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찰하기

AIIB와 사드, 눈치보기 바쁜 한국/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16. 14:13

정치

외교

미·중 차관보 이례적 동시 방한…‘AIIB·사드’ 눈치보기 바쁜 한국

등록 : 2015.03.15 21:07 수정 : 2015.03.15 23:43

미군이 지난해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핵심인 사드(THAAD·고고도 요격 미사일)를 시험 발사하고 있다. 출처 미국 국방부 미사일방어청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담당 차관보급 고위 외교 당국자가 하루 차로 나란히 서울을 찾는다. 두 나라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한 한국의 참여 여부와 미국의 사드(종말단계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THAAD)의 한반도 배치 문제 등을 놓고 날카롭게 대치해왔다. 서울을 무대로 외교 현안을 놓고 한국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두 강대국 간 고위급 외교전의 막이 오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15일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방한한 데 이어, 16일엔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서울에 도착한다. 이들은 각각 16일과 17일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와 면담하고,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을 예방한다.

러셀 차관보의 방한은 예고 없이 지난 14일 갑자기 발표됐다. 미국 고위 외교 당국자들이 대체로 한·중·일 등 몇몇 나라를 묶어 방문해온 것과 달리 한국만 단독방문하고 돌아간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류젠차오 방한에 맞서 최근 부각되는 외교 현안에서 한국 쪽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급하게 서울행 항공편을 예약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먼저 한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을 놓고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각각 적극적 구애와 부정적 시그널을 동시에 받아왔다. 중국은 한국에 이달 말까지 가입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류젠차오 부장조리도 이번 방한에서 한국의 조속한 결정을 거듭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를 뒤흔드는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등을 내세워 동맹국들의 가입에 원칙적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최근 최대 맹방인 영국이 미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입 결정을 내리는 등 당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다. 아시아 주요 동맹국인 한국마저 참여를 택할 경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셈이 된다. 그만큼 절박해졌다.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는 “미국으로선 한국을 잡아둘 필요성이 커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요 7개국(G7)의 일원인 영국의 가입 결정으로 사실상 미국이 한국을 붙잡을 명분은 사라졌다는 분석도 한쪽에선 나온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영국의 가입 선언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한국의 가입 결정도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한국 등 동맹국들이 이 은행에 가입하더라도 중국을 견제하는 구실을 해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신창훈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국의 가입을 막으려 했다면 러셀이 아니라 경제 쪽 고위 당국자를 보냈을 것”이라고 봤다.

사드의 한국 배치를 두고서도 미-중 간 신경전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최근 새누리당에서 사드 배치 공론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 등에 비춰 러셀 차관보보다는 류 부장조리가 단호하게 반대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최근 잇따라 ‘사드 한국 배치 반대’를 강조해왔다.

두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 정부로선 이번 ‘동시 방한’으로 한층 부담감을 안게 됐다. 정부는 그동안 두 사안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공개적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권유를 했음에도 미국을 의식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미국으로부터 통보받은 바도 없고 미국과 협의한 적도 없다”는 입장으로 논점을 피해왔다.

정부는 이번 동시 방한이 한국을 둘러싼 미-중 간 외교전으로 비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러셀 차관보의 방한은 리퍼트 대사 피습을 계기로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며 “사드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은 중점 협의 대상에 들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 국익에 맞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등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한국이 미국의 눈치를 봐 ‘모호성의 게임’을 하다간 미·중 양쪽에 다 당할 수 있다. 주관을 갖고 두 나라를 상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손원제 기자, 워싱턴 베이징/박현 성연철 특파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