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목적은 설명을 점점 더 개선하는 것이고 그 사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론이 ㅡ 새로운 문제의 출현이 뒤따르고 반대로 새롭고 아마도 혁명적 이론이 뒤따르는 반증에 대한 ㅡ 과학역사가에게 가장 큰 흥밋거리였는데 왜냐하면 나의 이론이 역사가가 역사를 바라보아야 하는 방식에 대한 수정을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했다; 특히 당시 (1934년) 과학자 대부분이 과학의 귀납론적 이론을 신뢰했기 때문에 과학역사가에게 가장 큰 흥밋거리였다. (그들은 이제 대부분 이것을 포기했다 ㅡ 심지어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나의 이론이, 정확한 정도까지, 틀림없이 과학자와 역사학자의 흥미를 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 많은 사람이 ㅡ 나는 그들 대부분이라고 믿는다 ㅡ 세상에 대한 나의 실재론적 관점을 공유하고 또한 내가 이해하는 바와 같이 과학의 목적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점점 개선된 설명을 성취하는 과학의 목적.
몇몇 사례가 유용할 것이다.
목록이 여기에 제시되는데 반증이 혁명적 이론 재구축을 낳았던 흥미로운 사례들이다. 이 목록은 주로 1930년대와 나의 뉴질랜드 시절도 돌아가는데 당시 나는 물리학 역사로부터 사례를 들어 나의 이론을 예시하면서 뉴질랜드 왕립협회의 크라이스트처치 분회(the Christchurch branch of the Royal Society of New Zealand)에서 일련의 강의를 수행했다. 나는 다양한 장소에서 이 경우 중 몇 가지에 관하여 글을 썼다; 그리고 이 목록이 나의 다양한 글에서 내가 언급한 오류판정의 모든 경우를 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항상 주로 나의 기억에 의존했다: 나 자신이 과학역사가라고 나는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급한 다른 작업의 압력 때문에 추가 사례를 찾아서 물리학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시간을 나는 갖지 못했다: 나는 수백 가지 사례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제시된 목록이 ㅡ 반증의 사례들로서 이해될 수만 있는 몇 가지 두드러진 사례의 목록 ㅡ 충분히 인상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과학이 경험적 반증을 수용했을 때 과학이 된다고 나는 심지어 제시하고 싶다; 그러나 실제로 나는 이것을 진지한 가설로서 제안하지 않는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경우가 반대 사례가 될 것이다: 경험적 반증에 의하여 착수되지 않은 위대한 과학이론.)
거의 무작위로 선택된 사례의 목록
(1) 파르메니데스-레우키포스(Parmenides-Leucippus): 레우키포스는
운동의 존재(the existence of motion)를, 세상이 가득 차 있고
움직임이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에 대한 부분적 반증으로서
간주한다. 이것은 ‘원자와 공동(atoms and void)’ 이론을 낳는다.
이것은 원자론의 토대이다.
(2)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을 반증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가속 이론의 토대가 생겨나고 나중에 뉴튼의 힘 이론이 생겨난다. 또한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들과 금성의 상(相: phases)을 프톨레마이
오스(Ptolemy)에 대한 반증으로서 그리하여 코페르니쿠스의 반대
이론에 경험적 증거로서 간주한다.
(3) 토리첼리(Torricelli) (그리고 그의 선배들): ‘자연은 진공을 혐오한다
(nature abhors a vacuum)’에 대한 반증. 이것은 기계론적 세계관을
대비한다.
(4) 당시까지 주장된 (심지어 티코[Tycho]와 갈릴레오에 의하여) 원운동 (circular motion) 가설에 대한 케플러의 반증은 케플러의 법칙과
그리하여 뉴튼의 이론을 낳았다.
(5) 라부아지에(Lavoisier)의 플로지스톤 이론(phlogiston theory) 반증은
현대 화학을 낳았다.
(6) 뉴튼의 빛 이론 오류판정 (영[Young]의 이중-슬릿 실험[two-slit experiment]). 이것으로 인하여 영-프레넬(Young-Fresnel)의 빛
이론이 탄생했다. 움직이는 물속에서 빛의 속도는 또 다른 반증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특수상대성이 마련되었다.
(7) 에르스테드(Oersted)의 실험은 패러데이(Faraday)에 의하여 뉴튼의 중심력(central forces)이라는 보편적 이론에 대한 반증으로서 해석되어 패러데이-맥스웰(Faraday-Maxwell)의 장이론(場理論: field theory)을
낳는다.
(8) 원자론: 원자의 원자성은 톰슨 전자(Thomson electron)에 의하여
반증된다. 이것으로 인하여 물질의 전자기 이론이 탄생하며 조만간
전자론이 발흥한다. 아인슈타인과 바일(Weyl)이 중력과 전자기학의
일원론적(一元論的[monistic]: ‘통합된[unified]’) 이론을 시도한 것을
참조하라.
(9) 마이켈슨(Michelson)의 실험은 (1881-1887-1902년, 기타 등등)
로렌츠(Lorentz)의 움직이는 물체에서 전기적 및 시각적 현상론 실험 (Versuch einer Theorie der elektrischen und optischen Erscheinungen in bewegten Körpern)을 (1895년: ∬89 참조)
낳는다. 로렌츠의 저서는 아인슈타인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했는데
아인슈타인은 1905년 자신의 상대성 논문의 ∬9에서 두 번 그 저서를
언급했다. (아인슈타인 자신은 마이켈슨의 실험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간주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은 (a) 로렌츠가 세운
형식주의(formalism)의 발전이며 (b) 저 형식주의의 다른 ㅡ 다시
말해서 상대주의적 ㅡ 해석이다. 로렌츠와 아인슈타인의 해석 사이에서 선택할 결정적 실험은 지금까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원격작용을
채택해야 한다면 (비-국소성[non-locality]: 후기의 III권 양자론과
물리학에서 분열(Quantum Theory and the Schism in Physics),
서문 1982를 참조하면 우리는 로렌츠에게로 돌아가야 할 터이다.
