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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과 조국의 대화 - 중 수사당국, 우리 조직 와해 시도…전기봉 광범위하게 사용

이윤진이카루스 2012. 8. 2. 15:09

정치

국방·북한

“중 수사당국, 우리 조직 와해 시도…전기봉 광범위하게 사용”

등록 : 2012.08.02 08:30 수정 : 2012.08.02 10:18

 

중국에 114일간 억류됐다 풀려난 북한 민주화 운동가 김영환씨(오른쪽)가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9층 옥상 정원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조국의 만남 ⑫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같은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로, 1980년대 주체사상의 전파자였으나 비밀월북 뒤에는 열렬한 북한민주화 운동가로 변신한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을 만났다. 80년대 주체사상을 비판하며 북한 인권 문제의 존재와 해결을 강조했던 당사자로, 그의 변신을 접하며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북한민주화운동을 벌이다 고문까지 받고 돌아온 것을 계기로 20여년 만에 만나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patriamea

 -중국에서 고생 많았지. 정말 오랜만이네.

 “90년 법대에 복학했을 때 대학원 조교를 하고 있던 조 교수를 만난 이후 처음이네.”

 -무슨 죄목으로 중국에서 체포되었지?

 “나한테 죄목을 알려주지 않았어. 구치소로 이감되고 이틀 뒤인가 교도관의 컴퓨터를 훔쳐보니 ‘국가안전위해죄’라고 되어 있더라. 교도관이 나에게 죄목을 말해준 적도 없었어. 외국에서 시작하여 중국에 전개되고 있는 운동조직에 중국인이 가입하면 ‘국가안전위해죄’에 해당하고, 외국인이 가입해도 그 죄에 해당해.”

 -중국 당국은 고문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체포된 후 묵비권을 행사했어. 나흘째 되는 날 손을 뒤로 하여 수갑을 굉장히 세게 채워놓고 식사나 물 제공 없이 11시간을 있었어. 그 후유증으로 이후 한 달 동안 손 일부가 마비되었고 감각이 없었지. 내가 누군지 알게 되자 고위 간부가 와서 진술을 하라고 설득하고 협박했어. 이 과정에서 단둥 안전국 책임자 등이 북경(베이징)으로 가서 협의하고 왔다는 말을 들었어.”

 -그래도 묵비하자 본격적인 고문이 시작되었다는데….

 “4월10일, 체포된 지 13일째 되는 날 오전부터 15일까지 6일간 잠 안 재우기 고문이 시작되었어. 그리고 가로·세로·높이 25㎝ 크기의 작고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40~50시간 연속으로 앉아 있게 했어. 그 상태로 기진맥진해 꾸벅 졸게 되지만 20분 이상은 잘 수가 없었어.”


체포된 지 나흘째 저녁부터 11시간
물도 안주고 수갑채우고 서있게 해
25㎝크기 작은의자 앉게 한 뒤
40~50시간 연속 잠안재우기 고문도

 -우리나라 공중목욕탕에 있는 의자 같은 것 말이지?

 “조금 더 튼튼하게 만든 거야. 이 사람들이 설정한 ‘디데이’는 나흘째 되는 날이었던 거 같았어. 나흘째 되는 날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11시간 동안 수갑을 뒤로 채우고 서 있게 했어. 과거 우리나라 안기부에서 수사를 받을 때 4일간 잠을 안 재웠어. 중국 구치소에 가서 내가 있던 방에 나 빼고 중국인 일반수가 24명 있었는데, 보통 3일 정도 안 재운다고 하더라.”

 -이어서 전기봉 고문이 시작되었다는데….

 “4월15일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복면을 씌우고 혈압과 심전도 검사를 하더라. 구타와 전기고문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체크한 거 같아. 한 시간 정도 지난 다음 수사책임자가 들어와서 진술하겠느냐 물어봐서, 안 하겠다고 했더니 세 사람이 들어와서 16일 새벽까지 구타와 전기고문을 했어. 조사 과정에서는 북 인권단체의 사이트에 내가 올렸던 비공개 글 등의 자료를 중국 당국의 조사요원이 제시했지. 해킹을 해서 자료를 확보한 것 같았어.”

 -우리나라 권위주의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 정부는 부인하고 있어.

 “중국 수사당국은 정치범만이 아니라 일반범에 대해서도 전기봉을 광범하게 사용하는 것 같아. 구치소 우리 방에 있던 사람 중 3분의 1이 과거 또는 최근에 전기봉 고문을 당했다고 해.”


복면 씌우고 심전도 검사 하더라
책임자 들어와 진술하겠느냐 물어
안하겠다 했더니 세 사람 들어와
다음날 새벽까지 구타…전기고문…

 -우리나라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화운동가를 잔혹하게 고문함은 물론 ‘잡범’들도 마구 팼던 것과 똑같구먼. 북한 당국이 이번 일에 연루되었다고 보나?

