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사건의 확률
단일 사건의 객관적 확률을, 그 사건이 발생하도록 만드는 객관적 성향의 ㅡ 명시된 물리적 상황에 내재한 그 사건을 실현하는 경향에 있는 힘의 ㅡ 측도로서 해석할 것을 나는 제안한다.
나의 의도에 대한 이 선언이 나의 실증주의자 친구 중 많은 친구에 의하여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질 것임에 나에게 추호의 의심도 없고 그들은 이 선언에서 나 자신의 형이상학적 ㅡ ‘경향이나 성향’이라고 내가 쓸 뻔했지만 나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ㅡ 증거를 알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의향(disposition)’을 말하자.
나는 단어들의 마술을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성향’이나 ‘경향’ 대신 ‘의향’이라는 용어 사용을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설명적 가설처럼, 객관적 확률 가설이 관찰을 토대로 알려질 수 있는 것을 멀리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초월적(transcendent)이라고 나는 강조하고 싶다. (과학적 발견의 논리의 25절 말미와 비교하라.) 이것은 객관적 빈도 가설에 성립한다; 그리고 그 가설이 빈도를 설명할 수 있기에 단일 사건들의 객관적 확률 가설에 대하여, 이것은 훨씬 더 높은 정도까지 성립한다 (왜냐하면 그 빈도 가설에 있는 보편성의 정도가 더 높기 때문이다).
단일 사건들에 있는 객관적 확률 해석을 설명하기 위하여, 먼저 성향 1은 그 사건이 확실하거나 혹은 거의 확실하게 발생함을 의미할 것이고, 성향 0은 사건이 확실하거나 혹은 거의 확실하게 발생하지 않음을 의미할 것이라고 지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한계들에서, 두 가지 객관적 해석은 상당히 잘 일치한다. 그러나 0 ≠ p ≠ 1인 어떤 성향 p는 먼저, 고려된 종류의 어떤 사건이 고려된 상황에서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p > ½과 함께 그 성향 p는, 명시된 상황이 그 사건을 발생하지 않는 것보다 더 발생할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하여 1이나 0이 아닌 확률을 초래하는 것이 상황 자체라기보다 정확한 상항에 대한 우리의 지식 부족이 아닌지의 질문이 즉각 제기된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렇다’라면 우리는 객관적 이론을 포기해야 한다. 그 답변이 ‘아니다’라면, 심지어 ‘상황’에 대한 가장 완벽한 지식에 의해서도 그 결과가 예측될 수 없을 터라는 의미에서 비결정론적 사건들에만 우리가 그 이론을 적용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사실상 동전 던지기들에 그리고, 이 의미에서 비결정론적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거시-물리적 사건(macro-physical events)과 같은 것에 우리가 그 이론을 적용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중요한 반론이고, 객관적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문제의 근원으로 갈 것을 강요하는 반론이다.
동전 던지기에 대한 기계를 고려하라: 우리가 동전을 구멍 속에 넣고 단추를 누르면 그 동전이 기계 밖으로 떨어져 부드러운 방석 위로 납작하게 떨어진다. 이것이 그 기계에 의하여 시행되는 것을 내가 한두 번 보고 앞면에 걸고 내기할 마음이 있는지 내가 질문을 받는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합당한 답변은 ‘이 기계가 자체의 결과를 무작위화하는 기계인지 (잘-구축된 룰렛 테이블이 그럴 것처럼) 내가 알지 못한다. 내가 알기에 그 기계는 특별한 방식으로 단추를 누름으로써 (또는 어떤 유사한 수단에 의하여) 우리가 마음대로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구축되었을 것이다’일 터이다. 그 동전이 우리 눈앞에서 가령 평탄하지 않은 표면 위로 구르게 되어 속도가 붙은 다음에 비커 속으로 떨어진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두 번째 경우에 실험의 객관적 조건이 기계적 초기 조건의 특정 ‘무작위성’을 보장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 우리가 확신할 것인 반면, 첫 번째 경우에 우리가 확신이 아니라 의심한다고 우리는 말하겠다.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지식의 결핍이 있다. 첫 번째 경우에 미지의 객관적 조건은 그 조건을 아는 사람들이 정확한 예측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쉽게 될지도 모른다. 첫 번째 실험은 내가 아는 것보다 그 실험에 대하여 더 많이 아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렇게 예측될 것이고 혹시 심지어 통제될 것이다.
