성의 증거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금세기가 우리에게 가르쳤던 것을 우리가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밝혀진다: 전쟁은 전쟁으로써 예방된다는 것.’ 런던 남부 언덕의 켄리(Kenly)에 있는 자기 집에서 말하면서 칼 포퍼는 자신이 가슴에 두고 있던 문제를 꺼냈다: 발칸 반도로부터 오는 핵전쟁의 위협. 91세의 나이에 비엔나 출신의 철학자 포퍼는 자신의 건강과 자신의 작업 능력을 유지하려고 크게 노력한다. 2년 전, 내가 마지막에 그를 방문하러 갔을 때, 그는 쿠바 미사일 위기와 흐루쇼프 및 사하로프의 비망록을 연구하는 데 빠져있었다. 소련 과학자 사하로프가 저지른 중대한 범죄행위의 문제에 관하여 ㅡ 사하로프가 세계 여러 곳에서 만들어지는 메가급-수소폭탄에 대하여 주로 책임이 있다고 포퍼는 생각한다 ㅡ 포퍼는 자신의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사하로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나중 위업에도 불구하고 사하로프가 없었다면 세계는 오늘날 결정적으로 더 안전한 곳일 터라고 포퍼는 생각한다.

그의 관념에 있는 확고함이, 점점 작아지고 더 무기력해지는 듯이 보이는 사람의 겸손과 섬세한 예절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와 날카로운 대비를 이루었다. 그의 예리한 표정에서 사람들은 인정보다 반발을 받았던 생애를 ㅡ 반대의견과 마주하는 긴 인내 ㅡ 감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식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진보한다고, 그리고 논지는 또 다른 논지에 의하여 반증될 때까지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합당하다.

이번에 그의 시선이 1970년대를 넘어갔다. 현재의 보스니아(Bosnia)로부터 그는 우리에게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의 20, 처칠의 글 그리고 영구평화론(Perpetual Peace)’에 기술된 칸트의 원리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는 이미 몇 개월 전에 L’Unitὰ에 발표된 짧은 글에서 전() 유고슬라비아에서 발생하는 학살을 막자는 자신의 제안을 설명했다. 유럽, 미국과 유엔은 인도주의적 원조를 통해서뿐 아니라 군사력으로도 개입해야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비인도적이고 동시에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 상황은 훨씬 더 나쁘다: 어떤 개입도 없었고 클린턴의 망설임은 파멸적이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시민의 질서를 해치는 상황에 대하여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포퍼는 19928타임지(The Times)에 발표된 호소문에서 유명하고도 억만장자인 자기 제자이자 헝가리 출신 미국인 금융가인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표현한 견해를 전적으로 공유한다. 인종적 동일성이 국가 원칙과 시민권의 기준이 된다면 이것은 인권을 파괴하여 우리 문명의 근간을 위협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인종적 동일성은 상대방 무리를 파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연쇄반응이 퍼져서 지구 전체를 삼킬 것이다.

 

 

 

 

 

 

 

 

 

 

 

 

 

 

 

 

 

 

 

 

 

 

 

 

 

 

6

우리는 3차 세계대전의 위험에 빠져있다

 

 

 

4월에 우리는 보스니아(Bosnia)에 대한 개입을 지지하는 귀하의 글을 발표했다. 그 후 귀하는 생각을 바꾸었는가?

 

내가 당시 개입을 요구한 것은 틀림없이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문제는 여전히 이전과 같다: 우리는 전쟁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전쟁을 막는 전쟁(war on war)’이라는 관념의 본질은 이미 칸트에게서, 칸트의 영구평화론(Perpetual Peace)’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는, 최근의 전쟁은 결과가 전혀 없어 보이는 거대한 노력인 인간 생명의 무의미한 희생이었다는 일반적 느낌을 우리가 아마도 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전쟁 중에도 전쟁을 막는 전쟁이라는 관념이 나타났다. 물론 그 관념은 많은 역설을 포함하여 의문스러운 방식으로 흔히 사용되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진지한 관념이다.

 

전쟁을 막는 전쟁(war on war)’이라는 원칙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2차 세계대전은 처음부터 정확하게 저 원칙으로서 착상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기간으로 인하여, 평화가 실제로 각 정부의 책무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는지가 밝혀졌다.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은 나치 독일을 달래는 과제를 떠맡아서 그 과제를 평화라는 이름으로 양보하는 자신의 주요 책무로 보았다. 저것은 정확하게 그가 자신의 과제를 본 방식이다. 그래서 그는 나치의 통치를 강화하는 데 이미 크게 도움을 주어 오랫동안 히틀러를 도왔다.

 

귀하의 말은 완전히 전쟁을 거부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20년 동안 전쟁이 유럽 정부들과 미국 정부에 의하여 많은 선언에서 불법화되었다는 것을 내가 말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더 많은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1939년 이전 일반적 태도가 그랬다.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은 다양한 분야에서 귀중한 일을 실천한 매우 진지한 기구였다. 예를 들어 국제연맹은 무국적 사람들에게 여권과 서류를 발급했는데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내가 의미하는바, 1차 세계대전 이후 본질적 목표가 인도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었던 정책뿐 아니라 강력하게 인도주의적 경향이 의기양양했던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저것이 1차 세계대전의 전형이 아니었다면 저것은 적어도 1차 세계대전의 끝난 후의 결과였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 분위기는 세계의 대부분에서 수용되고 공유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널리 확산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 분위기는 처칠이 주창한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토대가 되었다.

 

이것으로부터 귀하는 어떤 결론을 도출할 터인가?

 

오늘날 세계에 2차 세계대전 경의 완벽한 성숙성과 인식에 도달한 정치권력자가 없다. 저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난 한 가지 불행한 결과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사이에 20년이 흐른 반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서 보스니아 전쟁까지의 기간은 매우 훨씬 더 길었다.

 

거의 50년이다.

 

저것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나폴레옹이 벌인 전쟁이 나에게 느껴졌을 터와 같이, 사람들에게 단지 역사로서 보이는 상황을 사람들이 실제로 이해하기에 너무 긴 기간이다. 고대 역사일 따름...

 

분명히 자기 경험의 도움을 받아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기간을 지적(知的)으로 통달할 수 있는 처칠이나 다른 정치가가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왜 귀하는 방금 처칠이 주창한 국제연합을 언급했는가? 왜 오늘날 처칠을 생각하는가?

 

처칠의 관념은, 더 많은 전쟁을 겪지 않기 위해서 국제연맹이나 실제로 전쟁에 반대하여 전쟁을 벌이는 국제연합(UN)과 같은 국제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칠의 원칙은 소련의 역할 때문에 결과적으로 무시되었다. 사실상 국제연합은, 서구와 러시아 모두가 지지할 각오가 있어야만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수용함으로써 처칠의 원칙으로부터 떠나야 했다. 그리고 처칠이 깨달은 바와 같이 저것은 처칠의 정치노선에 대한 패배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소련도 냉전도 없다.

 

1989년 이후 나는 우리가 직면할 위험을 인식했지만 나는 또한 우리가 오늘날 겪는 세상에 대한 전망보다 나은 전망을 염두에 두었다. 나는 사하로프가 만든 수소폭탄에 반대하여 항의하고 싶었다. 나는 소련의 핵물리학자 사하로프가 거대한수소폭탄의 실험을 완료하겠다는 결심으로 떠맡았던 가공할 책임을 비판하고 싶었다. 당신이 이탈리아에서 공개한 나 자신의 견해는, 사하로프가 개발한 수소폭탄이 세계 여러 곳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직면해야 했던 위험을 가리킨다. 그러나 나는 또한 출구도 보았다.

 

그 출구는 무엇이었나?

 

1989년 이후 서구에 있는 우리가 러시아에 봐라, 서구는 평화를 원하고 우리는 공포의 무기 없이, 철의 장막 이전에 러시아에 있던 체제와 같은 것 없이 평화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와서 우리와 이 평화를 함께하자라고 말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유럽의 상황은 사실상 매우 평화로워서 우리가 공포 정권으로의 복귀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일본에 대해서 뿐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북미 전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언급될 수 있을 터이다. 아프리카에 평화가 없었지만, 세계의 거의 다른 모든 곳에 평화가 있었다.

 

분명히 저 전망은 빛을 잃었다.

 

먼저, 이라크에 매우 위험한 개입이 발생했는데 이라크에서 사활이 걸려있던 그 문제가 ᅳ 사활이 걸린 실재적 문제 ㅡ 핵무기였다. 그리고 이제 세계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유럽은 오래된 국제연합의 압력으로 뭉쳤던 것보다 덜 평화롭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붕괴 이래, 테러리즘이 유고슬라비아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공산주의가 이 터무니없는 민족주의에 의하여 대체되었다. 민족주의가 실제로 모두 슬라브족인 민족들을 서로 적대시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나는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세르비아인은 슬라브족이고 동시에 크로아티아인도 슬라브족이다. 그리고 보스니아인도 또한 이슬람으로 개종한 슬라브족이다. 무서운 일은 서구에 사는 우리가, 과거 20년 동안 상황이 전개된 것처럼 상황이 전개되도록 내버려 둠으로써 ㅡ 학살, 살인, 극악한 행위 ㅡ 항복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구의 정치적 주요 요소들을 포기했고 평화 자체의 원칙을 필두로 우리 자신이 만든 원칙을 저버렸다. 우리는 저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항복하지 말았어야 했다. 무기와 파괴 수단이 증가했기 때문에 그리고 사하로프가 만든 수소폭탄이 (적어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3,000배의 위력을 지녔음을 기억하라) 세상에서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거대한 위험에 노출된 지독한 실수였다. 그러나 우리가 ㅡ 우리의 나라를, 정부를 그리고 야당을 책임지고 있는 무리들 ㅡ 이 상황에 어떻게 만족하고 있을 수 있는가?

 

이 항복은 어떻게 일어났다고 귀하가 생각하는가?

 

내가 아는 유일한 설명은,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하여 살재 세계에서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대량 학살이 이 기간에 보이지 않아서 그 학살이 발생하지 않았던 듯하다. 동일한 방식으로 핵폭발이 실제로 한 번 이상 경험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일지라도, 우리가 그 폭발을 보지 못했다.

 

지난 며칠 동안 보스니아에 대하여 타협이 가까운 듯했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평화로 이어질 수 있는 타협이 없다. 저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들을 무장해제 시켰어야 했다. 우리 모두에 대한 핵 위협은 발칸반도로부터 나올 것이다.

 

어떤 조치가 취해질 수 있는가?

 

우리에게 무기가 ㅡ 항공기 ㅡ 있어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다행인 위치에 있고 우리는 희생자의 숫자가 최소화되는 정도로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서구 국가는 공중전에 크게 우세하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모든 지상군의 철수이다. 외국의 어려운 지형에서 전쟁을 벌이는 일은 (미국인이 베트남에서 배운 바와 같이) 실책이다. 사막에서 그런 전쟁을 벌일 수 있지만 발칸반도에서는 불가능하다. 아무튼 구호품, 약품이 ㅡ 심지어 필요하다면 의사들 ㅡ 공수될 수 있다. 사람들은 헬리콥터에 의하여 안전처로 소개될 수 있다. 그리고 장갑차나 여하한 종류의 중화기에 대한 공격과 같은 훨씬 더 많은 군사행동이 공중에서 수행될 수 있다. 저 유형의 군사적 행동으로 인하여 지상군의 철수가 가능했을 터라는 ㅡ 그리고 아마도 여전히 가능할 터라는 ㅡ 징표는 많다. 우리가 내버려 두면 그들은 서로 학살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은 진지하게 막기만 하면 그들은 학살을 그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저렇게 하지 않았다.

