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석 전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짬] 암 이겨낸 ‘1세대 칸트 연구자’ 한단석 명예교수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말했습니다. 인간을 이용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뜻이지요. 평생 칸트를 연구한 저한테는 그 말이 가장 인상깊게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나라 1세대 칸트 연구자’ 한단석(88) 전북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2000년 초부터 10년 넘게 위암·대장암과 투병해온 그는 지난해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지난 10일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만난 그는 다소 거동이 불편했지만, 평생 연구해온 칸트 사상을 널리 대중에 전파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보였다.
“칸트의 3대 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실천이성비판>은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판단력비판>은 ‘우리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결국 칸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지요. 서구 철학사상의 근본을 이루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때 일어판 ‘순수이성비판’ 읽고
잠 못 이룰 정도로 설레었던 ‘철학 소년’
서울대 거쳐 도쿄대 유학해 칸트 박사로 총련계 고교 은사와 인연 외면 못해
두차례 ‘국보법’ 고초에 암투병 10년
“죽을 고비 넘기니 인간 존중 더 절실” 1928년 전북 군산의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한 교수는 중학교 때 일본어판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이틀 동안 잠을 못 잘 정도로” 설렜고, 이 영향을 받아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한국 근대화의 촉진을 위해서는 전통사상보다 새로운 근대화를 도모할 서양사상을 수용하고 토착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학원까지 마친 뒤 58년부터 전북대 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74년 도쿄대 문학부에서 칸트에 대한 이론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79년 한국철학회 회장, 86년 범한철학회 초대회장을 지냈다. <철학개론>(범문사·1966), <칸트의 생애와 사상>(형설출판사·1980), <헤겔 철학사상의 이해>(한길사·1981), <칸트 ‘순수이성비판’의 현대적 의의>(신아출판사·2003) 등을 썼으며 2009~12년 4년에 거쳐 <동리 한단석 논문집>(1~8권)을 펴냈다.
잠 못 이룰 정도로 설레었던 ‘철학 소년’
서울대 거쳐 도쿄대 유학해 칸트 박사로 총련계 고교 은사와 인연 외면 못해
두차례 ‘국보법’ 고초에 암투병 10년
“죽을 고비 넘기니 인간 존중 더 절실” 1928년 전북 군산의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한 교수는 중학교 때 일본어판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이틀 동안 잠을 못 잘 정도로” 설렜고, 이 영향을 받아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한국 근대화의 촉진을 위해서는 전통사상보다 새로운 근대화를 도모할 서양사상을 수용하고 토착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학원까지 마친 뒤 58년부터 전북대 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74년 도쿄대 문학부에서 칸트에 대한 이론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79년 한국철학회 회장, 86년 범한철학회 초대회장을 지냈다. <철학개론>(범문사·1966), <칸트의 생애와 사상>(형설출판사·1980), <헤겔 철학사상의 이해>(한길사·1981), <칸트 ‘순수이성비판’의 현대적 의의>(신아출판사·2003) 등을 썼으며 2009~12년 4년에 거쳐 <동리 한단석 논문집>(1~8권)을 펴냈다.
한단석 명예교수는 <철학개론>(범문사·1966), <칸트의 생애와 사상>(형설출판사·1980), <헤겔 철학사상의 이해>(한길사·1981), <칸트 ‘순수이성비판’의 현대적 의의>(신아출판사·2003) 등을 썼으며 2009~12년 4년에 거쳐 <동리 한단석 논문집>(1~8권)을 펴냈다.
그가 특히 칸트를 전공하게 된 데는 고 박종홍(1903~76) 서울대 교수의 조언 덕이 컸다. 국내 서양철학 연구의 첫 문을 연 박 교수는 강단의 중진 철학 연구자들의 스승이자 석학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박정희정권의 유신체제 정당화에 명분을 부여한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하고, 독재의 이데올로기로서 반공민주주의를 철학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 교수 역시 그의 행적을 아쉬워하지만 칸트 철학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 ‘선학’에 대한 고마움도 숨기지 않았다.
“박 교수는 칸트야말로 서양 근대철학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했어요. 그 말대로, 칸트는 이전의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해 새로운 철학적 입장인 ‘비판주의 철학’을 수립하려 한 학자였습니다. 특히 실천이성은 도덕의 기초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실천적 인식에 우위를 부여하는 칸트의 비판정신은 도덕적 의식, 양심,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됩니다.”
하지만 한 교수 자신은 인간 존엄성의 밑바닥을 경험하기도 했다. 78년과 2000년 두 차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도쿄대 박사과정 시절 총련계였던 고교 은사를 모른 척 할 수 없어 만난 것이 문제가 됐다. 코 속에 고춧가루물을 붓는 지독한 고문도 받았다. 두번째 구속 역시 이 은사와 지속적인 교류를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 변호인 접견조차 방해받으며 고초를 겪었다. 인권단체들은 72살 고령의 원로 교수에 대한 과잉 불법수사라며 강하게 항의했으나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2005년 12월 한 교수는 도쿄에서 열린 일본 칸트협회 창립 30돌 기념행사에서 칸트 철학 연구와 한·일 학문 교류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회원증을 받았다. 협회가 10년 만에 한번씩 칸트철학 석학에게 주는 이 상은 독일 마인쯔대학 게르하르트 훈케 총장 등이 받았다. 그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일이었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칸트의 사상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예컨대 세계인류평화에 대해 논하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보면, 온우주가 들어있다시피 합니다. 영구평화란 ‘인간이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도 하죠. 18세기 말에 국가간의 분쟁을 예견하고 영구적인 평화에 대해 상상했다는 것 자체가 참 놀라운 일입니다.”
한 교수는 칸트철학이 강조하는 인간성 존중에 대해 거듭 말했다. “인간은 양심을 갖고 있고, 도덕적 의식은 지식보다 높아야 한다고 칸트는 강조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을 수단화하지 말라고 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거듭 되살려야 할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