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14 18:49 수정 : 2014.12.1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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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
120년 전 갑오년에 일어났던 갑오개혁은 조선에 근대화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려 한 전례 없는 개혁이었다. 북한은 이를 한국 근대사에 큰 획을 그은 부르주아 개혁이라고도 한다. 신분제 폐지, 노비 매매 금지, 과거제도 폐지, 왕권 약화, 조혼 금지, 과부의 재가 허용, 연좌제 폐지 등 수많은 개혁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개혁은 결국 을미사변→아관파천→김홍집 정권 붕괴로 이어지며 실패로 막을 내렸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개혁이 처음부터 타율에 의한 것이었고, 험악하고 살벌한 주변 국제 환경 아래서 이뤄졌기 때문이라 하겠다.
애초 일본의 강요로 시작한 갑오개혁은 한쪽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라는 내란이 일어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청일 전쟁이라는 국제전이 벌어지는 내우외환 속에 이뤄졌다. 이런 혼란 와중에 개혁을 단행할 경황이 있었을까. 아무튼 개혁은 반봉건적인 혁신을 담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통제를 강화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조선에 가장 필요했던 부국강병 개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도 받지 못했다. 을미년 개혁 가운데 단발령은 오히려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난 단초가 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갑오개혁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일까? 개혁은 타율이 아닌 자율로 이뤄져야 하고 안정된 주변 환경과 국제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갑오개혁 이후 120년, 오늘도 화두는 여전히 개혁이다. 화제의 중심에는 북한의 개혁도 있다. 냉전이 종식된 뒤부터 20여년 동안 한국과 국제사회는 줄곧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구해 왔다. 그러던 북한이 김정은 체제 들어서 개혁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경제의 중심이 내각으로 옮겨지고, 내각 주도 아래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을 모색하면서 개혁이 시범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 시범적인 개혁이 새로운 경제정책으로 자리매김하며 본격적인 개혁으로 전환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북한의 개혁은 한국이나 국제사회가 오매불망 기다렸던 것인 만큼 환영과 성원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이 현재 처한 주변 국제 환경은 오히려 최악이라 하겠다. 갑오개혁을 떠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의 전례 없는 제재,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압박, 한국의 흡수통일 위협, 냉각기 중-북 관계에서 오는 진통…. 어느 하나도 북한의 개혁을 밀어줄 환경이 아니다.
그러면 한국이나 국제사회는 북한의 개혁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까? 한국 일각에서는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의 개혁개방은 오히려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북한이 개혁을 단행해도 무관심해 보인다. 여전히 제재와 압력을 앞세운다. 인권 문제까지 가세해 압박한다.
북한의 대응 역시 심상치 않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겨울 훈련을 강화하면서 이른바 ‘2015년 통일대전 완성의 해’라고 선전한다.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도 잦아지고 있다. 한국 일각에서는 북한이 올해 말 혹은 내년 초에 군사적 도발을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결국 북한의 강경 대응은 주변 환경을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 북한이 자초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대로라면 모처럼 이뤄지는 개혁도 물거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개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북한의 개혁은 북한 안에서 시장경제 요소의 확장을 의미한다. 가치관의 변화, 시스템의 변화로 국제사회와의 거리가 좁혀진다는 것도 의미한다. 북핵과의 관계를 보면, 제재와 압력은 북핵 개발에 힘을 실어주지만 개혁은 북핵의 힘을 뺄 수도 있다. 한국과 국제사회와의 상호의존을 강화하고 적대의식을 해소하면서 핵개발 동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혁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북한은 개방을 위한 주변 환경이 핵으로 조성될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다가가면 갈수록 북핵 문제 해결의 길이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과 국제사회는 제재와 압력뿐만이 아닌 교류와 협력으로 북한이 개혁의 불씨를 살려나갈 수 있도록 안정된 주변 환경을 마련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