 

귀하는 군사적 개입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보스니아의 영역 분할에 관하여 정치적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은 어떤가?

 

평화, 평화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상의 평화는 (적어도 그 평화가 최종적으로 확립될 때까지) 무기로써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ㅡ 경찰이 국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장해야 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리고 동일한 이유 때문에 ㅡ 지금쯤 배웠어야 한다. 우리는 범죄자와 타협함으로써 국내에서 평화를 이룩할 수 결코 없을 터이다.

 

독일 철학자 한스-게오르그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거의 당신 나이인데...

 

그는 나보다 두 살 더 먹었다.

 

L’Unità와의 대담에서 그는 소말리아와 관련하여 국제연합이 중화기를 사용하여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국제연합이 작전을 감시하는 역할만 수행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 원칙을 수용하면 평화가 절대 이룩되지 않을 터이다. 핵폭탄이 있는 세계에서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제안하면 완전한 허무주의이다. 상황은 매우 간단하다: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평화를 이룩할 방법이 없다. 가다머는 틀림없이 이마누엘 칸트의 원칙을 잊었다 ㅡ 그리고 아마도 한 가지 이유는, 칸트가 가다머나 나와 달리 80세 이상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봐라, 이 쟁점에 관하여 철학자들이 자신이 할 말을 하면서 철학자들이 전문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 문제에 대해서 나도 전문가로서 말할 수는 없다 ㅡ 또한 나는 철학자로서 말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20세기의 흐름 위에서 열린 생각으로써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처럼,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L’Unità, 199399일 자에 발표됨)

 

 

 

 

 

 

 

 

 

 

 

 

 

 

 

 

 

 

 

 

 

 

 

 

 

 

 

 

 

 

 

 

7장에 대한 서문

 

지안카를로 보세티(Giancarlo Bosetti)

 

 

텔레비전 문제는 통제와 자기-통제를 통하여 해결되어야 한다.’ 내가 전자 간호사들(electronic nurses)’에 관한 교황 연설의 요약 내용만을 전화로 읽고 그 주장이 포퍼 자신의 주장과 유사하다고 말하자, 포퍼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저게 사실일 것이다. 당신은 텔레비전에 관한 나의 견해를 이미 말고 있다. 심지어 정치적 관점에서도 텔레비전은 무한 권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에서 모든 권력이 억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부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의 통제 형태가 자기-통제임을 ㅡ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와 시청자 모두를 포함하는 자기-규제 ㅡ 우리는 또한 안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것은 의회의 특권인 문제이다.’

91세 오스트리아인 철학자 포퍼는, ‘포퍼식텔레비전 규제에 대한 정치-의회 안이 진행 중이던 ㅡ 어린이를 폭력 장면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ㅡ 독일 여행으로부터 토요일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어떤 정치적 주도권을 발휘했음을 부인했다. ‘독일에서 전개되는 상황은 흥미롭지만, 사람들이 텔레비전이 초래한 ()-문명적과정을 알게 될 것이라 점에 나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관한 포퍼의 관념에 관심이 증가하는 듯이 정말로 보인다. 어제 아침 언론매체가 교황 요한 바오로 2(Wojtyla)의 연설을 특별기사로 내보내고 오래지 않아서, 포퍼의 비서인 공손하지만, 고집 센 멜리타 뮤(Melitta Mew) 부인이 전화로 텔레비전 및 신문 기자들을 막아야 했다. ‘나는 교황이 말한 것에 찬성하거나 반대하여 주장하고 싶지 않다라고 포퍼는 나에게 설명했다. ‘내가 원문 검토를 끝낼 때까지 나는 저것을 할 수 없다.’

19928월 말경 내가 켄리(Kenly)에 있는 그의 저택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내가 가슴에 품고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보스니아(Bosnia)이면서 국제관계가 퇴보하여 핵 재앙으로 변할 위험이다; 다른 하나는 텔레비전과 그 영향력인데 그 영향력으로 인하여 인류의 도덕적 타락이 급박해지고 있다.’ 그다음 그는 첫 번째 주장에 한 시간 그리고 두 번째 주장에 또 한 시간을 할애하여 설명했다. L’Unità가 당시 발표한 대담은 우리가 나눈 대화의 첫 부분만 다루었다. 그래서 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행한 어제의 연설까지 그동안 특정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두 번째 부분을 ㅡ 아래에 보도된다 ㅡ 보도하지 않았을 터이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에 대한 포퍼의 논지가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청중을 모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대한 그의 최초 대담은 1991년 말에 그가 L’UnitàMarsilio 출판사를 위하여 그가 나에게 허용했고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최근에 프랑스에서 발간되었다; 그리고 몇 주 전 동일한 문제에 관한 전 독일 총리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와 그의 대화가 독일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금 텔레비전에 대한 그의 새로운 비판을 공개하고 있는 결정적 이유는 그 자신이 이 독특한 세기말의 전쟁에서 주인공으로서 자기 적()들에게 답변하면서 토론을 활발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내가 포퍼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공책에 써놓은 인용구를 큰 소리로 읽음으로써 대담을 시작했다. ‘내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II, 225쪽에 적은 것을 독자에게 상기시키라: 합리적 접근방식은, 내가 틀릴지도 모르고 당신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공동의 노력을 통하여 우리가 진실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7

텔레비전은 인류를 타락시킨다.

텔레비전은 전쟁과 같다

 

 

귀하가 도덕적 타락을 말할 때 귀하는 무엇을 염두에 두는가?

 

매우 간단하고도 직설적으로, 나는 범죄 증가와 질서정연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정상적 느낌의 실종을 내가 염두에 둔다. 유럽에서, 그다지 오래전이 아니지만 우리는 범죄가 특별히 예외적이었던 사회에 살았다.

 

귀하는 과거를 신화화(mythologizing)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나는 이 질서정연한 사회가 또한 작고, 더럽고, 당신이 원한다면, ‘부르주아적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당신이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호주머니에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전제할 수 있는 ㅡ 예를 들어 내가 당신에 대하여 지금 전제하는 것과 같이 ㅡ 세계였다. 저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러나 교수인 포퍼 귀하는 항상 낙관주의 철학자였다. 라이프니츠(Leibniz)가 표현한 바와 같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서 최고의 세계라고 우리가 생각하도록 귀하가 항상 만들었다. 귀하는 더 이상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낙관론자임은 참이지만, 절대적으로 당신이 암시하는 정도로는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서 최고의 세계라고 나는 주장한 적이 없다; 우리가 겪은 지독한 전쟁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지금까지 존재한 세계 가운데서 최고의 세계라고 내가 말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전쟁을 낳은 폭력의 경험이 매우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안다. 우리 시대에, 서양 세계는 상황을 개선하려고 거대하고도 성공적인 노력을 시도했다. 그러나 지금 분명히 퇴보가 존재하고, 눈으로 그 퇴보를 보는 모든 사람에게, 그 퇴보가 우리가 끊임없이 보고 생각하는 폭력에 기인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대규모의 퇴보가 전적으로 텔레비전에 기인할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저것이 과장된 듯이 보이지는 않는가?

 

사실상 다른 원인이 없다. 전쟁으로 인하여 사회 안에 폭력이 생겨났지만. 마지막 큰 전쟁인 2차 세계대전은 50년 전 일이다.

 

귀하의 대담이 L’Unità에 발표된 후 몇 개월 만에 나타난 반대의견에 대하여 나는 이제 귀하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나 먼저 나는 당신에게 나의 기억을 말하고 싶다. 1920년 나는 유치원을 맡고 있었고 그 유치원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요리사에게 남편이 있었는데 그 남편에 대하여 (나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소문일 따름이었다) 그 남편이 전쟁에서 중상을 입었는데 머리에 총알이 여전히 박혀있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정말로, 내가 그 유치원을 맡은 후 무서운 일들이 벌어졌다. 한번은 그가 아내에게 화를 내어 오랫동안 부엌칼을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대고 있었다. 나는 개입했고 조금 용기를 내어 칼을 빼앗았다.

 

귀하가?

 

그렇다. 놀랄 필요 없다. 나는 매우 젊었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잡고 방 밖으로 끌어냈다. 어린이들을 넘겨줄 다른 어른이 없었지만, 그 어린이들이 한 인간을 또 다른 인간이 칼로 위협하는 것을 본 장소로부터 나는 그 어린이들을 재빨리 도피시켰다.

 

귀하가 이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그 사건이 그 어린이들의 생애에 매우 예외적인것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 어린이들 각자에게, 그 사건이 그 어린이들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그들이 목격한 가장 심각한 사건으로 아마도 남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 사건은 이론적 문제 이상으로 실제적 문제이다. 그 남편의 폭력이 겨우 2년 전에 끝난 전쟁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은 또한 매우 개연적이다. 그리고 오늘날, 2차 세계대전 후 50년이 지나서 어린이들은 살해되거나 학살당하거나 폭행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귀하에게 첫 번째 반대의견을 제시하겠다. 달라져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인류에게 커다란 능력이 있다. 사실상 귀하 자신이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자기 환경에 반응할 수 있는 방식을 항상 지적했다.

 

그렇다. 어린이는 극단적 환경에 끊임없이 노출되면 적응하지만, 폭력에 대한 어린이의 적응이 정확하게 우리가 토론하고 있는 문제이다. 그 적응의 가장 논리적 귀결은 어린이도 총을 살 미래이다. 고려해야 할 두 번째 일은 폭력에 반대하여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 그러나 몇 명의 부모가 저렇게 하는가? 교사들? 교사는 텔레비전을 앞에 두고 희망을 품지 못한다. 텔레비전은 항상 훨씬 더 흥미롭고, 더 짜릿하고, 더 흡수력이 있고, 순진한 어린이들을 유혹할 수 있고, 어린이들의 나은 요점, 특히 삶에 대한 어린이들의 흥미를 또한 더 농락할 수 있다. 텔레비전에 패배를 모르는 공식이 있는데 행동하라, 더 많이 행동하라이다 ㅡ 저것이 텔레비전 프로듀서들의 전체 철학이다. 교사가 저것에 대항하여 어떤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가? 이성의 목소리밖에 없다. 텔레비전이 개발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겨우 과거 10~15년 사이에 완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 후 텔레비전은 눈사태처럼 덮쳤다. 교사들에게 텔레비전에 저항할 가망이 없다.

