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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드리운 '일본 자위대' 그림자/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16. 14:27

국제

일본

20년간 ‘야금야금’ 한반도 드리운 ‘일본 자위대’ 그림자

등록 : 2015.03.15 14:07 수정 : 2015.03.15 20:54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열린 자민당의 연례 전당 대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 그래픽.

9부 능선 넘은 일 안보법제 개편

2001년 12월 일본 해상자위대의 8100t급 대형 보급함인 하마나가 호위함인 구라마와 기리사메 2척을 이끌고 일본에서 7000여㎞ 떨어진 인도양에 모습을 드러냈다. 패전 이후 반세기 넘게 분쟁 해결의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방어에만 전념하겠다는 ‘전수방위’ 원칙을 지켜온 일본이 대형 보급함을 일본의 안보와 특별한 관계가 없는 인도양까지 파견한 데는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군사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집단안전보장의 원칙에 따라 참전을 결정했고, 헌법의 제약상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는 일본은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그해 10월 테러대책특별조처법을 만들어 미국에 대한 ‘후방지원’에 나섰다.

하마나 파견은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따른 평화유지활동(PKO)이 아닌 ‘타국의 전쟁’에 처음으로 자위대를 파견한 사건이어서 일본에서 큰 찬반논란을 불렀다. 당시 일본이 떠맡은 임무는 미국 등 참전국에 대한 보급과 운송 등 ‘협력지원활동’(후방지원)이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자위대가 직접 전쟁에 말려들지 못하도록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둔다. 자위대의 활동 지역을 “공해 등 (지금까지) 전투행위가 일어나지 않았고, 활동 기간 동안 전투행위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곳”으로 한정하고, 일본이 지원하는 보급품의 대상에서 적을 공격하는 데 직접 사용되는 무기·탄약(발진 준비 중인 전투기에 대한 급유 포함)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위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터인 아프간에서 멀찍이 떨어진 인도양에서 미국·영국·파키스탄 등 도움을 청하는 나라들에 연료와 물을 공급하는 일밖에 없었다. 일본 방위성의 자료를 보면, 자위대는 2003년 12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미국 등의 함선과 헬기에 861번의 급유, 128번의 급수를 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가 전후 70년간 이뤄진 자위대 해외 파병의 전통적인 모습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조만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자위대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아베 신조 총리가 적극 추진해온 일본의 안보법제 개정 작업이 9부 능선을 넘어서고 있지만, 이에 대해 한·일 양국 시민사회가 파악하고 있는 내용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아베 정권이 시도하는 안보법제 개편이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와 세계 정세에 끼치는 적잖은 파급효과를 생각해볼 때 이런 ‘이해의 공백’은 매우 우려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뼈대로 한 각의결정을 한 뒤, 지난달 13일부터 그 후속 조처로 공동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안전보장법제 정비를 위한 여당협의’를 주 1회씩 진행하고 있다. 여당협의를 통해 개정 논의가 이뤄지는 대상은 자위대법, 주변사태법, 무력사태대처법 등 현재 일본의 안보태세를 떠받치고 있는 14개 법안들이다. 연립 여당은 이달 20일까지 법안 개정의 큰 틀을 정한 뒤 5월초엔 법 개정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연립 여당이 중·참 양원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어 여당협의 결정이 그대로 법률로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후 70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전수방위 원칙이 깨지고, 일본이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대변혁이 이제 불과 두어달 뒤면 마무리되는 것이다.

현재 여당협의에서 이뤄지는 논의 방향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둘째는 자위대 해외 활동의 지역적 범위와 업무의 역할을 대폭 확장하는 주변사태법 등 법률의 개정 작업이다.

먼저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해서는 여당협의에서 치열한 논의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각의결정이 이뤄지기 전 양당 사이에 11차례에 걸친 치열한 논의 끝에 대체로 의견이 수렴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확정된 각의결정을 보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무력행사를 위한 ‘새로운 3요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즉, ①일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타국이 무력공격을 받아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등 국민의 생명이 뿌리부터 전복될 명백한 위험이 있고, ②이를 배제하기 위해선 (무력 말고는) 적당한 수단이 없을 경우에야 비로소, ③필요 최소한도의 무력행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새로운 3요건이라는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을 “한정적으로 용인”했을 뿐 외국처럼 전면적으로 용인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태를 ‘존립사태’(신사태)로 명명하고 이에 맞춰 자위대법과 무력사태대처법 등을 개정할 예정이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된 일본은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5월이면 70년 만에 ‘전쟁 가능국’

아베정권, 집단자위권 마련 박차

‘무력행사 3가지 요건’ 주장하지만

해당사례 군사적으로 비현실적

미와 대등한 ‘피 동맹’ 구축이 속셈

‘일 주변’으로 제한한 후방지원 지역

완화하는 주변사태법 개정이 핵심

‘언제든 파병’ 항구적 법 마련도

한반도 유사사태 땐 미군 지원 명분

자위대 한반도 상륙 위험 구체화돼

일본 정부는 지난해 5월 일본인을 운송하고 있는 미 함선의 방호, 무력공격을 받고 있는 미 함선의 방호, 미국을 향해 날고 있는 미사일 요격 등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되는 8가지 구체적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현재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이란이 일본의 석유운송로인 걸프만(페르시아만)을 봉쇄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기뢰 소해 활동 참가’뿐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일본 정부가 애초 집단적 자위권 시행 사례로 언급한 내용들이 군사적으로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미국은 자국의 군사장비를 동원해 외국인들을 대피시키지 않으며, 현재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의 능력으로는 일본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때 일본 정부의 안보정책을 총괄했던 야나기사와 교지 전 관방 부장관보는 지난해 펴낸 <망국의 안보정책>이라는 저서에서 “아베 정권의 최대 특징은 안보정책을 설명할 때 보이는 추상성, 비논리성”이라며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미국과 함께 ‘피를 흘리는’ 것을 통해 대등한 ‘피의 동맹’을 구축해 미국에 할 말은 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는 혹평을 내놓았다.

