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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장도/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3. 25. 08:41

문화

문화일반

“할머니 품에서 만지고 놀며 은장도 소중함도 배웠지요”

등록 : 2015.03.24 22:30 수정 : 2015.03.24 22:30

[장인을 찾아서] 중요무형문화재 60호 장도장 박종군씨

불과 한뼘 크기의 칼이다. 평소엔 생활 도구이자 노리개다. 하지만 때론 삶과 죽음을 가르는 찬 서리처럼 매섭고, 버선 끝처럼 야무진 무기가 됐다. 칼날에 새겨진 일편심(一片心)이란 글귀로, 여인의 순결을 지키는 ‘정절도’가 됐고, 사대부에게는 두 임금을 섬기지 말라는 ‘충절도’가 되기도 했다. 그런 경건함에 칼의 꾸밈새를 정갈히 했고, 치장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러기에 장도(粧刀·치장한 칼)로 불리며 자신을 소유한 이의 목숨과 정신을 함께 지켰다.

“한국전쟁 피난길에 할머니께서 지니고 다니던 장도가 너무 아름다워 미군들이 달라고 졸랐다고 해요. 그때 할머니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이것은 돈이 아니라 돈의 할아비를 준다고 해도 너 따위 것들에게 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물리치셨답니다. 그만큼 장도를 소중히 여기셨어요.”

그 장도는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에 안겨 만지작거리며 놀던 장난감이었다. 할머니는 항상 그 칼의 신성함과 엄숙함을 손자에게 가르쳐주었다.

피난길 미군들도 탐냈던 ‘아름다움’
광양 장인 장익성에게 배운 선친 솜씨
‘공부해서 장도 우수성 알리라’ 말씀
미대 거쳐 석사논문도 쓴 뒤 대물림

한효주·하지원·김태희 등 사극 소품 전담
“칼 만들기는 고도의 정신집중 작업”

금박으로 국화 무늬를 넣은 은장도. 국화는 정절의 상징이다.
중요무형문화재 60호 장도장 박종군(53·사진)씨는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소중하기만 하다. 흔히 은으로 만들어 ‘은장도’로 불리는 장도는 조선시대에는 여인뿐 아니라 남자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생활필수품이었다. 허리띠나 주머니끈에 매달아 일상적인 소지품으로 휴대하고 다녔다. 바깥출입을 하거나 소소한 집안일을 할 때도 장도는 요긴한 연장이었다.

박씨는 1대 장도장이었던 선친 박용기(1931~2014)의 가업을 이어받았다. 무엇이든 잘 만들었던 박용기는 광양 이웃에 살던 장도 장인 장익성으로부터 14살 때부터 일을 배웠다. 삼국시대부터 철이 많이 생산된 광양지역은 자연스레 칼을 제작하는 고장이 됐다. 장도 일은 워낙 힘들어 5명의 제자 가운데 4명은 떠나고 박용기만 남았다. 1978년 장도장 인간문화재가 된 박용기는 2005년 자신의 모든 재산을 광양시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 광양에 장도박물관을 세우고 전통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 했어요. 그때 아버지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마치고 해도 늦지 않다. 나는 소학교밖에 못 나와 반쪽 신세다. 장도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더하라’고 권했어요.”

박씨는 동국대 미대에 진학해 불교미술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한국 도검에 관한 연구’ 주제로 석사까지 마친 뒤 본격적으로 장도를 배웠다. “단절된 문화와 역사를 되살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일제의 한민족 문화 말살정책으로 거의 사라졌으니까요.”

조선시대 장도는 거울·빗과 함께 여성의 3대 필수품이었다. 사대부 집안에서는 ‘노리개 삼작’의 하나로 장도를 지녔다. 한복 저고리의 겉고름이나 안고름, 또는 치마허리에 장도와 함께 밀화불수(부처님 손바닥처럼 만든 패물)와 향낭을 지녔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중전 한효주가 지녔던 은장도, <조선 미녀 삼총사>에서 하지원의 칼, 사극 드라마 <장옥정>에서 김태희의 은장도가 모두 박씨가 제작한 작품이다.

