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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IB 가입에 미국 견제/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16. 14:16

경제

경제일반

‘AIIB 가입이 유리’ 판단하고도…미국 견제로 결론 못 내

등록 : 2015.03.15 20:21 수정 : 2015.03.15 22:17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에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앞줄 오른쪽부터)와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환담을 나눈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뒤편은 조윤선 정무수석.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중국 주도 아시아 인프라 개발
28개국 참여 발빠른 세불리기
영국 이어 호주도 참여 시사
중 “이달 안에 가입해야
창립 회원국으로 인정”
정부 “부처간 협의해 결론”

거침없이 질주하는 ‘중국이 모는 기관차’에 올라탈 것인가. 중국이 설립을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립회원국 가입 시한이 이달 말로 다가왔다. 아시아 지역 인프라 건설을 이끌 이 기구에 한국이 참여하면, 건설 기술과 경험, 자금 면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어 상당한 사업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해방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미국의 강한 견제로 가입 여부를 최종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 AIIB는 무엇?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인프라 투자 활성화를 목적으로 만드는 국제기구다. 2013년 10월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인도네시아 의회 연설에서 첫 구상을 밝힌 뒤 불과 1년5개월 만에 이 기구 설립에 참여하기로 밝힌 국가가 28개국으로 불어났다. 방글라데시, 브루나이 등 저개발 국가만이 아니라 인도, 뉴질랜드에 이어 최근 영국까지 참가하기로 했다.

시진핑 주석이 설립 구상을 밝힌 직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급속한 세 불리기를 예측한 바 있다. 이 매체는 “아시아 국가들이 시진핑 구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돈”이라며 “2010년에서 2020년까지 아시아 지역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 규모는 무려 2900억달러(약 300조원)”라고 말했다. 막대한 투자 수요는 외환보유고가 풍족한 중국 주머니에서 충당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종잣돈 격인 자본금은 현재 500억달러가 모였는데, 대부분 중국 정부가 출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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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트파워 전쟁

최근 영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결정을 놓고 미국 정부가 발끈하고 나선 사실이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를 통해 드러났다. 참가국이 주요 7개국으로까지 확산되자 미국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있다. 영국과 함께 그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참가에 소극적이던 오스트레일리아도 최근 입장을 바꿔 중국에 러브콜을 보냈다.

이런 양상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 단순히 국제기구가 하나 더 생기는 의미를 넘어 ‘소프트파워’를 놓고 미국 등 전통 강대국과 중국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군사력보다는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와 막강한 경제력으로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WB) 등이 그 첨병 노릇을 해왔다.

기획재정부의 한 당국자는 “중국은 ‘국제통화기금 쿼터 개혁’을 통해 신흥국 지분을 늘려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으나 미국의 반대에 부닥쳤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 추진은 중국이 독자세력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신흥국의 의결권을 늘려주는 국제통화기금 쿼터 개혁은 2010년 한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서 의결되고 국제통화기금 이사회까지 통과했으나, 여태껏 미국 의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 한국 선택의 갈림길

우리나라가 창립회원국이 되면 후속 가입국보다 의결권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은행의 주요 의사결정에 한국 입장을 반영할 여지가 더 크다는 뜻이다. 기재부 당국자는 “가입하면 중국 자본의 국내 투자 확대와 더불어 아시아 지역 내 국내 기업의 사업 확대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의 견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7월 한국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답을 미뤘다.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이 기구의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며 가입하지 말 것을 종용한 까닭이다. 미국은 중국이 이 은행을 지렛대 삼아 세계 경제와 정치에 영향력을 키우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이 지역을 개방 수준이 높은 자유무역지대로 만들어, 중국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기획을 추진하고 있다. 기재부 당국자는 “현재까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국 동향 등을 바탕으로 관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종/김경락 기자, 베이징 워싱턴/성연철 박현 특파원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