두 번째 경우에 상황이 다르다. 결과를 예측함에 아마도 사용될 저 초기 조건이 ‘무작위화’되는 것은 그 실험 조건의 일부이다. 이것에 의하여 내가 의미하는 바는, 그 조건이 그런 방식으로 조율되어서 (거친 표면, 기타 등등) 그 명시된 동일한 조건에서 (‘무작위화’를 포함하여) 실행된 실험의 긴 수열에서 기계적 초기 조건이 무작위적 방식으로 변할 것 같다고 우리 대부분이 추측할 터라는 것이다.
그 명시된 실험 조건이 객관적 확률 가설의 토대인 초기 조건의 무작위성을 보장하는 것은 이 긍정적 추측이다: 우리의 실험적 명세(specifications)는 반복된다면 무작위적 초기 조건을 만들어내는 그런 것이라고 우리가 추측한다.
그러나 굴러가는 동전과 거친 표면의 실제적 초기 조건을 재빨리 측정하여 계산하는 사람이 있어서 동전이 비커 속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매번 올바른 예측을 이룩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쩔 것인가? 나의 답변은, 그의 예측이 빈도 해석과 충돌하지 않을 터와 같이 단일 사건들의 객관적 확률에 대한 우리의 추정치와도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험의 결과를 조금 앞서서 알든 모르든 빈도들은 안정성과 무작위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단일 실험들의 성향들도 ㅡ 혹은, 더 정확하게 단일 실험적 구성의 성향들 ㅡ 그러하다. 이유인즉 ‘성향’에 의하여, 그 실험이 충분히 자주 반복된다는 조건으로만, 이 빈도들을 생성하는 그 구성의 성향을 (혹은 여러분이 그것을 지칭하고자 원하는 모든 것) 내가 정확하게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향은 빈도를 생성하는 의향이다: 이것이 신-고전 이론에 의하여 제안된 해석이다. 그러나 ‘성향’은 ‘빈도’를 의미하지 않는데 이유인즉 너무 드물게 반복되어서 무작위 수열의 충분한 구간 (혹은 ‘빈도’) 같은 것을 생성하지 않는 사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드문 사건들에 성향이 있을 것이다.
주사위의 경우에 숫자 1/6은 그리하여 실험적 장치를 규정하는 것으로서 해석되어, 사전-인지(precognition)나 빠른 계산에 의하여 동전 던지기들의 긴 수열에서 모든 결과를 예측하는 데 성공할지라도, 이 장치의 유효한 특징으로 남는다. 그 숫자는, 우리의 지식 결핍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것을 근거로 단일 실험 구성에 귀속된다. 추가 지식은, 실험적 구성을 규정하는 확률이나 성향에 간섭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질문이 ㅡ 동전을 거친 표면 위로 굴리는 것과 같은 과정들에 의하여 초기 조건이 무작위화될 것이라고 왜 우리가 믿는가? ㅡ 남는다. 후기(Postscript) II권, 29절과 30절에서 이 질문으로 돌아오려는 의도가 나에게 있다. (란데의 칼날[Landé's Blade].)
여기서 나는 두 가지 언급만 더 하고 싶다. 첫 번째 언급은, 성향을 언급함으로써 뉴튼의 힘(force) 관념과 흡사하지만, 가속이라기보다 빈도를 생성하기 때문에 어떤 힘과 구별되는 하나의 직관적 관념을 내가 제안하고 싶다. 빈도는 성향이 변할 때 변한다. 성향은 뉴튼의 힘만큼 (버클리[Berkeley]가 ‘불가사의한 것’으로서 비난한) ‘초월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다. 수학적으로 성향은 완벽하게 확실하다 ㅡ 성향은 하나의 간단한 계산법에 대한 해석이다. 그리고 성향의 시험가능성에 관하여 우리는 성향들로부터 (확률 1이 있는) 도출될 수 있는 빈도 서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심지어 빈도 서술을 초월하는 성분도, 어떤 의미에서, 시험될 수 있다 ㅡ 다른 종류의 빈도 서술에 의하여 시험될 수 있다. (이것은 양자 이론을 분석함으로써 밝혀질 수 있다.)
나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요점은 이것이다. 성향(propensity) 해석은, 고전적 통계 역학에 대한 해석이라고 나는 믿는다. 볼츠만(Boltzmann)은 경향(tendency)을 말했다. 그러나 경향이, 고전적 저술가들이 가능한 경우들에 동등하게 개연적인 것의 지수(指數: quotient)를 언급할 때, 실제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을 가장 잘 기술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전적 저술가들은 이 지수가, 주어진 어떤 사건을 생성하는 명시된 특정 조건에 특징적인 성향에 대한 측도였음을 (가장 일반적인 측도는 아닐지라도 특히 중요하고 편리한 측도) 염두에 두었다.
ㅡ 칼 포퍼 저, W. W. 바틀리(Bartley), III 편집,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년, 395-398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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