 “이번 사건의 발단은 북한 보위부가 이번에 잡힌 4명 중 한 명이 접촉한 사람을 검거했고, 그 사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중 한 명이 나온 거야. 중국 안전국은 북한이 당신들을 납치 또는 테러할 징후가 있어서 보호 차원에서 검거했다고 하는데, 말이 안 돼. 신문을 받으며 보니 최소 한 달에서 세 달 정도 우리를 미행하고 감청했더라. 우리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한 수사였다.”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로 체포된 것인데, 국민들은 실제 영환이 중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하고 있어.

 “북한 인권에 대한 정보조사, 탈북자 지원 등의 활동을 했어. 북한 내부에서 민주화를 추구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다면 지원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사례가 있었는지는 확인해주기는 좀 그러네.(웃음)”

 -중국에서 전개한 북한민주화운동에 남쪽 국정원의 도움을 받지 않아?

 “우리가 북한 사람을 자주 만나니까 이 사실을 국정원에 통보해야 해. 매번 만날 때마다 통보할 수는 없고, 번거롭기도 하고 활동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포괄적으로 어떠어떠한 활동을 한다고 통보해. 그러면 우리에 대한 북쪽의 납치, 테러 등에 대한 정보를 알려달라고 요청해. 구체적인 정보를 알려준 적은 없고, 북에서 테러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 특공대가 중국에 파견됐다, 중국 당국이 탈북자 등을 검거한다 등의 정보가 있으니 유의하라는 점은 알려줬어.”

 -영환이 쓴 <포스트 김정일>을 보면 ‘자발적 민주화’를 지지한다고 했는데, 이는 ‘체제붕괴’의 다른 표현 아닌가?

 “이론적으로만 보면, 북한 발전을 위하여 가장 혼란이 적은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야. 북한 당국이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해서 중국과 같은 길을 걷는 거지. 그러나 그렇게 될 현실적 가능성은 1%도 안 돼. 따라서 현실적인 가장 큰 빠른 길은 체제붕괴야.”

 -결론적으로는 북한의 체제붕괴를 추구하겠다는 것이잖아.

 “다른 현실적인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지지할 거야.”

 -북한 내부에 자생적·자발적 민주화운동이 존재해? 영환의 활동은 외재적이고 주입식 아냐?

 “내부에 조직이 있어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면 외생적으로 보기 어렵지 않나? 지금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 수를 합하면 최소 30만, 많으면 100만명이 될 거야. 그중 95%는 억울하게 거기에 온 사람이지만, 5% 정도는 반체제활동을 한 사람이겠지. 물론 조사한 바는 없어. 북한은 고도로 통제된 사회라서, 전국적으로 조직화된 반체제운동이 어려워. 많아 봐야 20~30명 단위 정도가 아닐까 싶어.”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이루어진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지?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는 매우 조심스러워. 우리 활동하는 사람 중에 그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도, 지지하는 사람도 있거든. 예를 들면, 과거 유신 시절 박정희 정부한테 원조를 주면서 민주화했으면 좋겠다고 설득하는 작업과, 민주화운동 단체나 학생 지하조직을 지원하는 것이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거든. 동시에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나 북한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과 그걸 지지·후원하는 정당의 사람들이 ‘햇볕정책’은 물론 인도적 지원, 경제교류와 협력,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을 다 반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잖아. 영환의 정확한 입장이 뭐지?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원과 그 운동의 주도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햇볕정책’은 위험하다라고 요약할 수 있어. 이명박 정부는 대북지원도 안 했고, 북한민주화운동을 주도하지도 않았어.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은 추진했지만, 북한민주화운동을 지원하진 않았어. 만약 내가 정책결정자라면 대북지원과 교류도 5배 정도 늘리고,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적 배치나 지원도 5배로 늘릴 거야.”

 -북한민주화운동이 햇볕정책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네. 이 점에서 나와 생각이 정반대네.(웃음) 우리는 과거에도 엇갈렸지. 85년 말 영환은 ‘강철서신’을 통하여 주체사상을 전파했고, 그에 따른 운동조직을 만들었지. 반대로 나는 89년 이진경 등과 함께 가명으로 <주체사상비판>이라는 책을 발간했고…. 궁금한 것은 영환이 91년 반잠수정 타고 북한까지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돌아온 후 왜 주체사상을 버렸는가야.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해볼 때, 나의 변화는 89년 동유럽 사회주의의 붕괴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어. 뭘 가지고 운동해야 하나 고민했어. 주체사상의 경우도 기초적 철학만 있지, 정치이론도 없고 사회발전 패러다임도 없어. 그래서 내가 만들어보자 생각했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89년 반제청년동맹을 만들었고, 이를 확대하여 민족민주혁명당을 만들었어. 북한 간 것은 김일성이든, 주체사상 전문가든 새로운 주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하고 협조를 하기 위해서였어. 그런데 자유로운 토론 자체가 불가능했어. 내가 새로운 얘기를 해도 반작용이 없이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 수령론에 대한 문제제기는 씨알도 안 먹혔고.”


