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9 20:43 수정 : 2015.03.0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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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가운데) 독일 총리가 9일 아베 신조(오른쪽) 총리의 안내를 받으면서 도쿄 네즈미술관을 관람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
7년 만에 방일해 묵직한 화두 던져
“독일 과오 정리가 유럽통합 밑거름”
8월 예정 ‘아베 담화’ 관련해 관심쏠려
독일 ‘탈핵의 길’에 일본 동참 권유도
9일 7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60) 독일 총리는 일본 사회에 두 개의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하나는 주변국들과 진정한 화해를 이루기 위해선 일본이 지난 역사적 과오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탈핵을 향한 굳건한 신념이었다.
애초 메르켈 총리가 일본을 방문한 것은 오는 6월 열리는 주요 7개국(G7) 회의의 의장국인 독일의 총리로서 같은 회원국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나 현재 국제사회의 가장 시급한 안보 현안인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일본과 의견을 교환하고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에 따라 메르켈 총리는 이날 오전 아사히신문사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등 최근 불안정해진 세계 질서를 언급하면서 “독일과 일본은 자유롭고 규범에 의해 지탱되는 세계 질서 가운데서 글로벌한 책임을 담당하는 파트너”라고 말하는 등 세계 질서 유지를 위한 일본의 더 많은 기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역사 문제 등에 대한 껄끄러운 질문이 나오자 답변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지고 있는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와 직시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졌다”고 답했고,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연 공동기자회견에선 “과거에 대한 정리는 (전쟁 가해국과 피해국 간) 화해를 위한 전제”라며 “독일이 2차대전의 과오를 정리할 수 있었기에 훗날 유럽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의 이날 발언은 아베 총리가 오는 8월 내놓게 되는 ‘아베 담화’에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표현인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라는 문구를 빼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해외 주요 언론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메르켈 총리가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일본에 ‘역사를 직시하고, 과거를 정리하라’고 공개 조언을 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의 이날 발언은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구별하지 않은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의 지난달 27일 발언과도 현저한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어 메르켈 총리가 강조한 것은 ‘탈핵’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였다. 그는 “나는 오랫동안 평화적 핵 이용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놀라운 기술 수준을 가진 일본에서 사고가 난 뒤, (원자력발전에는) 정말로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독일이 2022년부터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탈핵의 길을 가겠다고 선택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는 방일 직전에 공개한 영상메시지에서도 “후쿠시마의 경험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일본과 함께 이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런 관심을 반영한 듯 이날 아침 7시께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한 메르켈 총리가 처음 방문한 곳도 도쿄 고토구의 ‘일본과학미래관’이었다. 이곳에서 메르켈 총리는 자유자재로 굽어지는 유기 태양전지를 둘러본 뒤 연구 담당자에게 “이것을 지금 사용중이냐”고 묻는 등 일본의 재생가능에너지 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10일엔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 등과 회담한 뒤 1박2일간의 방문 일정을 마친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