 

또 다른 반대의견은 텔레비전이 폐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폐기는 터무니없는 일일 터이다; 텔레비전 폐기는 전기 없는, 전화 없는... 세상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전기, 전화, 자동차도 없는 세상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반대의견은 무엇에 해당하는가? 이 모든 것이 규제되지 않는가? 매우 정확한 교통 규칙이 있지 않은가? 고속도로 교통법 없이 자동차를 모는 믿을 수 없는 위험을 생각해보라. , 내가 알기에 저 종류의 반대의견은 너무 훌륭해서 참이 될 수 없다! 보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도로에서 교통을 규제하는 것과 같은 규율 및 자율적 규율을 가지기를 내가 원한다고 설명하라, 우리에게 운전면허가 있어야 한다, 아닌가? 그리고 당신이 위험하게 운전한다면 운전면허가 압수된다, 아닌가? , 텔레비전에 대해서도 똑같이 하자.

 

자유적 유형의 반대의견도 있다. 귀하는 열린사회의 이론가여서 귀하는 시장경제의 역할을 지지한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관한 한 귀하는 철칙을 세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저 반대의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장에 자체의 규칙이 없는가? 이탈리아의 출판사가 나의 책을 출판한다면 그 출판사는 나에게 저작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는가? 저게 열린사회와 위배되는가? 모든 삶의 행위에 우리가 규칙을 도입하지 않으면 혼란이 일터이다. 또한 저게 전부가 아니다. 기능하려면, 시장에 규칙뿐 아니라 특정 정도의 신뢰, 자율적 규율 및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엄청난 힘인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힘이 텔레비전에 있다는 나의 논증으로 내가 돌아온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우리가 제한하지 않으면 텔레비전은 계속해서 우리를 문명으로부터 끌어내릴 것이고 교사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텔레비전에 대하여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 폭력밖에 없다. 나는 4~5년 전에 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내가 알기에 누구도 이 무시무시한 권력을 막고 싶어 하지 않는다.

 

칼 경, 아마도 상황은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적어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포퍼가 옳다면 어떻게 하나?’라고 묻고 있습니다.

 

(1994125L’Unità에 보도됨)

 

 

 

 

 

 

 

 

 

 

 

 

 

두 가지 담화

 

 

 

 

 

 

 

 

 

 

 

 

8

민주주의 국가론과 관행에 관한

고찰

 

 

문학, 과학과 민주주의: 연관성?

아테네에서 기원전 530년경 서적을 자유롭게 파는 시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시장은 필사된 서적들이 파피루스 두루마리 형태로 판매되는 장소였다, 최초로 판매된 책은 호메로스의 위대한 서사시 두 권이었다: 일리아드(Iliad) 오디세이(Odyssey).

500년 후 키케로(Cicero)의 설명에 따르면, 아테네의 참주(僭主)인 페이시스트라토스(Pisistratus)는 호메로스의 시를 옮겨 쓴 사람으로 믿어진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위대한 개혁가였다. 그가 시행한 일 중 한 가지는 연극을 시작한 것이다: , 그는 우리가 극장이라고 부르는 제도를 세웠다. 아마도 정말로 매우 개연적으로, 그 자신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처음으로 발간한 사람이었다: 그는 글쓰기 재료를 (이집트산 파피루스) 배로 수입하여, 교육받은 많은 노예를 사서 호메로스의 시가 낭독되는 대로 받아 적게 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축제일에 아테네인들에게 연극과 많은 문화행사를 제공하던 부유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몇 명의 다른 아테네인이 ㅡ 기업가들 ㅡ 또한 서적 발행인의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아테네에서 호메로스 작품들에 대한 수요가 무한하다는 사실에 매혹되었다: 모든 사람이 호메로스의 작품에 의하여 글자를 배웠고, 모든 사람이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었다.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그의 작품은 아테네의 성경이자 독서지침서가 되었다. 곧 다른 서적들도 출판되고 있었다. 서적 시장이 없으면 출판도 없다는 것을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한다. 원고가 (혹은 오늘날 인쇄본) 서재에 있다는 사실은 시장 수요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200년간) 아테네는 유럽에서 서적 시장이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코린토스(Corinth)와 테바이(Thebes)가 아마도 아테네의 뒤를 이은 최초의 도시들이었다.

이전에 틀림없이 많은 시인이 ㅡ 많은 원고가 ㅡ 있었다. 그러나 문학작품은 (발간 제도가 필요하다) 아테네에서만 발전할 수 있었다; 아테네에서만 우리는 작가, 역사가, 정치사상가, 철학자, 과학자 그리고 수학자가 번창하는 것을 본다. 그 사람 중 많은 사람이, 투키디데스(Thucydides)처럼, 실제로 아테네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그들을 꼼짝 못 하게 사로잡았다.

자신의 저서를 아테네에 와서 출간한 외부 저술가 가운데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낙사고라스(Anaxagoras)와 그의 조금 어릴 뿐 동시대인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있었다. 두 사람은 소아시아로부터 정치적 피난민으로서 아테네로 왔다.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긴 역사 이야기를 출판할 생각으로 집필했다고 내가 생각하지 않지만, 아낙사고라스는 틀림없이 자신의 (다소 더 간략한) 자연사를 출판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당시 어떻게 출판이 실제로 실행되는지에 여전히 확신하지 못했다; 출판은 겨우 도입된 단계여서 아무도 당시 출판이 중요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터이다.

 

 

유럽에서 최초로 출판된 책에서 구텐베르크의 혁명까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문화적 기적은, 나의 견해로, 주로 서적 시장이 만들어진 데 기인한다. 그리고 이 서적 시장의 출발에 의하여 또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설명된다.

물론 참주(僭主) 히피아스(Hippias)를 아테네로부터 추방하여 민주주의를 세운 일이 서적 시장의 설치와 연관이 있는지는 증명될 수 없지만, 이 가설을 선호하는 많은 것이 있다. 읽기와 쓰기 (아테네를 통하여 빠르게 퍼졌다); 호메로스에 대한 커다란 인기와 (틀림없이 결과적으로) 훌륭한 아테네의 극작가, 화가, 조각가에 대한 커다란 인기; 많은 새로운 관념이 토론되었으며 광범위한 지식의 발전 ㅡ 이것들은 서적 시장이 세워짐으로써 틀림없이 영향받은 모든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별개로 민주주의가 스스로 확립된 것을 우리가 허용할지라도, 방대한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한 해방전쟁에서 아테네의 어린 민주주의가 크게 성공한 것은 분명히 그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이 성공은, 아테네인들이 예술과 시가(詩歌)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과 명징성에 대하여 그들이 독립적으로 얻은 열정 및 취향과 함께, 아테네인들이 비상한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유산을 통하여 스스로 획득한 새로운 자의식에 비추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아무튼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과, 뒤따라 서적 시장이 크게 확대된 것은 유사한 문화 혁명을 초래했다: 인문주의(humanism)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 고대 문학이 새로운 생기를 받자 모든 예술이 번창했다. 새로운 자연과학이 태어났고, 영국에서 종교혁명이 두 가지 혁명을 ㅡ 1648-49년의 유혈혁명과 1688년의 무혈혁명 ㅡ 낳았고 그 혁명들을 통하여 의회는 민주주의를 향한 자체의 꾸준한 진보를 시작했다. 이 경우 그 연관성은 더 명백하게 보일 수 있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성공과 범죄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기적은 서적 시장의 도입에 뒤따른 특수한 문화적, 정치적 및 군사적 발전으로 구성된다. 이것들은, 미래의 유럽에 모범적 역할을 수행할 매우 독보적인 빠른 성장과 나란히 진행되었다. 문제의 커다란 사건 가운데 각각 대략 30년간 지속된 두 차례의 전쟁이 있었다. 첫 번째 전쟁에서 아테네가 파괴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여 나타났다. 두 번째 전쟁에서 아테네는 파멸적 패배를 겪었다. 여기에 주요 사건들의 간략한 연혁이 있다:

 

507년 아테네에 민주주의가 세워졌다.

493년 아테네가 스스로 무장한다;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 휘하에

해군이 창설된다.

490년 마라톤 전투.

480년 아테네는 소개되고 페르시아인들에 의하여 파괴된다. 모든 저항을

해군이 떠맡는다. 살라미스(Salamis) 해전.

479년 플라타아이아 및 미칼레(Plataea and Mycale) 전투. 이오니아의

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와 섬들에서 위협에 직면하여 아테네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델로스 해상 동맹과 소위 아테네의

제국주의가 발생한다. 아테네의 요새화와 중건.

462페리클레스 시대의 개막: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1

펠로폰네소스 전쟁.

431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429년 아테네에 페스트 발생. 페리클레스 사망. 전쟁 격화.

413년 시칠리아에서 패배. 아테네의 함대와 육군 궤멸.

411년 아테네의 민주주의 몰락.

404년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제압하고 반()-민주주의적이고 공포정치적

괴뢰-정부를 세우는데 그 정부는, 8개월간 존속하면서 2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면서 가장 사람이 피 흘린 10년 전쟁 동안

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해한다.

 

이것은 통상적으로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가 끝나는 곳이어서 그때 또한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끝났다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저것은 그릇된 인상이다. 저것은 끝이 아니었다. 8개월 후 30명의 참주는 아테네의 민주주의자들이 이끄는 군대에 의하여 피레아스(Piraeus)에서 패배하고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민주주의 사이에 평화협정이 맺어진다.

그러나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무서운 실수를 ㅡ 전술적이거나 전략적 실수뿐 아니라 명시적으로 직접적 도발을 받지 않고 멜로스(Melos)를 파괴한 것과 같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행위 또한 ㅡ 저질렀다. 멜로스의 남성은 살해되었고 여자와 어린이는 노예로 팔려나갔다. 그 무시무시한 범죄 외에도, 소크라테스의 재판에서 (검사가 정당의 우두머리였던 정치 재판) 내려진 불공평한 선고는 무엇인가?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아테네군의 장군이었는데 멜로스에 관한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하여 그 사건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ㅡ 자신들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처벌받아야 하는 다수가 취한 냉소적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결정 ㅡ 기술한다. 유사한 종류의 많은 다른 사건이 있었다.

그런 사건에 정상을 참작할만한 환경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투키디데스는 다른 결정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예를 들어, 미틸레네(Mytilene) 섬이 반란을 일으켜 아테네와의 동맹조약을 파기하고 곧 아테네에 패배하고 만다. 그 후 아테네는 그 섬의 모든 남성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장군과 배를 보냈다. 그러나 다음날 아테네인들은 뉘우쳤다. 투키디데스는 디오도토스(Diodotus)가 관용을 주장한 시민의회의 소집을 기술한다. 디오도투스의 주장이 겨우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두 번째 배가 즉각 파견되고 선원들은 쉬지 않고 주야로 열심히 노를 저어 겨우 시간에 대어 이전 명령을 철회했다. ‘그렇게 겨우 미틸레네(Mytilene) 섬은 화를 피했다라고 투키디데스는 서술한다.

 

민주주의가 민중의 통치였던 적은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민주주의가 주요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을 주목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그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도덕적 특성에 관한 것이다.

