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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도 이론과 신-고전 이론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

이윤진이카루스 2026. 7. 3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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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도 이론과 신-고전 이론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

 

빈도 이론과 신-고전 이론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단칭 확률 서술들에 대한 해석에 있다. 단칭 확률 서술들에 대한 빈도 해석은 과학적 발견의 논리73절에 상당히 완전하게 토론되었다. 그 해석은, ‘다음 던지기가 앞면일 것이라는 확률이 1/2’이라는 서술이 이 동전을 사용하는 던지기들의 수열에서 (유한이건 무한이건) 앞면들의 상대빈도가 1/2이다라는 가설과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서 그 문장은 단칭적으로 보일 뿐이지만, 어떤 수열에 대한 문장으로서 합당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것과 반대로 신-고전적 견해는 단칭 확률 서술을, 단일 사건들에 또는 더 정확하게 어떤 단일 사건과 동시에 문제의 그 사건이 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예상되는 환경의 집합에 확률을 귀속시키는 서술로서 해석한다.

확률 이론이 단일 사건들이나 단칭 서술들에 확률을, 집합이나 수열을 통한 우회를 통해서라기보다 직접적으로 귀속시킨다면, 나는 확률 이론을 단일 사건 이론이라고 지칭하겠다.

우리가 단일 사건 이론을 원한다면 그 이론이 확률을 합리적 소신의, 다시 말해서 주관적이거나 논리적 이론의, 정도(程度)로서 해석하는 이론이어야 한다고 언급되는 것을 우리가 흔히 듣는다; 특히 어떤 고전적 (라플라스적) 정의(定義), 확률이나 균등-가능성에 근거하여 너무 좁은 것으로서 회피되어야 한다면. 합리적 소신의 정도들(degrees)을 신뢰하는 사람 중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는 듯이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균등-확률에 근거한 이론이 아닌 어떤 단일 사건 이론을 채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소망이 주관적 이론이나 논리적 이론을 채택함으로써만 충족될 수 있다고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어떤 이유로) 믿는다.

그러나 고전 이론이나 신-고전 이론에 따라서 확률이 가능성에 대한 평가인 (혹은 측도) 고전 이론이나 신-고전 이론이 균등-확률과 불가피하게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다. 반대로, 균등-확률이 어떤 평가나 측도를 확립하는 수단으로서만 사용되었다는 것과, 균등-확률이 항상 그 이론의 실제적이고 수학적 발전에서 단지 사소한 역할만 항상 수행했다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나중 절에서 확률에 대한 주관적이고 논리적인 이론들에 관한 몇 가지 비판적 추가 언급을 내가 제시하겠다. 우리가 균등-확률 접근방법을 버린다면 우리의 선택이 한편 빈도 이론에 국한되거나 다른 한편 주관적이고 논리적 이론에 국한된다고 믿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내가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을 뿐이다. 먼저 균등-확률 경우를 ㅡ 완벽한 주사위 ㅡ 토론하고 그다음 주사위에 무게를 실어서 그 경우를 변화시킴으로써 나의 요점을 설명하려고 내가 시도하겠다.

완벽한 주사위의 경우, 다음 던지기의 가능한 여섯 가지 결과 각각에 동등한 확률을 우리가 귀속시킨다. 이것은 다음 던지기에 ㅡ 단일 사건 ㅡ 대하여 중요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문제는 그 중요한 것이 이 단일 사건에 (그 단일 사건이 잠재적으로 특정 빈도 분포가 있는 수열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도로) 대하여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단일 사건에 ㅡ 다음 던지기 ㅡ 대하여 주장하는 것은 다음 노선을 따라서 분석될 것이라고 나는 제안한다.

(1) 그 던지기의 결과가 나타나는 여섯 면 중 한 면에 의하여 규정되는 한에서만 그 결과에 흥미를 두기로 우리가 미리 결정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를 들어 어떤 면이 서쪽을 향할 것인지의 문제를 무시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려되는 가능한 결과들의 한계를 우리가 미리 설정한다.

(2) 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혹은 실행될 수 있는 실험) 객관적 조건들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완벽한 예측 가능성을, 확률 1로써 이루어진 주장으로서 우리가 해석할 것이기 때문에 이 요점은 사소하다.)

(3) 가능한 결과들 각각과 그 결과들의 논리적 조합(combinations)(나는 그 결과들의 곱집합이나 논리합[disjunction or logical sum]을 특히 염두에 둔다)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특히 덧셈 정리를 충족시켜 문제의 숫자가 가법 측도(additive measure)로서 해석될 숫자가 첨부될 수 있다고 우리가 상상한다; 그러므로 숫자 1이 고려되는 가능한 모든 결과의 논리합(합집합: join)에 첨부될 것이고, 숫자 0은 두 가지 배타적 결과의 연접(교차[meet, intersection])에 첨부될 것이다.

(4) 이 숫자들에, 그 사건이나 실험의 조건에 의하여 열려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측도로서 의도가 있다: 이 조건이 객관적으로 이 결과들과 관련하여 대칭적이라면, 그 숫자들이 동등하다고 전제함으로써 그 숫자들이 발견될 수 있다.

