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
한국에 다녀온 한 미국인 친구는 가장 이색적인 것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사람들이 다 똑같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음주운전 검사 장면이다. 한국인들에게 ‘다양성이 부족하다’는데,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인종을 접하며 자연스레 다양성을 체득하는 미국인과 다 커서 의식적으로 다양성을 이식하려는 한국인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그런데 미국에선 다양성이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한국보다 훨씬 더 심각한 소득불평등 상황을 겪고 있지만, 갈등은 덜하다. 인도식 운명론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만, 소득불균형마저도 ‘그는 그, 나는 나’라는 사고가 영향을 끼친 듯하다. 그러니 ‘한국인들도 미국인처럼 여유를 가져라’고 하는 게 옳은 일일까?
미국에 살면서 느낀 또다른 하나는 미국인들이 매우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황무지에서 ‘나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했던 선조들의 피가 녹아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을 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알지도 못했지만 “한마리 아니냐”며 확률을 들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미국은 ‘위험 감수’(risk taking) 사회다. 위험성을 줄여 불편하게 살기보단, 위험을 감수하고 편하게 살기를 원하는 쪽이다. 미국 스키장을 가면 양쪽 귀퉁이에 안전울타리를 설치해 놓은 곳이 많지 않다.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스키장이 워낙 커 안전울타리를 촘촘히 설치할 수 없다. 대신 워낙 넓어 일부러 귀퉁이로 가지 않으면 떨어질 가능성이 작다. 귀퉁이로 가 떨어지면 ‘자기 책임’이다. 이를 좁은 한국 스키장에 적용할 순 없다.
음주운전 검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미국인 친구는 “한 명의 음주운전자를 색출하기 위해 수백, 수천 명이 차를 세워야 한다”며 “매우 잘 훈련된(disciplinary) 사람들 같다”고 했다. 음주운전 사고를 감수하고서라도 그 불편을 겪지 않는 쪽을 미국인들은 택한다. 이런 ‘독립성’은 정부에 대한 기대도 낮춘다. “국민을 성공시키겠다”, “행복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식의 거창한 구호보다 “세금을 깎아주겠다”, “의료보험료를 내리겠다”는 식의 약속이 더 소구력이 큰 이유다. ‘메시아 대통령’을 기다리지도,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도 않는다. ‘내가 스스로 사는데 귀찮게 말라’는 게 공화당이요, ‘내가 스스로 살지만, 힘드니까 조금 도와달라’는 게 민주당이다. 이를 한국에 적용해 ‘미국인처럼 스스로 살겠다는 마음을 가져라’고 하는 게 옳은 일일까?
경제부에서 자동차업계를 취재할 때, 산지가 많은 한국은 코너링 좋은 소형차 위주의 유럽형이 더 맞는데, 장거리 운전에 적합한 서스펜션(승차감)과 대형차 위주의 미국형 모델이 먼저 도입된 게 은근히 아쉬웠다. 한국의 사회모델도 거대한 영토, 풍부한 자원,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이 아닌, 유럽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엉뚱하게 미국에서 해본다.
사족. 워싱턴에서 버지니아주로 향하는 66번 고속도로는 오후 4시부터 6시30분까지 ‘나홀로 차량’은 진입금지다. 이때가 퇴근시간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떠나면서, 그래도 가장 닮고 싶은 모델 하나가 이 ‘저녁이 있는 삶’이다.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