고이즈미 정권 시절 ‘평양선언’을 이끌어낸 다나카 히토시 일본종합연구소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은 현재 유일하게 논의되는 기뢰 소해 활동에 대해서도 “걸프만이 봉쇄됐다는 사실만으로 새로운 3요건을 만족한다고 보긴 힘들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사실은 현재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아베 정권의 일차적 관심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집단적 자위권 관련 여당협의의 핵심은 한반도 유사사태에 대비해 만들어진 주변사태법의 대폭 개정과 다국적군 지원을 위해 자위대 파병을 자유롭게 하는 항구법(일반법)의 제정이다. 일본 정부는 이 작업을 통해 그동안 자위대의 해외지원활동을 막아온 여러 안전장치들을 급속히 해체하려 시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0년 제1차 걸프전 이후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확장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거듭해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92년엔 일본도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한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하겠다며 평화유지활동협력법을 제정한 데 이어, 1993년 제1차 북핵위기를 겪은 뒤엔 미-일 안보협력지침을 개정(1997년)해 한반도에 유사사태가 발생했을 땐 자위대가 미국의 후방지원을 담당하기로 했다. 이런 미-일 동맹의 변화는 2년 뒤인 1999년 제정된 주변사태법에 담기게 된다.

일본 안보법제 논의 어디까지 왔나(※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지난달 20일 제2차 여당협의 때 일본 정부가 제시한 것은 바로 이 주변사태법을 대폭 개정하는 안이었다. 이를 보면 일본 정부의 속내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 현행 주변사태법엔 자위대가 미군을 후방지원하는 지역적 범위를 일본 주변을 뜻하는 ‘주변사태’로 한정하고, 일본이 제공하는 보급품에 무기·탄약과 발진 준비 중인 전투기에 대한 급유를 제외하는 등 여러 안전장치들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각의결정에서 자위대가 후방지원을 할 수 있는 장소를 현재의 “공해 등 (지금까지) 전투행위가 일어나지 않았고, 활동 기간 동안 전투행위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곳”에서 “현재 전투행위가 벌어지지 않는 곳”으로 완화했다. 이어 지난달 20일엔 일본의 안보에 중요한 영향이 있는 경우엔 ‘일본 주변’이라는 지역적 제한에 구애되지 않고 지원 대상국을 미국에서 그밖의 나라로 넓히며, 탄약·무기 등도 보급하겠다는 것을 뼈대로 한 개정안을 밝힌 상태다.

이와 별도로 아프간전 땐 테러대책특별조처법(2001년), 이라크전 땐 이라크특별조처법(2003년) 등 미국 등의 파병 요구가 있을 때마다 한시법을 만들어 대응해왔던 지금까지의 방식을 바꿔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다국적군 등 타국군을 지원할 수 있는 항구법을 만들기로 했다. 그밖에 유엔 평화유지활동 중에도 출동경호, 임무수행을 위한 무력의 사용 등 그동안 금지해왔던 무력사용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이런 계획이 모두 시행되면 미-일 동맹은 주변 동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를 무대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피를 흘리는 동맹의 직전 단계까지 격상되는 셈이다. 현재 부족한 것은 자위대가 미국과 함께 총을 들지 못하고 후방지원에 머무른다는 점뿐이다. <아사히신문>은 그 때문에 지난 9일치 사설에서 “정부·자민당의 노림수는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넓혀 가능한 한 타국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 목표는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군으로 옷을 바꿔 입으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로 인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선 어떤 변화가 발생할까.

자위대의 군사적 역할 확대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한 예로, 미국은 1993년 1차 북핵위기 때 일본에 무기·탄약의 제공, 미 함선의 방어, 민간 공항·항만의 이용 등 1500여개 항목의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당시 무력사용을 금지한 헌법 9조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결국 미국은 군사행동을 포기한다. 그러나 일본의 안보법제 개정으로 자위대가 미국의 무력행사와 ‘사실상’ 일체화를 이루게 되면, 한반도 주변의 유사사태 때 일본의 발언력이 커지는 것은 물론 향후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판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을 자극해 중국의 군사대국화를 더 부추길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국에 더 현실적인 문제는 한반도 유사사태 때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할 위험이 더 구체화됐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인도양 등 전투지역에서 멀찍이 떨어져 후방지원에만 전념하던 자위대가 ‘현재 총알이 날아오지만 않으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까지 접근해 미국과 다국적군에 무기와 탄약을 지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즉, 동해의 공해상에 멀찍이 떨어져 미국에 대한 ‘후방지원’에 머물렀을 자위대가 앞으로는 미군 지원이라는 군사적 필요성을 구실로 한반도에 직접 상륙할 수도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자위대가 공격을 당할 경우 이를 자국에 대한 무력행사로 받아들여 개별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한국과 국익이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 일본이라는 만만찮은 상대가 한반도 유사사태의 당사자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에는 말 그대로 재앙적 상황이 되는데, 전쟁이 터지면 제 나라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도 행사할 수 없는 한국 정부가 미국이 ‘작전상 효율성’을 이유로 자위대 상륙에 대한 동의를 요구해올 경우 이를 거부할 가능성은 현재로서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인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