(5) 이 분석에서 우리가 동등한 확률을, 조건에 대하여 전제된 객관적 대칭을 토대로 귀속시킨다고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특정 주사위의 경우에 오류를 저지른다면 (그리고 실제적인 모든 물리적 주사위는 적어도 매우 사소하게 비대칭적일 것이다), 동등한 숫자를 다시 말해서 동등한 확률을 우리가 귀속시키기는 저 정도까지 역시 오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을 전제했다:

(6) 대칭이나 동질성으로부터의 매우 사소한 편차에, 균등-확률로부터의 매우 사소한 편차가 대응한다.

이것이 (개략적으로) 동질적으로 예상되는 주사위의 경우에 대한 분석이다. 이것은 그 숫자들을 (가능성이나 확률의 측도) 그 사건의 객관적 상황에 귀속시킨다; 동시에 우리의 주관적 지식에도 그리고 우리의 지식이 정당화할 그 소신의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정도에도 귀속시키지 않는다.

그 차이점을 밝히기 위하여 우리에게 어떤 주사위가 제시되고 던지기들의 결과에 대한 확률 분포를 결정하라는 요구가 주어진다고 전제하라. 나의 분석에 따라서 합당한 답변은 이것이다: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주사위가 개략적으로 동질적이라면, 그 확률들이 틀림없이 개략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이다.’

이제 어떤 기계장치에 의하여 중앙에서 ‘1’로 표시된 면의 반대 면을 향하여 움직이도록 조정될 수 있는 무게가 실린 주사위로 방향을 선회하자.

(1) 그 무게의 중앙 위치에 대하여 균등-확률이 개략적으로 성립할 것이라고 우리가 말하겠다; 그리고 매우 작은 그 무게의 이동에, 균등-확률로부터의 작은 편차가 (그래서 아마도 무시될 수 있는) 대응할 것이라고 우리가 말하겠다; 그리고 역학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1’이 나타나는 확률(가능성)에서 어떤 증가를 그 편차가 의미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암시할 것이다.

(2) 우리에게 어떤 작은 차이점을 당신은 무엇이라고 부르는가?’라는 질문이 주어지면 합당한 답변은 나의 견해로, ‘나는 알지 못한다이다. 균등-확률로부터의 편차를 그 알려진 이심률(異心率: eccentricity)로부터 우리가 계산할 수 있다고 (바일[Weyl]이 제안하는 바와 같이)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유인즉 확률 분포가 무게가 실린 주사위만의 특징이나 성질이 아니라 유관한 모든 조건의 특징이나 성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포는, 예를 들어, 그 주사위가 떨어지는 표면에 ㅡ 가령, 그 표면이 강철이나 고무나, 벨벳으로 덮인 평평한 방석 또는 모래나 진흙이든 간에 ㅡ 부분적으로 의존할 것이다 (21절과 비교하라).

(3) 그러나 무게가 실린 주사위의 경우에 대칭 고려를, 확률 분포의 계산에 우리가 적용할 수 없을지라도 그 계산에 대하여 중요한 것을 우리가 정말로 안다. 예를 들어 작든혹은 크든무게의 이동으로 인하여 확률 ‘1’이 증가했다고 우리가 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어떤 확률 분포를 알지 못할지라도 단일 사건의 특정 조건에 부착된 그 확률 분포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4) 물리적 사건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우리가 흔히 계산할 수 없는 숫자들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난제는 없다. 수학과 수리물리학에서 자체의 숫자 값을 우리가 명시할 수 없는 (혹은 정확하게 명시할 수 없는) 수학적 함수의 행위를 토론함으로써 중요한 결과를 우리가 매우 흔히 얻는다.

(5) 확률 숫자들의 더 정확한 결정에 덧붙는 바로 그 불확실성은 내가 보기에 그 확률의 객관성에 대한 명확한 표시이다. 무게가 실린 어떤 주사위의 경우를 다시 고려하라. 이심률(異心率: eccentricity) 그리고 다른 유관 조건들에 대하여 매우 정확하게 우리가 정보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닌 지식 중 이 지식, 비록 그 지식으로 인하여 우리가 예를 들어 그 분포가 동등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정확성의 정도가 있는 확률을 결정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 확률은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확률을 알지 못하거나 그 확률을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정확한 결정을 내리려는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킬 실험들의 긴 수열을 완수할 시간이 우리에게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객관적 확률을 측정하는 방법을 알 것이다.

주관적 이론을 토대로, 우리의 지식 상태가 매 순간 확률을 정확히 결정한다. 우리의 지식 상태로부터 실제로 확률을 계산하는 데 중대한 난제들이 있을 것이지만 그 계산이 우리의 지식 상태나 지식 부족에 대한 측도이기 때문에 모든 지식 상태에 대한 정확한 숫자이다. 이 견해를 토대로 반복되는 실험을 통하여, 다시 말해서 추가 지식의 습득을 통하여 확률을 측정하는 것을 말하는 것에 의미가 없다; 이유인즉 추가 지식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확률이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장[] 참조.)

내 견해로, 실험이 반복되어도 확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객관적 확률에 대하여 우리가 얻는 추정치의 정확성을 개선하기 위하여 실험의 반복을 우리가 이용할 것이다.

ㅡ 칼 포퍼 저, W. W. 바틀리(Bartley), III 편집, ‘실재론과 과학의 목적(Realism and the Aim of Science)’, 2000, 387-390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