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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의 땅, 일원론적 경제학/한성안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18. 09:20

경제

경제일반

극단주의의 땅, 일원론적 경제학

등록 : 2015.03.15 19:22 수정 : 2015.03.15 19:37

 한성안의 경제산책

‘1’이란 숫자에 대한 서구인의 사랑은 특별하다. 소싯적 지식을 떠올리면 서구 문화의 뿌리는 그리스·로마문명과 기독교다. 그중 기독교는 서양의 중세 천년을 지배했다. 결정된 미래, 종말론, 최후승리, 이것들은 유일신인 하나님에 의해 확실하게 달성된다. 이 모든 것들의 배후에는 ‘일원론’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일원론은 세계를 하나의 근본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이다. 만물은 하나다! 이것이 사회과학에 적용되면 모든 결과의 원인은 하나밖에 없다는 연구방법론으로 재탄생한다. 일원론적 방법론은 천년을 지나 지금까지 서구인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일원론적 방법론은 우아한 모형과 명쾌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현실과 다른 막장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리적 완결성은 종종 사람들로부터 미학적 탄성을 자아낸다. 논리적 완결성이 진리로 둔갑하면 독선적이며 배타적인 태도, 나아가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생긴다. 이런 믿음은 종종 극단주의적 행동으로 표출된다.

경제학만큼 일원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야도 드물다. 주류 경제학은 대표적인 일원론자다. 경제현상은 오로지 가격, 비용, 이윤 등 경제적 요인으로만 설명된다. 정치, 사회, 문화 등 비경제적 요인은 경제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은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고 마르크스 경제학이 일원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반론이 제기되겠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이 인간 세계를 물질로 환원시켜 이해하는 ‘유물론’에 입각한다는 점은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경제활동은 노동으로 환원되고, 경제적 가치는 노동가치로 환산된다. 나아가 노동가치는 모든 다른 가치를 대표한다. 여기서는 물질과 노동이 정의요 도덕이다. 비물질적, 비노동적, 비경제적 가치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사회과학이다. 외람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회과학의 여왕’은 경제학이다. 정치학, 사회학, 심지어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도 경제라는 말을 곁들여야 뭔가 좀 있어 보인다. 그러니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모두 일원론이다.

일엽편주, 일편단심, 일심동체, 단일민족 등 숫자 ‘1’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서구인에 못지않다. 분단이 주는 고통과 비용은 이 수에 대한 사랑을 강화하였다. ‘통일’은 헌법적 사명이다. 이런 문화적, 정치적 배경은 압축적 경제성장과 상호작용함으로써 급기야 1에 대한 숭배 문화를 정착시켰다. 서양의 일원론이 더 크게 번성할 수 있는 옥토다. 1에 대한 이런 집착은 그 밖의 수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유발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

한성안 영산대 교수
일원론은 관용과 협력, 더 나아가 토론,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부정한다. 대신 배타주의와 혐오를 일상화한다. 그리고 독선과 맹신에 빠진 나머지 극단적으로 실천한다. 흉기로 마크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의 실천은 극단적이다. 통일 문제가 안중근의 민족해방, 박종철의 민주주의, 쌍용차 노동자의 복직 문제, 장 발장의 한 조각 빵만큼 절실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분단의 근본 원인이 오로지 미국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 사건을 계기로 또 다른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비도덕적 반민주집권세력이 원인일 수 있다. 극단주의의 땅! 일원론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때다.

한성안 영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