항상 혼란을 야기하고 도덕적 문제의 면모를 띠는 한 가지 문제는, 그러나, 순전히 언어적이다: ‘민주주의민중의 통치를 의미하여 매우 많은 사람이 이 후자(後者) 용어가, 서구에 사는 우리가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국가 형태에 대한 이론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인들은 행정부의 다양한 형태에 대하여 다양한 명칭을 사용했다 ㅡ 분명히 그들이 정부의 가능한 형태 중 어느 형태가 좋거나 나쁘고, 낫거나 더 나쁜지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통치자의 도덕적 품성에 따라서, 헌법의 다섯 가지 명칭에 다다랐다. 이 관념은 플라톤에 의하여 많이 사용되었는데 플라톤은 다음 도식으로 그 관념을 제시했다:

 

12 전제정치(Monarchy): 한 사람의 선량한 사람에 의한 통치이면서

그 왜곡된 형태가 참주정치(tyranny)

한 사람의 나쁜 사람에 의한 통치이다.

34 귀족정치(Aristocracy): 몇 사람의 선량한 사람에 의한 통치이며

그 왜곡된 형태가, 몇 사람의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들에 의한 통치인 과두정치

(oligarchy)이다.

5 민주정치(Democracy): 민중, 다수, 민중에 의한 통치.

 

경우 플라톤은 오직 한 가지 형태만을 확인하는데 그 형태는 많은 형태 가운데서 항상 많은 나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나쁘다.

이 도식 뒤에 놓여있는 문제 상황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플라톤은 어떤 의미에서 우활한(迂闊: naive) ‘누가 국가를 통치해야 하는가? 누가 통치력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함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이 우활한 질문은 아테네라는 도시국가와 같이 작은 국가에 틀림없이 제시될 수 있는데 그 도시국가에서 모든 중요 인사들이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무의식적으로 그 질문은 오늘날 여전히 정치 토론의 근저에 놓여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적 정치가뿐 아니라 마르크스와 레닌, 무솔리니와 히틀러도 이 고도로 개인적 문제를 ㅡ 흔히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ㅡ 지치지 않고 숙고했다. 그래서 그들이 일반적 규칙을 언명했을 때, 그것은 통상적으로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플라톤의 답변은 최고의 인물이 통치해야 한다였다; 그것은 분명히 도덕적 답변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가 통치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자본가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실제로 국가를 통솔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독재 권력을 발휘해야 한다! 여기서 도덕적 요소가 조금 숨어있지만, 통치해야 하는 사람은 자연히 나쁜 자본가들이 아니라 선량한 프롤레타리아이다.

히틀러에 관하여 나에게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의 답변은 단지 였다. 그의 선배들처럼 그는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근본적이라고 분명히 생각했다.

50년 전 나는 이 질문을 최종적으로 파묻어버렸다. 왜냐하면 그 질문이 도덕적 명령에 대응하는, 거짓이면서 궁극적으로 터무니없는 해결책을 낳는 거짓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적 관점에서, 정치적 적()을 도덕적으로 사악하다고 (그리고 자신이 속한 정당을 선하다고) 간주하면 고도로 비도덕적이다. 저것은 항상 나쁜 증오를 낳고, 권력 제한에 기여하지 않고 권력을 강조하는 태도를 낳는다.

원래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소위 선량하거나 나쁜 사람들이나 계급이나, 인종 혹은 심지어 종교가 아니라 정부의 다양한 형태를 비교하는 것이었던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라는 플라톤적 질문을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 정부의 형태가 있는가?’라는 완전히 다른 질문으로 우리가 대체할 것을 나는 제안한다. 그리고 그 플라톤적 질문과 반대인 우리 스스로 사악하거나 심지어 무능하기만 하고 피해 입히는 정부를 없앴을 수 있는 정부의 형태가 있는가?’라는 질문.

그런 질문은 소위 민주주의의 근저에 무의식적으로 놓여있다고 나는 논증할 터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민중이 통치해야 하는지에 관한 플라톤의 질문과 매우 다르다고 나는 논증할 터이다. 그런 질문들이 우리가 사는 현대 서구 민주국가의 기저를 이루듯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저를 이루었다.

민주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우리는 독재정치나 전제정치를 도덕적으로 사악한 ㅡ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참기 어려울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참기 어려운 ㅡ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그런 정치체제를 인내하기만 함으로써 잘못된 일을 저지른다고 우리는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정치체제를 인내하라고 강요당하지 않는다. 저것이 1944720일 독일에서 히틀러 암살음모자들이 처한 상황이었다. 그 히틀러 암살음모자들은 19333월에 수권법(授權法: Enabling Law)이 민주주의적으로 채택되자 자신들이 빠진 가공할 함정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썼다. 독재체제는 우리에게 책임이 없는 상황을 강요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다. 독재체제는 인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독재체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도덕적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저것이 우리가 소위 민주주의적 국가 형태에 대하여 실천하려고 시도하는 것이고, 저것이 민주주의적 국가 형태의 유일한 도덕적 정당화이다. 민주주의는, 그렇다면 민중 주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독재체제로부터 제도를 방어하기 위하여 장착된 제도이다. 민주주의는 권력 축적인 독재 통치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제한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정부가 자기 권리와 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 또한 우리가 정부의 정책이 나쁘거나 틀렸다고 생각하면 정부를 피를 흘리지 않고 제거하는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쟁점인 질문은 통치자인 한 사람 누가가 아니라 한 가지 정부인 어떻게이다. 요점은, 정부가 너무 많이 통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혹은 낫게, 그것은 어떻게국가가 운영되는가의 문제이다.

이 태도는 아테네 민주주의 배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표현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그 태도는 오늘날 여전히 우리의 태도이거나 태도여야 한다. 어떤 무리가 민중을 대표할지라도 ㅡ 군인, 공무원, 노동자와 고용자, 기자, 라디오와 텔레비전 해설자, 작가, 테러리스트나 젊은이 ㅡ 우리는 그들이 권력을 차지하거나 통치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하고 싶지 않고 그들을 억지로 두려워하게 되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그들의 강요에 대항하여 스스로 방어하고 싶고, 필요하다면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 저런 것이 우리 서구 정부 형태의 목표이고, 그 형태를 언어적 모호성과 습관의 힘을 통해서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런 정부 형태는 모든 형태의 통치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방어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한 가지 예외는 주권의 통치인 법치이다.

 

요점: 정부는 피를 흘리지 않고 갈아치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견해는, 정부의 형태에서 중요한 것은 그 형태로 인하여 우리가 그 정부를 갈아치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ㅡ 갈아치운 다음에 새로운 정부가 권력의 고삐를 잡는다. 이 갈아치우기가 투표자나 국회의원 다수 혹은 헌법재판소의 다수 판사에 의하여 결정된다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ㅡ 새로운 선거를 통해서건 의회를 통해서건 ㅡ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닉슨 대통령의 실제적 제거인 사임보다 미국의 민주주의적 특징을 더 명백하게 증명한 것은 없다.

정부 교체에 관하여 중요한 것은 이 권력 부정인 제거 위협이다. 정부나 수상을 지명하겠다는 긍정적 권력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람들 대부분은 저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새로운 정부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어떤 위험이 있다; 이유인즉 정부를 지명하면 그 지명이 선거권자들이 면허를 준 것으로서, 민중의 이름으로 그리고 민중의 의지를 통하여 허용된 합법화로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와 민중이 선택한 정부가 저지를 실수나 심지어 범죄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고 민중은 무엇을 아는가?

잠시 후 우리는 정부나 정책을 판단할 수 있고 아마도 우리는 정부나 정책을 승인할 것이어서 그 정부를 재선출할 것이다. 혹시 우리는 미리 그 정부를 오랫동안 승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우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우리는 어떤 것도 알 수 없고, 우리는 정부를 알지 못하여 정부가 우리의 신뢰를 남용할 것이라고 우리가 상정(想定)할 수 없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페리클레스는 이 관념을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우리 가운데 소수가 정책을 고안하여 실행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그 정책을 판단할 수 있다.’ 이 간결한 공식은 나의 견해로 근본적이다. 그 공식은 민중의 통치(rule by the people)라는 개념을, 심지어 민중 주도권(popular initiative)이라는 개념을 배제함을 주목하라. 민중의 통치와 민중 주도권은 민중에 의한 판단(judgement by people)이라는 매우 다른 개념으로 바뀐다.

페리클레스는 (혹은 아마도 투키디데스 ㅡ 그들은 아마도 동일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심지어 어떤 종류의 다른 난제도 없을 때도, 민중이 통치할 수 없는 이유를 매우 간략하게 말한다. 관념은 ㅡ 특히 새로운 관념 ㅡ 몇 명의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명확해져서 개선될지라도, 개별적 개인들의 작품이 될 수 있을 따름이다. 많은 사람이 결과적으로, 특히 그들이 그 관념이 낳은 결과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면, 그 관념이 좋은지 아니면 나쁜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평가를, 그런 예-아니오 결정을 더 많은 유권자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중 주도권(popular initiative)’과 같은 표현은 기만적이며 정치 선전적이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소수가 주도한 것이고 기껏해야 비판적 평가를 받으려고 민중에게 제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경우, 제시되고 있는 조치가 그 조치를 평가하는 유권자의 능력 밖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제에서 떠나기 전에, 사람들이 혹은 어린이들이 민중 통치(popular rule) 체제 안에서 살고 있다고 ㅡ 참도 아니고 참이 될 수도 없는 ㅡ 교육받을 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하여 나는 경고하고 싶다. 이유인즉 그들이 이것을 별안간 의식하게 되면, 전통적인 언어적 혼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불만에 빠질 뿐 아니라 속임수를 느끼고 실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정치 영역에서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은 심지어 테러를 유발할 것이다. 나는 실제로 그런 경우들을 알고 있었다.

 

자유와 자유의 한계

우리가 안 바와 같이, 우리가 정부에 직접적으로 일부로서 참여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정부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을 어느 정도 진다. 우리가 공동으로 지는 책임에 자유,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 언론의 자유, 정보의 습득과 정보 전달의 자유, 출판의 자유,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자유. 국가통제주의(statism)가 과잉되면 자유가 결핍된다. 그러나 자유의 과잉(excess)’과 같은 것도 또한 있다. 불행하게도 국가 권력이 남용될 수 있는 것과 같이 자유도 남용될 수 있다. 우리는 예를 들어 거짓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혹은 폭동을 사주함으로써 연설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남용할 수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국가 권력은 자유의 한계를 남용할 수 있다.

국가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하여 우리에게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의 남용을 예방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국가가 필요하다. 분명히 이것은 추상적 법률에 의하여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헌법재판소가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선의(善意)가 필요하다.

그것은 확정적으로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 혹은 더 정확하게, 우리가 도덕적 근거를 토대로 배척해야 하는 독재국가의 독재 원칙으로써 독재에서만 완벽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임을 우리가 수용해야 한다. 우리는 부분적 해결책과 화해에 만족해야 한다; 자유에 대한 우리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자유의 남용 문제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옛날 사상가나 새로운 사상가 모두, 국가 권력의 필요성과 국가 권력의 한계 필요성을 보편적 원칙에 근거시키려고 시도하면서 이 문제들을 확인했다.

