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회원들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이 더 우경화되고 노골화됐으며, 일본 정부의 입장이 대폭 기술되면서 교과서가 정치 도구화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2015년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로 검정 통과된 교과서 분석 자료가 이들 앞에 놓여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사회과 3종 ‘억지 서술’ 대폭 확산…정부, 일본 대사 불러 항의
내년부터 일본 중학생들이 배울 교과서에서 독도 관련 서술이 크게 악화했다. 공민·지리·역사 등 사회과 3과목 교과서 전체 18종 가운데 독도와 관련해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기술한 교과서는 현행 9종에서 15종으로 늘었고,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교과서는 4종에서 13종으로 3배 넘게 늘었다.
6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6년부터 4년 동안 사용될 중학교 전 과목 교과서의 검정 결과를 일제히 발표했다. 교과서 종류별로 일부 서술의 차이는 있지만, 중학교에서 공민·지리·역사 3과목을 배우는 과정에서 사실상 모든 일본 중학생들은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배우게 됐다. 지난달 말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등 조금씩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한-일 관계에 또다른 대형 악재가 될 조짐이다. 일본 정부는 7일엔 한국과의 외교 관계를 설명하며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내용을 담은 <외교청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이 주목받은 것은 아베 정권이 2014년 1월 개악한 ‘학습지도요령 학습서’와 ‘교과서 검정기준’에 따라 처음 이뤄진 검정이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교과서 집필과 검정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할 땐 정부의 통일된 견해를 따를 것’과 ‘독도 등 영토 문제에선 일본 고유의 영토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결정한 바 있다. 내년 3~4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2017년부터 사용) 검정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4월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때도 독도 관련 기술이 대폭 악화된 바 있다. 이런 변화는 일본이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를 등에 업고, 근현대 역사를 집필할 땐 주변국에 “필요한 배려를 한다”는 1982년 ‘근린제국조항’(미야자와 담화)과 완전한 결별을 선택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조태용 외교부 제1차관은 이날 오후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항의했다. 외교부는 대변인 성명에서 “일본 정부가 왜곡된 역사관과 그에 기초한 영토관을 일본의 자라나는 세대에 지속 주입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지만, 예년보다는 항의 표현을 완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악화한 한-일 관계에 더 큰 불똥이 튀는 것은 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교육부도 이날 항의 성명을 내고 긴급학술대회를 열었다. 청와대는 별도의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여러 계기를 통해 일본 지도자들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한 만큼 일본의 퇴행적 행태에 일일이 대응하는 건 격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김외현 엄지원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