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한가/이영주/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4. 9. 08:44

사설.칼럼왜냐면

[왜냐면]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한가 / 이영주

등록 :2015-04-08 19:40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오랜만에 만난 아는 언니가, ‘그래, 네가 원자력발전소에 다니니까 말 좀 해봐라, 안전한 거 맞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할 말을 찾으려고 궁리합니다.

저는 공대를 졸업하자마자 입사해서 17년째 원자력발전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고리나 월성의 발전소는 아니지만, 그래도 발전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도 아니고 지금은 기술업무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오랜 기간 회의하고 의심할 것을 학습하는 과학도라서, 원하는 만큼 확신을 주는 대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의 노력은 한계가 있다고밖에 말하지 못합니다.

기술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열망이나, 순수한 의지, 순수한 태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운용하는 사람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자본, 그걸 가능하게 하는 사회가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기술과 정치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그건 돈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이라는 측면에서 ‘정치’-자원을 어찌 배분할지 말하는 것이 정치라면-는 당연히 고려해야 하는 거니까요.

‘너네 발전소도 후쿠시마처럼 터져?’라고 물으면, ‘그러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콘크리트 돔 안에 있거든’-제가 근무하는 노형에, 아직 그런 사고는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후쿠시마와 같은 설계의 발전소는 없습니다-이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리의 원자로용기가 쨍하고 깨질 지경이라던데 그건 사실이야?’라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게 아닙니다. ‘음. 나는, 내가 속한 조직이라서, 그런 상황에서 계속운전을 하겠다고 할 만큼 우리 조직이 무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좀더 열심히 변호하거나 변명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 때문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정부가 임명하는 사람이 사장이 되는 회사에서 운영합니다. 후쿠시마가 터졌을 때 우리가 일본보다 낫다면 이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가 운영하고 있어서 적어도 저런 상황에서 발전소를 다시 돌릴 생각에 냉각을 주저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국가가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부도덕한 정치 아래에서 우리의 노력은 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원외교와 아랍에미리트(UAE)로 수출한 원자로 덕분에 운영 중인 발전소의 인력은 하염없이 줄었습니다. 방만경영이라는 칼날을 들이대서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가 안전하려면 문화가 안전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조직이 수평적이어야 문제점과 의문을 누구나 자연스럽게 제기하고 이에 대해 토론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안전해진다고 배웁니다. 그런데 정부가 사장을 앉히고, 그 사장을 평가하고, 정부의 정책에 잘 따르지 않으면 가차없이 바꿉니다. 생명줄을 틀어쥐고 협박하는 조직에 수평적인 토론을 통해 안전한 문화를 만들겠다는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처량합니다.

회사가 정부 평가에 연속으로 좋은 결과를 받았을 때 조직은 수직적으로 강화되었고 평가에 옥죄인 조직은 사건을 은폐해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끝까지 그 일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던 사장은, 물러나고 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국가를 안전하게 운영하려는 의지를 정부가 행동으로 보여줬다면,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걸 말만이 아니라 무언가 실천으로 보여줬다면, 저는 좀더 열심히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변명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 원자력발전소‘만’ 안전할 수는 없는 거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영주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