토마스 홉스는, 국가가 없다면 모든 사람이 잠재적으로 자기 종()에게 치명적인 적()이라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전제로부터, 그러므로 범죄와 폭력을 억제하기 위하여 가능한 최고로 강력한 국가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했다. 칸트는 그 문제를 다소 다르게 보았다. 칸트 역시 국가와 자유의 제한이 필요하다고 믿었지만, 이것을 최소한으로 감소시키기를 원했다. 그는 각자의 자유가 모든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일관되게 만들어지는 법률에 따라서 가능한 최대치의 인간 자유를 허용하는 헌법을 갈망했다. 칸트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과 양립될 수 있는 한 모든 시민에게 가능한 한 많은 자유를 보장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더 강한 국가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인간사회의 불가피한 결과로서 보았다; 그 자유의 제한은 다음 이야기의 도움을 받아서 설명될 것이다. 한 미국인이 어떤 사람의 코를 때려서 기소당한다. 그는, 자유 시민으로서 자신에게 자기가 원하는 어떤 방향으로도 자기 주먹을 휘두를 자유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옹호한다. 그것에 대하여 판사는 당신의 주먹을 휘두를 자유에 한계가 있어서, 이 한계는 때때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동료 시민의 코는 거의 항상 저 한계 밖에 놓여있다.’

나중 저술인 ‘“이것은 이론으로 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흔한 말에 관하여(‘On the Common Saying: “This May Be True in Theory, But It Does Not Apply in Practice”’)’에서, 우리는 국가와 자유에 관하여 훨씬 더 발전한 이론을 발견한다. 홉스를 겨냥한 2부에서 칸트는 이성의 순수 원리(pure principles of reason)’를 시작한다. 첫 번째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인간의 자유는, 공동번영[eines gemeinen Wesens]

관한 헌법의 원리로서,... [그것은] 다음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한 자신의 개념에 따라서 나를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데 이유인즉 각자는 자신이 합당하다고 보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기

행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중에 대하여 자선(benevolence)

원칙으로 혹시 세워질 정부는 [...] 가부장적 정부(imperium pαternαle)

[...] 상상 가능한 최악의 폭정이다.

 

이 마지막 언급이 (레닌과 스탈린 이후, 무솔리니와 히틀러 이후) 과장된 인상을 나에게 남기지만, 나는 칸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유인즉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ㅡ 홉스에 반대하여 ㅡ 우리의 동료인 늑대들에 대항하여 우리의 삶을 (그 절대 권력 국가의 손아귀에 있는) 보호하기에 충분히 친절한 절대 권력 국가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가의 본질적 과제는 우리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과제는, ㅡ 홉스의 견해와 반대로 ㅡ 모든 사람이 서로에 대하여 천사들처럼 행동할지라도, 여전히 결정적일 터이다. 이유인즉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가장 약한 자에게 가장 강한 자에게 대항할 권리가 없을 것이고 가장 강한 자들의 아량 때문에 그 가장 강한 자에게 신세를 지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법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칸트가 개인의 존엄(the dignity of individual)’이라고 지칭한 것을 낳을 수 있다.

이것이 칸트의 국가 관념이 지닌 그리고, 그가 가부장주의(paternalism)를 배척한 이유가 지닌 힘이다. 그의 관념들은 나중에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에 의하여 발전했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이 칸트 이후 그런 관념들이 독일에서, 특히 프로이센과 주요 정치권에서 더 이상 반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훔볼트의 저서인 국가 행동의 제한에 관한 정의(定義)에 대한 관념(Ideas towards a Definition of the Limits of State) 1851년에 발간되었지만, 훨씬 이전에 집필되었다.

칸트의 관념이 결과 영국에 도달하는 것은 이 저서를 통해서였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자유론(On Liberty)(1859) 훔볼트로부터, 그리하여 칸트로부터 그리고 특히 가부장주의에 대한 칸트의 비판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밀의 자유론(On Liberty)은 영국에서 급진적-진보 운동에 크게 영향을 끼친 저서 중 하나였다.

칸트, 훔볼트 그리고 밀은 모두 국가를 가능한 가장 작은 한계 속에 가두어 두는 방식으로 국가의 필요성을 확립하려고 시도했다. 그들의 관념은, 우리에게 국가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가능한 한 적게 국가를 원한다 ㅡ 전체주의적 국가의 반대; 우리는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주의적 혹은 관료 체제적 국가를 원하지 않는다; 요컨대 우리는 소(: mini)-국가를 원한다.

 

(: MINI)-국가인가 가부장적 국가인가?

우리에게 국가, 법치에 근거한 국가가 정말로 필요하다 ㅡ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인권이 실재라는 칸트적 의미에서, 그리고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적) 권리가 가능한 한 적게 그리고 가능한 한 공정하게 도입되어 허용된다는 또한 칸트적 다른 의미에서. 그리고 이 국가는 가능한 한 가부장적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국가도 한 가지 혹은 심지어 많은 가부장적 국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 국면들은 실제로 결정적 중요성을 띤다고 내가 믿는다.

국가의 기본적 과제는 ㅡ 다른 것보다 우리가 국가에 대하여 더 많이 기대하는 과제 ㅡ 생활과 자유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고, 필요하면 우리의 권리로서 우리의 생활과 자유를 (그 생활과 자유의 모든 부속물과 함께) 우리가 방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저 과제는 이미 내재적으로 가부장적이다! 심지어 칸트가 자선(benevolence)’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 바로 처음에서, 두드러지고 부인될 수 없는 중요성을 띤다. 우리가 우리의 기본적 권리를 방어해야 할 때, 우리는 국가의 (국가의 관공서들) 편에서 적대감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자선(benevolence)을 만나야 한다. 사실상 상황은 위로부터나 (자선적이라고 예상되는 국가 관공서에 대하여) 아래로부터 (자기보다 더 강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시민에 대하여) 모두 가부장적이다.

법률이 자체의 객관성에서, 거의 개인적인 이 관계들보다 상위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의 관공서가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으로 구성되는 반면, 국가와 국가의 법률에서 실제적이 되는 법률적 원칙은 사람이 만든 것이어서 오류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때때로 사악하여 칸트가 그렇게 많이 경멸했던 저 자선(benevolence)’을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줄 때 우리는 만족하고 심지어 감사해야 한다 ㅡ 아마도 공무를 담당하는 오랫동안.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이런 국면에서 가부장주의의 존재가 복잡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밝혀진다. 불행히도 저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ㅡ 나는 그 상황을 기꺼이 수용하지 않지만, 그 상황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무시함으로써 최근 논쟁에서 논리적 모호함과 때때로 매우 터무니없는 상황이 나타났다. 나는 복지국가(welfare state)에 관한 매우 시사적(時事的) 공격을 언급하고 있다. 내 견해로, 복지국가로 인하여 재 점화된 이 공격과 토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흔히 발생하는 바와 같이, 현재 유행하는 철학은 불행히도 너무 진지하게 수용될 수 없다. 그 철학은, 복지국가론과 복지국가론의 도덕성과 인간애에 관한 모든 포괄적 관념이 실제로 가장 중요한 인권에 ㅡ 자결권(self-determination),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 행복하고 불행할 권리, 칸트가 가부장주의에 반대하여 옹호했던 권리 ㅡ 관한 비도덕적 공격임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가부장주의에 대한 새롭고 급진적 공격은 통상적으로 다음 글을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에서 인용한다.

 

모든 사람의 행동 자유를 방해하는 데서 인류가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보장받는 유일한 목표는 자기-보호이다. [...] 문명화된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하여 그 구성원의 의지에 반하여 권력이 합법적으로

행사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다른 사람에 대한 해코지를 예방하는

것이다. 육체적이든 도덕적이든 그 구성원 자신의 이익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그는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말라고 합법적으로 강요당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그를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로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거나 심지어 옳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형태상으로 정확하게 적합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행복하고 불행할 자유를 지녀야 한다는 칸트적 원리를 반복한다. 그리하여 이 구절은, 가부장적 개입이 제3자의 이익에 대한 위험에 의하여 동기화되지 않는다면, 여하한 가부장적 개입도 비난한다. 누구도 ㅡ 친척도, 친구도, 물론 관공서나 제도도 (의회와 같은), 공무원도, 고용인도 ㅡ 어른의 보호자가 되어 그 어른에게서 자유를 박탈할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3자가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면.

매우 좋다. 누가 밀의 이 원칙에 반대하여 말할 터인가? 그러나 밀의 원칙은 행동 자유를 옹호하기 위하여 진지하게 사용될 수 있는가?

많은 논쟁을 거친 예를 들어보자. 국가가 자동차를 모는 시민에게 안전띠를 매라고 명령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밀의 원칙에 따르면 분명히 가지고 있지 않다 ㅡ 심지어 전문가들이 안전띠를 매지 않고 운전하면 위험하다고 믿어서 안전띠가 안전상의 이유로 필수적이라고 생각할지라도. 그러나 잠깐! 그렇다면, 아마도 3자로서 자동차에 탄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을 의무가 국가에 실제로 있다. 혹시 자동차에 탄 사람이 안전띠를 매기로 결심할 (물론 완전히 자유롭게) 때까지 출발을 중지시킬 의무가 국가에 없는가?

많이 토론된 또 다른 사례는 금연이다. 분명히, 밀의 원칙에 따르면 누구도 자기 이익에서 흡연을 금지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익은 어떠한가? 정부의 전문가가 다른 사람이 피우는 담배에서 나온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ㅡ 아니, 실제로 위험하다! ㅡ 말할 때, 3자가 있을 때마다 국가의 의무는 금연이 아닌가?

동일한 고찰이 다양한 형태의 보험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밀의 원칙에 따르면 위험에 처한 사람이 사고보험에 가입한다는 것은 기소당할 위협 아래서 강제적으로 이행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미 자유롭게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을 기소당할 위협 하에서 고용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ㅡ 고용주와 같은 ㅡ 제3자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약의 쟁점도 역시 아주 널리 토론되었다. 밀의 원칙에 따르면, 건전한 정신을 지니고 특정 나이에 도달한 (14, 20살 아니면 21살이든) 사람은 누구나 마약을 복용함으로써 자신을 자유롭게 파괴할 절대적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국가가 그로부터 이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혹시 다른 사람이 그렇게 지독히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 것을 막을 의무가 국가에 없는가? 그리고 가장 가혹한 처벌을 통하여 마약 판매를 금지할 (흔히 국가가 정말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의무가 국가에 없는가?

토론되고 있는 모든 쟁점이 동일한 방식에 따라서 취급되어야 한다고 내가 제안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매우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듯이 보인다. (운전자의 경우 첫눈에 보기에 매우 어렵지만, 매우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국가는 기소하겠다고 위협하면서, 3자에게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ㅡ 자동차를 팔거나 빌려줌으로써 ㅡ 누구나 제3자가 자동차를 몰기 전에 자신의 안전띠를 매는 것을 잊는다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서류에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서명할 것을 먼저 요구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 의무가 있다.) 자기 이익으로누구를 강제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것을 국가 관공서가 부단히 통보받는다면 ㅡ 이 금지 방법을 통하여 ㅡ 국가 관공서에 많은 이익이 (국가 관공서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의 이익으로) 될 것이라고 나는 인정한다. 국가 관공서는 자신의 가부장적 본능을 여전히 무제한으로 모두나 거의 모두에게 발휘할 수 있을 터이지만 ㅡ 다소 오늘날에도 발생하는 바와 같이 ㅡ 국가 관공서는 나은 형태로 그리고 제3자를 포함하겠다는 구실로 그렇게 할 터이다.

