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의사에 반해 모집·이송”
전·현직 역사 교사들이 만든 출판사
중학교 책에 4년만에 실어
엄혹한 여건 속에서도 의미있는 변화는 있었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전·현직 역사 교사들이 모여 만든 ‘아이들과 배우는 역사교과서의 모임’이 설립한 출판사인 ‘마나비샤’는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서 2011년 이후 중학교 교과서에선 사라졌던 위안부 관련 기술을 4년 만에 부활시켰다.
<한겨레>가 입수한 출판사 ‘마나비샤’의 <사회>(역사 부분) 검정통과본을 보면, 281쪽 ‘인권침해를 되묻다’ 부분에서 “1990년 한국 김학순의 증언이 계기가 돼 일본 정부는 전시의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1993년에 사죄와 반성의 뜻을 보여주는 정부 견해를 발표했다”고 서술했다.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처음 밝힌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을 통해 일본 정부가 1993년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탄생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페이지에는 “조선반도에서 위안부의 모집·이송 등은 전체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이뤄졌다”는 고노 담화의 핵심 내용도 인용돼 있다.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힌 ‘무라야마 담화’의 구체적 내용은 소개되지 않았지만, 연표 안에 일본 정부가 1995년 이 담화를 발표했다는 사실을 정리했다. 이 교과서는 또 일본 식민지배와 침략에 저항한 한국 민중들의 주체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는 등 민중사적 관점의 집필을 시도했다.
그동안 일본 중학교 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기술은 역사 속에서 부침을 겪어 왔다. 일본 시민단체인 ‘중학역사교과서에 위안부 기술 부활을 요구하는 시민연락회’의 자료를 보면, 중학교 교과서에 위안부 기술이 처음 들어간 것은 1993년 고노 담화가 발표된 뒤 나온 1997년도 검정 교과서부터다. 당시엔 7종의 역사 교과서 모두에 관련 기술이 포함됐지만, 2002년엔 3곳, 2006년엔 2곳으로 줄었고, 2011년 검정에선 모두 사라졌다. 이번에 문부성은 마나비샤의 첫 원고를 한차례 불합격 처리한 뒤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의 견해를 병기하는 조건으로 위안부 관련 기술을 허용했다. 다카시마 노부요시 류큐대 명예교수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기술이 부활한 것은 획기적인 측면”이라며 “위안부 기술이 교과서 검정을 통과했으므로 앞으로 이를 쓸지 말지는 각 출판사의 의지에 달린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월 ‘교과서 검정기준’을 개정하며 “각의 결정(국무회의 의결) 등 정부의 통일된 견해가 있는 경우엔 이에 근거해 기술할 것”을 요구했고,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지난해 3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는 정부의 통일된 견해가 아니다”며 이를 교과서에서 퇴출하려 했다. 하지만 이후 두 담화와 관련한 내용이 모두 각의 결정됐다는 사실이 확인돼 교과서에 실릴 수 있게 됐다.
도쿄/길윤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