장도는 칼과 칼자루와 칼집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칼을 만들어야 한다. “정신을 모두 흡수시켜야 바라는 칼의 강도가 나옵니다.” 참숯을 써서 풀무를 돌려 1400~1500도까지 열을 올린 화덕에 쇠를 집어넣기를 수백번 반복한다. 달궈진 쇠를 대형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로 수천번 담금질해 칼의 모양을 만든다. 숯가루와 된장, 황토를 이용해 칼날의 강도를 높인다. 완성된 칼에는 정으로 쪼아(쪼이질) 글자와 문양을 새긴다.

칼자루와 칼집은 보통 먹감나무를 쓴다. 비틀리지 않게 5~10년 정도 건조시킨 수백년 된 먹감나무의 검은 속살 부분만 선택한다. “칼은 하얗고, 칼자루는 검어요. 옛사람들이 만든 세련된 색감의 조화입니다.”

나전칠기장도
옥장도
화각장도
칼자루와 칼집에는 은이나 백동에 무늬를 새긴 장석을 붙인다. 여성용 장도에는 나뭇잎, 국화, 꽃나무, 난 등을, 남성용 장도에는 누각, 문구, 산수, 박쥐 등을 새긴다. 또 백동으로 만든 국화꽃(왕막이)을 붙이고, 거기에 꽃자주색이나 남색으로 물들인 명주끈을 매듭으로 장식한다.

“장도 만들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이죠. 금속을 녹이는 일, 형태 잡기, 새김질까지 고도의 정신집중을 해야 해서, 순간의 방심은 금물입니다.”

완성된 장도의 칼날을 바라보는 장인의 눈길에 때마침 만개한 매화 꽃잎이 보태진다.

광양/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장도장이란

중국·일본에는 없는 한민족 칼문화
“살상 대신 자기 몸과 마음 지킨다”

장도의 칼집과 칼자루에는 다양한 장식이 자리한다. 박종군 장도장의 공방에 있는 각종 재료들.
장도(粧刀)는 정작 칼이 발달한 일본과 중국에는 없는 한민족의 독특한 칼문화를 보여준다. 박종군 장도장은 “한민족의 장도는 바르게 살기 위한 칼, 나쁜 마음을 도려내는 칼입니다. 살상 목표가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한 칼입니다.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칼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실 경공장(京工匠)에 소속된 6명의 장인이 왕실 장도를 전담 제작했고,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쓰이는 장도는 광양, 곡성, 울산, 영주, 울진 등 전국에 분포된 사장(私匠)들이 만들었다.

장도에 사용하는 금속재료 가운데 금·은·백동·구리 등은 주로 칼집과 칼자루를 만드는 데 들어가고, 철은 연마해 도신(칼날)을 만들 때 필요하다. 나무재료로는 흑단·먹감나무·대추나무·향나무·대나무·심향목 등이 좋고 옥·호박·비취·마노·공작석 등의 보석류와 거북 등껍질(대모)·소뼈 같은 동물에서 추출한 재료들도 쓰인다.

제작도구로는 금속을 녹이는 화덕과 공기를 주입해 불의 온도를 강약으로 조절하는 풀무, 장도의 장식과 부속품의 형을 잡는 데 쓰는 보래와 모루, 쇠망치, 줄, 숫돌, 정, 집게 등이 다양하게 동원된다.

장도 중에서 몸에 차는 것은 패도(佩刀)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을 낭도(囊刀)라고 했다. 장도는 칼집 장식이 복잡한 ‘갖은 장식’과 단순한 ‘맞배기’로 나뉘는데, 맞배기에는 칼집이 원통형인 평맞배기와 을(乙)자형인 을자맞배기가 있다. 칼집이 사각형이면 사모장도, 팔각이면 모잽이장도라 부르고, 재료에 따라 금장도·은장도·백옥장도 등으로 부른다. 선비들은 대나무에 좋아하는 시문을 새긴 낙죽장도를 선호했다.

이길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