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
그렇다면 현재의 문제로 방향을 바꾸자 ㅡ 민주주의의 문제. 공산주의의 붕괴이래, 우리에게 큰 집중(convergence)이 생겼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에 관한 어떤 기본적 원칙에 합의할지라도, 민주주의는 여전히 문제, 모순과 난제로 가득 찬 분야이다. 사실상 귀하 자신은 민주주의가 지닌 역설에 대하여 매우 자주 언급한다. 그 역설은 무엇인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요점이다.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그리스어의 문자적 의미인 ‘대중의 지배(rule of the people)’로 수용된다면, 우리는 본질적 문제로부터 이탈한다. 이유인즉 민주주의의 주요점은 독재체제 예방, 다시 말해서 자유 부재 예방, 법치가 아닌 통치의 형태 예방이기 때문이다. 저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이미 고대 시대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란 대중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재체제의 위험 예방임을 알고 있었다. 저것이 약 80년 동안 그들이 도편추방이라는 관행을 도입했던 이유이다. 그들은 인기를 차지하여 다수에 의하여 권력을 쥘 대중적(popular) 폭군이나 독재자, 대중영합주의자(populist)의 ㅡ 우리가 오늘날 지칭할 것과 같이 ㅡ 위험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도편추방의 기능은 너무 대중영합적인 사람은 누구나 추방됨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는 범죄자로서 간주되지 않았다: 그는 범죄행위를 저질러서 기소되지 않았다. 도편추방은 누군가가 나라 안에서 너무 인기를 얻는 것을 방지하는 예방책이었을 따름이다. 투키디데스(Thucydides)의 저술에서 페리클레스(Pericles)의 유명한 현충일 연설을 당신이 읽으면 저것이 실제로 위급한 쟁점이었음을 안다.
이제 처칠(Churchill)이 예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모든 다른 형태의 정부를 제외하고 최악의 정부 형태인데, 모든 다른 형태의 정부는 훨씬 더 나쁘다. 민주주의는 특별히 훌륭한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훌륭한 것은 틀림없이 민주주의 자체가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 출현한다. 민주주의는 독재체제를 예방하는 수단이다 ㅡ 그게 전부이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여 범인으로 판명되지 않는 사람은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과 기타 등등이 또한 참이다. 이 모든 원칙은 법치의 일부여서 민주주의는 법치를 보전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언급될 것이다. 그러나 다수가 항상 옳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니다; 다수는 커다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다수는 과거에 상당히 자주 그랬던 바와 같이 심지어 투표로 독재체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에서 (다수를 통하여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지 않았던 독일과 달리) 결정적 순간에 90% 이상이 히틀러에게 투표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폭군체제와 독재체제를 예방하기 위하여 정치적 갈등을 규제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정치적 갈등에서 우리는 항상 좌파와 우파를 발견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현대의 정치적 갈등의 영구적 속성이 아닌가?
나는 이미 저것에 답변했다.
귀하는 이념적 갈등을 초월할 시간이 왔다고 말함으로써 답변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반(反)-공산주의 사이의 이념적 대립이 끝난 것으로서 혹은 거의 끝난 것으로서 간주될 수 있음을 고려하여, 우파와 좌파의 역할에 대하여 귀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귀하가 말하지 않았다.
저것에 대한 나의 답변은 내가 이미 말한 것에 함축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좌파의 원래 기능은 약자를 지지하는 것이었고, 저것은 훌륭했다. 그러나 그 후 이 기능은 왜곡되었다. 좌파는 이념적 이유로 심지어 노동자들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닌 때 소위 노동을 지지했고 노동자들을 지지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미래에 좌파가 어떤 역할을 가져야 한다고 귀하는 생각하는가?
당신은 주위를 둘러보고 약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자문하라. 오늘날 어린이들이 약자의 유일하게 큰 계급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요컨대, 아이들 앞에서 성인들이 지금 범죄를 저지른다. 저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상황이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 저질러지는 사악하고 범죄적인 모든 것은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모든 동물은 본보기를 통하여, 자신들의 환경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모방함으로써 배운다는 것을 우리가 잊는다. 시간이 남아 있을 때 행동하려고 노력하자.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97년, 43-45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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