그렇다면 사회 안전에 대한 기여는 우리 자신의 보험 때문이 아니라 제3자를 보호하기 때문에 요구될 터이고, 모든 사람은 보호받으려는 자기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 기여에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돈을 지불할 터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밀의 원칙을 수용한다. 모든 사람은 제3자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 자가 방식대로 행복하거나 불행할 자유가 있지만, 정보를 받지 못한 시민 자신이 평가할 수 없는 불가피한 위험을 그 시민이 초래하지 않도록 보장할 책임이 국가에 있다. 그렇게 수정되면, 밀의 원칙은 복지국가에 대한 (극도로 중요한) 비판에 다소 평범하게 기여할 수 있다. (: min)-국가에 대한 우리의 합법적 관심은 밀의 원칙과 관련이 없지, 그 관심은 사회적 보험을 개인화한다는 관념을 낳기 때문에 복지국가라는 쟁점과 정말 많은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전통적 기능을 매우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불필요한 것으로서 내가 기꺼이 정의(定義)할지라도, 불행하게도 그렇게 기술될 수 없는 또 다른 국가의 전통적 기능이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기능이어서 사기업에 위임될 수 없다.

나는 국방을 언급하고 있다. 분명히 국방은 모든 의미에서 가부장적 기능이고, 국방의 현재 중요성은 철학적 관점에서 국가에 대한 모든 반()-가부장적 이론을 다소 위축시킨다. 그런 철학들은 국방 문제를 단지 무시함으로써 그 문제가 제거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우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국방 문제는 가장 중요하여 매우 높은 대가가 필요하다. 국방 문제는 소(: mini)-국가라는 관념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다. 국방 문제는, 틀림없이 그만큼 돈이 들고 중요하며 국방과 긴밀하게 연결된 또 다른 기능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 외교이다. 국방과 외교로 인하여 소(: mini)-국가는, 우리가 소(: min)-국가를 포기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을지라도, 결과적으로 동떨어지고 유토피아적 이상으로 보인다. (: min)-국가는, 규제적 원칙으로서만이라도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더 상기시키고 싶다. 민족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국가는 시민의 군사적 각오를 지켜보아야 해서 시민의 건강을 지켜보아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국가는, 교통과 신호 체계 및 게다가 다른 많은 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비축된 상당한 보급품을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심지어 경제도 지켜보아야 한다.

 

어린이의 권리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덕적 이유 때문뿐 아니라 원칙적으로도, 상황은 가부장주의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가 강도질에 대하여 경찰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할 시민의 권리를 인정할 때, 국가는 보호되어야 할 어린이의 권리를 필요하다면 심지어 어린이의 부모에 반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국가는 원칙적으로 가부장적이 된다. ‘(: mini)-국가인가 가부장적 국가인가?’라는 문제는 도덕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의 가부장주의는 안 된다라는 다른 문제로 대체된다. 가부장적 국가의 도덕적 주장에 대한 소(: mini)-국가의 원칙적 우월성 대신, 우리는 국가와 자유 사이의 오래된 대치로 그리고 불가피한 것 이상으로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칸트의 반()-독재 규칙으로 돌아간다.

 

시민 관료체제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군사적 관료체제

-독재 (그리하여 민주적’) 국가에 대한 이론에서 요점은, 관료체제가 ()-민주적이기 (그 용어를 내가 쓰는 의미로) 때문에, 관료체제에 대한 문제이다. 자기들의 행동과 배임에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많은 작은 독재자들이 관료체제에 속해 있다. 위대한 사상가인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 문제에 대하여 비관적이어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민주주의적 원칙이 인정된다면 ㅡ 그리고 우리가 솔직하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면 ㅡ 이론적으로 그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군사적 관료체제는 정말로 내가 보기에 해결될 수 없다.

공개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군사력이 무한히 성장하는 위험이, 내가 낙관론자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희망을 ㅡ 희망, 즉 이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ㅡ 아무리 요원할지라도 세계 평화에 내가 거는 (그리고 걸어야 하는) 많은 이유 중 한 가지 이유이다. 그리고 내가 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나는, 평화를 위하여, 내가 소위 평화 운동에 반대하는 것을 즉각 설명해야겠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하고, 이미 두 번이나 평화 운동이 침략자를 돕고 격려했다. 카이저 빌헬름 II(Kaiser Wilhelm II)는 평화주의적 이유 때문에, 영국이 벨기에를 보장하는 국가였을지라도 벨기에 때문에 영국이 전쟁을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히틀러는 폴란드에 대하여 동일하게 생각했는데 폴란드를 영국이 보장했다.

 

젊은이의 희망

우리의 서구 민주주의는 ㅡ 그리고 특히 서구 민주주의 중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 ㅡ 미증유의 성공작이다. 이 성공은 많은 힘든 일과 노력, 많은 선의(善意: good will)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창조적 관념의 결실이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수의 행복한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자유롭고, 더 유쾌하고 더 긴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물론 많은 것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매우 중요하게, 우리의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로부터 충분히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고 그렇게 훌륭하거나 나은 삶을 경험할 수 있었던 국가가 없다.

이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것을 나는 또한 안다.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을 안다: 범죄, 잔혹 행위, 마약. 우리가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많은 사람이 실수로부터 배울지라도, 어떤 사람들은 그 실수에 사로잡혀 있다. 저것이 현재 세상의 모습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과제를 부여한다. 우리는 행복하고 만족하며 살 수 있다. 그러나 저것은 소리높이 분명하게 언급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언급되는 것을 듣지 못한다. 대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지독한 세계에 대하여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것을 내가 듣는다.

나의 견해로 그런 거짓말이 퍼지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낙관론의 권리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범죄행위이다. 몇몇 경우 그런 거짓말로 인하여 자살, 마약 복용 혹은 테러가 발생한다.

 

낙관론과 매체의 위험

다행스럽게도, 실상은 검증하기가 쉽다: 서구에 사는 우리가 최고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실상. 우리는 이 실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매체는 이런 면에서 가장 죄를 많이 짓는데 자신이 큰 해악을 낳고 있다고 확신할 필요가 있다. 매체에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설득해야 한다. 실상을 보고 말하고, 그들 자신이 대표하는 숨은 위험을 깨달으라고, 자기-비판적 태도를 개발하라고 (건강 관련 제도가 그렇게 하는 바와 같이), 그리고 자신을 수정하라고 매체에 설득해야 한다. 이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과제이다. 그러나 그들은 큰 해악을 저지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낙관론자로 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9

자유와 지성인의 책임

 

 

미래는 크게 열려서 우리에게,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미래는 당신과 나와 많은 다른 사람이 오늘, 내일 그리고 모레 하는 일에 달려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은 반대로 우리의 관념과 소망에, 우리의 희망과 두려움에 달려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그리고 미래의 열린 가능성을 어떻게 우리가 평가하는지에 달려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책임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때 한층 더 커진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혹은 더 정확하게, 우리에게 아는 것이 거의 없어서 저 적은 것을 없다라고 안전하게 정의(定義)할 수 있는데 이유인즉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할 것과 비교하여 그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 관념을 파악한 최초의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정치가가 현명해야 한다고 ㅡ 자기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정도로 그렇게 현명한 ㅡ 말했다. 플라톤 역시 정치가, 특히 왕은 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소크라테스와 전혀 다른 것을 의미했다. 플라톤은 왕이 철학자여야 하고 왕은 플라톤적 변증법을 (매우 박식하고 복잡한) 배우기 위하여 철학자의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ㅡ 혹은 훨씬 낫게 자기와 같은 가장 현명하고 가장 박식한 철학자가 왕이 되어서 세상을 통치해야 한다는 의미로 ㅡ 말했다. 이 제안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으로 빌려 말하는데, 오해를 낳았다. 왜냐하면 철학자들이 자신들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듣고 흥분했으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정치가에게 요구한 것의 거대한 차이점이 철학적 변증법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하여 그 차이점을 다시 한번 설명하고 싶다. 플라톤에게 정치가는 현명해야 한다라는 표현은 박식한 철학자의 편에서 권력에 대한 권리주장이다; 그리하여 교양인, 지성인 즉 엘리트의 편에서 권력에 대한 권리주장이다. 정반대로, 동일한 표현이 소크라테스에게 정치가는 자신이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그리하여 자기 주장에서 극도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정치가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서 막중한 책임을 깨달아서 자신이 초래할 수 있는 불행을 잘 인식할 것이다. 정치가는 자신이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를 알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가 소크라테스의 충고였다; 너 자신을 알아서 당신이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를 당신 자신에게 인정하라!

저것이 소크라테스의 태도요 소크라테스의 지혜였다.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라! 통상적으로 플라톤주의자는 왕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는 정당의 우두머리이다. 그리고 그의 정당을 자기 외에 누구도 차지하지 않을지라도, 정당들의 거의 모든 우두머리가 ㅡ 특히 공격적 정당과 성공적인 정당의 우두머리들 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주의자들이다; 결국, 우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플라톤이 말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최고의 인간, 최고로 박식한, 최고로 현명한 사람이다.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 이것은 플라톤 정치철학의 근본적 문제이다. 그리고 그의 답변은 가장 현명하고 또한 가장 뛰어난 자! 이다. 첫눈에 보기에 이것은 논쟁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최고로 현명해서 가장 뛰어난 자가 자신은 최고로 현명해서 가장 뛰어난 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명령권을 거부하면 어쩔 텐가? 그래, 저것이 정확하게 소크라테스주의자가 가장 현명해서 가장 뛰어난 자에게 기대하는 것일 터이다. 소크라테스주의자는 또한 자신을 최고로 현명해서 최고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과대망상에 빠져서 현명하지도 뛰어날 수도 없다고 생각할 터이다.

분명히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잘못 언명된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질문은 저 형태로 흔히 반복되고 근본적 해답은 항상 플라톤의 해답과 동일했다. 고대에 답변은 군대가 선출한 황제였는데 이유인즉 그 사람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합법적 왕자였다. 마르크스 또한 누가 권력, 독재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 라고 ㅡ 노동자인가 아니면 자본가인가 ㅡ 물었다. 그의 답변은 계급을 의식해서 선량한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틀림없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안 돼! 그들은 모욕당하는 것을 참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들은 더 이상 쓰레기 같은 인간이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가 대부분은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플라톤적 질문에 또한 답변했다. 그들의 이론에 중세기부터 계속해서 명백하다고 생각되는 답변인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합법적 왕자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민중으로 바꾸는 것이 ㅡ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이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생략되거나 아니면 그 공식은 민중의 은총에 의한 민중이 되는 것을 제외하고 ㅡ 포함되었다. 저것이 이미 고대 로마에서 그들이 언급했던 vox populi, vox D ei(민중의 목소리는 하느님의 목소리이다)’였다.

