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경주를 부탁해/조한혜정/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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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칼럼] 경주를 부탁해

등록 : 2015.03.10 18:51 수정 : 2015.03.10 18:51

기념일이란 ‘기억의 공동체’의 힘을 확인하는 날이다. 오늘은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기억의 공동체’를 만들었기에 대한민국이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루어낼 수 있었듯이 핵발전의 위험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일도 든든한 기억의 공동체를 통해서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억의 공동체는 학습하는 공동체다.

핵발전소가 지구상에 만들어진 것은 핵폭탄 제조와 밀접하다. 나치 독일이 핵폭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미국이 먼저 핵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고 그렇게 만들어진 핵폭탄은 히로시마에 실제로 사용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이에 대해 뼈저린 참회를 하였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버렸고 전후 미국과 소련은 치열한 군사와 과학기술 경쟁을 벌였다. 1954년에 소련에서 최초의 핵발전소를 가동했고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핵발전소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한국의 고리 1호기(1978)와 월성 1호기(1983)도 그 시절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핵발전소 개발은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섬과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겪으면서 제동이 걸렸다.

체르노빌 4호기는 1983년 건설한 지 3년 만의 사고였다. 누출된 방사성 강하물과 방사성 낙진은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으로 퍼졌고 이를 계기로 유럽에서는 탈핵 시민운동과 재생 에너지에 대한 집중적 연구와 지원이 따랐다. 1950년대 전문가들은 2000년까지 1800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어 세계 21%의 상업용 에너지를 충당하리라고 예측하였지만 2007년 기준 439개의 원자로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 좀 더 안전한 에너지 쪽으로 방향 선회를 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독일의 경우 30%에 이르던 핵발전 전기량을 줄여가던 중 후쿠시마 사고가 나자 노후한 발전소 8기를 즉각 폐쇄하고 나머지 9기 발전소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전격 합의하였다. 이는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기로 노력한 ‘기억의 공동체’가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체르노빌 영향권에서 좀 떨어져 있었던 동아시아에서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로 뒤늦게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눈을 뜬 편이다. 아직도 방사성 물질이 공기와 지하수를 통해 태평양으로 누출되고 있는 이 사고를 겪으면서 현재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나라는 대만이다. 작년에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던 제4원전 공사를 중단하기로 함과 동시에 1978~85년에 건설한 1~3호기 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둘러싸고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논의를 펼치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우는 4기를 폐로하고 50기가 가동 중단된 상태이며 중국은 원전과 재생 에너지 양쪽에 집중 투자를 하면서 세계 제2의 신재생 에너지 국가로 부상 중이다. 한국은 어떤가? 노후한 발전소를 재가동시키기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반대 위원들이 퇴장한 상태에서 날치기 표결을 하였다고 한다. 정부는 결국 ‘나라’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핵발전소를 안전할 때 중단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하고 경제적인 선택이다. 국민의 세금이 안전불감증을 낮추는 데 사용되도록 감시하고 관·민·업계가 제대로 공개 토론을 해내는 토양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4주기를 맞아 이 나라의 ‘오래된 미래’를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경주부터 지켜내자. 삼국 통일을 이룬 뒤에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켜주겠다는 유언을 남긴 문무왕의 대왕암이 자리한 감포해안을 방사능 오염의 위험과 핵폐기물 한가운데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시민/주민들은 다양한 연대와 학습을 통해 월성 1호기부터 잠재워야 한다. 미니 태양광 발전소를 집 창문에 설치하는 어린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얼마나 고무적인가? ‘기억의 공동체’ 성원들이 모여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에너지 전환을 해내는 그 자리는 새로운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이 시작되는 자리일 것이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