북 가장 혼란 적은 길 선택했으면…
개혁개방 가능성은 1%도 안돼
가장 빠른 현실적 길은 체제붕괴
다른 길 있다면 그 길 지지할 것

-현재 통합진보당 내부에는 민혁당 관련자가 제법 있는데, 진보당 사태를 보면 어떤 생각을 했지?

 “(한숨을 쉬며) 90년대에 조금 내가 더 잘해서 함께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함께 활동했던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랄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옛날 식의 사고나 활동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그런데 영환은 북한민주화운동을 하지만 남한 사회의 문제와 모순을 두고서는 침묵하거나 회피하고 있어. 남쪽 문제에 대해서는 영환은 조갑제의 친구 아닌가? 남한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정치적 민주화 이후의 과제, 즉 경제민주화나 노동과 복지 강화 등에 대하여 왜 침묵하는 거지?

 “일단 북한 인권운동 하는 데도 대단히 바쁘고…. 기본적으로 자기 단체에 집중해야지, 이것저것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고. 두번째는 북한민주화운동 내부에 남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거든. 일반회원이 말하면 상관없는데, 나 같은 경우 상징성이 있기에 남한 국내 문제에 대해 함부로 말하게 되면 북한민주화운동이 분열될 소지도 있기에 자제했어.”

 -북한민주화운동의 단결을 위한 전략적 침묵이라는 건가? 그러나 과거 반독재 학생운동을 했고, 민혁당이라는 형태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남한 사회 모순 해결을 위하여 몸을 바치려 한 사람이 완전히 침묵한다는 것은 이해하기도 동의하기도 어려운데…. 예컨대, 영환의 동지인 하태경씨는 정치인이 됐어. 정치적 입장을 완전히 바꿔서. 북한민주화운동을 한다고 해서 남한 문제에 있어서는 새누리당과 입장을 같이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지?

 “하 의원과 오랫동안 같이 활동했으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아. 사실 북한민주화운동을 오래 하면서 국내에서 누가 우리를 도와주고 응원하고 지지해주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물론 새누리당이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북한인권법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당은 새누리당이야. 정치를 하지 않으려면 모르되, 정치를 하려면 새누리당을 선택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80년대 전두환이 만든 정당과 계통적으로는 연결되지만, 그 시대의 민정당과는 대단히 다르다고 봐.”

 -영환의 경우 정치권으로 진출할 생각은 없나?

 “내가 하고 있는 북한인권운동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북 인권조사·탈북자 지원 활동
국정원에 포괄적으로 통보
국내문제 함부로 말하게 되면
북민주화운동 분열소지 있어 자제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단체로 ‘정토회’도 있잖아. 정토회의 경우는 북한에 대하여 성금이나 식량을 모아서 도와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기도 해. 영환이 하는 운동과는 차이가 있어. 영환이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한 초기와는 달리, 현재 진보진영의 대다수는 북한인권 문제를 인정하고 있어. 그렇다면 영환이 진행하는 북한인권운동 방식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정토회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기에 함부로 말하기 곤란하지만, 우리 활동은 그와 달리 물 밑에서 이뤄져. 국내건 국외건.”

 -이 친구는 모든 게 ‘비합(법)’이야, 예전이나 지금이나.(웃음)

 “공개적으로 해봐야 전달이 안 되니까. 공개적으로 떠들썩하게 해봐야 북한 주민이 알 수도 없고.”

 -북한 주민에게 중국 전화기지국을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넣어주고 있나?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종종 통화를 하고 있던데….

 “당연히 하고 있지.”

 -최근 북한의 경제적 상황은 어떠한 것으로 알고 있나?

 “북한 식량 문제나 기아 문제는 정토회에서 집중해서 하고 있어. 종합적으로 보면 북한 주민의 소득수준이 과거에 비하여 굉장히 늘어났어. 다른 나라의 지원도 있고, 주민들이 스스로 벌어먹고 살고 있기도 하고. 90년대 아사는 유통체제가 엉망이어서 발생한 거였어. 유통체제가 정상화됐다고 봐. 합법이건, 비합법이건. 정토회에서는 대량아사가 재발할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안 봐.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휴대전화 보급대수가 100만대를 넘어섰어. 품질이 좋지도 않은데 싸지도 않아. 그러나 그것을 사서 쓰는 사람이 100만명이라는 얘기는 경제적인 개선이 있었다는 거지. 물론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지만, 단순히 평균소득 측면에서 보면 지난 10여년 동안 개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지?

 “3대 세습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국제적인 망신이지. 개혁·개방을 추구하건, 기존 정책을 고수하건, 쉽지는 않을 것 같아. 정치적 경험이 없으니 미숙한 부분이 노출될 것이고, 주요 간부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고.”

 -향후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한 계획은 어떤가? 이제 중국에서 일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이번 사건으로 체포된 4명만이 아니라 우리 단체 간부들, 최소 10명에서 30명 정도는 중국 입국이 불가능하게 되겠지. 그러나 우리는 그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하니까, 그 일을 해야지.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만큼, 이런 관심과 열의를 잘 수렴하고 조직해서 보다 대중적인 북한민주화운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정리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