부언하면 물리학자들이 마이켈슨의 실험이 지닌 중요성에 관하여 어떤 합의에 이르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나는 오류판정이 통상적으로 즉각 수용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앞 절 참조) ㅡ 심지어 오류판정이 잠재적
오류판정으로서 즉각 인정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10) 뢴트겐(Roentgen)과 베크렐(Becquerel)의 ‘우연한 발견’이 특정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지닌) 반증했다; 특히 베크렐의 기대. 그 발견은 물론
혁명적 결과를 낳았다.
(11) 빌헬름 빈(Wilhelm Wien)의 (부분적으로) 성공적인 흑체복사론(theory
of black body radiation)은 (부분적으로) 또한 매우 성공적인 제임스 진즈 경(Sir James Jeans)과 레일리 경(Lord Layleigh)의 이론과
상충했다. (앞 절 참조.) 레일리와 진즈의 복사 공식을 루머(Lummer)와
프링스하임(Pringsheim)이 반증함으로써 빈(Wien)의 저술과 함께
플랑크(Planck)의 양자론이 탄생했다 (과학적 발견의 논리, 108쪽 참조.).
이것에서 플랑크는 자신의 이론인 엔트로피 법칙의 절대주의적 해석이,
볼츠만(Boltzman)의 해석과 유사한 확률론적 해석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반증한다.
(12) 필리프 레나르트(Philipp Lenard)의 광전자 효과에 관한 실험은,
레나르트 자신이 주장했던 바와 같이, 맥스웰의 이론으로부터 기대될
수 있던 것과 상충했다. 그 실험은 아인슈타인의 양광자론(theory of
(light-quanta 혹은 photons)을 (물론 또한 맥스웰과 상충했던)
낳았고 그리하여 훨씬 뒤에 입자-파동 이원론을 낳았다.
(13) 마흐-오스트발트(Mach-Ostwalt) 물질의 반-원자론적이고 현상주의적
이론(the Mach-Ostwald anti-atomistic and phenomenalistic theory
of matter)에 대한 반증: 1905년 브라운운동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논문은 브라운운동이 이 이론에 대한 오류판정으로서 해석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이 논문은 분자와 원자의 실재를 확립하는
데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14) 원자의 소용돌이 모형(the vortex model of the atom)에 대한 러더포드
(Rutherford)의 반증. 이것은 곧바로 보어(Bohr)의 1913년 수소
원자론을 낳았고 그리하여 종국적으로 양자역학을 낳았다.
(15) 화학적 원소가 인위적으로 변할 수 없다는 (비록 그 원소들이 자발적으로
분해할지라도) 이론에 대한 러더포드의 반증 (1919년).
(16) 보어(Bohr), 크라머스(Kramers) 그리고 슬레이터(Bohr, Kramers
and Slater)의 이론 (과학적 발견의 논리, 250, 243쪽 참조.): 이
이론은 콤튼(Compton)과 사이몬(Simon)에 의하여 반증되었다.
그 반증으로 인하여 거의 즉각적으로 하이젠베르크-보른-
요르단(Heisenberg-Born-Jordan)의 양자역학을 낳았다.
(17) 자신의 (그리고 드 브로이[de Broglie]의) 이론에 대한 슈뢰딩거
(Schrödinger)의 해석은 물질파동의 통계적 해석에 의하여 반증된다
(예를 들어 데이비슨[Davisson]과 저머[Germer]의 실험 및 조지
톰슨[George Thomson]의 실험에 의하여).
(18) 앤더슨(Anderson)이 양전자(陽電子: positron)를 발견하여 (1932년)
많은 것이 반증된다: 두 가지 기초입자의 ㅡ 양성자와 전자 ㅡ
이론이 반증된다; 입자 보존이 반증된다; 그리고 디랙(Dirac)이 예측한
양전하 입자에 (그는 양전하 입자들이 양성자라고 생각했다)
대한 자신의 독창적 해석이 반증된다. 1930-31년경 어떤 이론적
업적이 그리하여 입증된다. (몇 가지 세부사항에 관하여 노우드
러셀 핸슨[Norwood Russell Hanson]: 양전자 개념[The Concept
of the Positron], 1963년 참조; 탁월한 책이다.)
(19) 아인슈타인과 바일(Weyl)에 의하여 상술되고 아인슈타인에 의하여
자신의 생애 마지막까지 함축적으로 주장된 ㅡ 그리고 아무튼
추구된 ㅡ (그가 통합장 이론을 두 가지 장[場: fields]인 중력과
전자기 이론으로서 해석했기 때문에) 물질의 전기 이론(the
electrical theory of matter)은 중성자(neutron)와 유카와
(Yukawa)의 핵력(nuclear forces) 이론에 의하여 반증된다:
유카와 중간자(the Yukawa Meson). 이것으로 인하여 핵 이론이
발흥한다.
(20) 패리티 보존(parity conservation)의 반증. (앨런 프랭클린
[Allan Franklin],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Stud. Hist. Philos.
Sci.], 10, 1979년, 201쪽 참조.)
ㅡ 칼 포퍼,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년, xxv-xxx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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