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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연구소 사무실에서 최근 펴낸 <세계노동운동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세계 노동운동사 1~3
김금수 지음/후마니타스·각 권 2만5000~3만원
“학습을 하다 보면, 교재는 과거 사건들을 다루지만 그걸 읽고 논의하는 대상은 지금 현재다. 1848년 유럽혁명과 이집트 봉기를 얘기하면서 오늘날 이 땅의 촛불시위와 노동운동 내 분파 문제, 파시즘과의 싸움 문제를 겹쳐 읽고 고민하면서 토론하게 된다.”
모두 2000쪽이나 되는 두툼한 <세계 노동운동사> 3권을 써낸 김금수(76)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의 얘기가 바로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은퇴했다지만 이번 책 출간으로 여전한 현역임을 보여준 김 이사장은 오늘의 노동운동 상황을 “한마디로 정체와 패배의 국면”이라 정리했다. 그는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전세계적 상황”이라며 “노동운동의 역사는 원래 실패의 역사”라고 했다. “실패가 다음 투쟁을 밀고가는 바탕이 된다.” 실패는 비통하지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얘기다.
그는 “누가 답을 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토론하고 고민해야 한다”며 “이젠 공부 좀 하라는 얘길 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이 대공황이 일어난 1920년대 말과 같은 상황이라고들 하지만,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강력한 자기조정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노동운동 쪽에는 갈수록 벽이 더 높아질 것이다. 턱없는 힘의 불균형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집권세력도 자본 쪽에 더 힘을 실어 줄 것이다. 그럼에도 내일을 위한 대비도 전망도, 방책도 제대로 없다. 이대로 가면 노동운동은 침체가 아니라 기반마저 무너지지 않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단기 대처는 해볼 만큼 해보지 않았나. 10만 대결집도 해 봤다. 하지만 돌파구는 없었다. 이젠 전체적인 관점에서 진지하게 중장기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역사연구는 언제나 지금 현실의 과제와 대적하려는 연구자의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다시 쓰일 수밖에 없다고 한 카의 얘기에 비춰보면, 10여년에 걸친 그의 <세계 노동운동사> 토론과 집필 작업의 문제의식은 바로 지금 노동운동의 최대 과제인 ‘전체적인 시야를 지닌 중장기 대책’ 마련에 맞춰질 수밖에 없겠다.
지은이가 “연구서나 이론서가 아니라 학습과 토론 교재”라고 자평한 <세계 노동운동사>는 자본주의 발흥과 함께한 노동운동을 그 시작부터 1950년대 전반기까지 다루고 있다. 1980년대까지를 다룰 후속편도 준비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8권으로 된 옛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국제 노동운동사-역사와 이론의 제문제> 덕을 많이 봤다고 했다. “국제 노동운동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과대평가나 사회주의에 대한 지나친 낙관 등은 경계하고 비판해야겠지만, 이에 견줄 만한 별다른 자료들이 없는 상황에서 사건 자체에 대한 객관적 기술이나 마르크스주의 역사인식은 폭넓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그걸 그냥 옮겨 놓은 건 아니다.
“계급론 부분은 레닌에서 홉스봄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점들을 망라했다. 파시즘 부분도 국내외 학자들 연구성과들을 모으고 분류했다. 파리 코뮌, 코민테른, 소련 사회주의혁명도 트로츠키주의자 등 반대파들과 국내외 연구자들의 저작들을 광범위하게 섭렵하고 추가했다.”
지은이는 “조직노선도,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전략도 정치노선도 없다”는 게 위기의 원인이라고 했다. 이런 지리멸렬을 면하려면 “그런 것들을 분명히 세우고 노동운동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권위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무엇보다 조직이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도덕성과 전문성 등 지도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혁신이 따라야 한다. 은행원일 땐 잘하다가 노조에 들어가면 엉망이 되는 자질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또 노동자의 자존심을 세워줘야 한다. 자본의 눈치나 보고 비굴해지면 끝이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