항상 우리는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플라톤적 질문에 직면한다. 이것은 정치이론에서 여전히 커다란 중요성을 띤다: 합법성 이론에서, 특히 민주주의 이론에서 여전히 커다란 중요성을 띤다. 정부는 합법적일 때 ㅡ 즉, 헌법 지배하에서 정부가 민중 다수나 민중대표 다수에 의하여 선출되었을 때 ㅡ 통치할 권리를 지닌다고 언급된다. 그러나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권력을 차지했음을, 그리고 그를 독재자로 만들었던 수권법(授權法: Enabling Law)이 의회의 다수에 의하여 통과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합법성의 원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합법성의 원칙은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플라톤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우리는 질문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민중 주권(popular sovereignty)의 원칙이 또한 플라톤적 질문에 대한 답변임을 우리가 알았다. 사실상 그 원칙은 위험한 원칙이다. 다수 독재는 소수에게 지독할 수 있다.

44년 전 나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나는 그 저서를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고문으로서 집필했다. 그 저서에서 누가 통치해야 하는가?’라는 플라톤적 질문을 우리는 어떻게 정부를 피를 흘리지 않고 갈아치우는 방식으로 헌법을 제정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질문으로 바꿀 것을 내가 제안했다. 이 문제는 정부를 선출하는 방식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제거하는 가능성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ㅡ 어원적으로 민중 통치를 의미한다 ㅡ 불행하게도 위험하다. 민중 각자는 자신이 통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자신은 민주주의가 사기극이라고 느낀다. 이것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아테네 시대부터 민주주의가 독재체제인 전제정치(tyranny)를 예방하는 헌법에 대한 전통적 명칭이었음을 학교로부터 사람들이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독재체제 즉 전제정치는 우리가 중국에서 다시 한번 목격한 바와 같이 최악의 것이다. 우리는 피를 흘리지 않고 독재체제를 제거할 수 없고, 통상적으로 심지어 피를 흘리고도 제거할 수 없다. 오늘날의 독재자들은 여전히 너무나 강력하다 ㅡ 1944720일 반()-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을 터와 같이.

그러나 모든 독재체제는 비도덕적이다. 모든 독재체제는 도덕적으로 나쁘다. 이것이, 정부가 피를 흘리지 않고 제거될 수 있는 국가 형태로서 이해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도덕적 원칙이다. 독재체제는 국가의 시민을 비난하여 ㅡ 그 시민의 나은 판단에 반대하고 그 시민의 도덕적 신념에 반대하여 ㅡ 시민의 침묵을 통해서만 일지라도 악과 협력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나쁘다. 독재체제는 사람으로부터 도덕적 책임을 앗아가는데 그 도덕적 책임이 없으면 사람은 반쪽 사람이고 백 분의 1의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독재체제는 사람이 자기의 인간적 책임을 지려는 시도를 자살미수로 바꾸어놓는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적어도 페리클레스와 투키디데스와 함께 이미 민중 주권이라기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제정치를 막으려는 시도였음을 우리가 역사적으로 밝힐 수 있다. 대가가 높고, 아마도 너무 높아서 민주주의는 백 년도 안 되어 폐지된다. 대가는, 어떤 시민도 너무 인기를 얻으면 정확하게 그의 인기 때문에 제거될 수 있고 제거되어야 하는 자주 오해되는 도편추방 제도였다. 이런 방식으로 아리스티데스(Aristides)와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와 같은 가장 전문적 정치가들이 추방되었다. 아리스티데스(Aristides)가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를 방해했거나 그의 별칭 정의로운 사람(the just)’로 인하여 아테네 시민이 질투심을 일으켰기 때문에 추방되었다고 의견을 내면 터무니없을 것이다. 저것은 당시 상황이 아니다. 그의 별칭이 아리스티데스(Aristides)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는 것을, 인기가 너무 높았다는 것을 나타냈고, 도편추방의 기능은 정확하게 민중영합주의적(populist) 독재자의 발흥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저것이 그가 추방된 유일한 이유였고 또한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가 추방된 이유였다.

페리클레스(Pericles) 자신은, 아테네 민주주의가 민중 통치가 아니라는 것과 이런 통치는 존재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우리가 투키디데스의 저서에서 읽을 수 있는 그의 유명한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소수의 사람이 정책을 고안할 수 있을지라도, 모든 사람이 그 정책을 틀림없이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모두 통치하고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정부를 판단하는 데 참여할 수 있고 우리는 모두 배심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의 견해로는 저것이 정확하게 선거일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새로운 정부를 합법화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지난 정부에 대하여 재판하는 자리에 앉은 날이다 ㅡ 지난 정부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져야 하는 날.

민중 통치로서의 민주주의와 민중 재판으로서의 민주주의 사이의 차이점이 전혀 순전히 언어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제적 효과도 있음을 나는 이제 간단하게 밝히고 싶다. 이것은, 민중 통치라는 관념이 비례대표에 대한 뒷받침을 초래한다는 사실에서 알려질 수 있다. 여기서 논증은, 모든 여론의 물결인 모든 군소정당이 대표를 내야 해서 민중의 대표가 민중의 거울이고 민중 통치는 가능한 한 폭넓은 실재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시민이 전자 단추를 누르도록만 해서 텔레비전 화면에서 시민의 대표들이 논쟁하는 모든 중요 사안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투표하도록 하는 가공할 제안을 나는 심지어 읽었다. 그 제안은, 민중 통치로서 민주주의라는 관점으로부터 시민의 주도권이 매우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보여야 한다고 또한 언급된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민중 재판으로서 생각한다면 상황은 다소 다르게 보인다. 나의 견해로 정당들의 확산은 매우 나쁜 것이고 선거에서 비례 대표제도 또한 그렇다. 정당들이 쪼개지면 민중의 재판정 앞에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은 연립정부가 생기는데 왜냐하면 절충 이상의 것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재거될 수 있는지도 불확실해지는데 왜냐하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부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 또 다른 작은 연립 정당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정당이 적다면 정부는 통상적으로 다수의 정부이어서 그 정부의 책임을 모든 사람이 분명하게 판단한다. 인구의 견해들이 대의정치에 비례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견해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고 정부에서는 훨씬 더 가치가 없다. 저것은, 반영되어도 원래 반영대로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정부 책임이 실종될 터이다.

그러나 아마도 민중 주권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론은 민중 주권론이 불합리한 이념인 미신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민중이 (혹은 민중의 다수) 잘못할 리도 없고 부당하게 행동할 리도 없다는 것은 권위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 미신이기 때문이다. 이 이념은 비도덕적이어서 거부되어야 한다. 우리는 투키디데스로부터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내가 여러 면에서 찬양하는) 또한 몇 가지 범죄적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섬이자 도시국가인 멜로스(Melos)를 공격하여 (사전 경고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모든 성인 남성을 죽이고 모든 여성과 어린이들을 거대한 노예시장에 판매하려고 내놓았다. 저것이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Republic)의 자유롭게 선출된 독일 의회는 수권법(授權法: Enabling Act)이라는 합헌적 수단을 통하여 히틀러를 독재자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독일에서 자유롭게 선출되지 않았을지라도 강제 합병 후 오스트리아에서 거대한 선거 승리를 따냈다.

우리는 모두 실수에 노출되어 있고 민중이나 인간의 어떤 다른 무리도 또한 그러하다. 민중이 정부를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내가 지지한다면, 그것은 내가 독재체제를 피할 나은 길을 알지 못한다는 유일한 이유 때문이다. 심지어 민중 재판소로서의 민주주의 변형도 ㅡ 내가 옹호하는 민주주의 ㅡ 결점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역설적 익살은 여기서 매우 합당하다: ‘민주주의는, 물론 정부의 모든 다른 형태를 제외하고, 최악의 정부 형태이다.’

그리하여 요컨대 민중 주권으로서의 민주주의라는 관념과 민중 재판소로서의, 즉 제거될 수 없는 정부를 (다시 말해서, 독재체제) 방지하는 도구로서의 민주주의라는 관념 사이의 언어적 차이점이 없어질 따름이다. 그 차이점에 또한 실제적인 함축적 주요 의미가 있다: 그 차이점은 심지어 스위스에도 중요하다. 내가 이해하는바, 교육제도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는, 독재정치를 방지할 필요에 대한 더 겸손하고 현실적 이론 대신 민중 주권이라는 해롭고 이념적 이론을 ㅡ 그리고 저것은 참을 수 없고 도덕적으로 방어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ㅡ 옹호한다.

나는 이제 출발점으로 돌아가고 싶다. 미래는 완전히 열려있다; 우리는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동시에 우리에게 아는 게 거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긍정적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극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같은 가공할 사건을 예방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 정권의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및 희생자들을, 이란에서 아야톨라(Ayatollah) 정권의 희생자들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인들에 의한 희생된 사람들을, 그리고 중국에서 최근에 희생된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언급될 수 없는 그런 사건들을 예방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일도 할 수 있는가? 예방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할 수 있다 이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우리(we)’라고 말할 때 나는 지식인을 관념에 관심을 기울여 독서하고 아마도 또한 글을 쓰는 사람 ㅡ 의미한다. 우리 지식인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우리 지식인이 가장 무시무시한 해코지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념, 원칙, 이론이라는 ㅡ 즉 우리의 작품, 우리의 발명품, 지식인의 발명품 ㅡ 이름으로 저질러진 대량 박멸.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감정 부추기기를 ㅡ 흔히 최선의 의도를 지닌 ㅡ 중단한다면 저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터이다. 저게 우리에게 불가능하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다.

10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이렇게 말한다: ‘살인하지 말라!’ 그 계명에는 거의 도덕성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윤리학을 설명한 방식은 이 핵심 계명의 확대에 지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윤리학은 간단하고 직접적이며 분명하다. 그 윤리학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도 해치거나 상처를 입히지 말고 모든 힘을 다하여 모든 사람을 도우라.

그러나 모세가 석판(the tablets of stone)을 가지고 먼저 시나이산에서 내려와 심지어 10계명을 말하기 전에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그는 사형당할만한 이단인 황금송아지라는 이단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잊고 이렇게 소리쳤다:

 

누가 주님의 편인가? 나에게로 오라!’ [...] ‘이스라엘의 하느님인 주님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 각자는 칼을 옆에 두고 [...] 너의 형제, 너의 친구,

그리고 너희 이웃을 죽여라!’ [...] 그리하여 그날 약 3,000명이 쓰러졌다.

 

(출애굽기, 32: 26-28)

 

저것이 아마도 그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다. 확실한 것은 상황이 ㅡ 성지(the Holy Land)에서도 그다음 여기 서구에서도 특히 기독교가 국교가 된 후에 ㅡ 저런 방식으로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통성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종교적 박해의 가공할 역사이다. 나중에 ㅡ 무엇보다도 17 18세기에 ㅡ 다른 이념적 주제와 신념이 연달아 인용되어 박해, 잔인성 및 공포를 정당화했다: 국적, 인종 혹은 계급이라는 주제; 정치적이거나 종교적 이단.

정통성과 이단이라는 관념은 악덕 중에서도 가장 사소한 악덕을 ㅡ 우리 지식인이 특별히 민감한 악덕인 우리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학식이자 지적 허영심인 거만함 ㅡ 숨기고 있다. 이것들은 사소한 악덕으로 잔인성만큼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심지어 잔인성도 우리 지식인들 사이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잔인성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몫을 다했다. 아우슈비츠 사건 몇 년 전에 이미 늙은 사람과 병든 사람을 죽여 버리던 나치 의사들을 ㅡ 혹은 소위 유태인 문제에 대한 최종적 해결책을 ㅡ 생각할 필요만 우리에게 있다.

매번 비겁, 추정 혹은 자만심 때문에 가장 무시무시한 짓을 저지른 사람이 우리이자 지식인들이었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책임을 지는 우리는, 위대한 프랑스 사상가 쥘리앙 방다(Julien Benda)가 표현한 바와 같이, 정신적 배신자들이다. 방다가 밝힌 바와 같이 우리는 민족주의를 발명해서 퍼뜨렸다; 우리는 가장 어리석은 유행을 뒤쫓았다. 우리는, 두드러진 인상을 남긴다면, 스스로 전시하여 이해될 수 없는 언어를 ㅡ 우리가 헤겔식 교사들로부터 물려받았고 모든 헤겔주의자를 함께 묶는 박식하고 인공적 언어 ㅡ 말하기 좋아한다. 그런 것이 언어의, 독일어의 타락인데 그 언어로 우리는 서로 다툰다. 지식인과 합리적인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우리가 흔히 어리석은 것을 말하여 어부지리를 얻는 것을 알지 못하게 막는 것은 이 타락이다.

과거에 우리가 저지른 해악은 참으로 끔찍하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자유롭게 말하고 서술하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는 아마도 더 책임을 져야 했겠지?

나는 예전에 플라톤의 이상향과 관련하여 지구상에서 천국을 만들려고 시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지옥만을 가져왔다고 글을 썼다. 그러나 많은 지식인이 히틀러가 만든 지옥에 매우 열정적이었다. 유명한 스위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히틀러가 만든 지옥을 독일 영혼의 분출로서 해석했다. 당시 그는 스위스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죽은 후, 그는 자기가 서술한 것을 잊고 독일 영혼에 깊이 뿌리박은 사악함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딜라노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는 자신들이 체결한 대서양 조약(Atlantic Pact)을 통하여, 면전에 닥친 죽음을 보고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들을 희생했던 젊은 공군 조종사들이 1940-1941년 동안 영국 전투에서 놓은 토대로 새로운 세계를 세웠다. 히틀러에게 승리한 이래, 지옥에서 뒹굴지 않고 서유럽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최고로 훌륭하고 최고로 정의로운 세상인 유럽의 평화라는 천국에서 살았다. 그리고 스탈린이 우리와 힘을 합쳤다면, 우리는 오늘날 ㅡ 국제연합 덕분으로 ㅡ 유럽과 북미에서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평화를 누릴 터이다; 마셜 플랜(Marshall Plan)은 전-세계적 플랜이 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새로운 복지가 방금 겨우 확보되고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었을 때, 거대한 소음이 시작되고 지식인들은 우리가 사는 사악한 시대, 우리 사회, 우리 문명, 우리 아름다운 세계에 저주를 퍼부었다. 가공할 과장이, 우리가 아마도 이익을 추구하면서 초래했던 파괴와 악행에 관하여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때 그렇게 아름다웠던 세상에서 남은 것을 가능한 한 급속하게 파괴하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생명체가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은 참이다. 내가 전제하건대 우리는 조만간 모두 죽을 것이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 항상 위험이 환경에 대해서도 존재했다.

우리의 태양계가 형성된 후 처음으로 자연과학, 기술과 산업으로 인하여 우리가 환경에 대하여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과학자와 기술자는 이 목표를 염두에 두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자연을 파괴한다고 비난받는다. 그러는 동안 장려한 취리히 호수(Lake Zurich), 제방 사이에 시카고시가 위치한 거대한 미시간호(Lake Michigan)는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큰 소동 없이 안전해졌다. 이 호수들에 사는 생명체는, 생명체가 태양계에 나타난 이래 생명체가 처음 시도한 모험에서, 과학과 기술과 산업의 도움을 받아서 구조되었다.

세계는 통제하기 쉽지 않다. 모든 동물의 종, 모든 식물의 종, 모든 종류의 박테리아가 종(: species)의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아마도 우리가 끼치는 영향은 과거보다 더 크지만 새로운 바이러스, 새로운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나 박테리아성 전염병은 여전히 몇 년 사이에 우리를 멸종시킬 수 있을 터이다.

자연은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 또한 민주주의도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처칠은 예전에 민주주의는 모든 다른 형태를 제외하고 최악의 정부 형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처칠이 명시하지 않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 정부는 항상 쫓겨날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정부 자체에도 민주주의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형태이다. 정부는 당신과 나에게 스스로에 대하여 설명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그로 인하여 정부가 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우리는 배심원단이고 배심원이지만, 지금 때때로 보편적으로 고백되는 무신념에 의하여 우리가 미혹에 빠질 위험이 있다. 헤겔의 언제나 위험한 시대정신(Zeitgeist)은 심지어 진실이 우리 눈앞에 있을 때도 참을 거짓을 바꾸는 유행성 (그리고 거의 항상 어리석은) 이념이다 ㅡ 이 모든 것은 배심원으로서, 배심원단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를 미혹에 빠뜨린다.

내가 그랬던 바와 같이 히틀러도 비현실적 교수들로부터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그들이 믿었던 모든 것을 배울 기회를 가졌다: 세계는 독일 정신에 의하여 세계의 해악으로부터 구원될 터여서 독일, 독일, 모든 것 위에서, 세계의 모든 것 위에서(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 über alles in der Welt)였다. 그래서 히틀러는, 많은 다른 가난한 젊은이와 함께, 유럽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두 번의 독일 전쟁에서 죽은 수백만의 용감한 젊은이들을 믿어서 그들과 함께 훨씬 더 많고 용감한 적()들을 무덤 속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독일 젊은이들이 독일의 위대함과 우세함을 위하여 최고 전쟁지도자인 카이저(Kaiser)를 위하여 그리고 총통(Führer)을 위하여 싸웠던 것과 같이, 그 적()들은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유례없이 용감하게 싸웠다.

오늘날 우리는 진실을 신중하게 살펴볼 수 있고 살펴보아야 한다. 독일의 이념은, 위대하고 용감한 독일 철학자 프리츠 피셔(Fritz Fischer)가 밝힌 바와 같이, 망상이었다. 훨씬 더 간략하게 말해서, 독일의 이념은 거짓말이었다. 서구의 이념은 ㅡ 그 이념이 받는 모든 명예훼손과 흔히 벌어지는 기만적 남용에도 불구하고 ㅡ 진리였다. 서양은 평화를 위하여 싸워서 유럽에서 ㅡ 인류의 역사 시작에서부터 전쟁에 의하여 허송세월한 ㅡ 뿐 아니라 서양 유럽인들이 영향을 미쳤던 거의 다른 모든 곳에서도 평화를 이룩했다.

그러나 무책임한 지식인들은 우리 서양 세계에서 사악함만을 보았다. 그들은, 우리의 세계가 불의하여 불가피하게 쇠퇴할 것이라고 가르치는 새로운 종교를 창설했다. 그들은 독창적이 되어서 증거를 거슬러 말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오즈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의 저서 서구의 쇠퇴(The Decline of the West)를 통하여 그 종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증거뿐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뒤엎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는 지식인들을 계속해서 비난하고 싶지 않다. 인류를 위하여 그리고 진실을 위하여 그들에게 책임을 수용하라고 나는 요구하고 싶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로 인하여 그들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심지어 자유세계를 모욕하여 자유세계를 사악한 세계로 색칠할 수 있다. 저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자유지만 진실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거짓말할 권리가 있을지라도 거짓말을 퍼뜨리면 비도덕적이다. 게다가 그것은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무책임하여 처칠과 루스벨트, 전쟁영웅들과 마셜 플랜(Marshall Plan)이 성취한 위대한 목표를 위험에 ㅡ 그들을 불신하게 만들어 훌륭한 것을 사악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어 ㅡ 빠뜨린다.

오늘날 러시아인들도 우리가 만든 세상과 우리가 만든 평화를 인정하기 시작했음을 나는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 싶고, 훨씬 폭넓은 평화가 유토피아적도 아니고 가능성의 한계를 넘는 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싶다. 우리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 이 가능성이 천국과 지옥이라는 거짓말에 의하여 삭감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렇다면 서양에서 우리가 천국에서 ㅡ 물론 첫 번째 천국이지만 아직 최고의 천국은 아니다 ㅡ 산다. 우리가 사는 천국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세상을 모욕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되는데 그 세상은 특히 유럽에 관한 한, 존재했던 단연코 최고의 세상이다. 진실은 우리가 이미 성취된 개혁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ㅡ 이것은 미국에서 최고로 그렇다 ㅡ 것이다.

우리는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고 관용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이것은 전선의 양편에 있는 군인들에 의하여 밝혀졌다. 그리하여 지구상의 평화를 위하여 기본적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이 우리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 요건이다.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처칠과 루스벨트의 꿈을 이룩하는 것이 ㅡ 유럽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ㅡ 가능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래 최초로 러시아인들은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위대하고 용감하지만 외로운 인물이었던 사하로프는, 여전히 너무 많은 권력을 쥔 독재자 고르바초프(Gorbachev)를 우리가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하로프는 또한 소련에 붕괴가 임박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붕괴를 원할 수 없는데 그런 붕괴는 소련 내부에 거대한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고 평화에 커다란 위협이 될 터이다. 그런 붕괴는 아마도 군사 독재체제를 ㅡ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아마도 최고는 아닐지라도) 육군, 해군 그리고 공군을 지닌 독재체제 ㅡ 낳을지도 모른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ㅡ 사하로프만큼은 아닐지라도 러시아를 잘 아는 ㅡ 뉴욕 서평(the New York Review of Books)에 기고한 주요 기고문에서 이 모든 위험 요소를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가 실제로 서구와 협력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인들은 어디에 천국이 있고 어디에 지옥이 있는지 우리보다 더 잘 안다.

그런 협력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우리의 생각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것과 자유에 대한 조건에서 획득될 수 있다고 우리가 밝힌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후에만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이룩했는지 우리가 자문하여, 러시아인들이 그들의 군사력을 감축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러시아인들에게 우리의 도움을 제시할 수 ㅡ 이 모든 것을 가능한 모든 예방책으로써 ㅡ 있다.

이 가능성은 우리 손이 미치는 거리 안에 있다; 그 가능성으로 인하여 우리 지식인은 궁극적으로 객관적인 진실을 보아야 하고 이전처럼 지속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뒤바꾸어 놓아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아는 것이 없다는 것과 ㅡ 혹은 거의 없다는 것 ㅡ 고르바초프(Gorbachev)가 우리와 동일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평화에 심지어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기 위하여, 우리는 이념을, 게다가 특히 평화에 그렇게 위협이 되는 일방적 무기 감축이라는 이념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바퀴발레처럼 우리 앞에 놓인 터전을 신중하게 더듬어야 하고 매우 겸손하게 진실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것을 아는 예언자의 역할을 되뇌려고 시도하는 일을 우리가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자신이 변해야 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